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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0 17:56
구애












히야... 멍청한 해병놈 떼어내려다 땅개 마누라되게 생겼네............



허니비는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주변을 좀 더 살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이에나같은 녀석들을 피해서 온 데가 하필 육군들 나와바리였다니. 아무튼, 허니비는 선입선출의 원리에 따라 맥그로우를 먼저 처리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이 문짝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맥그로우는 누가 보면 절절한 사랑이라도 하다 차인 사람처럼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 저, 정말이야...? 허니...!



씨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너랑 나랑 같이 떡이라도 줘 팬줄 알겠어. 제가 언제 허니비를 다임으로 부른 적이나 있었는지 한번이라도 생각을 해볼 여유가 있었다면 맥그로우는 응당 따라올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겠지만, 허니비의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실연의 상처와 저를 내려다 보는 거대한 이 육군 장교에 압도당해서인지 가뜩이나 딱딱한 대위의 돌대가리는 더더욱 일할 의지를 놓은 듯했다. 그럼에도 호락호락 자리를 뜨지 않고 다시 한번 그 엿같은 주둥이를 놀리려 하자 이번에는 좀 더 익숙한 목소리가 대위를 막아세웠다.



- 그만. 그만하십시오.



그 목소리는 얼핏 고저없이 평탄해 보였지만 허니비는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바람 한 점이라도 잘못 불면 자신이 아니라 저 사람이 하극상을 일으킬 거라는 걸. 그만큼 네이트 픽은 간신히 이성을 붙들고 있는 상태였다. 맥그로우의 가슴을 막아선 손은 잔뜩 힘이 들어간 것도 모자라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주제에, 그 와중에도 허니비를 제 등 뒤로 보내는 네이트의 행동을 보며 다임의 얼굴엔 어느새 흥미가 일고 있었다.



- 네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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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니, 저 새끼가 너한테 무슨 짓 했어? 말해.

- 아무짓도 안 했고, 거절하려고 내가 끌고온 거예요. 네잇......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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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큰 무례를 저질렀나 봅니다.



다임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이 든 두 사람은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허니비가 감사의 말을 건네기도 전에 먼저 말을 꺼낸 건 네이트였다.



- 실례가 많았습니다. 허니 비-픽 남편 네이트 비-픽입니다. 허니, 이쪽은...

- 데이비드 다임입니다. 결혼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소개받게 되어 유감입니다. 미안합니다, 네잇.

- ... 둘이 아는 사이입니까?

- 예. 군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그 대단한 집안 덕분에요. 아마 비 가문이랑도 몇 번 만난 적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임은 "대단한 집안"에 특히 강세를 주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네이트의 입에서 처음 들어보는 비-픽이란 호칭을 따질 새도 없이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는 다임의 말에 기억을 되감아보았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는 것이 없었다. 그런 허니비의 표정을 읽은 다임이 덧붙였다.



- 아니면 앞으로 만날 예정이었거나.

- 예?

- 아마 이렇게 빨리 결혼하지 않으셨다면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



무언가 씨가 담긴 듯한 말에 네이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고, 허니비의 미간은 그보다 더 깊이 패였다. 정략결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애결혼이라기엔 너무 급한 감이 있었는데, 역시나. 무언가 꿍꿍이속이 있어 급하게 결혼이라는 수단을 이용했을 거라는 다임의 예상이 맞아들었다. 다만 아직 어려서 그런건지, 아니면 살 붙이고 살다 보니 정이라도 든건지. 적어도 한 쪽은 애가 말라 어쩔 줄 모르는게 눈에 보이긴 하는데...



-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죠. 오랜만에 얘기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다임.



네이트는 형식적인 인사를 마치자마자 대답도 듣기 전에 허니비의 손을 잡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두 사람의 뒤통수에다 대고 기꺼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다임이 어딘가 묘하게 불편하다, 큼지막한 걸음에 쫄래쫄래 딸려가며 허니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네이트는 어느정도 거리를 벌린 것을 확인하고는 걸음을 늦추며 허니비의 손을 놔주었다. 옆에서 별안간 키득대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얼굴은 다행히 조금이나마 풀어져있었다.



- 군대에서 평생 볼 꺽다리들을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키 큰 사람 진짜 많은 것 같지 않아요? 브랫 옆에 세워보고 싶었습니다.

- 데이비드?

- 네. 그러고 보면 네잇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 키인데 이상하게 여기만 오면 귀여워진단 말이죠. 저도 그렇고. 나도 키 큰데. 제가 샤핀보다 크거든요? 전에 내기했습니다. 역시 누구말대로 모든건 상대적인가봐요.



주절대는 소리가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노력이란 걸 알아서, 네이트는 마찬가지로 내용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한층 느려진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보니 정말 괜찮아지는것 같은 마음이, 진짜로 허니비의 위로가 통한 건지 아니면 그냥 허니비여서 그런 건지는 그도 잘 몰랐지만, 아무튼 익숙하게 줄지어 있는 고철더미들이 보일 즈음엔 소리까지 흘리며 웃고 있었다.



- 네잇.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하극상은 안됩니다.

- 내가 너야?

- 아깐 진짜 때릴 뻔 했잖아요.

- 그땐... 그렇네. 맥그로우한테도 그렇지만 나한테도 열이 받아서.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 뭐라고 하면서 막으려고요. 제가 허니비 남편입니다?!?!?!



일부러 과장된 말투에 네이트도 덩달아 웃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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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하다면? 틀린 말도 아닌데, 뭐.

- 은근히 입이 가벼우신 것 같습니다, sir.

- 다음엔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나한테 꼭 말해줘. 이건 부탁이야, 허니.

- 알겠습니다. 꼭 말씀드릴게요.

- 제일 먼저.

- 제일 먼저. 은근히 유치하기까지 하시네요.

- 이제 알았어? 나 응석받이에 유치하고 속도 좁아.

- 알고 있었습니다. 걱정 마십쇼. 속 좁다고 이혼해달라 안 할 테니까요.

- 고마워.

- 돌아갈까요? 이러다 해 지겠습니다.



그러자 느릿하던 발걸음이 우뚝 멈추더니, 무언가 고민하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네이츠는 아주 소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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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니,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허니비는 아주 잠시동안 머뭇거리다, 네이트에게 옮아버린 건지 약간은 소심하게 팔을 들어올렸다. 성큼 다가온 발걸음에 어깨를 감싸는 두터운 양 팔이, 도리어 허니비가 안긴 모양이 되었지만 얌전히 목에 힘을 풀고 머리를 기대었다. 코 끝에 닿은 그의 옷에서 풍기는, 모래와 화약과 땀과 먼지 등등 온갖 것들이 뭉쳐진 냄새가 썩 나쁘지 않은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도리어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네이트가 조금 더 힘을 주어 당겨안으면서 허니비도 네이트의 허리를 감싼 팔에 좀 더 힘을 실었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가슴이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새삼스럽게 의식되기 시작했다.



- ... 많이 힘드셨습니까.



툭하고 던지는 말에,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새에 정말 지쳐있던 건지 가슴께가 푹 꺼지는 듯해서, 네이트는 붉어진 눈을 하고 숨을 고르게 쉬기 위해 일부러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혼자 실연의 상처를 삭이던 어느 대위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해버렸고, 그는 꽤나 혼란스러워졌다. 이후 소대원들에게 제가 본 것을 이야기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햐면 그 대위는 픽 중위가 이라크 군에 포로로 잡혔다는 뜬소문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이었고, 그의 말을 덮어놓고 믿어주기엔 데이브 맥그로우라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신뢰가 부족했다.












단발성으로 끝나리라 예상했던 데이비드 다임과의 만남은 한쪽의 일방적인 행차로 몇 번 정도 더 이어졌다. 다임은 어디서 들었는지 올 때마다 배터리니 총기 오일이니 하는 것들을 꼭 한두 개씩 챙겨왔는데, 그 호사스러운 보급품을 거절할 형편이 도무지 되지가 않는 허니비는 그런 다임의 영악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꼬박꼬박 그 선물을 받아챙겼다.



- 저까지 챙겨줄 필요 없으신데. 이런 건 중위님께 드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저기...

- 그냥 데이비드라고 부르십쇼. 픽 중위가 워낙 바빠야죠.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전달하기도 좀 그래서. 폐가 안된다면 대신 좀 전달해주시겠습니까?

- 예에... 고맙습니다, 다임.



보란듯이 버르장머리를 부리는 꼴에도 "그" 데이비드 다임은 그저 눈썹만 으쓱일 뿐 별 말 없이 제 위치로 돌아가곤 했다. 그의 부하들이 봤다면 가슴을 퍽퍽 치며 통탄할 광경인 걸 허니비가 알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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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작은 꿀벌이 땅개 장교에게 알랑방구나 뀌고 다니는 놈일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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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랑방구든 뭐든 저는 좋기만 한데요. 허니비, 너 그 사람이랑 잘 해봐.

-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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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장교라는 사람이 이런 걸 챙겨서 여기까지 오는 걸 보면 목적은 하나 아니에여?

- 그게 뭔데.

- 떡치는 거여.

- 네가 아무래도 좀 덜 맞았구나, 츄롬블리.

- 허니.

- 엘티가 우리 막내 목숨 살리셨네.



다임이 왔다 갔다는 소식에 네이트는 곧장 허니비를 찾아왔다. 괜찮냐, 별 일 없었냐 묻는 그의 말에 허니비는 고개나 저으며 다임이 들고온 선물이나 슬쩍 내밀었다.



- 엘티도 아시다시피... 세상에 꽁짜는 없다지만... 그래도 약간은 좀 받아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던 허니비는 혼날 준비를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아닌 변명을 했지만, 네이트는 일단 내미는 것부터 착실하게 받아들고 얘기했다.



- 그래, 지금 우리가 뭘 가릴 상황은 아니지. 대가는 내가 치를 테니까 뜯어먹을 수 있는 데까지 뜯어보도록.

- 맡겨 주십쇼, sir.



아무리 유능한 남편이고 상관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법이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다임은 별다른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선물을 줄 거면 대량으로 주든가 매번 찔끔찔끔 한두 개씩만 들고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허니비는 호기롭게 대답한 것과는 달리 그것을 받기가 더욱 찝찝해졌다. 왠지 그 대가의 형태가 트럼블리가 말한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이거야말로 네이트가 대납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혹 하나 떼어내려다 반대쪽에 옮겨 붙인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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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다임? 그 다임 가? 걔가 너한테 그런걸 왜 줘. 너가 엘티랑 결혼한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 그러니까 찝찝하다는 거지.

- 담부턴 돌려보내. 그러다 큰코 다친다. 애초에 임자 있는 사람한테 들이대는 놈들은 상종하는 법이 아니여.



얼핏 들으면 무슨 일확천금이라도 받은 사람같지만, 여지껏 허니비가 받은 건 배터리 몇 개, 윤활유 몇 통, MRE에선 나오지 않는 싸제 초콜릿이나 비스킷 쪼가리가 다였다. 심지어 단 걸 좋아하지 않는 탓에 대다수의 까까들은 반품당했고. 그렇지만 파피의 조언을 들은 허니비는 다음번에야 말로 단호히 거절하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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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라니, 그런 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물자가 부족하다길래 도움을 드리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부디 부담 갖지 말아주십시오.

- 아뇨, 매번 올 때마다 선물을 나눠주신 덕분에 지금 어느 때보다 풍족한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장교가, 그것도 육군 소속이 타 부대까지 왔다갔다 하는 게 잦아질 수록 좋은 소리 못 듣는 거 아시잖아요? 저도 그렇고.

- 제가 허니를 불편하게 했나요? 그렇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쯤 되면 으레 그러하듯, 허니비의 속에선 슬금슬금 끓기 시작했다. 뭐가? 짜증이. 그리고 짜증은 곧잘 사람의 겁대가리를 상실케 한다. 허니비는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잠시 고개를 숙인채 넘칠랑 말랑 하는 물을 급히 진정시켰다. 그럼에도 다다다 몰아쳐 나오는 말이 마냥 곱지많은 않았다.



- 솔직히 말하면요, 저 입대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진짜 개같이 고생했거든요. 근데 지금 이 상황에서, 계급장 단 장교랑, 그것도 육군이랑 엮이면 제가 무슨 소리 들을 지는 굳이 말씀 안 드려도 되지 않나요? 그렇게 멍청하신 분은 아니잖습니까? 저도 배우자 두고 이렇게 얼굴 마주하고 있는 게 썩 유쾌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저한테서 원하시는 게 뭔지, 대체 뭐 때문에 이러시는 건지 좀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Sir?

- 당신이요.

- 네. 그래서요. 제가 뭘 어떻게 해드리냐구요.

-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 예상했습니다. 가질 거 다 가진 분이 저한테서 뭐 뜯어갈 게 있다고.

- 만나보고 싶습니다.

- 결혼했습니다.

- 압니다. 사랑해서 한 결혼 아니지 않습니까. 저한테도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고 해서, 기본적인 도리까지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제가 그러고 싶지 않아서요.

- 네이트 픽이 당신을 좋아해서?

- 아뇨. 제가 좋아해서요. 네이트 픽을.

- 확신합니까?

- 무슨 뜻입니까?



허니의 말에 다임이 테이블 위에 놓인 손을 깍지끼고서 몸을 앞으로 붙여왔다.



- 원래대로라면, 네이트 픽 이전에 저를 먼저 만나셔야 했습니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 맞선이요. 제가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네이트 픽을 먼저 만나신 겁니다. 저도 그 전까지는 별 생각 없었는데, 막상 네이트 픽이 당신이랑 결혼했단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이상하더군요. 질투 났습니다. 허니도 비슷한 것 아닙니까? 이전까지는 픽 중위와의 트러블로 인해 불편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부부가 되고, 부부라는 생각을 하니까 정도 들고. 사람 마음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에게도 아주 기회가 없지는 않다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마음 돌릴 자신 있습니다.



허니비는 문득 이전에 네이트와의 맞선 자리를 떠올렸다. 저 현란해빠진 혓바닥이 친구는 친구인가보다, 생각하면서.












젠킬 스탘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약가렛너붕붕 약다임너붕붕 애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