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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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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서 일주일이 지났다. 곧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기술자가 체포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뒷방에서 백업을 하거나 민간인으로 변장해 기계나 다루는 기술자가 직접 잡힐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은행 강도는 연방 범죄니 재수없다면 연방 수사국까지 개입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강도 작업같은거 돕는게 아니었는데, 라이언을 떠난다는 알량한 죄책감이 자기 발목을 잡았다. 가족이고 뭐고 이제 나락으로 떨어지려나. 감이 좋지 않아 그는 방 안을 끝없이 배회했다.

 

그는 다음주까지는 무조건 나가야한다.

 

“잭맨 씨, 오랜만입니다.”

 

변호인이 찾아왔다. 업계 변호사였다.

 

“은퇴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런 곳에서 뵐줄은 몰랐어요.”

 

말단들은 아는 법조인 하나 없는게 태반이었지만 간부급들은 콘실리에리라도 되는것처럼 변호사를 하나 둘 정도 거느리고 다녔다. 전에 기술자로서 한두번 일을 도와주며 알게된 어떤 간부의 변호사였다.

 

“같이 체포된 사람들이 다 당신 주도하에 작업한거라고 진술하고 있어서, 조금 불리한 상황입니다.”

“그럴리가..”

“저야 당신 주로 하는 일이 뭔지 아니까, 거짓말이라는건 알죠. 웬일로 질 안 좋은 동업자들을 구하셨네요.”

 

버릇없던 동업자들은 지금껏 마음에 드는게 하나 없었다. 줏대없이 입을 놀리기는 싫어 휴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레이놀즈 기억하시나요? 그 사람이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아.. 그 젊은 친구, 일 열심히 하던..”

 

변호인은 잠시 무언가를 확인하며 서류 무더기를 뒤적였다. 안좋은 예감이 그의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레이놀즈란 이름은 없었어요.”

 

커진 작업의 규모에 다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는 커녕 라이언만 편리하게 빠져나갔다. 어이없었다. 어떻게 그만 혼자 빠져나갈수가 있단 말인가.

 

눈을 질끈 감자 라이언이 건네줬던 돈가방이 아른거렸다. 괜찮을거니까 도망가라는 그의 거짓말이 맴돌았다. 그는 추적 장치가 돈다발 안에 있다는걸 알고 그랬던걸까?

 

믿기 싫었다. 한동안 멍하니 라이언을 생각하던 그는 걱정을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그보다.. 다른건 나중에 준비해도, 이번에 무조건 보석으로 나가야됩니다. 얼마가 되든 상관없습니다.”

 

은행 강도에 동업자들은 무기까지 들었으니 보석은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긴 경력에 비해 의외로 전과도 없었고 휴가 폭력적이었다는 증언도 없었다.

 

“어려울 것 같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잘됬네요.”

 

휴가 씁쓸하게 웃었다.

 

“애들에게..”

“가족들이요?”

 

가족들을 보러 가야한다는 말을 차마 꺼낼수가 없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였다.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라던 전처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그의 말은 이제 어떻게 지킨단 말인가. 어떻게 포장을 하든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가족분들은 외국으로 나가셨어요. 돌아오지 않을겁니다.”

“네?”

“아, 저런.. 이미 알고 계시는줄 알았습니다.”

 

변호사가 난감해했다.

 

“어떻게 소식을 전해들으셨는지 전부인이 직접 전화주셨습니다. 두번 다시 연락하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요. 일이 이렇게 되다니 죄송합니다.”

 

귀가 울렸다.

 

그동안 보내줬던 돈은 전처가 일부 돌려보냈다는 말과 사건이 마무리 될때까지는 자산 압류가 될거라는 변호사의 설명은 이명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현실은 굳건했다.

 

이미 남이 된지 오래였지만 그들을 억지로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은 손에 모래를 쥐고 있던것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는 얼마나 쉽게 버려졌는가. 돌아갈 가족조차 없어지자 애써 살아온 삶은 파도에 휩쓸리듯 부서졌다.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이 뚝 끊어져버렸다.

 

충격에 빠진 그는 상담을 간신히 끝낸 뒤 구치소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때마다 그의 슬픔은 분노로 승화되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떨림은 분노일까, 복수하겠다는 결심일까.

 

곧장 같이 체포되었던 동업자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라이언에 대해 말을 맞췄어?”

“알아서 뭐하게.”

“닥치고 대답이나 해.”

 

휴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말하면 당신이 뭐 어쩌려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가족들 얘기를 꺼내면 취조하듯이 굴던게 특이했었다. 그는 라이언의 거짓말을 알고도 넘어가줬다. 믿기 싫었던 직감이 사실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대체 왜? 라이언에게 잘 보이면 뭐가 좋아서? 미련할 정도로 그들은 바보같았다. 그들이 받는 대가는 뭐란 말인가. 라이언에게서 돌려받은건 생지옥이나 다름없는데.

 

휴가 의자를 집어던졌다.

 

의자는 유리창을 박살내며 날아갔다. 그의 손은 식판을 집어 들어 동업자의 머리를 세게 후려갈겼다. 뜨거운 음식에 얼굴이 타들어가자 동업자는 비명을 질렀다.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교도관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이제 그는 곧 곤봉에 제압당하겠지,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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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놀즈에게 전해,“

 

휴가 쓰러진 동업자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깨진 유리 조각에 손이 베이는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버림받고 배신받았다는게 너무 고통스러워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었다.

 

“당장 만나러 오라고.“

 

 

 

 

벽에 몸을 기댔다. 거친 콘크리트의 싸늘함이 몸의 온기를 앗아갔다. 가족들에게 다시 거짓말을 하고 약속도 못 지킨 그가 마땅히 받아야할 벌 같았다.

 

독방에서의 일주일은 지독할 정도로 천천히 흘러갔다. 그는 미친듯이 은행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해부해보며 납득 가능한 설명을 찾아보려했다. 잠을 청하려 해도 그의 머릿속을 채운 배신감과 후회가 그를 깨웠다. 모든것이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그는 자신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애써 평범하게 살고 있던 일상에 천재지변처럼 자기를 찾아온 라이언은 분명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잘못되어버렸다. 이 모든게 중독자같던 자신의 잘못된 선택 같았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쇠창살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문이 열렸다.

 

“잭맨, 면회다.”

 

잠시 멍하니 있던 휴는 천천히 굳은 몸을 일으켰다. 독방에 갇혀있다가 처음 보는 꼴이 그 얼굴이라니.

 

독방에서 나오자 교도관이 수갑을 채웠다. 독방에서 빠져나온 일종의 해방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라이언은 뻔뻔하게도 손을 흔들었다. 휴는 수화기를 들었다.

 

“절 찾았다면서요? 저도 보고싶었어요.

 

휴가 그를 노려보자 라이언이 방긋 웃었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보는게 역겨웠다.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건지 알아?”

 

휴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수화기를 집은 손이 분노에 떨렸다.

 

“나는 그렇다 쳐, 네가 부른 사람들은?”

“아, 그 친구들은.. 버릇 좀 고쳐줘야 할 친구들이죠. 당신도 마음에 들어하진 않았잖아요.“

“미친놈..”

 

휴가 중얼거리자 라이언이 다시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아무런 온기도 없었다. 휴는 분노를 억누르며 차분히 말했다.

 

“여태 네가 제멋대로 굴었던 거, 봐줄수 있어.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것도 네가 실수라고 거짓말한다면 넘어가줄수있어. 하나만 물어보자.”

 

휴의 손이 떨렸다. 바보같았지만, 자기가 추측하는걸 믿고 싶지 않았다. 휴는 손을 꽉 쥐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안에서 웅웅대는 감정은 더 이상 분노뿐만이 아니었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가족들을.. 외국으로 보냈어?”

“가족들이요?”

 

라이언이 수화기를 고쳐잡았다.

 

“주기적으로 막대한 돈을 보내도 당신을 만나주지도 않는게 가족? 사람들은 그걸 남이라고 하지않나요?”

“그건.. 그건 내 잘못이었어, 다 내 탓이었다고. 내가 더 잘했어야했는데, 만나서..”

 

수없이 설명해봐도 돌아오는건 차가운 현실뿐이었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미 끝난 일이다.

 

“만나서 뭐 어쩌게요, 당신이 돈으로 보낸 사립학교 교복 입은 애들 모습이라도 보고싶었어요? 가족이 필요한거예요? 지금 당신을 찾아온건 나예요.”

 

라이언은 잔인한 현실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가족들이 그를 두고 떠났다는 처절한 사실에 목이 졸리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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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하나씩 기워가던 그의 추측을 부인하지도 않고 라이언은 말을 이었다.

 

“당신도 결국엔 날 떠날거잖아요.”

“뭐?”

“이렇게만 한다면 당신이 전에 그랬던것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리진 않겠죠. 어디 있는지 알수있으니까..”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것같았다. 고작 그는 나를 잡아두기 위해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단 말인가.

 

“그래요, 이해하기 어렵죠? 나도 잘 몰랐어요. 고작 당신이 은퇴하기 전 잠깐 만난 사람이었는데 나는 왜 당신을 잊을수가 없었는지. 이건 호기심으로 시작했어요.”

 

절망을 참아내려 할수록 라이언의 손이 목을 조여오는것같았다. 깊은 배신감과 끓어오르는 분노가 무력함에 잡혀먹히기 시작했다.

 

“우리 그런 사이도 아니잖아..”

“그런 사이요?”

 

라이언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사이가 뭔데요? 기술자와 통솔자? 욕구만 풀면 다 끝나는 그런 사이? 술만 마시고 나면 같이 자는 사이?”

”내가 약해진걸 알고 날 밀어붙였잖아, 그러면 안됬었는데.. 그건 그냥..“

“순진하게 굴지 말아요. 대체 누가 동업자한테 범해달라는 소리를 해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사이는 그래도 되는 사이예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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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이를 나는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휴.”

 

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생이 이 남자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수있는게 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가 무너져내렸다, 마침내.

 

“내 인생을 망쳤어..”

 

휴가 수화기를 쥔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흐느꼈다. 갈라진 목소리는 더 이상 분노에 떨리지 않았다. 오직 체념과 절망감만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울지마요. 예쁘긴한데, 가슴이 미어질것같잖아요.”

 

라이언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이 흘렀지만, 그 웃음 속에서 묘한 쓴맛이 느껴졌다. 그는 유리벽에 손을 맞대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오면 나에게 돌아와요. 기다릴게요, 난 기다리는거 잘해요.”


 


놀즈맨중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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