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um Scott - You Are The Reason ㅊㅊ
전편 https://hygall.com/611290790
기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거대한 사랑만큼 쏟아지는 비난과 험담도 당연히 여겨야 하는 직업이라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일반인 연인을 겨냥한 협박을 단순한 악플 수준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범인은 스토커처럼 배우들을 쫓았고, 마치 사냥이라도 하듯 그들의 연인을 찾아냈다. 이를 빌미로 거액을 요구하며 응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생활 침해를 넘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위협한, 심각한 범죄에 대중은 분노했다.
LA 경찰은 기자회견에서 라이언 레이놀즈의 이름을 언급했다. '범인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촬영과 프로모션 일정 중에도 긴밀히 협력하며 사건 해결에 헌신했다고.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특별 공로상을 수여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끝내 라이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큰 피해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사건과 별개로, 상영 중인 영화에도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대중에게 전달된 것은 간접적이고 정석적인, 지인의 답변뿐이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지키고 싶었던 일반인 연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과 추측이 쏟아질 법도 했지만, 사건이 사건이었던 만큼 금세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허니는 온갖 기사를 찾아 읽으며 모든 조각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갖자던 말, 생각해 보자던 말.
이제 행복해지고 싶다더니 촬영이었을 뿐인 연애설.
프로모션 기간 내내 점점 말라가는 듯하던 얼굴.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허니는 라이언을 향한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프로모션 일정을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아니까. 찾아보던 인터뷰마다 지나치게 피곤해 보이는 것 같더라니.
어쩐지, 운 것 같더라니.
허니 비는 라이언의 연기 톤은 구분하지 못해도 그가 운 흔적은 기막히게 알아차렸다. 득달같이 '오늘 우는 씬 있었어?'하고 물어보곤 했다. 이번 프로모션이 유난히 더 힘든가 싶었다. 어쩌면, 나의 밤이 눈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너의 밤도 그러길 바라는 욕심에 내가 지금 착각하는 건가 했다.
그 단편적인 순간들이 이제야 하나로 이어졌다. 라이언 혼자 쓴 각본, 혼자 한 연기... 완성된 그림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구나. 혼자서.
"라이언..."
혼잣말처럼 그의 이름을 내뱉자, 라이언이 혼자 감당하고 있던 모든 무게가 허니 위로 쏟아졌다. 조각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고통이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차키를 챙겨 문을 나섰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일단 만나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게 다 나를 위해 벌인 일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얼마나 괴롭고 외로웠냐고 끌어안고 달래주고도 싶었다. 그다음에는... 허니 비는 현관 앞에 서서야 자신이 이제 더 이상 라이언과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안 만나주려고 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어떡해.
스치는 가정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제멋대로야. 허니는 분노에 차 초인종을 부술 듯이 누르며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피할 땐 본인이 끝을 모르고 쫓아왔으면서, 이제는 본인이 먼저 끝내고, 안 만나준다고? 현관 너머로 아무런 반응이 없자 허니는 손으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누가 들을까 이름은 부르지 못했다. 차고에 차가 있는 것도 봤는데... 집에 없나?
혹시 싶어 비밀번호를 눌러보니 그대로였다. 우리의 기념일. 바꿀 정신이 없어 아직 그대로인 걸지도 모르지만... 허니 비도 라이언을 알 만큼은 안다. 인기척이 있는 듯, 없는 듯 알 수 없는 거실에 들어서며 생각했다. 이런 걸 그냥 둘 사람은 아니다.
방 안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나길래,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며 들어갔더니 침대 위에 한 형체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끙끙거리는 소리가 커져, 놀란 허니는 황급히 이마에 손을 짚었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라이언, 온몸이 불덩이잖아.
허니 비도 라이언을 알 만큼은 안다고 했다. 쌓아온 시간 덕이다. 라이언은 모든 프로모션 일정이 끝나면 크게 앓고는 했다. 이별 후 가장 걱정됐던 부분이기도 했다. 주제넘다, 생각하면서도. 이번 프로모는 끝난 지 좀 됐던데.... 이내 허니는, 기사가 난 시기와 내용들을 떠올리며, 그가 이제야 긴장을 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허니 비는 속상한 마음 반, 화가 나는 마음 반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물건들을 찾아서.
라이언은 새벽 내내 앓았다. 허니는 계속 물수건을 갈아주고, 가벼운 미음을 먹이고, 약을 챙겼다. 얼마나 크게 앓는지, 라이언은 저를 챙기는 게 허니 비인 줄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손길이어서 우리가 헤어졌다는 걸 기억해 내지 못했거나. 한두 번 꿈결에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라이언은 약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마른 얼굴, 까슬해진 피부가 안쓰러워 허니는 라이언이 깊이 잠든 틈을 타 몇 번이나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혼자 견디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화가 가라앉자 안쓰러운 마음만 남았다. 깊게 감긴 얼굴을 눈빛으로 샅샅이 훑으며 라이언의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비몽사몽인 간에 품 안에 있는 무언가가 꼼지락거리길래 라이언은 그것을 꽉 끌어안았다. 그와 동시에, 눈을 확 떴다.
껴안고 잘 게 없는데.
마지막 기억은 변호사와 통화를 하고, 기사가 나는 걸 확인하고...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길래 침대 위에 웅크리고 누웠다.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축 처지고,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좀 자고 일어나면 낫겠지, 그럼, 연락을.... 그 이후의 기억은 흐릿하다. 드문드문 허니의 얼굴을 본 것 같기도 했다.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아파 죽겠는데 꿈 마저 지독하게 꾼다고 생각했다.
전날의 기억을 헤집으며 눈알만 살살 굴려 품 안에 안긴 무언가를 내려다보았다. 눈이 다 닿기도 전에, 풍기는 향에, 익숙한 느낌에 눈치를 챘다. 허니 비. 확신했지만 그래도 눈으로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꿈은 아닌가 확인했다. 진짜였다.
살짝 뒤척이며 깨려는 것 같길래, 자는 척하며 품에 더 당겨 안았다. 그게 꿈이 아니었나? 허니가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라이언, 깼으면 이젠 좀 놔줄래,”
계속 자는 척할까.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내린 라이언은 올려다보는 허니의 눈과 마주했다. 막 잠에서 깬 표정, 그가 좋아하던 얼굴. 살짝 느슨하게 풀어주자, 손을 올려 이마를 짚었다. 열은 내렸네. 중얼거리며 확실히 벗어나려 몸을 틀자, 라이언은 다시 품 안에 당겨 넣었다. 그래도 벗어나 보려 몸을 비틀던 허니는 금세 포기하고 잠잠해졌다.
“라이언,”
기사 봤구나.
낮고 단단한 목소리에 라이언은 일이 돌아가는 정황을 눈치챘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알게 됐으니, 붙잡아도 되려나. 돌아와달라고 매달려도 되려나. 힐끔 눈치를 본다.
자기를 감싼 팔을 제대로 풀고 허니는 일어나 앉았다. 라이언도 따라 일어나 침대 헤드에 기대앉았다. 허니는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반사적으로 라이언은 허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라이언은 허니가 무슨 말을 할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다. 하나는 알 것 같았다. 다시 만나려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한없이 지친 얼굴이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지? 너무 늦었나. 붙잡을 여지는 주려나. 누굴 만나고 있다고 하면? 주위를 맴돌게는 해달라고 해도 될까? 아, 허니는 그런 데선 어림없는데… 하지만 정말 허니를 위한 거였는데…..
가뜩이나 남들처럼 편하게 데이트도 못 했고, 자기랑 만나기 시작하면서 일도 제한적으로 받아서 했다. 라이언이 꽂아줬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그런 연인에게 누가 널 빌미로 나를 협박한다고 말할 수가 있었을 리가. 내 곁을 지키려 할 걸 알기에, 더더욱 그럴 수가 없었다. 네가 내 직업 때문에, 나 때문에 다치기라도 하면…. 라이언은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연인 사이가…. 뭐라고 생각해?”
허니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던 라이언의 생각을 뚝 끊었다. 온몸이 묶인 듯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그 나지막한 질문이 라이언에게 비수같이 꽂혀 들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눈물로 흘러내린 질문이라는 것을,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라이언은 온몸으로 느꼈다. 그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혀오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니, 우리 관계를 되돌릴 정답을 말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대답도 허니에게 준 상처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할 터였다. 라이언은 눈을 감았다. 걱정과 분노, 씁쓸함이 가득 담긴 눈을 더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손목을 놓지는 않았다.
"미안해...."
그의 목소리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서질 듯 떨렸다. 정말 미안해, 너를 위해서였어, 네가 다칠까 봐.....
허니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게 아니냐고, 일방적으로 견딜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자신이 유명인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라 미덥지 않았냐고 물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싶을 정도로 건조한 목소리였다. 라이언은 황급히 그런 게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려고 했지만, 허니는 말을 끊게 두지 않았다. 애꿎은 입술만 질끈 깨물고, 손목을 조금 더 꽉 잡았다.
허니는 고개를 돌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두 사람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허니는 네게 나누던 내 문제들이 네게 짐이었냐고 물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쓰라렸다. 절대 아니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끼어들어 알려주고 싶었지만, 라이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기가 한 행동 때문에.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겨우겨우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사실 이런 말할 자격도 이제 없지,"
허니 비는 손목을 부드럽게 빼내며 말했다. 라이언은 세상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절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손을 다시 잡아보려고 했지만 허니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한번 만나보기로 했을 때, 내가 한 결심이 그렇게 가벼워 보였을까? 허니 비는 생각했다. 아니라는 걸 안다. 자기를 위한 선택이라는 말이 진심인 것도 안다. 하지만, 나를 좀 더 사랑했다면, 나를 조금 더 믿었더라면 함께 감당하기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어려울 때 상대를 떠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또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허니의 마음도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이 순간에 메여버릴 것을 알았다. 어쩌면 이것이 자신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결국 어떤 이유로든 연인을 떠나는 선택을 한 그가 어디까지 각오해야 했는지....
"라이언, 이게, 네 선택이야."
다음에는 그런 선택을 하지 마.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그제야 허니 비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길어질 게 아닌데... 노잼글 길어져서 ㅈㅅ....
놀즈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