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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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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잉~

때마침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옴
바람은 시원했으나 분위기는 싸늘하기 그지 없었음

미친. 양호열 표정 봐ㅜㅜㅜ 그 때 나 팰 때도 저 정도 정색은 안 했는데ㅜㅜ
이게 정답이 아니었나봐ㅠㅠ

정대만은 있는 눈치, 없는 눈치를 싹싹 긁어 모아 내밀었던 5만원을 후다닥 바지 주머니에 넣었음
지갑에 넣을 틈도 없었지
여기서 지갑을 또 열면 진짜로 죽빵을 맞을 것 같았거든
정대만이 머쓱해하며 양호열의 눈치를 힐끔 봤음

어..?
그런데 분명히 악귀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양호열의 표정이 막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음

오히려.. 음.. 오히려..


"대만군.. 진짜 너무하네요."


상처받은..?
엥?? 양호열이 상처를?!?!


"난 그냥 대만군이 날 너무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한 것 뿐인데.."

"아,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대만군은 나를 그렇게 생각했군요."

"아니야. 내, 내가 실수했어. 미안. 아니... 내가 원래 좀 눈치가 없어... 진짜 미안해.."


알긴 아는구만.

양호열은 속으로 콧방귀를 꼈음
웃는 얼굴로 안되면 불쌍한 척으로 한 번 가보자고.
이것도 실패하면.. 그 땐 그냥 쫑이지 뭐.

이거야 양호열의 속사정이고.
그 내막을 모르는 정대만은 안절부절하며 양호열에게 계속해서 사과를 함

그래. 아무리 그래도 쟤는 2살 어린데..
그 떄도 사실 날 도와준 게 맞았고.. 오히려 고맙다고 무릎을 꿇어도 모자랄 판국에!
정대만 등신!!!


"저기.. 호열아.. 내가 진짜 미안해서 그런데.. 오늘 같이 밥 먹자. 응?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됐어요.. 대만군 나 불편해 하잖아요.."

"아, 아니야. 누가 그래!! 내가 너랑 먹고 싶어서 그래!!"


흠. 정답은 웃는 게 아니라 우는 거였군.
불쌍한 척에 약하다 이건가.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양호열은 조금 고민하는 척 하다가 승낙했겠지.

그리고 방과후.
오늘은 연습이 없는 날이라 일찍 마쳤음
호열이네 반이 좀 일찍 끝나서 호열이는 3학년 층으로 올라갔음

정대만은 어디 있나.

호열이가 뒤에 달린 창문으로 정대만을 찾았음
키가 커서 그런지 쉽게 찾을 수 있었지
마칠 때가 다 되어서 그런가 조는 낌새는 없었지만 곧 양호열과의 약속이 있어서 그런지 잔뜩 긴장을 한 채로 다리를 덜덜덜 떨고 있었음

지도 나만큼 스트레스 받아 보라지.

양호열은 속으로 낄낄 웃으며 정대만의 초조한 모습을 관찰했음

얼마 후.
종례가 끝났는지 반에서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정대만은 나올 생각을 안 함
힐끗 보니까 아까 봤던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이번에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음

슈터란 사람이 저렇게 손톱을 물어뜯는다고?
아니! 그 정도로 나랑 밥 먹는 게 무섭다고?!?!

또 킹받은 양호열은 쿵쿵거리며 정대만에게 다가가 손을 낚아챔


"대만군. 슈터잖아요. 손톱 관리 안 해요?"

"으악!!!!!!"


그랬더니 정대만이 거의 엉덩이를 찔린 개구리마냥 의자에서 펄쩍 뛰어오르는 게 아님..?

아... 진짜 짜증나네..

양호열이 한숨을 쉬었음


"야, 양호열아..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그럼 뭔데요. 지금 나랑 같이 가기 싫어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죠. 그리고. 내가 귀신이야? 뭘 그렇게 놀라요."


귀신 맞네. 
가기 싫은 마음도 알아채고.
혹시 도망가나 보려고 반까지 쫓아온 귀신.. 맞잖아 ㅠㅠ


"아니라니까..."


속내를 들킨 정대만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음
이제 기대할 것도 없었던 양호열은 


"알겠어요. 대만군이 그렇게 싫으면 이제 옆에 안 갈게요."


하고 뒤 돌아서 대만이네 반을 나감
본인이 할 노력은 이미 다 한거다 싶었겠지
싫다는 사람 붙들고 놀아달라고 할 마음은 딱히 없었으니까 정대만이랑의 관계는 여기까지인가 보지 뭐.

미련없이 떠나는, 그렇지만 정대만의 눈에는 풀죽은 것 같은 그 뒷모습에 흐에엑. 좃됐다 싶은 정대만은 허겁지겁 양호열을 쫓아가서 손목을 붙잡았음


"지, 진짜 아니야!!! 놀란 건 미안해.. 근데 가기 싫은 건 아니었고.. 그냥. 같이 있으면 어색할까봐.. 무슨 얘기를 해야 되나 고민했어.."


반은 진실, 반은 거짓이었음
양호열은 다 티나는 거짓말로 참 애쓴다 싶어 이번에는 넘어가주기로 함


"그럼 이제 가요."

"어? 응. 그래야지.."


정대만이 교실로 들어가 가방을 챙겨서 나옴
밖으로 나왔더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음
다행히 정대만은 우산이 있었고.. 힐끗 양호열을 보니 음. 손은 빈손. 그렇다고 저 납작한 가방에 우산이 들어갈 리는 없고..
아아... 결국 같이 써야 하는 운명이군...


"하하... 우산..이 없는 거지..? 같이 쓰자."

"그래요."


그리고 우산을 쓰고 가는데..ㅎ
정대만과 양호열 사이에 반 뼘, 그것도 정대만의 손 크기로 반 뼘. 그 정도나 되는 틈이 있었음
그런 주제에 또 우산은 양호열 쪽으로 기울여놨지
그래서 정대만의 왼쪽 어깨가 비로 다 젖어들어가고 있었음

기가 찬다, 기가 차.


"하... 대만군."

"왜, 왜!!!!! 우산 더 기울여줄까!!!"

"대만군은 내가 그렇게 싫어요?"

"뭐???????!!!!!!!!!!!!!! 아니야!!!!!!!!!!!!!!!"


이 인간이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나..
바로 옆에 있었던 호열이의 고막이 터질 뻔 했음
양호열은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삼키고 눈썹을 팔자로 내렸음
여기까지 왔는데 화를 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원래도 그다지 올라간 눈매는 아닌지라 조금만 풀죽은 척 하면 불쌍해 보이는 건 껌이었지
그 표정을 보고 또 정대만은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함

겁은 많은 주제에 동정심은 오지게 많구만.


"내, 내, 내가 너랑 얼마나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렇군요.. 그래서 나랑 붙어있을 바에야 차라리 비를 맞는 걸 선택했군요.."

"아니라니까!! 봐! 이, 이렇게! 이렇게 붙으면 되지!!"


아. 어깨동무를 하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삐그덕 거리던 정대만이 양호열의 어깨에 팔을 둘렀음
정대만도 너무 친한 척을 한 것 같아 좀 아차 싶긴 했는데 뭐 어쩌겠음
여기서 팔을 빼면 더 이상해질걸..?
그러고 둘 사이는 또 침묵이 가득했겠지
양호열은 정대만이 무서워할 때와는 다른 의미로 자기 눈치를 보는 게 재밌어서 일부러 입을 닫고 있었고, 정대만은 양호열이 혹시 상처 받았을까봐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는데.. 상처 받았으면 어떡하냐고ㅜㅜ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대만은 그다지 말재주가 없는 편이었음..


"저.. 저기 호열아.."

"왜요."

"내, 내 맘 알지..?"


그 순간 양호열의 얼굴도, 정대만의 얼굴도 굳었음

씨발!!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정대만!!
내 주둥이, 이 새끼야! 당장 닥치지 못해!!!!!!

하지만 자아와 주둥이가 따로 노는 정대만인지라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걸 막을 수가 없었지


"...모르겠는데요."

"나 진짜 너 그렇게 생각 안 해... 진짜야.."

"진짜 모르겠는데요."

"진짜 진짜라니까?!"


진짜 진짜인 게 도대체 뭔 말인데;;

흥분한 정대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음


"예.. 뭐.."


양호열은 쉽게 굽혀줄 상대가 아니었고.
그래서 쉽게 흥분하고, 오기까지 생긴 정대만은 양호열을 두려워하던 감정을 잊고 소리쳤음


"야!!!!!!!!!! 난 진짜 널 좋아한단 말이야!!!!!!!!!!!!"


아, 잠시 잠시!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그러니까, 정대만의 머리 속에는

'하하하. 호열아. 난 정말로 널 좋아한단다. 물론 친구로서, 후배로서. 넌 날 농구를 다시 하게 해준 은인이잖니? 그런 내가 널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니. 물론! 물론 너의 정색한 얼굴은 쬐애끔 무섭긴 하지만  그게 무섭다는 의미지 싫다는 의미는 아니잖아? 나도 너와 친해지고 싶지만 좀 시간이 걸릴 뿐이란다. 하지만 이렇게 같이 있게 되었으니 우리 이제까지의 오해는 풀고 잘 지내보지 않을래?'

라는 구구절절한 말이 들어 있었단 말임..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정대만은 조리있게 정리해서 말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던지라...


좋아한단 말이야-

한단 말이야----

말이야-------!

...

까악.. 까악...

투둑- 투둑-


하교길.

하필 연습이 없는 날.

북산고의 학생은 수백 명.
정대만과 양호열이 가는 방향과 겹치는 학생은 수십 명.
거기서 정대만과 양호열의 근처에 있던 학생은 대략 열 명.

그리고 비를 피하느라 나무에 앉아 쉬고 있던 까마귀 한 마리.

때마침 줄어든 빗줄기로 인해 정대만의 목소리는 너무나 잘 들렸고, 그 덕분에 정대만은 시퍼래진 얼굴로 북산고 학생 수 명과, 동물 한 마리... 

그리고... 눈으로 개쌍욕을 내뱉고 있는 정대만을 회 치기 일보 직전인 야차 한 마리..? 아니, 한 명..?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음..


아니ㅜ
난 진짜 양호열 기분 풀어주려고 한 죄 밖에 없다고 ㅜㅜ
엄마ㅜ 엄마 아들 좆됐어 ㅜㅜ



호댐 호열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