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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4 00:56
전편





 
7


센터에서 지내는 동안 저녁은 그들 스스로 지어 먹어야 했다. 로건은 솜씨가 없었고 닷새째가 되는 날 솜씨가 없는 그를 위해 애니가—그녀는 금발의 짧은 커트머리를 항상 귀 뒤로 넘기는 습관이 있었다—나섰다. 그녀는 가장 쉬운 요리를 알려 주겠다며 양상추, 식빵, 치즈, 햄 등과 같은 것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로건은 부엌이라 불리는 공간에 제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견딜 수 없었으나 되도록 참으려 노력했다. 오늘 저녁, 그의 손에 여덟 명의 식사가 달려 있었다.

“지금부터 가장 쉽지만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 거예요.”

그는 고개를 까딱였다. 그녀는 먼저 식빵을 줄 세우듯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깔았다.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일게요. 다음은 그대로 따라 해요.” 그는 또 끄덕였다. 애니는 식빵 위에 홀그레인 머스터드소스와 아까의 그가 잘라놓은—물론 그는 칼을 사용했다—양상추와 토마토를 얹었고 그 위로 슬라이스 햄 두 장을 올려놓았다. “로건, 달걀 좀 줄래요?” 그는 제 앞에 놓인 그릇을 건넸다. 마요네즈를 듬뿍 머금은 삶은 달걀은 조금 기괴해 보였자만 그는 다행히 평정을 유지했다.

“햄 위에 이렇게 올리면 돼요. 그리고 남은 식빵으로 꾹.”

그는 이해했다는 듯 눈을 맞췄다. “자, 이제 만들어 봐요.” 애니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달걀 무덤을 건넸고 그는 그녀가 만들어둔 샘플을 열심히 따라 했다. 애니가 말했다. “어때요. 쉽죠? 이렇게 간단해도 한 끼 정도는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요.” 로건은 끄덕이며 햄을 넣었다. 기계처럼 동작을 반복하니 문득 이런 제 모습을 웨이드가 보았다면 까무러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야, 지금 저녁 준비하는 거야? 이것 참 X발! 부부 같잖아!” 그는 픽, 웃음이 터졌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며 조잘대겠지.

그때 “바로 그거예요, 로건!” 갑자기 소리친 애니에 로건은 미간을 좁혔다. “뭐요.” 그녀가 귀 뒤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요리의 즐거움이요. 누군가와 함께 먹을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죠.” 방금 떠올린 누군가도 그럴 거라 생각해요. 

로건은 입을 닫고 식빵을 겹쳤다. 생각보다 너무 세게 눌린 샌드위치는 소스와 달걀을 토해냈지만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8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것은 무언가를 놓아버리거나 받아들여도 좋을 것만 같다는, 그런 좋은 생각들이 조금씩 틈을 벌리며 스스로를 잠식하기 시작할 때에, 그와 반대되는 상황 또한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그가 이곳에 발을 들인지 다섯 번째 되는 날이었고, 그는 마이키와의 대화와 더불어 애니와의 실습으로 느슨해진 상태였다. 그런 유한 상태, 평소와 다른 상태에 깊숙이 빠지려 하는 바로 그때에, 언제나 사건은 일어났다.

저녁 7시, 마찬가지로 둥그런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들의 앞으로 대부분 로건이 만든 것이 분명한 탑처럼 쌓인 샌드위치가 놓였다. 퉁명스럽게 놓인 그 거대한 것에 사람들은 저마다 호응하며 웃었다. 그런 분위기, 모두가 서슴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는 그가 처음 웨이드의 집에서 맞이했던 저녁 식사와 같은 것이었고 그 또한 그들과 어울려 아주 조금 웃을 수 있었다. 식사 시간은 무척이나 평범하게 흘러갔다. 먹고, 마시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일상적 흐름이란 이런 것이었지, 하고 깨달을 만큼 평범하게.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저녁 식사 시작 초반부터 창백하게 질려 있던—그는 대부분 하얗게 질려 있었다—마이키가 숨이 턱 막힌 듯한 자세로 벌떡 일어섰다. “마이키?” 그는 끅끅거리는 소리를 내며 숨을 쉴 수 없다는 듯한 손짓으로 제 목을 쥐었다. 두 눈은 크게 뜨였고 그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세상에! 사람들이 저마다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물! 물!”

“지금 체한 거야?”

이런, 세상에. 빨리 멜라를 불러와! 마이키! 이봐! 모두들 그의 목에 무언가 걸린 것이라 생각했고 로건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의자 서너 개를 젖히며 재빨리 마이키에게 다가갔다. 로건은 곧바로 뒤에서 그를 끌어안은 채 힘을 줘 아랫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가 괴롭다는 듯 버둥거렸다.

“이봐, 마이키! 진정해!” 곱슬머리의 레이가 소리쳤다.

어떡해! 세상에, 어떡하면 좋아!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여덟 명의 목소리, 이러 저리 끌리는 의자들의 소음. 평화로웠던 식탁은 금세 엉망이 되었다. 로건은 제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틈이 없었다. 그는 강한 힘으로 계속해서 마이키의 복부를 조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를 토해내기는커녕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마이키!” 마이키의 입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로건은 몸을 떨었다. 잊고 있었던 불안감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뇌전증이에요!”

로건은 눈썹을 기이하게 꿈틀거렸고 그 사이 멜라가 뛰쳐들어와 강한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놓아요! 놓아줘요, 로건!” 로건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또다시 꺽꺽거리는 숨소리가 반복되었으나 주변은 고요했다. 멜라는 힘없이 바닥에 누운 채인 마이키의 셔츠 단추를 풀고 버클을 풀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마이키의 모습에 로건은 제가 결국, 또다시 누군가를 괴롭게 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말았다.

멜라니가 어느새 주저앉은 채인 로건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은 그를 힐난하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 순간 사라지고 싶었다. 로건은 다시금 괴롭게 체념했다. 삶에서의 좋은 것이 다가오면, 조금은 마음 두고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참이면, 삶은 항상 그를 다시 일깨웠다. 너는, 결국 그렇게 될 거라고.

“로건,” 멜라니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시선이 멜라니를 향했다가, 마이키의 덜덜 떠는 손끝을 향했다가, 바닥에 어지러이 엎어진 샌드위치를 향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너는, 결국, 모두를 다치게 할 거야.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최악이었다.





 
9


로건은 마이키의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이키는 언제 그런 발작을 일으켰냐는 듯 얌전히 누워 있었고 그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코로 숨을 내쉬는 마이키를 바라보았다. 얕게 들썩이는 가슴팍을 바라보았고 작게 내쉬어지는 숨을 지켜보았다. 로건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 늘어진 한 사람의 몸뚱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손을 뻗어 마이키의 티셔츠를 살짝 걷어 올렸고 그의 창백한 피부를 훑었다. 허리께에 푸르스름한 멍이 들기 시작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로건은 입술을 짓씹었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멜라가 발을 들였다. 로건은 그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비켜섰다. 그녀는 잠시 동안 마이키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를 향해 돌아섰다. “알코올 금단현상이에요. 마이키의 경우, 갑자기 많은 양의 알코올 흡수가 중단되면 발작을 일으켜요.”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 당신 잘못은 없어요.”

로건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던 사실이었어요. 제가 더 신경 썼어야 했어요, 이건…” 하지만 로건은 마이키가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를 시퍼렇게 멍들인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 순간 그가 조금이라도 더 세게 힘을 주었다면, 언젠가 그가 저질렀던 일들처럼 그저 무언가를 해결하기 급급해 주변을 살피지 않은 채 더 세게, 계속해서, 그를 괴롭게 했다면. 그랬다면 마이키는. 

“이건 그냥 사고예요, 로건.”

로건은 잠자코 들었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금 누워 있는 마이키를 쳐다보았고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생각했다. 나약하고, 연약하고… 쉽게 부스러질 수 있으며 상처 입으며 너무나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멜라는 그의 어깨를 한 번 쥐었다 밖을 나섰고 그는 조금 더 남고 싶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았는데도 새로이 가슴에 새겨지는 같은 말들은 매번 자국을 남겼다. 로건, 로건, 로건. 최악의 울버린. 너는 너의 세계에서 모두의 기대를 저버렸지.

멜라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더이상 자신을 과거에 가두지 말아요.”

로건은 쓰게 웃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생각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둔 것이 아니라 본래 그의 세상이 그것이 전부라면, 그의 운명은 오로지 갇혀 있어야 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로건은 의자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두 손 위로 얼굴을 묻으며 인간이란 존재의 죽음을, 제가 대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순간 그가 사람들 속에서 평범히 걷는 모습을 상상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10


살아가는 데에 있어 또한 재미있는 것이 있다면 아주 나쁜 순간을 겪은 바로 그다음, 삶은 또다시 그에게 손을 건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반복될 수밖에 없는 걸까? 우울한 상념은 전혀 울릴 것 같지 않은 타이밍에, 힘차게 울기 시작한 전화벨 소리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로건은 방해꾼이 마이키의 단잠을 깨울까 싶어 곧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들린 건, 글쎄. 그는 겨우 숨소리만을 들었지만 그건 곧 제가 잘 알고 있는 목소리를 이끌었다. “달링, 아주 빨리 받네.” 

늦은 밤 도시의 소음이 수화기 너머로부터 건너왔다. 로건은 일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어두운 적막 가운데 그가 두 눈을 깜박였다. 네가 왜, 아니, 네가 어떻게, 등등. 술, 파티, 소파, 센터, 바깥의 그늘. 다시 술, 파티, 소파, 바깥의 그늘과 지금, 그리고 여기. 그의 머릿속으로 며칠 동안의 모든 것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그는 저도 모르게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그는 그가 절실하게 무언가를 손에 쥐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건 마치 그동안 제가 애써 외면해오던 진실과도 같았다.

“자기야. 그렇게 멀리 갔다니 참, 나 정말 속상해.” 웨이드가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로라 그 조그만 악마가 우리 둘 사이를 질투하는 게 분명해. (난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그게 아니라면 내 울비를 이렇게 나와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거냐구!”

밝은 면을 보고 있다면 뒤쪽으로 어둠이 짙어지듯이, 그가 그런 끝없는 절망에 시달릴 때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민 건 웨이드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게. 나에 대해 조금도, 혹은 전혀, 잘 알지 못하는 놈이. “우리 울비가 좀 술에 취해서 사람을 베었기로서니! 이런 처사라니 세상을 구한 ‘뉴 로건’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아무튼, 그놈은 멀쩡히 살아있으니 된 거 아니야? 오… 혹시. 베이비, 자기야. 설마 그걸로 지금 우울모드인 건 아니지?” 로건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제 와서 더이상 그런 곳에 남고 싶지 않다는걸, 웨이드가 말하곤 했던 그의 세계 속 ‘로건’이 제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여기’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웨이드.”

“응? 왜, 자기야.”

“… 웨이드.”

웨이드는 눈치가 빨랐다. 로건은 세상에 있는 모든 말을 다 모아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숨소리는 숨소리와 숨소리로 대체되었고 그는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멍청이가 이미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로건.” 웨이드가 말했다. “보고 싶어.” 그는 새삼스레 차오르는 무언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운명이 오로지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손을 내밀 작자가 바로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어진 다음 순간, 그는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을 풀었고 진심으로 미소 지었다.

그가 대답했다. “응, 그래.”





 
11


“당신이 웃는 걸 처음 봐요.”

들려온 음성에 로건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마이키?”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걸 보며 마이키는 힘이 빠져 덜렁대는 손짓으로 인사했다. “좋은 밤이네요.” 평소보다 푸석한 얼굴이 은은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로건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랐다. 괜찮냐고 묻기에는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 그는 그저 고개만 까딱였는데 마이키는 왜인지 알 것만 같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네요.” 잠깐 동안 뜸을 들이던 마이키가 말했다. “이런 부담스러운 비밀을 알게 되면 모두들 당황하곤 해요. 그러니까 로건,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는 뜻이에요.”

로건은 그저 옆에 앉아 있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지만 술을 끊기 시작하면 발작이 반복되죠. 그걸 누군가에게 들키는 순간은, 정말이지 죽고 싶어요. (지금이 바로 그런 상태죠.) 모두 이해한다고들 말하지만 결국 발작은 계속되고… 그걸 피하기 위해 저는 다시 술을 마셔요.”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하지만 종내에는 술을 마시는 동안만 괜찮을 뿐, 그보다 더 나이지는 일은 없다는 걸 알아요.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죠, 로건?”

그는 대답 대신 마이키의 침대 옆 협탁으로 눈을 돌렸다. 종이접기 시간에 마이키의 손가락에 끼어 있던 금붕어가 보였다. 로건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물고기를 집어 들고는, 그때의 마이키가 했던 것처럼 꼬리 끝을 쓸어보았다.

“술을 끊어, 마이키. 그럼 되는 거야.” 로건이 중얼거렸다.

마이키는 그를 홱 돌아보면서도 눈물을 글썽였다. “현실이 변하지 않는 구렁텅이 같다고요! 죽지 못해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아나요? 그건 정말 끔찍해요! 내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니.” 그에 로건은 그를 보며 눈썹을 들썩였다. “물론, 아주 잘 알지. 날 믿어, 친구. 그쪽으로 난 이골이 났으니까 말이야.”

“오, 로건.” 순간 마이키는 제 잘못을 깨닫고는 급하게 덧붙였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로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 또한 들썩였는데 참지 못한 마이키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난 정말 구제불능이에요… 그런데 로건, 당신 지금 날 뭐라고 불렀죠?” 그는 이 젊은이가 바라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으므로, 순순히 대답했다. “친구.”

“맙소사, 그건 정말, 정말로 듣기 좋은 말이에요.” 그가 훌쩍이며 대꾸했다. “계속해서 제 친구가 되어줄 건가요, 로건?” 이런 이상한 발작이 계속된다고 해도요? 로건은 그딴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제 주먹을 쥐었다. 곧 살갗을 뚫고 나오는 날카로운 그의 은색 발톱들을 보며 마이키는 우습게도 환히 웃었다. “당신은 최고의 친구예요. 정말이요.”

그는 금붕어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는 흔들어 보였다. 로건이 말했다. “그럼 친구의 징표로 이걸 받아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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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신인: +xxx, 085-200-09883 ] , 발송시간 23:28, 23일 목요일 


수신인: 로건 아저씨


매카시 씨에게서 센터에서 생긴 작은 소동에 대해 전해 들었어요. 아저씨가 상심이 크시다고 하시던데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건 사고였고(매카시 씨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아저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마시길.


이제 곧 만날 수 있겠죠? 저는 여전히 아저씨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선택한 것처럼요.
저는 이곳에, 그리고 여기서 살아가기를 선택했고 아저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로건, 늦었지만 보이드에서 꺼내주신 걸 감사드려요. 
(당신은 항상 진짜가 되기 전에 낙담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에겐 집이 있어요.
이번엔 나아갈 차례라고 생각해요.


그럼 곧 집에서 뵈어요. 사랑을 담아, 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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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다음날, 로건은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처음으로 정돈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의 옆으로 마이키와 멜라가 앉았고 나머지 일곱 명이 천천히 원을 그렸다. 카펫 위로 의자가 끌리며 각자의 위치에 자리한 그들은 오늘은 누가 첫 번째 이야기꾼이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눈을 굴렸다. 로건은 매번 마지막을 자처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피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자 너무도 오랜만에 많은 이들 앞에서 입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쑥스럽게 느껴졌고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눈치를 보았다. 

“로건, 걱정 말아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그런 제 표정을 알아챘는지 마이키가 속삭였고 멜라도 눈짓을 보냈다.

“큼, 그럼… 저, 제가.”

그가 검지로 턱을 쓸며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는 제 코끝을 스치는 향내에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이들은 그런 그의 행동이 당황스럽다는 듯 그를 넘어 벽을 쳐다보았다. “로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로건은 무시할 수 없는 어떤 냄새, 곧 무엇이든 모두 태울 바로 그 냄새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곧바로 일어서 버튼을 찾았다.

“로건,” 마이키가 말했고 “로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멜라가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그는 가장 안쪽 벽의 구석으로 성큼 다가갔다. “젠장.” 손가락으로 누르려니 노후된 시설 때문이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로건은 주먹을 쥐곤 곧 튀어나온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벽을 쑤셨다. 그와 동시에 우렁차게 울리기 시작한 경보음은 모두를 놀라게 했고 로건은 소리쳤다. “빨리 나가요!” 그는 그렇게 외친 뒤 밖을 나섰다. 복도는 보기엔 잠잠했으나 냄새가 다가오고 있었다.

“불났어요?”

“지금 불이 난 거예요?”

그를 따라 밖으로 나온 이들이 물었다. 로건은 코를 킁킁거리며 짙은 냄새의 뿌리를 찾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복도의 가운데였고 연기는 그들의 왼편, 그리고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건물은 3층이었고 불이 제일 위층에서 시작되었다면 그들은 빨리 탈출해야 했다. 불은 순식간에 몸집을 키운다. “멜라니!” 모든 경험과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빨간 조명이 발작적으로 복도를 물들였고 로건은 멜라를 필두로 사람들을 모아 오른편으로 보냈다.

“로건,” 멜라니가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까딱였다. “우선 지금 빨리 나가요. 이제 번지기 시작한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은 내게 맡겨두고.”

그녀는 다급하게 발을 놀리며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 행렬의 끝을 책임진 마이키가 마지막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꼭 돌아와야 해요, 로건.” 그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오른편 계단 끝으로 모두가 사라지자 로건은 발을 옮겼다. 마이키는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는데, 왜인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 그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건 그가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안쓰러워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얼굴을 하던 놈이 하나 더 있었지.

로건은 언젠가의 웨이드가 제 손가락 사이를 찢고 나오는 것들을 두고 “자기의 그 아다만티움 손톱(발톱은 별로 귀엽지 않으니까)은 미치도록 섹시하지만, 난 내 울비가 그걸 자주 쓰는 일이 없기를 바라.”라고 말했다. 그가 ‘왜’냐고 퉁명스레 묻자 웨이드는 말했다. “그게 튀어나올 때마다 여기가 아플 테니까.” 그때의 그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웨이드의 손가락이 제 손등을 스친 뒤 그의 왼 가슴을 가리켰다는 것을 기억했다. “다치는 건 언제나 아프잖아, 피넛.”

바보 같은 생각.

그는 불길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3층의 곳곳을 확인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피부가 따끔거리고 눈이 매워 생리적으로 눈물이 맺혔다. 쓰러진 인영들을 찾아내 어깨에 짊어지며 그는 과거의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모두가 죽기 전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재빨리 알아챘다면, 그랬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했다. 그랬다면 달라졌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가 앞으로 걸을 때마다 유리창이 터졌다. 살갗이 베이고 타들어갔으며 로건은 여전히 죽지 않았지만 고통은 감내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여태껏 아무렇지 않았다. 그건 마치 평생에 걸쳐 제가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쩌면 지금은. 로건은 마음속으로 결심을 더 굳게 다졌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로건은 전부 일곱을 이끌어냈고 마지막은 미처 입구까지 걷지 못해 창밖으로 던질 수밖에 없었다. 부분부분 휘어지고 녹아내리고 부스러지며 타들어간 건물은 마침내 그 쓰임새를 다했다는 듯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무너진 더미에 갇히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멀쩡히 남아 있던 유리창 하나가 순식간에 (와장창!) 깨어지며 빨간 쫄쫄이가 튀어나왔다.

“울비 남편 등장!”

로건은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제게 달려드는 웨이드를 보며 눈을 감았고 그대로 함께 무너져내렸다.





 
14


눈을 뜨자 보인 건, “자기야! 정신이 들어?”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린 웨이드. 로건은 찌뿌둥한 몸을 바로 세우며 주변을 살폈다. 구급차가 도착한 것을 보니 나름대로 상황 정리가 끝난 듯싶었다. 잠시 동안 머리를 털며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아까의 불속에서 타들어갔던 피부와 긁힌 상처들이 모두 회복된 것을 확인하곤 웨이드를 향해 돌아섰다.

“내가 말이야, 응? 스토커 기질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게 아니었으면! 자기가 이런 사고를 당한 채 저 시꺼먼 숯 더미들 사이에 깔려 있을…”

이미 장황하게 제 심정을 토로하기 시작한 웨이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로건은 반쯤 드러난 웨이드의 얼굴을 훑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동작으로 다가간 그의 검지는 콕, 하고 웨이드의 뺨을 찔렀다. “울비?” 로건은 침을 삼켰다. “웨이드.” 거친 피부가 손바닥에 닿았다. 문득 로건은 그와 같은 시간을 웨이드 또한 견디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모든 게 귀찮게 느껴졌다. 갈팡질팡하기엔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 자기가 왜 이러지?”

웨이드는 갑자기 제 목을 쥐는 강한 손에 흠칫 얼굴을 뒤로 물렸다. 그는 항상 중요한 때에 겁에 질리는 버릇이 있었고 로건은 그가 산 세월만큼 웨이드가 훤히 내다보였다. “로건?” 웨이드가 물었고 “입 닥쳐.” 로건은 그대로 입술을 부딪혔다.

잿더미 향이 코끝을 찔렀으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15


로건은 계단을 오른다. 짐가방은 그대로였으나 그 안에 이제는 새로운 ‘친구’가 된 여덟 명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수첩이 들어 있다. 근 일주일간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그는 알코올이 때때로 필요하겠지만 그와 함께일 친구들을 생각하며 조금 줄여보기로 마음먹은 참이다. 마지막 계단을 다 오른 바로 그다음, 그는 문 앞에 멈춰 서고 문틈 사이로 빛과 그림자들이 서로 얽히며 일렁이는 것을 조용히 바라본다.

“내가 먼저,” “아니, 조용히 해요.” “X발, 염병을 해라.” “멍!”

잠시 뒤 문이 열리면, 가로로 맞춰 선 세 사람, 그리고 개 한 마리가 그를 맞이한다.


“집에 돌아온 것을,” 웨이드가 말하고 “환영해요.” 로라가 말하고 “개놈아.” 알시아가 말하고 “멍!” 도그풀이 짖는다.














풀버린 놀즈맨중맨

뭔가 로건 힐링물 되어버림 암튼 덷풀로건 결혼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