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980034
view 2864
2024.08.01 15:44
https://hygall.com/598976882
하얀 담비. 허니가 스완을 보고 내린 첫 감상평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루이와 저를 한참 지켜보던, 희여멀건 남자는 한참 후에야 다가왔다. 그리고선 품에 꼭 안겨서 떨어지지 않는 루이와 허니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고, 아이 부모가 와줄 때까지 기다려주면서 꽤 긴장한 허니에게 말을 간간이 시켜주었다. 생긴 건 담비같은데, 이름은 백조라니까 또 백조같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사근사근,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부모를 찾아가고, 짐을 정리할 때쯤 그 하얀 담비같은 남자가 어디로 가냐고 물어왔다. 처음에는 여행가에게 베푸는 유러피안의 호의 같은 건 줄로만 알았다가, 식사를 대뜸 계산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허니는 이게 순수한 의도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심지어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데려가서 아이스크림도 쥐어줬다. 뭐야, 납치인가? 안심하도록 배부르게 먹여놓고 납치하는 건가?
"운동선수라고요? 진짜?"
스완은 좀처럼 믿어주질 않았다. 물론 다른 운동선수들처럼 피지컬이 엄청 티나거나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열심히 운동해서 티가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믿어주지 않을 것까지 있나. 허니는 양궁 선수로 살아온 지난 15년이 조금 서러우려고 했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나. 스완은 허니가 지난 올림픽 때 딴 메달과 기사를 보여주고 나서야 믿어줬다. 손에 박힌 굳은 살도 만져보고.
"왜 그렇게 안 믿어줘요. 너무해요."
"안 믿은 게 아니라, 몰랐던 게 아쉬워서 그렇죠. 금메달리스트를 보고도 내내 못 알아보다니."
"됐어요, 이미 좀 삐졌거든요. 그러는 스완은 뭐하는데요?"
"젊었을 때는 발레리노였고, 지금은 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 하고 있어요. 공연 끝난지 얼마 안돼서 한가하고요."
"... 한가하냐고는 안 물어봤는데요."
"들켰네. 한가하니까 내일 오르세 같이 가줄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예술인이 설명해주는 오르세 좋잖아요. 나랑 같이 다니면 더 편하고 좋을텐데."
허니는 그 살살 치는 눈웃음에 올림픽 때도 일정 이상 올라가본 적 없는 심박수가 마구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하면서 마신 와인 때문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했다. 타지에서 언어가 통하고, 저를 도와주고, 지금은 맛있는 식당까지 데려온 이 남자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계획해놓은 혼자만의 여행이 어그러지고 있는데, 망설여지면서도 이 남자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진짜 본인도 말도 안되는 거 아는데, 이 남자는 뭔가 특별한 예감이 들어서. 허니는 우물쭈물하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여행을 간다는 말에 선배들이 그렇게나 조심하라던 외국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조심할 생각이 안 들었다. 선배 그런데 잘생긴 남자면 뭐라고 하는지는 들어보랬잖아. 마음 속으로 핑계를 대며 허니는 끄덕거렸다.
"내일 그럼, 한... 열시 반에 역에서 만날까요?"
"내가 숙소 앞으로 데리러 올게요. 맛있는 크로와상이랑 커피 한잔이라도 먹고 가는 건 어때요? 미술관 들어가면 다음 식사까지 한참 걸릴 거 같은데."
"... 나랑 내일 하루종일 있게요?"
"걱정 마요. 밤엔 들여보내줄게요."
"나 그런 생각 안했는데요!?"
"뭐, 그럼 내가 했나 보죠."
담비가 아니라 여우였나. 찡끗거리는 콧잔등에 허, 하고 웃음이 터졌다.
스완아를로너붕붕
스완너붕붕
[Code: 1e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