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1066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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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8 11:39
전편: https://hygall.com/610462432
(반복재생 추천)
오래지 않아 세 사람을 태운 차가 자갈길로 접어들었다. 울퉁불퉁한 자갈 위를 달리자 차체가 덜컹이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웨이드는 창문을 살짝 내려 짠내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짜릿하게 스치는 바닷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를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철썩이는 파도였다.
차는 곧 목적지에 다다라 멈춰 섰다. 로건은 천천히 핸들에서 손을 떼고 차문을 열며 말했다.
“찰스랑 잠깐 있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금방 돌아올 거다.”
그는 뒷자리에 벗어두었던 자켓을 끼워입고는 저 멀리 항구의 끄트머리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여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도착하기 전 몇 번 통화하며 배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아마 그 배의 주인과 만나는 듯했다.
문이 닫히고 조용해지자, 찰스는 뻐근한 듯 몸을 가볍게 부스럭거리며 일으켰다. 조금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웨이드를 향해 시선을 맞추며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드는 그에게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산책 좀 나가실래요?” 그 제안에 찰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지.”
웨이드는 조심스럽게 찰스의 휠체어를 차 밖으로 내렸다. 두 사람은 차를 벗어나 항구 주변으로 향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적한 항구 풍경이 그들 앞에 펼쳐지자, 웨이드는 찰스와 함께 근처 산책길로 나섰다.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먼발치에서 로건을 힐끔 바라봤다. 로건은 항구 끝에서 누군가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목장에서의 기억에 찰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든든한 아들이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찰스는 잠시 웨이드를 바라보더니 그와 같이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이제는 둘이나 생긴 기분이야.”
찰스는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잠시 말을 멈췄다. 웨이드도 탁 트인 풍경을 보며 휠체어를 밀던 손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 마쉬며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만 산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찰스가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웨이드, 후회하진 않나? 이곳으로 온 거 말이야.”
웨이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글쎄요. 여기도 재밌는데요 뭐.”
찰스는 안심이 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다행이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며 고요한 순간을 메웠다.
그러다 찰스가 장난스레 갑자기 묻는 말이 웨이드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웨이드, 로건을 좋아하나?”
“무… 무… 뭐… 예?” 웨이드는 당황해서 입이 얼어붙은 듯 버벅였다.
찰스는 껄껄 웃으며 이어 말했다. “다 느껴져. 자네가 자꾸 로건을 힐끗대잖아.”
“…제가요?” 웨이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땀을 훔치며 눈알을 굴렸다.
찰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응, 난 찬성이야.”
“…장인어른이 찬성하신다니… 뭐, 좋긴 한데요.” 웨이드는 살짝 얼굴이 달아오르며 중얼거렸다.
“근데 로건은… 글쎄요.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어요.”
찰스는 눈썹을 으쓱하며 뒤를 돌아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원체 좋은 티를 안내거든”
그리고는 낄낄 웃으며 격려하듯 한 마디 덧붙였다.
“잘해봐.”
웨이드는 찰스의 농담에 어이가 없다는 듯 땅을 한번 찔러보며 작게 투덜거렸다.
“참나… 나이드신 분들은 다 그렇게 짖궂어지나 보죠?”
찰스는 미소를 지었다. “현명해지는 거지.”
웨이드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좋으시겠어요…” 그리고는 쓸데없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느새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린 찰스가 조용히 눈을 떼지 않고 웨이드를 불렀다.
“웨이드.”
“왜요.”
찰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네가 여기에 조금만 더 있겠다면 말이야…”
웨이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짐짓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뭔데 그래요. 저한테 기저귀 갈아달라는 말은 하시면 안 돼요.”
찰스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로건 옆에 있어주게.”
찰스의 말에 웨이드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표정을 굳혔다. “왜 교수님은 자꾸 없어질 것처럼 말해요? 셋이 같이 있으면 되죠. 지금처럼. 전 좋은데.”
찰스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웨이드, 부탁이 있어.”
“또 뭔데요.” 웨이드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찰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총을 하나 구해주게.”
웨이드는 잠시 말이 막히더니, 표정을 굳히며 찰스를 바라봤다.
웨이드는 찰스의 고요한 말에 답답한 듯 숨을 고르며, 찰스의 앞에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디에 쓰게요?”
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웨이드는 그 침묵이 오히려 무겁게 다가와 고개를 돌려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찰스, 그게 왜 필요해요? 로건이랑 제가 지켜줄 텐데요. 지금처럼.”
찰스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내 계획이란 게 있으니까. 마지막을 잘 준비해야지.”
웨이드는 그의 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찰스, 싫어요. 로건한테 저 맞아 죽어요.”
“웨이드.” 찰스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웨이드는 고집을 부리듯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그런 눈빛 하셔도 소용없어요. 저도 싫어요.”
찰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마치 모든 진심을 담아 웨이드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웨이드는 억지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찰스의 눈에는 예전의 흔들리는, 연약한 표정이 없었다. 그 눈에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깊고 현명한 눈빛이 담겨 있었다.
“난 알아. 느껴져. 점점 기억도 잘 안 나고, 가끔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지나 있어. 웨이드, 그 일을 반복하고 싶진 않아. 이 정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나.”
찰스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단호했다. 웨이드는 그 말의 무게에 짓눌리듯 고개를 숙였다.
웨이드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없이 찰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오갔다.
“이런 숙제는 사절인데요, 교수님.”
찰스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했지.”
웨이드는 대답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표정에는 저항과 망설임이 동시에 떠올랐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 엑스맨처럼, 어벤져스처럼.”
찰스의 말에 웨이드는 시선을 피하며 침묵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마음 깊은 곳을 꿰뚫고 있다는 걸 웨이드는 알고 있었다.
“날 믿어. 날 돕는 게 영웅이 되는 길이야. 자네는 날 만난 순간부터 이미 엑스맨이었어. 그러니까,”
웨이드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잔인하시네요.”
찰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는 서로 이해하는 침묵이 흘렀다. 웨이드는 마음 한구석에서 자신이 내딛게 될 선택의 무게를 천천히 감지하고 있었다.
웨이드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는 찰스의 손등에서 느껴진 그 미세한 떨림을 잊을 수 없었다.
“몰라요. 전 정말 반대한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찰스는 차가운 바다 바람을 맞으며 깊은 눈빛으로 웨이드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런 웨이드를 위로하듯 이상한 말을 천천히 꺼냈다.
“웨이드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웨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네?”
“자네가 미래에서 왔잖나. 어떤 현실은 자네의 과거와 같아야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네.”
웨이드는 혼란스러워하며 눈을 찌푸렸다.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찰스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중에 이해하게 될 거야.”
찰스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 속에 묘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웨이드는 고개를 숙인 채 무거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바다의 찬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을 감싸며 스며들었다. 마치 바람이 찰스의 따뜻한 온기를 조금씩 앗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묵묵히 바라보는 찰스를 보며, 웨이드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고요했지만, 웨이드의 마음속엔 묵직한 파도가 일렁였다.
“…돌아가요. 감기 걸리겠어요.” 웨이드는 한참만에 입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찰스의 휠체어를 다시 밀며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차로 돌아가는 동안 둘 사이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들의 곁에선 바람 소리만이 쓸쓸하게 흘러갔다.
차에 가까워지자 웨이드는 멀리서 다가오는 로건의 모습을 발견했다. 로건은 먼발치에서 차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찰스는 로건을 발견하자 웨이드를 돌아보며 낮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로건에게는 비밀이야. 알겠지?”
웨이드는 찰스의 진지한 시선에 잠시 멈칫했지만,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작게 대답했다.
“…네.”
둘을 발견한 로건이 손을 들어 그들을 향해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안도감이 감돌았다. 일이 잘 풀린 듯했다.
두 사람이 로건의 옆에 서자 찰스는 고개를 들어 로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잘 해결된 건가?”
로건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러고는 웨이드를 힐끗 돌아보았다. 웨이드는 평소와 달리 입을 다문 채 그저 찰스의 휠체어를 조용히 밀고 있었다. 그의 침묵 속엔 깊은 생각이 담겨 있는 듯했다. 웨이드가 말없이 있으니 세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바닷가를 따라 자잘한 돌과 모래가 가득한 좁은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조금씩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다. 부둣가에는 해가 반짝이는 물결 아래에서 바닷일을 끝낸 사람들이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의 삶이 묻은 식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항구의 끝에 작고 흰 배 한 척이 고요히 정박해 있었다. 배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깨끗하고 단정했다.
멀리서 보아도 세 사람에게는 충분히 큰 배였다.
찰스는 천천히 선체에 새겨진 파란색 글자를 나지막이 읽었다.
“썬시커.”
웨이드로건 덷풀로건
(반복재생 추천)
오래지 않아 세 사람을 태운 차가 자갈길로 접어들었다. 울퉁불퉁한 자갈 위를 달리자 차체가 덜컹이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웨이드는 창문을 살짝 내려 짠내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짜릿하게 스치는 바닷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를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철썩이는 파도였다.
차는 곧 목적지에 다다라 멈춰 섰다. 로건은 천천히 핸들에서 손을 떼고 차문을 열며 말했다.
“찰스랑 잠깐 있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금방 돌아올 거다.”
그는 뒷자리에 벗어두었던 자켓을 끼워입고는 저 멀리 항구의 끄트머리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여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도착하기 전 몇 번 통화하며 배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아마 그 배의 주인과 만나는 듯했다.
문이 닫히고 조용해지자, 찰스는 뻐근한 듯 몸을 가볍게 부스럭거리며 일으켰다. 조금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웨이드를 향해 시선을 맞추며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드는 그에게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산책 좀 나가실래요?” 그 제안에 찰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지.”
웨이드는 조심스럽게 찰스의 휠체어를 차 밖으로 내렸다. 두 사람은 차를 벗어나 항구 주변으로 향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적한 항구 풍경이 그들 앞에 펼쳐지자, 웨이드는 찰스와 함께 근처 산책길로 나섰다.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먼발치에서 로건을 힐끔 바라봤다. 로건은 항구 끝에서 누군가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목장에서의 기억에 찰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든든한 아들이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찰스는 잠시 웨이드를 바라보더니 그와 같이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이제는 둘이나 생긴 기분이야.”
찰스는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잠시 말을 멈췄다. 웨이드도 탁 트인 풍경을 보며 휠체어를 밀던 손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 마쉬며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만 산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찰스가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웨이드, 후회하진 않나? 이곳으로 온 거 말이야.”
웨이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글쎄요. 여기도 재밌는데요 뭐.”
찰스는 안심이 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다행이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며 고요한 순간을 메웠다.
그러다 찰스가 장난스레 갑자기 묻는 말이 웨이드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웨이드, 로건을 좋아하나?”
“무… 무… 뭐… 예?” 웨이드는 당황해서 입이 얼어붙은 듯 버벅였다.
찰스는 껄껄 웃으며 이어 말했다. “다 느껴져. 자네가 자꾸 로건을 힐끗대잖아.”
“…제가요?” 웨이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땀을 훔치며 눈알을 굴렸다.
찰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응, 난 찬성이야.”
“…장인어른이 찬성하신다니… 뭐, 좋긴 한데요.” 웨이드는 살짝 얼굴이 달아오르며 중얼거렸다.
“근데 로건은… 글쎄요.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어요.”
찰스는 눈썹을 으쓱하며 뒤를 돌아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원체 좋은 티를 안내거든”
그리고는 낄낄 웃으며 격려하듯 한 마디 덧붙였다.
“잘해봐.”
웨이드는 찰스의 농담에 어이가 없다는 듯 땅을 한번 찔러보며 작게 투덜거렸다.
“참나… 나이드신 분들은 다 그렇게 짖궂어지나 보죠?”
찰스는 미소를 지었다. “현명해지는 거지.”
웨이드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좋으시겠어요…” 그리고는 쓸데없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느새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린 찰스가 조용히 눈을 떼지 않고 웨이드를 불렀다.
“웨이드.”
“왜요.”
찰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네가 여기에 조금만 더 있겠다면 말이야…”
웨이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짐짓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뭔데 그래요. 저한테 기저귀 갈아달라는 말은 하시면 안 돼요.”
찰스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로건 옆에 있어주게.”
찰스의 말에 웨이드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표정을 굳혔다. “왜 교수님은 자꾸 없어질 것처럼 말해요? 셋이 같이 있으면 되죠. 지금처럼. 전 좋은데.”
찰스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웨이드, 부탁이 있어.”
“또 뭔데요.” 웨이드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찰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총을 하나 구해주게.”
웨이드는 잠시 말이 막히더니, 표정을 굳히며 찰스를 바라봤다.
웨이드는 찰스의 고요한 말에 답답한 듯 숨을 고르며, 찰스의 앞에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디에 쓰게요?”
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웨이드는 그 침묵이 오히려 무겁게 다가와 고개를 돌려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찰스, 그게 왜 필요해요? 로건이랑 제가 지켜줄 텐데요. 지금처럼.”
찰스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내 계획이란 게 있으니까. 마지막을 잘 준비해야지.”
웨이드는 그의 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찰스, 싫어요. 로건한테 저 맞아 죽어요.”
“웨이드.” 찰스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웨이드는 고집을 부리듯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그런 눈빛 하셔도 소용없어요. 저도 싫어요.”
찰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마치 모든 진심을 담아 웨이드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웨이드는 억지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찰스의 눈에는 예전의 흔들리는, 연약한 표정이 없었다. 그 눈에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깊고 현명한 눈빛이 담겨 있었다.
“난 알아. 느껴져. 점점 기억도 잘 안 나고, 가끔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지나 있어. 웨이드, 그 일을 반복하고 싶진 않아. 이 정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나.”
찰스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단호했다. 웨이드는 그 말의 무게에 짓눌리듯 고개를 숙였다.
웨이드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없이 찰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오갔다.
“이런 숙제는 사절인데요, 교수님.”
찰스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했지.”
웨이드는 대답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표정에는 저항과 망설임이 동시에 떠올랐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 엑스맨처럼, 어벤져스처럼.”
찰스의 말에 웨이드는 시선을 피하며 침묵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마음 깊은 곳을 꿰뚫고 있다는 걸 웨이드는 알고 있었다.
“날 믿어. 날 돕는 게 영웅이 되는 길이야. 자네는 날 만난 순간부터 이미 엑스맨이었어. 그러니까,”
웨이드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잔인하시네요.”
찰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는 서로 이해하는 침묵이 흘렀다. 웨이드는 마음 한구석에서 자신이 내딛게 될 선택의 무게를 천천히 감지하고 있었다.
웨이드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는 찰스의 손등에서 느껴진 그 미세한 떨림을 잊을 수 없었다.
“몰라요. 전 정말 반대한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찰스는 차가운 바다 바람을 맞으며 깊은 눈빛으로 웨이드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런 웨이드를 위로하듯 이상한 말을 천천히 꺼냈다.
“웨이드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웨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네?”
“자네가 미래에서 왔잖나. 어떤 현실은 자네의 과거와 같아야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네.”
웨이드는 혼란스러워하며 눈을 찌푸렸다.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찰스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중에 이해하게 될 거야.”
찰스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 속에 묘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웨이드는 고개를 숙인 채 무거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바다의 찬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을 감싸며 스며들었다. 마치 바람이 찰스의 따뜻한 온기를 조금씩 앗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묵묵히 바라보는 찰스를 보며, 웨이드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고요했지만, 웨이드의 마음속엔 묵직한 파도가 일렁였다.
“…돌아가요. 감기 걸리겠어요.” 웨이드는 한참만에 입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찰스의 휠체어를 다시 밀며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차로 돌아가는 동안 둘 사이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들의 곁에선 바람 소리만이 쓸쓸하게 흘러갔다.
차에 가까워지자 웨이드는 멀리서 다가오는 로건의 모습을 발견했다. 로건은 먼발치에서 차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찰스는 로건을 발견하자 웨이드를 돌아보며 낮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로건에게는 비밀이야. 알겠지?”
웨이드는 찰스의 진지한 시선에 잠시 멈칫했지만,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작게 대답했다.
“…네.”
둘을 발견한 로건이 손을 들어 그들을 향해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안도감이 감돌았다. 일이 잘 풀린 듯했다.
두 사람이 로건의 옆에 서자 찰스는 고개를 들어 로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잘 해결된 건가?”
로건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러고는 웨이드를 힐끗 돌아보았다. 웨이드는 평소와 달리 입을 다문 채 그저 찰스의 휠체어를 조용히 밀고 있었다. 그의 침묵 속엔 깊은 생각이 담겨 있는 듯했다. 웨이드가 말없이 있으니 세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바닷가를 따라 자잘한 돌과 모래가 가득한 좁은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조금씩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다. 부둣가에는 해가 반짝이는 물결 아래에서 바닷일을 끝낸 사람들이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의 삶이 묻은 식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항구의 끝에 작고 흰 배 한 척이 고요히 정박해 있었다. 배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깨끗하고 단정했다.
멀리서 보아도 세 사람에게는 충분히 큰 배였다.
찰스는 천천히 선체에 새겨진 파란색 글자를 나지막이 읽었다.
“썬시커.”
웨이드로건 덷풀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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