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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5 23:31
원작 / 드라마 스포, 고증오류, 캐붕 주의
10화 https://hygall.com/606768797

 

 

요즘 들어 아에몬드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스톰즈 엔드에서 대형사고를 친 이후로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던데 섭정으로서 업적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그런 것인가. 크리스톤은 차마 상석에 앉아있는 이에게 눈을 흘기지는 못하고 묵묵히 그의 지시에 따라 리버랜드 언저리에 작게 X 표를 그었다. 의회와는, 아니 적어도 수관이자 킹스가드의 사령관인 자기에게는 언질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떠한 상의도 없이 바가르를 이끌고 훌쩍 떠나 군대나 마을을 불태우고 온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지도에는 벌써 X 표가 꽤 많이 쌓여 있었다. 그꼴을 보고 있자니 물음이 한숨처럼 터져나온 것도 당연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무엇이.”

 

“수장이 전장의 선두에 서는 것도 위험한 마당에 아예 혼자 떠나시지 않습니까. 왜 흑색파와의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전투에서까지 위험을 감수하시냐 여쭙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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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그리 했을 뿐.”

 

 

그래. 본인의 말마따나 요즘 아에몬드는 신에게 죽음이라도 맡겨놓은 것처럼 굴었다. 알리센트는 섭정비의 죽음때문에 아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냐 말했으나 그 의견을 진지하게 듣는 이는 없었다. 아에몬드가 그 정도의 연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벌어지지 않을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도를 잠시 바라보던 크리스톤이 몸을 돌려 아에몬드를 마주보고 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이나 권위로 누군가를 깔아뭉개면서 나름 즐거워하는 듯 싶던 외눈은 더 이상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듯 고요했다. 그 턱만은 여전히 네가 감히 내게 지적이라도 할 생각이냐고 묻는 듯 오만하게 들려 있었지만.

 

 

“…정말 이 전쟁에서 이기고 싶으십니까.”

 

“…….”

 

“철왕좌의 주인이 되고 싶으시냐고 묻는 겁니다.”

 

“그 말을 하는 저의가 뭐지?”

 

 

아에곤이 아무리 반신불수의 상태라 한들 공식적으로 왕위를 계승한 이가 살아있으니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로도 역모가 될 수 있다는 걸 두 사람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채근하듯 아에몬드가 빤히 바라보자 크리스톤은 품 안에서 작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오늘 아침 알리센트에게 가야했던 까마귀를 그의 종자가 가로챈 성과였다.

 

 

“오토 하이타워가 자유국가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삼두정의 동맹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들의 군사력이라면 벨라리온의 봉쇄를 뚫고 킹스랜딩에 물자를 전해줄 수 있을 겁니다.”

 

“본론을 말해.”

 

“…그들이 벨라리온 함대와 맞선다는 건 곧 드래곤스톤과 격돌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때까지만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겠다 약속해주신다면,”

 

 

크리스톤이 잠시 말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아에몬드의 속내를 유추하기 위해 떠올렸던 그 말은 결국 본인에게 해당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언젠가부터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그릇에 비해 큰 힘이 주어졌다는 걸 알았지만, 이왕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라면 내려놓기 전까지는 마음껏 써보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지 않았나.

 

긴장을 억지로 눌러삼킨 크리스톤이 재차 말을 이었다.

 

 

“—약속해주신다면, 결전이 벌어지기 전 아에곤 폐하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왕위를 이양해 드리겠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말이, 아니 거래가 화두에 올랐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섭정의 답변은,

 

 

“…하.”

 

 

짧고 간결한 코웃음이었다.

 

아에몬드는 무슨 시시한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마냥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크리스톤을 마주보고 서서 한때 스승이었던 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일개 킹스가드에 의해 칠왕국의 왕이 정해졌지?”

 

“…저는,”

 

“네 위치를 착각하지 마. 아직 쓸모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곁에 둔 것일뿐, 네가 후대에 이름이 전해지는 것조차 우리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되지.”

 

 

우리, 그것은 곧 타르가르옌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 이름 속에서도 여러 개의 파벌이 갈라져 작금의 내전을 일으켜놓고도 고고한 왕족은 결코 저들이 세워놓은 높은 벽 안으로 타인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다. 크리스톤은 불쾌한 패배감과 함께 섭정 비의 주눅든 얼굴을 떠올렸다. 하기사, 저와 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 여자 또한 용을 끌고 오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사람 취급이나 받았던가.

 

놀랍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아봤자 직접 그 모멸을 겪는 순간의 분노가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이야기 할 가치도 없다는 듯 회의소를 떠나는 아에몬드를 등진 채, 크리스톤은 오토에게서 온 전보를 한 손으로 구겨버렸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쟁과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갈망에도 불구하고 킹스랜딩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고요했다. 아에몬드는 바가르를 찾아 아에곤의 언덕을 오르던 중 무심코 바라본 하늘에서 멀지 않은 기억을 떠올렸다. 피처럼 붉은 노을 속에서 누군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그 순간을.

 

언젠가부터 제 아내를 떠올릴 때면 가슴 속에 묵직한 돌이 얹히는 것만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는 루케리스의 죽음에 대한 입장과도 비슷한 감각이었다. 어쩌면, 이라는 덧없는 단어가 자꾸만 그 앞에 붙고 싶어하는… 딱 그만큼의 무게가 아에몬드의 심장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에몬드가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원동력이 되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귀찮다는 듯 대놓고 싫은 티를 내며 그르렁거리는 바가르의 앞에 선 아에몬드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 거대한 턱을 아프지 않게 툭툭 두드리면서 그가 작게 속삭였다.

 

 

“이해해 줘. 내 반려를 찾는 일이니.”

 

 

…최근의 행보가 무모하다는 건 아에몬드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허니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서도 전쟁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예언이 어찌 실현되든 간에 그는 제 아내를 되찾아야 했다. 그녀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매 분 매 초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으니.

 

그때였다. 빠른 속도로 상공을 가로지르는 작은 형상을 포착한 아에몬드의 눈이 반사적으로 하늘을 응시했다. 순식간에 지나간 탓에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 형태와 소리는 용이 맞았다. 그것도 지금까지 킹스 랜딩에서는 보지 못한 개체였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아에몬드는 바로 바가르의 등에 올랐다. 따라가! 그의 명령에 바가르가 거칠게 땅을 발돋움하며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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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 비늘을 가진 작은 용은 매우 날랬다. 좀처럼 잡히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간격을 벌려가며 날아가는 모양새에 아에몬드는 험악하게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한눈에 봐도 결코 타르가르옌으로는 보이지 않는 낯선 기수의 존재보다도, 그 용이 지금 미친듯이 도망치는 곳의 방향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에몬드의 예상대로 낯선 용이 다다른 곳은 드래곤 스톤이었다. 바가르의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욕심 내고 다가갔다간 도리어 위험해질 것을 예상한 아에몬드가 인근 섬의 비탈에 몸을 숨긴 채 적진의 상황을 살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냐던 크리스톤의 목소리가 채 사라지지 않고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아 헛웃음을 띄울 때까지만 해도 그는 확실히 여유가 남아 있었다. 여차하면 교전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었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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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여기에 있어.”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낮과 밤을 따지지 않고 웨스테로스의 상공을 몇 번이고 날아오르게 만들었던 여인이 적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위태로운 몰골로 붙잡힌 포로도 아니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비행복을 입은 모습도 아니었다. 마치 이 전쟁과는 무관한 사람인 양 다시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의 옆에 서서 친우처럼 혹은 연인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가 막힐 상황이었으나,

 

자캐리스. 그녀의 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가 하필이면 그의 조카라는 점이 아에몬드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타르가르옌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한 듯 이성의 끈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들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왜 그러고 있는지는 더 이상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캐리스가 제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그는 조카의 눈을 뽑아버릴 자격이 충분했다.

 

 

그르르…

 

 

아에몬드의 끓어오르는 배신감에 공명한 듯 바가르가 낮게 울며 이를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비탈을 거슬러 넘어 드래곤스톤의 해안선으로 뛰어들기라도 할 기세에 도리어 침착해진 건 아에몬드 쪽이었다. 그는 안장 너머로 바가르의 목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달랬다. 바가르, 조용히.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아에몬드의 눈은 그제야 한층 가라앉은 차분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허니와 자캐리스가 서있는 언덕 아래, 드래곤스톤의 해안동굴을 끼고 있는 곳에는 꽤 많은 인간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곳에는 바가르가 방금 전까지 맹렬하게 추격했던 은빛 용과 그 기수도 있었다.

 

대체 다들 여기서 무얼 하는 건가. 쉽사리 상황을 유추할 수 없는 기묘한 광경에 아에몬드가 멈춰선 것도 잠시, 동굴 깊은 곳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명백하게 용이 내뿜는 숨결이었다. 그 확신대로 또 하나의 용이 동굴 안으로 걸어나왔다. 야생의 용이 아니었다. 클레임에 성공한 듯 얼떨떨해 보이는… 또다른 머리 검은 남자가 용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성공을 격려하는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의붓 누이, 라에니라였고.

 

라에니라를 발견하자마자 아에몬드의 손이 반사적으로 고삐를 강하게 쥐었다. 지금 여기서 그가 습격을 한다면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당장 그녀의 목만 날아갈 수 있다면 다른 용들의 공격쯤이야 감당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

 

 

그러나 끝내 아에몬드는 고삐를 당기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어느 새 다시 조금 높은 곳에서 상황을 관망하듯 바라보고 있는 허니에게로 향했다. 지금 그가 여기서 난동을 부린다면 제 남편이 지척에 와있는 줄도 모르고 그 시선을 오롯이 다른 남자에게만 주고 있는 순진해빠진 그의 아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캐리스가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제 숙부를 협박하는 우스운 일이 벌어질 지도 몰랐다.

 

아에몬드는, 예전이라면 결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 여자 한 명쯤 마음대로 하라고 무심하게 대답했을 그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어져버렸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다시 심장이 옥죄며 불편해져버렸으니까.

 

…비록 그녀가 적에게 의탁하여 목숨을 연명하고, 그에게 했던 맹세를 배신한 것이 분명한 상황이라 할 지라도.

 

 

“지금은 너무 위험해. 일단 돌아가자.”

 

 

결국 아에몬드는 혼자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허니가 드래곤스톤에 있다는 것과 흑색파가 어떠한 방법으로 용들을 길들여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레드 킵에 알리는 것이 먼저였다.

 

 

조만간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내 누이의 예언이 이번에는 맞는지 확인할 기회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듯 말을 억지로 씹어삼킨 아에몬드가 빠른 속도로 창공을 가로질렀다.

 







다음편 https://hygall.com/607300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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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다시 쌓이는 오해(외면)



아에몬드너붕붕
자캐리스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