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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3:23
ㄴㅈㅈㅇ
ㅋㅂㅈㅇ




 
1


시간의 상대성을 따지고 들자면 아마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론들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로건은 팔짱을 낀 채 잠시 두 눈을 감았다. 마침 세 번째로 입을 연 사람은 마이키였고 그는 그가 적어도 12분, 아니, 17분 정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작은 공간에 갇혀 여덟 명의 ‘인간’들과 빙 둘러앉아 있는 것은 너무나도 바보 같았지만 그는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다 그 빌어먹을 ‘약속’ 때문이었다.

“로건?”

그룹의 리더인 멜라가 그를 쳐다보았다. “주무시는 건 아니죠?”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받은 경험이 있던 그는 잘게 고개를 끄덕이곤 마이키를 바라보았다. “듣고 있어, 마이키. 계속해.” 자세를 고쳐 앉으려니 안 그래도 맞지 않는 의자가 삐걱거렸다. 젠장맞을 의자 같으니라고. 로건은 신경질적으로 눈을 굴리다 다시 조잘거리는 마이키의 목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야기들은 뻔했다.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에 걸맞게 그들은 자신들이 왜 술에 의지하게 되었는지, 왜 술이 아니면 안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로건은 알 수 있었다. 벌써 삼일 째에 접어든 이 웃기지도 않는 캠프에서 진실을, 자신의 속내를 모두 내뱉은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시간의 상대성. 그딴 것은 이미 제가 산 세월 앞에서는 썩어빠진 이론이나 다름없었다.





 
2


담뱃불. 혹은 불씨. 그 작은 불이 화근이었다. 여느 날처럼 술집을 찾아 들어간 로건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제게 더이상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척하며 자리를 잡았다. 바에 앉아도, 테이블을 잡고 앉아도 그 누구도 그를 향해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거나 요즘의 웨이드 혹은 로라의 안부를 묻기까지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꽤나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왜인지 계속해서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이렇게 쉬워질 수 있는 거였나?

그날도 그런 식의 하루였다. 웨이드는 늘어난 식구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다면서도 자주 집을 비우며 가장 노릇을 했고 로라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로라의 입학식 선물을 두고 나름대로 고뇌하던 그는 그때까지도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술 생각이 절실했다. 불씨. 불씨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열 잔의 위스키와 더불어 차곡차곡 쌓인 알코올의 문제였을까. 깔끔하게 떨어지는 술맛에 은근하게 취하고 있을 무렵, 술집 구석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벽에 기대선 채 담배에 불을 붙였고 빨갛게 타오르는 점을 보아하니 한 번의 손짓으로 모든 행위를 끝낸 것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옆을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과 킬킬거리며 계속해서 라이터의 뚜껑을—바로 그게 문제라면 문제일지도—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그건 꽤나 위험해 보였다. 로건은 흐리멍덩해지기 시작하는 시야 속에서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모든 시작은 어쩌면 미세하리만치 작은 것에서부터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불행의 씨앗도 그러할 것이다.

“거기.” 로건이 검지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그만하지.”

그의 눈동자가 로건을 향했다. 남자는 그들의 일행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잡고는 후, 연기를 내뱉었다. 로건은 고개를 저었다. 친절히 말하면 듣는 법이 없군. 그는 속으로 코웃음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다시 말했다. “그만둬.” 그러자 웃긴 것을 보았다는 듯 남자, 또는 아이—그에게는 누구나 아이일 것이다—는 환히 웃으며 보란 듯이 좀 전의 행위를 반복했다. 열릴 때 불씨가 돋아났고 닫히면 갇혔다. 갇힌 공간에서의 불씨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만해.” 로건이 말했고 (딸칵)  불씨가 돋아났다 어둠에 잠겼다. 이어진 (딸칵) 두 번의 (딸칵) 장난. 로건은 불씨와 함께라면 당연하게 떠오르는 어떤 것들에 혼란스러웠다. 주변의 시선이 그들을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다시 말했다. “내가 말했지, 그거,” 

(딸칵)

이토록 쉽게 잊을 수 있는 건가? 


(딸칵)

이토록 쉽게 잊어도 되는 건가?

“그만두라고!” 

로건이 손을 뻗었다. 라이터를 빼앗을 생각이었지만 술에 취한 탓인지 엄한 것이 나갔다. 남자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 바람에 라이터가 바닥을 굴렀다. 열린 뚜껑에 잠시 불꽃이 튀어 올랐으나 그것은 금방 파삭, 하는 소리와 사라졌다. “꺄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을 신호탄으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끔찍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건은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는 두 눈을 감고 가까워지는 어둠에 몸을 맡겼다. 끔찍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니. 내면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네가 그러면 안 되지.

그가 생각했다. 이토록, 쉽게, 잊어도 되는 건가. 질문은 두고두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3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센터 안이었다. 그는 어느새 제 짐이—짐이랄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센터의 복도 끝방 안에 자리한 것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일어난 침대는 제가 매번 술에 취해 스러져 잠들었던 소파가 아니었고 두 눈이 먼 룸메이트도, 귀찮은 얼간이도, 로라도 없었다. 아무것도 방해될 게 없었다. 그렇다면 좋아야 하는데. 어쩐지 조금 가라앉는 기분에 그는 제 자신을 알 수 없었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에 그는 문을 향했고 곧 그 ‘쪽지’를 발견했다. 스카치테이프로 문짝에 붙어있던 종이를 떼어내며 로건이 문을 열었다. 종이 쪼가리에 무어라 적힌 글에 눈을 두기도 전에, “로건?” 문 앞에 선 여자가 말했다. “센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멜라니 매카시예요. 멜라라고 불러요.” 싱긋 미소 짓는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강단 있어 보였다. 로건은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가 복도를 훑었다.

“내가 어디 있는 거요?”

“어머, 이미 동의하신 줄 아는데요.” 멜라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직접 사인까지 하셨는걸요! 어쨌든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센터 내 프로그램을 희망하시다니, 의지가 굉장히 강하시네요. 아, 그리고 내일부터 있을 프로그램에 앞서 간단한 서류 작성을 해주셔야 해서요. 그걸 안내해 드리려 왔습니다만…” 그녀는 다시 한번 미소 지으며 그의 앞으로 서류철을 내밀었다.

“편하신 대로 작성해서 오늘 퇴근 시간 전까지 전달해 주세요.”

로건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는 문을 열어둔 채 성큼 안으로 들어가 짐가방을 들었다. 이미 알코올의 효과는 진작에 사라졌겠지만 이상하게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게 무슨 장난 놀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지.”

“오.” 그녀는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웃었으나 두 발을 단단히 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로라와의 약속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멜라니는 방 안을 흘끗 훑어보더니 이제 ‘적응할 시간’을 드릴 테니 ‘준비’가 되면 찾아오라 말했고 “서류 작성도 마찬가지로요.” 그의 가슴팍으로 서류철을 팍, 소리 나게 밀었다. 얼결에 그가 받아들자 그녀는 제 일은 거기서 끝이라는 듯 빠르게 사라졌다. 

“……”

방 안은 고요했다. 그는 이런 고요함을 원했을 텐데, 어쩐 일인지 조금도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가운데에 놓인 침대를 중심으로 문과 마주 보는 곳에 큰 창이 있었고 그 반대의 벽으로 어린애에게나 맞을 법한 작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로건은 들고 있던 짐을 침대 맡에 던져두고는 가슴팍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어젯밤 그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불. 그래, 거기 불씨가 있었다. 금세 떠오르는 불과 그 속에서 타고 있을 인영들에 그는 다시금 머리가 아팠다. 술. 술이 필요한데. 그렇지만…

로건은 서류철 밑으로 구겨진 아까의 종이 쪼가리를 꺼내들었다. 스카치테이프가 그대로 붙은 그 종이 위에 귀엽게 쓰인 알파벳들이 보였다. 그건 어느새 제 삶에 끼어든 소녀의 것이었고 그것은 곧 그가 이곳에 꼼짝없이 처박혀야 한다는 뜻이었다.
 
입학식 선물로 받을게요. 치료 잘 받고 돌아오세요. -로라





 
4


사람은 익숙해지지 않으면서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지, 그가 생각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그 속에서 숨어가며 살아가는 건 이제 조금 귀찮은 일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아무리 길어졌다고 한들 그들 또한 결국 사라질 터였다. 그에게 있어 남은 인생은 하늘이 내린 벌과 같았고 그렇기에 지켜봐야만 하는지도 몰랐다. 마치 그동안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난 대가를 치루 듯, 그는 홀로 모두의 마지막을 지켜보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야기하세요.”

언젠가 로라가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웨이드의 추근거림은 멈추지 않았고 간간이 그의 집을 찾아드는 사람들 덕에 맞지 않게 시끄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로라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로건을 때때로 가만히 지켜보았으나 그날은 조금 달랐다. 술에 취해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있으니 피터의 생일파티로 떠들썩한 자리를 비집고 로라가 다가왔다. 그의 양 발끝으로 로라의 등이 닿았다. “얘기해요, 로건.”

로건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뭘 말이냐.”

“저에게 했던 말 말이에요.”

그 말에 그는 한쪽 눈을 슬쩍 떴다 다시 감았다. 마주친 두 눈동자는 아이의 것인 만큼 반짝 빛나고 있었고 올곧게 그를 향해 있었다. 그는 작은 숨을 내쉬다가 곧 그때를 떠올렸다. 장작불 앞에서 저도 모르게 털어놓았던 속내를. 외로움을. “내가 왜.” 그는 결코 누군가에게 제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만 했고 본래 그렇게 살아왔다. 아마 술에 취했기 때문에, 나약해진 무언가가 건드려졌으리라.

로라가 말했다. “언젠간 이야기해야 해요.”

변하고 싶다면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그는 코웃음쳤다. “내가?” 그는 잠결에 웅얼대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모로 누웠다. 더이상 대화하기 싫으니 나를 가만 내버려두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따갑게 닿아왔지만 그는 모른 척했다. 그건 제가 제일 잘 하는 일이었다. 모르는 척, 알지 못하는 척, 싫어하는 척, 함께하기 싫은 척…… 소파가 가벼워졌다. 그녀가 자리를 뜬 것을 느끼자 그는 조용히 감은 눈을 뜨고 몇 번 깜박였다. 벌써 술이 깨는 느낌이었다. 아직 잠이 오려면 멀었는데.

‘변하고 싶다면 말이에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으나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마치 두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5


“자기야, 요즘 너무 마신다는 생각 안 들어?”

웨이드가 소파 맡에 다가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로건은 파리를 쫓아내듯 손을 팔랑거리며 반대로 돌아누웠다. “꺼져라.” 하지만 귀찮은 얼간이는 지지 않고 종알대기 시작했다. 허니 뱃져, 나 정말 너무 외로워! 얼마 전까지 우리 좋았잖아? 대디가 이렇게 오랜만에 와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 정말 섭섭하다구! 그는 그에게 책임감을 요구한 적이 없었지만 웨이드는 ‘내 울비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며 생각보다 바쁘게 싸돌아다녔다. “우리 자기는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지? 빨래도 못해, 밥도 못해, 청소도 못해. 응? 술만 그렇게 마시면서 내내 뻗어버리고 말이야.”

로건은 귀찮다는 듯 소파에 뺨을 비비며 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뒀어야지.” 그냥 가게 뒀어야지. 로건은 제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더운 숨을 느끼면서도 모른 척하며 고개를 더욱 깊숙이 묻었다. 말이 없는 웨이드에 조금 긴장했으나 그는 또 모른 척했다. 웨이드가 물었다.

“키스해도 돼?”

“지랄하지 마.”

“흥, 언제쯤 허락해 줄까나.”

“꿈 깨라.”

그때 소파 팔걸이가 살짝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로건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시야는 온통 소파였으나 그는 제 머리칼에 닿았다 떨어지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달링, 보고 싶어도 참아. 이번엔 조금 오래 걸릴 거야.”

“그러던지.”

“너무해! 정말 얼굴 안 보여줄 거야?”

“……”

“물론 우리 고양이는 어느 쪽이든 다 잘 생기고 귀엽지만… 뭐라고? 이미 알고 있다고? 잠깐! 그래도 말이야, 나 앞으로 2주 동안 집에 못 올지도 모른다구! 이래도 안 봐줘?”

“……”

“뭐? 보고 싶을 거라고? 오, 그것참 감동적인 말이다! 혹시 내가 우리 자기 마음을 너무 잘 읽는 건가? 아니라면 고개를 흔들어!”

“……”

“꺄! 정답이군! 나도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울비.”

손이 다시 머리칼을 헤집었다. 로건은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살랑이는 손길을 받아내면서도 이런 것이 싫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슴께에 구름이 가득 찬 것처럼 숨이 막히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이 삭삭거리며 그의 머리칼을 빗어넘겼고, 로건은 그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  

“흐음, 길고양이를 거두는 게 참 쉽지 않네.” 응? 로건.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웨이드의 음성은 평소보다 낮아졌다. 로건은 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잠자코 기다렸고 이 또한 잊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말이야,” 웨이드가 말했다. “나는 기다릴 수 있어, 자기.”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그렇지?

다음 순간 정수리에 가볍게 맞닿은 살갗에 로건은 흠칫 몸을 떨었다. “망할,” 그러나 웨이드는 이미 떠난 후였다. 결국 로건은 한 박자 느리게 중얼거렸다. “망할…” 그러니까, 망할. 한 박자 느리게. 그는 또다시 절벽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망할 웨이드 같으니라고…”

점점 익숙해질수록, 그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6


센터에서의 시간은 무척이나 느리게 흘러갔다. 그에게 있어 시간이란 무한한 것이었지만 술도 없이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의 목표는 단연코 금주였으나 그룹의 리더인 멜라가 만든 이 일주일 치 프로그램의 목표는 다른 것에 초점을 두는 것 같았다. 그는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로라가 왜 이곳을 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해주세요, 로건.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런 간단한 술수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근 이백 년간 닫힌 입을 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 문장 그대로 그는 마치 이곳에 온 목적이 그의 의지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는 듯 반대로 행동했다. 변하는 건 없었다. 그는 무언갈 반복하기에 너무나 피로했고, 너무나 지쳐 있었다. 로건은 그를 뺀 여덟 명이 입을 열기 시작할 때 입을 닫았으며 술 대신 다른 무엇에 몰두할 수 있는—꼼수라면 꼼수였겠지만—활동들이 이어졌을 땐 가만히 앉아 그들을 지켜보았다.

열심히인 사람도 있었고 즐거워하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닷새째가 되는 날, 우습기 짝이 없는 종이접기 시간에 마이키가 그에게 다가와 곁에 앉았다. 그건 평소와 다른 일이었다.

“정말 힘든 일이죠, 안 그래요?”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빨간색 색종이로 접힌 금붕어가 끼어 있었다. “이런 걸로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로건?” 

로건은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듯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저쪽에서 마틴과 재스민이 열심히 용을 접고 있었다. 용의 몸통과 꼬리를 접었으니 머리를 접을 차례였다.

“사실, 저는 정말 제가 술을 끊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마이키는 그가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지 무척이나 오래되어서… 예전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렸거든요. 술이 친구랑 다름없었으니까요.”

로건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하, 웃기게 들리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모여 있는 건 응급실 이후로는 처음이에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친구가 없는 편이거든요. 당신도 알다시피 제가 좀, 유별난 구석이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인지… 다들 결국 그렇게 떠나나 봐요. 나 참, 별 얘기를 다 하게 되네. 술이 없으니 말을 멈추기가 힘들어서 그래요. 이해 좀 해줘요, 로건.” 

둘은 잠시 동안 마틴과 재스민을 바라보았다. 마틴과 재스민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관문을 만난 것처럼 고심하는 표정으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접는 건가?” “아니, 내 생각엔 이렇게 벌렸다 접는 거 같아.”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공간이 바깥세상과는 다른 어떤 곳처럼 느껴졌다. 시끄럽고 더럽고 의문스럽고 괴로운 세상과 대비되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용의 머리를 접을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만 남은, 그런 곳.

“음, 가족이 있나요, 로건?” 마이키가 금붕어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딱히.”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으면서도 그는 로라와 웨이드와 알을 떠올렸다. 가족이라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그것도 좀. 그는 여전히 제가 앞서가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어 새로이 맴도는 질문 하나.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그들에게 중요한 존재일까?

마이키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가족이 없는 사람은 많겠죠.” 그는 왼 손바닥에 금붕어를 올려놓은 채 빤히 내려다보았다.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 어떻게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항상 이런 꼴이네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처음엔 사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모두들 입버릇처럼 말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한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내가 문제이지 않을까? 정말, 아무것도 문제가 없다면 그건 ‘나’이지 않을까? 오, 이런, 맙소사. 내가 살아있는 게 가장 문제일지도 몰라!”

로건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장 최악의 바닥으로 내려앉곤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바닥을 찍을 때면, 뭐랄까. 인생은 항상 새로이 뭔갈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그런 희망 같은 걸 가지게 만들어요. 로건, 당신도 그런 적 있지 않아요? 마치 다시 시작하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고 이번은, 이번에는 정말로 무언갈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확신이 드는 거요!”

로건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걸까요? 아, 잠깐, 제가 조금 흥분했네요. 목소리가 조금 컸다면 사과할게요. 그러니까 제 말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하는 거예요. 남들은 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왜 나만 어렵게 느낄까, 남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을 왜 나는 그토록 몰두하며 생각하는 걸까. 혹은, 혹은 남들은 다 가진 친구와 가족들을 왜… 나는 가질 수 없는 걸까.”

로건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세상에 맞지 않는 걸까요?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아요. 네, 맞아요. 난 빌어먹을 겁쟁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에 온 모두가 그럴 거예요.”

로건은 고개를 숙였다. 그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 없는 사람은 많겠지.” 마이키는 흠칫 놀라며 어느새 촉촉해진 두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로건이 말했다. “그렇지만 집이라고 느낄 만한 곳이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마이키. 돌아갈 곳이 있다면 말이야.”

“…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네요.”

“물론이지.” 넌 가장 말이 많으니까.

마이키가 젖은 눈을 집게손가락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들어줘서 고마워요, 로건. 당신은 굿 리스너예요.” 모두들 날 견디기 힘들어하거든요. 로건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얼굴로 픽 웃었지만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순간 그는 왜인지 이상하리만치 감상적이 되어선, 오랜만에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다시금 솟아오른 질문에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한 답이 떠올랐다.

‘집이라고 느낄 만한 곳이 있다면.’ 

그런 곳이라면 지금의 그 또한 가지고 있었다.








풀버린 덷풀로건(수정) 놀즈맨중맨

알코올 중독 치료 받으러간 로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