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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17:37
전편: https://hygall.com/611154958
첫째 날
로건이 아닌 척했지만 오랜만의 배 운전이 떨리기는 한가보다. 출발하기 전에 항구에 묶어둔 밧줄을 미처 풀지 않아 배가 덜컹하는 순간은 나까지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로건은 서둘러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밧줄을 풀고 돌아왔지만, 얼굴엔 미세한 민망함이 어린 게 다 보였다. 그걸 놓칠리가 없는 웨이드는 이걸 기회 삼아 세 시간 동안이나 그를 놀렸다.
바람이 참 좋다. 차 창문을 열고 맞는 바람과는 확실히 다르다. 저 먼 수평선이 이어진 바다 위에서 느끼는 공기는 묘한 자유로움과 함께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 과거의 시끌벅적한 날들에서는 느낄 수 없던 고요함과도 같은 이 시간—믿기지 않는다. 그저 바라기만 했던 이 풍경이, 이제 이렇게 내 눈앞에 있다니.
썬시커 위에 앉아서 웨이드가 장난스럽게 떠드는 소리, 그에 로건의 낮게 웅얼거리는 대답이 들려오는 이 순간, 썬시커 위에서, 내가 이렇게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첫 날이니까 로건에게 말하는 건 뒤로 미뤄야겠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바다에 있을 수 있다고 했으니, 시간은 있다.
둘째 날
아무래도 웨이드의 힐링팩터는 로건과 꽤나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양이다. 힐링팩터가 있어도 멀미를 하나?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선실을 활보하던 웨이드가 오늘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갑판에서조차 가끔 헛구역질 소리가 들려올 정도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
지금까지 로건이 멀미를 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웨이드가 몹시도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방문을 두드리며 한참이나 뭐라뭐라 소리치더니 결국 포기하고 내 옆에 와 앉았다. 그러고는 혀를 차며, 저렇게 나약해 빠진 놈은 처음 본다며 옛날 얘기를 꺼냈다.
엑스맨 시절, 스콧이 배만 타면 어김없이 멀미를 했던 게 떠오른 모양이다. 로건은 그걸로 꽤나 그 아이를 놀려대곤 했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자잘한 추억들까지 하나하나 늘어놓는 모습에서 퍽 여유가 보인다. 다행이다.
이렇게 벌써부터 멀미를 하면 앞으로 며칠간의 항해는 어떻게 견디겠냐며 투덜거리면서도, 로건은 분명 이따가 먹을 것을 챙겨들고 웨이드의 방문을 두드리겠지.
안 봐도 뻔하다.
오늘은 일단 웨이드가 걱정되니까 로건에게 말하는 건 조금만 더 뒤로 미뤄야겠다.
셋째 날
웨이드가 다시 쌩쌩해졌다. 이젠 기운이 넘치는지 갑판에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더니, 난간에 매달려 물 위로 떨어질 뻔하는 위험천만한 짓까지 했다. 로건이 재빠르게 그의 멱살을 잡아 당겨 겨우 갑판 위로 끌어올렸는데, 웨이드가 도리어 화를 냈다. 난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바다에 빠지면 이번에도 자신이 구해낼 수 있는지는 모르는 거 아니냐며 역정을 낸다.
당황한 로건이 알았다고 달래는 게 분명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저녁동안 웨이드는 로건을 과보호하기 시작했다. 로건이 선실에서 나와 갑판으로 걸어나가기만 하면 마치 보디가드라도 된 듯 그의 옆을 지켰다. 로건이 꾹꾹 참다가 내 눈치를 보며 웨이드에게 적당히 하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그 모습에 웃음이 자꾸 새어나와 혼났다.
저러다 한 대 맞고 말지. 하던 순간 로건이 결국 못참고 저녁을 먹다 웨이드의 이마를 숟가락으로 후려갈겼다. 빨갛게 올라온 자국이 힐링팩터 덕에 순식간에 사라졌고, 웨이드의 끊임없던 말수도 덩달아 잠잠해졌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는데 그 사이에서 혼자 우스워서 한참을 큭큭댔다.
아, 로건한테 말해야하는데, 하루만 더 뒤로 미루자.
넷째 날
오늘 아침부터, 어제의 복수라도 하려는 듯 웨이드가 갑판을 물바다로 만들며 청소를 시작했다. 좋은 구경 시켜드릴게요! 하며 콧노래를 부르더니, 나를 전망 좋은 곳으로 옮겨주었다. 로건이 갑판으로 나오자마자 웨이드는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고, 그를 흘겨보던 로건은 미심쩍은 기색이었지만, 여느 때처럼 그런 데는 참 눈치가 없었다.
결국 번들거리는 바닥에 발을 헛디딘 로건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순간 찰칵 소리가 났다. 당연히 웨이드였다.
그런 경박한 웃음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웨이드가 배를 부여잡고 한참을 깔깔거렸다.
뒤는 뭐. 말 안해도 알겠지.
지금도 밖에서 술래잡기 같은 걸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애들도 아니고, 이 나이에 육아라도 하는 것 같군. 정신이 없으니까 이따가 화해라도 시켜봐야겠다.
다섯째 날
정말 이상한 녀석들이다. 어제 저녁, 두 사람이 으르렁대며 못 잡아먹을 듯 티격태격하길래 싸움 좀 말리려 먹을 것 들고 방문을 열었더니—글쎄, 한놈은 다른 놈에 가려져 아예 보이지도 않고, 또 한놈은 침대 위로 기어오르다 딱 걸린 듯 얼어붙어선 고개만 천천히 돌려 나를 쳐다보는 거 아닌가. 옷은 다행히 멀쩡히 입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늦게 들어갔다면 아주 재앙이었을 터였다. 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오늘 아침엔 둘 다 내 눈치만 보며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나이에 저런 표정을 짓다니, 청소년들 같기는. 나도 알 거 다 아니 당당하라는 말에 로건이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뭐라 말하려다 말곤 입을 다물었다.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어쩐지 우습기도 하다.
그 사이 웨이드는 로건 몰래 나를 슬쩍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참, 확실히 로건 옆에는 이런 능글맞은 녀석이 필요하긴 하다.
로건이 오늘 하루동안 자꾸 나를 피해다니는 통에 오늘도 말을 못했다. 애꿎은 침만 몇 번을 삼켰는지 모르겠다.
여섯째 날
한동안 잠잠하던 바다가 오늘은 유난히 일렁인다. 웨이드는 며칠째 이어진 비슷한 식단에 질린 모양인지 점심도 걸렀고, 로건은 한동안 선실에서 뭘 고친다고 나서질 않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마침내 다들 갑판에 모였다.
파도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아서, 그 틈을 타 낚싯대를 던져놓고 셋이 나란히 앉았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망망대해에 세 명만 덩그러니 떠 있는 이 기분이라니. 예전엔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정적이, 이젠 더없이 고요하게 느껴진다.
온 저녁이 지나도록 나눈 대화는 누군가가 들었더라면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들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누가 더 좋은 능력인지를 두고 유치하게 다투기도 하고, 내일 저녁엔 뭘 먹을 건지 진지하게 토론하기도 했다.
뮤턴트들의 미래, 인간과의 조화. 항상 나를 억누르던 그런 깊은 주제는 던져버리고 어린 나로 돌아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나눴던 대화처럼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들이었다.
유치했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는 상관없다.
일곱째 날
어젯밤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 동안 미뤄두기만 했던 말, 결국 로건에게 하지 못한 채 일주일이 지나갔다.
이제 인정해야겠다. 그에게 말하지 못했던 모든 이유들은 전부 핑계일 뿐이라고.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미리 말했어야 옳았다. 상처받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어리석은 욕심이 자꾸 내 입을 막는다.
결국 로건 몰래 웨이드를 불러 몇 가지를 부탁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하다. 그에게도 큰 짐일 테지.
로건을 끝내 부르지 못해, 종이를 꺼내 몇 자 적기 시작했다. 그가 날 이해해줄지 알 수 없다.
약이 떨어져 간다.
“찰스, 약이 거의 다 떨어졌던데요. 어차피 기름도 다 떨어져가니까 내일은 잠깐 육지에 들러야겠어요.”
로건이 저녁 식사 후 갑판으로 나와 말했다. 그는 손에 든 지도와 메모장을 뒤적이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찰스는 그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네.”
로건은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대신 웨이드를 흘깃 쳐다보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놈도 갑자기 또 뭔 생각인지 밥도 안 먹고. 뭐라도 새로 채워놔야겠어요. 육지에 들러서 음식도 좀 사오고요.”
웨이드는 난간에 기대어 깊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깨는 평소보다 무겁게 늘어져 있었고, 손은 무언가를 계속 만지작거리는 듯했다.
찰스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로건을 향해 따뜻하게 말했다.
“내일, 해가 뜨면 가자.”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은 너무 늦었고 내일 일찍 출발할게요.”
말이 끝난 후에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로건은 웨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 말 없이 선실로 들어갔다. 찰스는 갑판에 혼자 남아 웨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밤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웨이드로건 덷풀로건
첫째 날
로건이 아닌 척했지만 오랜만의 배 운전이 떨리기는 한가보다. 출발하기 전에 항구에 묶어둔 밧줄을 미처 풀지 않아 배가 덜컹하는 순간은 나까지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로건은 서둘러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밧줄을 풀고 돌아왔지만, 얼굴엔 미세한 민망함이 어린 게 다 보였다. 그걸 놓칠리가 없는 웨이드는 이걸 기회 삼아 세 시간 동안이나 그를 놀렸다.
바람이 참 좋다. 차 창문을 열고 맞는 바람과는 확실히 다르다. 저 먼 수평선이 이어진 바다 위에서 느끼는 공기는 묘한 자유로움과 함께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 과거의 시끌벅적한 날들에서는 느낄 수 없던 고요함과도 같은 이 시간—믿기지 않는다. 그저 바라기만 했던 이 풍경이, 이제 이렇게 내 눈앞에 있다니.
썬시커 위에 앉아서 웨이드가 장난스럽게 떠드는 소리, 그에 로건의 낮게 웅얼거리는 대답이 들려오는 이 순간, 썬시커 위에서, 내가 이렇게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첫 날이니까 로건에게 말하는 건 뒤로 미뤄야겠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바다에 있을 수 있다고 했으니, 시간은 있다.
둘째 날
아무래도 웨이드의 힐링팩터는 로건과 꽤나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양이다. 힐링팩터가 있어도 멀미를 하나?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선실을 활보하던 웨이드가 오늘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갑판에서조차 가끔 헛구역질 소리가 들려올 정도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
지금까지 로건이 멀미를 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웨이드가 몹시도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방문을 두드리며 한참이나 뭐라뭐라 소리치더니 결국 포기하고 내 옆에 와 앉았다. 그러고는 혀를 차며, 저렇게 나약해 빠진 놈은 처음 본다며 옛날 얘기를 꺼냈다.
엑스맨 시절, 스콧이 배만 타면 어김없이 멀미를 했던 게 떠오른 모양이다. 로건은 그걸로 꽤나 그 아이를 놀려대곤 했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자잘한 추억들까지 하나하나 늘어놓는 모습에서 퍽 여유가 보인다. 다행이다.
이렇게 벌써부터 멀미를 하면 앞으로 며칠간의 항해는 어떻게 견디겠냐며 투덜거리면서도, 로건은 분명 이따가 먹을 것을 챙겨들고 웨이드의 방문을 두드리겠지.
안 봐도 뻔하다.
오늘은 일단 웨이드가 걱정되니까 로건에게 말하는 건 조금만 더 뒤로 미뤄야겠다.
셋째 날
웨이드가 다시 쌩쌩해졌다. 이젠 기운이 넘치는지 갑판에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더니, 난간에 매달려 물 위로 떨어질 뻔하는 위험천만한 짓까지 했다. 로건이 재빠르게 그의 멱살을 잡아 당겨 겨우 갑판 위로 끌어올렸는데, 웨이드가 도리어 화를 냈다. 난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바다에 빠지면 이번에도 자신이 구해낼 수 있는지는 모르는 거 아니냐며 역정을 낸다.
당황한 로건이 알았다고 달래는 게 분명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저녁동안 웨이드는 로건을 과보호하기 시작했다. 로건이 선실에서 나와 갑판으로 걸어나가기만 하면 마치 보디가드라도 된 듯 그의 옆을 지켰다. 로건이 꾹꾹 참다가 내 눈치를 보며 웨이드에게 적당히 하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그 모습에 웃음이 자꾸 새어나와 혼났다.
저러다 한 대 맞고 말지. 하던 순간 로건이 결국 못참고 저녁을 먹다 웨이드의 이마를 숟가락으로 후려갈겼다. 빨갛게 올라온 자국이 힐링팩터 덕에 순식간에 사라졌고, 웨이드의 끊임없던 말수도 덩달아 잠잠해졌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는데 그 사이에서 혼자 우스워서 한참을 큭큭댔다.
아, 로건한테 말해야하는데, 하루만 더 뒤로 미루자.
넷째 날
오늘 아침부터, 어제의 복수라도 하려는 듯 웨이드가 갑판을 물바다로 만들며 청소를 시작했다. 좋은 구경 시켜드릴게요! 하며 콧노래를 부르더니, 나를 전망 좋은 곳으로 옮겨주었다. 로건이 갑판으로 나오자마자 웨이드는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고, 그를 흘겨보던 로건은 미심쩍은 기색이었지만, 여느 때처럼 그런 데는 참 눈치가 없었다.
결국 번들거리는 바닥에 발을 헛디딘 로건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순간 찰칵 소리가 났다. 당연히 웨이드였다.
그런 경박한 웃음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웨이드가 배를 부여잡고 한참을 깔깔거렸다.
뒤는 뭐. 말 안해도 알겠지.
지금도 밖에서 술래잡기 같은 걸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애들도 아니고, 이 나이에 육아라도 하는 것 같군. 정신이 없으니까 이따가 화해라도 시켜봐야겠다.
다섯째 날
정말 이상한 녀석들이다. 어제 저녁, 두 사람이 으르렁대며 못 잡아먹을 듯 티격태격하길래 싸움 좀 말리려 먹을 것 들고 방문을 열었더니—글쎄, 한놈은 다른 놈에 가려져 아예 보이지도 않고, 또 한놈은 침대 위로 기어오르다 딱 걸린 듯 얼어붙어선 고개만 천천히 돌려 나를 쳐다보는 거 아닌가. 옷은 다행히 멀쩡히 입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늦게 들어갔다면 아주 재앙이었을 터였다. 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오늘 아침엔 둘 다 내 눈치만 보며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나이에 저런 표정을 짓다니, 청소년들 같기는. 나도 알 거 다 아니 당당하라는 말에 로건이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뭐라 말하려다 말곤 입을 다물었다.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어쩐지 우습기도 하다.
그 사이 웨이드는 로건 몰래 나를 슬쩍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참, 확실히 로건 옆에는 이런 능글맞은 녀석이 필요하긴 하다.
로건이 오늘 하루동안 자꾸 나를 피해다니는 통에 오늘도 말을 못했다. 애꿎은 침만 몇 번을 삼켰는지 모르겠다.
여섯째 날
한동안 잠잠하던 바다가 오늘은 유난히 일렁인다. 웨이드는 며칠째 이어진 비슷한 식단에 질린 모양인지 점심도 걸렀고, 로건은 한동안 선실에서 뭘 고친다고 나서질 않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마침내 다들 갑판에 모였다.
파도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아서, 그 틈을 타 낚싯대를 던져놓고 셋이 나란히 앉았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망망대해에 세 명만 덩그러니 떠 있는 이 기분이라니. 예전엔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정적이, 이젠 더없이 고요하게 느껴진다.
온 저녁이 지나도록 나눈 대화는 누군가가 들었더라면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들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누가 더 좋은 능력인지를 두고 유치하게 다투기도 하고, 내일 저녁엔 뭘 먹을 건지 진지하게 토론하기도 했다.
뮤턴트들의 미래, 인간과의 조화. 항상 나를 억누르던 그런 깊은 주제는 던져버리고 어린 나로 돌아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나눴던 대화처럼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들이었다.
유치했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는 상관없다.
일곱째 날
어젯밤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 동안 미뤄두기만 했던 말, 결국 로건에게 하지 못한 채 일주일이 지나갔다.
이제 인정해야겠다. 그에게 말하지 못했던 모든 이유들은 전부 핑계일 뿐이라고.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미리 말했어야 옳았다. 상처받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어리석은 욕심이 자꾸 내 입을 막는다.
결국 로건 몰래 웨이드를 불러 몇 가지를 부탁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하다. 그에게도 큰 짐일 테지.
로건을 끝내 부르지 못해, 종이를 꺼내 몇 자 적기 시작했다. 그가 날 이해해줄지 알 수 없다.
약이 떨어져 간다.
“찰스, 약이 거의 다 떨어졌던데요. 어차피 기름도 다 떨어져가니까 내일은 잠깐 육지에 들러야겠어요.”
로건이 저녁 식사 후 갑판으로 나와 말했다. 그는 손에 든 지도와 메모장을 뒤적이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찰스는 그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네.”
로건은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대신 웨이드를 흘깃 쳐다보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놈도 갑자기 또 뭔 생각인지 밥도 안 먹고. 뭐라도 새로 채워놔야겠어요. 육지에 들러서 음식도 좀 사오고요.”
웨이드는 난간에 기대어 깊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깨는 평소보다 무겁게 늘어져 있었고, 손은 무언가를 계속 만지작거리는 듯했다.
찰스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로건을 향해 따뜻하게 말했다.
“내일, 해가 뜨면 가자.”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은 너무 늦었고 내일 일찍 출발할게요.”
말이 끝난 후에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로건은 웨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 말 없이 선실로 들어갔다. 찰스는 갑판에 혼자 남아 웨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밤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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