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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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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은 노크소리에 겨우 잠이 깼다. 문을 열자 허니가 어우 세상에, 옷 좀 입고 나와요. 라며 눈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혼자 사는 집이다 보니 무의식중에 상의를 안 입고 있던 탓이었다.


스완이 티셔츠에 겨우겨우 팔을 꿰어넣는 동안 허니는 품에 안겨있는 알리제에게 아빠가 노출이 심하다 그치. 조신치 못하게. 하며 둘만의 세상에 또 빠져있었다. 어느새 알리제는 허니에게 졸라 밥도 먹었는지 배가 통통했다.



"세에상에, 애가 배가 고파서 우는데 아빠는 잠만 자고."



먀. 하면서 거들듯이 대꾸하는 알리제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둘이 이제 만난지 24시간도 안됐는데, 저보다 더 친해보였다. 심지어 허니는 대충 걸쳐져있던 제 티셔츠로 갈아입은 듯 했다. ... 씻기도 했네?



"... 뭐요. 집주인이 집도 안 보내주고 갈아입을 옷도 안 주니까 대충 걸려있는 거 입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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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요... 아침도 만들었어요?"



"어제 저녁 만들어준다고 했더니 스완이 만들었잖아요. 맘대로 소파까지 빌려썼으니까 이정도는 내가 해야죠."



... 아침 잘 안 먹는데. 뿌듯한 얼굴에 재를 뿌릴 순 없으니 스완은 고맙다 말하고 식탁에 앉았다. 알리제는 허니 품에서 내려오더니 그제야 제 것인 스툴에 앉았다. 먉. 하며 허니가 콧잔등을 쓸어주는 걸 느끼더니 둘이 똑같은 표정으로 스완이 첫 입을 먹는 걸 지켜봤다.



"허니는 먹었어요?"



"넵. 계란후라이하고 커피 내려 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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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잘했네요... 둘이 엄청 친해진 거 같네요. 나 이 집에 놀러온 거 같은데."



"알리제, 이상한 아저씨가 자꾸 집주인인 척한다. 그치? 이모랑 너랑 둘이 사는 집인데."



제 고양이 딸은 아무래도 아빠보다는 엄마가 필요했나보다. 대뜸 만지려고 들지도 않고, 크게 움직임이 없는 허니가 더 맘에 드나 보다. 게다가 집에 와서는 제 시야에 있기만 하니 얼마나 고양이 맞춤형 인간인가. 심지어 스완이 깜빡하고 어젯밤에 채우지 않은 자동급식기도 채워놨다.



"오늘은 뭐할 거예요?"



"글쎄요. 계획표대로 하려면 오늘 아침 일곱시에는 일어났어야 하는데... 지금 아홉시니까.. 스완은 오늘 뭐해요?"



"허니가 같이 놀자고 하면 나갈 거고, 아니면 뭐 아빠보다는 언니 좋아하는 알리제랑 둘이 있어야죠."



"흠, 그럼 알리제는 내가 어제 실컷 놀아줬으니까 나랑 놀아요. 그치만 사람 많은 관광지는 좀 지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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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차여행 좋아하면, 스트라스부르 갔다가- 거기 구경 간단하게 하고. 콜마르 갔다가 밤 열차 타고 와도 되구요. 열시 열차 지금 가면 탈 수 있을 거 같은데. ... 춥긴 할 텐데, 대충 내 옷 껴입고 갔다와요."



허니는 얼떨결에 스완이 건네주는 옷들을 걸쳤다. 이러면 다시 와야되는데. 스완의 집이 제 숙소에서 멀지 않으니까, 알리제 자동급식기도 채워놨고, 오늘 저녁은 제 숙소에서 먹여 보내면 되겠거니 하며 스완을 따라나섰다. 낯선 곳에서 허니가 헤맬까봐 스완은 제 팔을 잡으라며 내밀었고, 얼떨결에 허니는 팔짱을 낀 채 있었다. 스완의 옷들은 품은 대충 맞아도 다 길이가 조금씩 길어서 소매를 한번씩 접어야했다.



"와이프 예뻐죽네, 남편이."



팔짱은 끼고 있지만 어딘가 느껴지는 둘 사이의 어느정도 거리감이 오히려 부부같아 보이게 했는지, 옆에 있던 독일억양이 센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허니는 프랑스어를 못 알아들어 무슨 뜻이냐는 듯 스완을 쳐다봤고, 스완은 그 말이 쑥스러워서 우리 잘 어울린대요. 하고 말았다. 허니는 인종차별 발언인데 대충 순화시킨 거 아닌가 의심하다가, 어딘가 흐뭇해보이는 할머니와 귀가 불타고 있는 스완을 보고서야 그 말을 믿었다.



"감사합니다."



뭐, 만나는 사이까지는 아니어도 어른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주시면 대충 그러려니 해야지. 하며 허니는 안일하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 옆에 있던 손자가 스포츠 기자인 건 당연히 몰랐지. 본인 나라 스포츠 기자도 잘 모르는데, 남의 나라 스포츠 기자를 알 리가 있나. 스완만 계속 쳐다보는 시선에 뒤늦게 허니를 감췄지만, 이미 몇 장 찍힌 뒤였다.


스완이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동안 허니가 해맑게 웃으며 할머니께 다가가 기차에서 산 간식을 드리더니, 기자에게 사진을 지워달라고 했다. 친구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고, 외국인인 저가 길을 잃을까봐 잠깐 팔짱을 꼈으니 지워달라고. 한참 고민하다가, 대신 둘이 무슨 사이가 되면 저를 통해 제일 먼저 알려달라는 젊은 기자의 말에 허니가 스완을 힐끗 보더니 끄덕거렸다. 허니는 제 개인 메일 주소를 주었고, 젊은 기자는 그것에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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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래요? 문제 있으면 내가,"



"내가 잘 해결했어요. 사진도 남긴 거 없이 지웠고."



웃는 허니의 표정에 스완은 안도했다. 가장 다행인 것은 허니가 스트라스부르의 풍경을 꽤나 좋아했다. 스완과 지낸지 벌써 삼일째라고 제법 편해진 표정에, 스완의 옷을 걸치고 해맑게 웃는 얼굴이 제법 좋아보여서 스완은 종종 사진을 찍어줬다.



허니에게는 말을 할 때 상대의 팔을 잡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제만 해도 허니가 갑자기 팔을 잡아대서 심장도 같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오늘은 제법 어제보다는 덜 놀라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 



"어제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얼굴을 톡톡 쳐서 일어나보니까 알리제가 있는 거예요. 누우라고 팔 툭툭 치니까 글쎄 팔에 눕는 거 있죠."



"... 나한테도 안 그러는데."



"우린 어제 대화도 했는데. 내가 더 좋은가보네요. 어쩔 수 없지- 내가 엄마 해야겠다. 양육비는 따박따박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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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는 안되겠는데. 애는 가끔 보게 해줘요."



이혼한 부부마냥 상황극을 해도 받아쳐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막상 허니는 아까 스완이 제게 팔짱을 끼게 한 이후부터, 묘하게 터치가 늘어서 당황하고 있는 참이었다. 어디로 성큼성큼 가버리려는 허니 소매를 잡다가, 새끼손가락을 잡다가, 이제는 손을 잡기까지 해서 이걸 유러피안의 아무렇지 않은 터치로 생각해야 할지, 제게 호감이 있는 티를 낸 스완의 흑심으로 생각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며 손을 굳이 놓지는 않았다. 머쓱해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스완은 사실 허니가 아무 생각없이 기념품 가게에서 마그넷을 보다가 손깍지로 바꿀 때라던지, 무심결에 엄지로 제 손등을 쓸어내릴 때, 계산을 하면서도 제 손을 놓지 않을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있었다. 인생 최대 용기라 해도 무방할만큼의 한걸음을 내딛으면, 허니는 잠깐 의아하게 내려다보다가도 더 대담한 행동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 함께 땅거미가 질 무렵 콜마르의 야경을 구경하고 오더니, 역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내내 별말 없다가 숙소 앞에서 제 손을 잡아 끌고는 거절할 수 없는 초대를 한다던가. 



"우리집에서 저녁 먹고 가요. 알리제 급식기도 채워놓고 왔잖아요. 내가 입고 온 스완 옷도 돌려줘야 하고."



"... 허니 옷 우리집에 있는 거는요?"



"음... 그건 내일 가져다줘요."



"우리 내일도 만나요?"



"어... 혼자 있고 싶어요? 아니면 내일 바빠요? 미안해요, 내가 너무 끌고 다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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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요."





아무래도 이 여행 내내 저와 있고 싶어졌나 보다, 스완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알리제만이 스완이 켜놓은 조명을 한참 보다가, 아빠가 오늘 이모랑 있으려나보다, 하고 혼자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아빠는 종종 요란을 떨고 제가 뭘 할 때마다 감격스러워하는 게 부산스러워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 같이 살 인간은 어제 그 이모 정도가 딱 좋은데. 그렇다고 아빠가 싫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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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만 있으면 혼자 있는 거 너무 좋아하는 독립적인 고양이 알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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