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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7 01:11
원작 / 드라마 스포, 고증오류, 캐붕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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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물 무렵 돌아온 허니는 제 방 안에 준비된 식사와 목욕물을 보고는 괜히 뒷목을 매만졌다. 그녀를 손님으로 대하겠다는 라에니라의 말은 허울뿐인 표현은 아니었는지 드래곤 스톤의 하인들은 이런 식으로 그녀를 챙겼다. 여느 귀족들을 보필하듯 방안에 상주하는 건 아니었지만 허니는 이렇게 최소한의 생활만을 돌봐주는 방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레드 킵에서 왕자비로서 살던 시절, 정을 붙일만한 아랫사람을 만들지 못해서 하루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던 탓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지금 허니가 느끼는 외로움과 거북함은 딱히 자리를 지키지 않는 하인들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식사를 거르고 바로 목욕을 할 요량으로 드레스를 벗으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런 마음이 이해가 되질 않아 따뜻한 물 속에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그 마음은 어느샌가 최근 들어 부쩍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자캐리스. 해안가에서 처음 만난 날 그녀의 발을 치료해주었던 라에니라의 다정한 아들은 그 이후로도 카니발의 치료를 도와주는가 하면 함께 산책을 가겠냐며 그녀를 방 밖으로 끌어내고는 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의도된 친절함일 거라, 그 또한 그의 어머니처럼 어떠한 생각이 있어서 마땅히 그리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거리를 두려고 했던 허니는 언젠가부터 그의 방문을 기다리곤 했다. 이곳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는 건,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사람은 그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외출은… 이전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허니는 뽀얀 목욕물에 턱끝까지 몸을 집어넣으며 몇 시간 전의 일을 돌이켜 보았다. 일명 '붉은 추수'라 불린, 용을 길들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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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 해안가가 시끄러울 것입니다. 만약 외출을 하시려거든 그쪽은 피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나요?”

 

“…기사 서임을 위한 일종의 시험을 치르는 날입니다.”

 

“그렇군요….”

 

“보고 싶으십니까?”

 

 

그렇게 되묻는 자캐리스의 표정이 어떠했더라. 당시 허니는 본인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가늠해보느라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녀에게 참관을 권했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보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됐다고, 오늘은 방안에 있겠다고 말을 하기가 민망해 고개를 끄덕였을 뿐.

 

자캐리스가 데리고 간 곳은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이었다. 지대가 높아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곳. 덕분에 허니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그 험한 상황을 전부 지켜볼 수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용에게 다가가서 이름을 부르고 불태워지거나, 도망칠 틈도 없이 허무하게 짓밟혀 죽는 그 끔찍한 광경들을.

 

 

“왜—“

 

“용을 길들인다는 건 원래 이런 것입니다. 용은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격이 없으면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요.”

 

 

용에게 다가가는 이들은 대부분 허름한 옷차림에 머리색도 제각각인 사람들이었다. 대체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저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허니가 설명을 바라자 자캐리스는 평소보다 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사생아들 중 돈이나 권력을 바라는 자들이 자발적으로 용을 길들이는 시험에 참가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고작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허니는 그 대답에 자캐리스를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를 길게 알고 지낸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친절함이나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자캐리스는 어쩐지 잘못을 지적당한 아이처럼 시선을 살짝 피하며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그대를 모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아. 그제야 말의 의도를 파악한 허니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캐리스는 저 언덕 아래서 기꺼이 목숨을 내버릴 각오를 하며 용에게 다가가는 이들을 한심하게 여기고 있었다. 감히 자격도 없는 자들이 큰 힘을 탐한다는 듯이. 그런데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심지어 저들보다도 못한, 대가문과는 어떠한 연관도 없는 리치의 귀족 중 한 명이 아닌가.

 

카니발이 그녀를 선택했을 때 레드 킵의 학사들과 용지기들이 그녀의 핏줄과 용의 상관관계를 해석하기 위해 B 가문의 가계도를 샅샅이 훑었다는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가능성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건 이미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알 이야기였다. 할 수 있는 추정이라고는 그저 카니발이 변덕을 부려서 그렇다— 밖에 없으니, 다에몬처럼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던 대가문만의 정통성을 무시해버린 그녀의 존재 자체를 못마땅히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자캐리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몸 담고 있던 곳이 그래도 녹색파의 거점인 레드 킵이었던 탓에 아무리 세상 물정 어두운 허니라 할지라도 그의 곱슬머리와 검은 눈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히려 자캐리스가 그런 태생이기 때문에 타르가르옌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제게 친절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녀가 사람을 잘못 본 듯 싶었다.

 

실망인지 놀라움인지 모를 감정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 탓에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쪽은 자캐리스였다.

 

 

“용을 길들인다는 건… 그건 제가 타르가르옌의 혈통이라는 증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도 더 낮고, 작았다. 마치 입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듯이 속삭임에 가까운 소리로, 그가 속마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성 안에서 산다는 건 곧 나를 적대하는 이들과도 좋든 싫든 얼굴을 맞대며 살아야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부터 저는 출생에 대한 의심을 받아왔죠.”

 

“…….”

 

“하여, 버맥스를 길들이는 데에 성공했을 때 저는 비로소 몇 년 만에 마음 편히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닮지 않은 제가 정당한 왕족이라는 걸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손에 넣었으니.”

 

 

그는 대수롭지 않은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웃으려 노력했으나, 그 미소는 너무나도 유약하여 숨결 한 번에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어떠한 상처는 너무나 깊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다 하더라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채 아물지 못한 그의 흉터를 다시 튿어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반쪽짜리 사생아들이, 대가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당신이 용을 길들이는 데에 성공했죠. 우습게도 저는 흑색파의 전력이 강해지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진심으로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너희들의 존재 자체가 나를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차마 내뱉을 수 없는 가장 저열한 밑바닥의 마음을 씹어 삼키듯 자캐리스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허니는 해줄 말이 없어 그저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위로를 해주어봤자 그것이 기만으로 받아들여질까봐.

 

 

“그저 용이 변덕을 부려 나를 선택했을 뿐, 제가 타르가르옌이기 때문에 제 말을 듣는 것이라는 걸 증명할 수 없다면 전… 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당한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예. 저희 어머니께서는 제가 겪을 아픔을 지금 겪고 계신 만큼 저의 편을 들어주려 하시겠죠. 하지만 선왕께서 그리 어머니를 지지해주셨는데도 결국 내전은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

 

“현 국서인 제 양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난 제 동생들의 정통성을 지지하며 다시 한 번 왕권을 공고히 하려는 자들이 정말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 차라리 아무런 반박도 없이 그가 왕권을 이어받는 것이 더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허니도 그걸 알아 차마 더 길게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의도치 않은 깊은 한숨이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왔다. 타르가르옌이 아님에도 용의 선택을 받아 아에몬드의 눈에 들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때문에 자캐리스를 상처받게 만든 역설적인 상황이 새삼 어이가 없었다. 제 탓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제 존재가 애초에 맞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려 한 탓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만 같아서.

 

결국 허니는 길게 내려온 드레스 자락을 살짝 고쳐쥐며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 저가 옆에 있어봤자 뿌리가 흔들리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자캐리스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을 걸 알아서였다.

 

 

“저는 그저… 이 모든 일이 빨리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허니,”

 

 

그러나 허니가 돌아가려하자 자캐리스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붙들었다. 정말 충동적인 행동이었는지 본인조차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자신이 귀족이라기엔 너무 지나치게 솔직했음에 수치스러움을 느낀 듯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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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의… 제 무례는 잊어주십시오. 제가 그대에게 실례되는 말을 했습니다.”

 

“아뇨, 틀린 말도 아니었는 걸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당한 말이었습니다. 제 처지에 눈이 멀어…”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허니는 문득 그가 아직 성년의 나이도 채 넘기지 못한 소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앞을 헤아리는 것은 그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총명하기 때문이지, 그가 성숙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이 누군가를 상처입혀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저는 괜찮아요.”

 

“정말이십니까?”

 

“…….”

 

“그렇다면 진심으로 제 말을 용서해주실 수도 있으십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제게는 그렇습니다. 저를 한심하게 여기시더라도 나중에는 제 경솔한 발언을 용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초조함과 혼란, 미안함 등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눈이 허니를 똑바로 마주해왔다. 그리고 그 안에 일렁이는 감정들 중에는 차마 그가 품어서는 안 되는 열기 또한 깃들어있었다.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 한들 당신을 진심으로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당신도 저를 그리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허니는 그 눈빛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 또한 누군가를 오랫동안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지금 자캐리스가 천천히 손을 내려 제 손을 잡아오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뒷걸음질을 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벌리는 것으로 거절의 뜻을 대신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제게 베풀어주신 친절만으로도 저는 결코 당신을 원망할 수 없어요. 다만,”

 

“…….”

 

“…저는 아에몬드의 아내에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아마 그것은 그 자리에서 자캐리스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인 동시에, 가장 잔인하게 현실을 깨닫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칼에 심장을 찔리기라도 한 듯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중한 말로 애써 포장해두었던, 막 무언가를 시작하려던 본심을 상대에게 들켰다는 부끄러움보다도 어떠한 여지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그 분명한 거절이 그를 아프게 했다.

 

미안해요. 칼자루를 쥔 허니는 결국 그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먼저 떠났고, 홀로 남은 자캐리스는 그가 내뱉었던 모든 말을 후회하며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있어야만 했다. 잔인하게도 그의 발밑 아래에서는 연달아 그의 태생을 우습게 만드는 인간들이 그의 어머니의 격려를 받고 있었다. 분명 제 옆에 있던 여인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였을 텐데, 혼자가 되어 바라보는 그 풍경이 유독 더 아프게 느껴져 자캐리스는 한동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허니가 목욕을 하며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고 있을 때, 자캐리스는 마음을 추스릴 새도 없이 스톤 드럼으로 향해야 했다. 라에니라가 그를 불러낸 탓이었다.

 

드래곤의 씨가 용을 길들이는 데에 성공했으니 마찬가지로 사생아인 아들을 불러 축배라도 들려는 것인가. 채 억누르지 못한 비아냥을 막은 것은 우습게도 허니의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차마 제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고 따지지도 못하던 얼굴을 떠올리면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마냥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난생 처음 겪는 짙은 패배감과 죄책감이 그의 정신을 자꾸만 수렁에 빠뜨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일 때가 아니었다. 복도를 지나 익숙한 벽난로의 불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며 자캐리스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아, 자캐리스.”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라에니라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옆에는 다에몬이 함께였다. 하렌홀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의 귀환에 자캐리스가 놀라워할 새도 없이, 라에니라는 연이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이틀 뒤 발레리온의 함대가 출항할 거야. 그들이 펜토스로 가는 동안 네가 호위를 해주거라.”

 

“…펜토스에는 갑자기 왜 가는 것입니까? 자유도시와의 동맹을 위해서입니까?”

 

“어떤 의미로는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기는 하지. 펜토스의 영주는 타르가르옌에게 매우 호의적이거든.”

 

 

자캐리스의 질문에 답을 한 사람은 다에몬이었다. 그는 버릇처럼 허리춤에 차고있던 검의 칼자루 부분에 손을 올리며 노래하듯 말했다. 그 수수께끼같은 답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자캐리스가 눈썹을 들어올리자, 라에니라가 설명을 덧붙였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에곤과 비세리스를 거기 보낼 예정이야.”

 

“…….”

 

 

제 동생들, 그 중에서도 눈앞의 두 사람을 빼다 박은 눈부신 은발을 가진 동생들만을 안전하게 내보내기 위해 함대를 출항시키겠다는 말에 자캐리스는 아까와 같은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꽉 물어야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셀 수 없이 많은 질문들이 터져나왔다. 왜 거기에 조프리는 끼어있지 않은 것인지, 저에게 단순 호위같은 임무를 주어도 되는 상황인 건지, 제 안위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인지.

 

그러나 자캐리스는 그 질문들에 답을 들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말을 꺼내어봤자 막연한 불쾌감이나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만 더 늘어나는 꼴이었다. 그런 건, 결국 이 싸움에서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고.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여왕의 아들은 순순히 명령에 따르겠노라 대답했다. 어쩌면 그가 직전에 허니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그녀에게 이미 너무 많은 실수를 해서 더 이상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정황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녀에게 느끼는 것보다 더 큰 미안함을 어머니께 느끼게 됐을까.

 

이 또한 부질없는 물음이라 판단한 자캐리스는 더 이상 내릴 명령이 없으시다면 이만 물러가 보겠다는 정중한 말과 함께 스톤 드럼을 떠났다. 라에니라는 그런 아들의 태도가 못내 마음에 걸린 듯 했지만 그를 붙잡지는 않았다. 어쩌면 옆에 다에몬이 있어서 그리 행동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누군가에게 또 밀려난 꼴이 되어버린 자캐리스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질 뿐이었다.

 

어차피 벌어질 일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결국 모든 상황이 안정되고나면 자신 또한 흔들림없이 뿌리를 내릴 위치를 찾게 되리라. 자캐리스는 막연한 희망으로 스스로를 애써 달래며 방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이 유독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은 최대한 외면하려 노력하면서.




 




 

 

 

어쩌면 자캐리스가 억지로라도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펜토스까지의 호위가 그렇게 위험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벨라리온의 함대는 바다의 사랑을 받는다는 그들 가문의 명성만큼이나 강력했고, 때문에 아주 오랜 세월동안 감히 정면으로 대적하려는 자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들의 배는 펜토스의 항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걸렛에서 하필이면 삼두정이라는 최악의 적수를 만난 함대는 오랫동안 꺼지지 않을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불길과 연기는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짙은 어둠을 만들어냈다. 비명과 고함이 오가는 혼돈의 장을 벗어난 하늘 위에는… 세 마리의 용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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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오류 가득한 2차 창작답게 여기서 바엘라는 자캐리스의 오촌일 뿐 약혼은 하지 않았다는 설정. 그것까지 풀어냈다간 진짜 끝나지 않는 용춤 속 막장드라마가 될 것만 같았음 ()



아에몬드너붕붕
자캐리스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