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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6:56
*약빻?(친족간불륜?)
**알오세계관(다소 자의적 설정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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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행을 택하게 된 거예요?"


결국 닉과 함께 외출하게 된 매버릭은 다소 면접관 같은 닉의 질문에 자신도 면접자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건...아버지 때문에..."

"...에이."



닉은 코웃음을 쳤다.


"세 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정말로?"


매버릭은 움찔했다. 닉은 일견 실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날카로웠다. 사실 그 답변은 다소 성의 없는 보급형 답변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윤색된 답변. 누구나 대수롭지 않게 듣고 흘려버릴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추억이 어쩌고 사랑이 어쩌고 애국심이 어쩌고 하는 맞춤형 이야기 중 하나.

매버릭에게는 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개념이었다. 가끔 바이퍼 교관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면, 매버릭은 오히려 어색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보며 매버릭을 애틋해했지만, 매버릭은 듀크 미첼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매버릭이 인식하는 자기 자신은 이 세상 누구와도 접점이 없는 외계인에 가까웠다.

닉이 다시 물었다.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가 뭐예요?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서포트해줄 사람도 없었을텐데. 게다가 듣기로는 그쪽 성향은 군대랑 잘 맞지는 않는 것 같던데. 세상 제일 답답한 조직이 군대 아닌가? 그걸 감수할 정도로 비행이 좋았던 이유가 뭐예요?"  

"...벗어나고 싶어서."

"...어디에서?"

"............땅에서..........그리고 중력에서."



그랬다. 매버릭에게 땅은 괴로움의 장소일 뿐이었으니까. 땅에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중력을 거스르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열망. 그게 매버릭이 비행을 택한 이유였다.

닉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매버릭을 바라보았다.


"우와......"

"......"

"...너무 시적인데. 내 다음 신곡 가사로 너무 탐나는 거 알아요?" 



매버릭은 피식 웃었다. 


"그쪽은 왜 음악을 택한 건데요?"

"...나도 벗어나려고요."

"어디에서요?"

"......카잔스키 가문에서."



매버릭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카잔스키 가문에서 벗어난다라. 그건 어찌 보면 매버릭이 아이스와 헤어진 이유이기도 했다. 매버릭은 아이스맨이라는 동료 파일럿을 사랑했지만 '명문가 카잔스키 가문의 훌륭한 계승자'인 톰 카잔스키의 인생에서는 본인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세계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면 균열을 내야만 했다. 그러면 그 세계 또한 매버릭의 세계에 어느 정도 균열을 내려 할 것이었다.

그건 마치, 비행을 사랑하는 천부적 파일럿임에도 조직 내 상관들과는 도통 잘 지낼 수가 없어 해군에서 양면적 존재가 되고 마는 자신의 정체성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기도 했다. 조직 내에서 상관들에게 미움을 받거나 승진을 못하는 것은 그래도 단순한 문제였다. 어차피 매버릭은 조직 내 출세 따위는 원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이스와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거리를 두고 보았을 때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매버릭의 기이한 비행 스타일, 입지전적인 인생 경로, 실력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언더독으로서의 정체성. 그러나 그 모든 게 다른 옵션의 기회비용을 희생한 아이스의 책임 대상이 되면 무거운 부채덩어리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그 상황에서도 매버릭은 원하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 예명인 닉 리버스는 그냥 뜻 없이 지은 게 아니거든요. 공개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카잔스키라는 성을 그냥 강물에 떠내려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지은 거예요."

"......"

"오해하지 말아요. 가족들이 싫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아버지나 형한테 특별히 유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기싸움, 권력 싸움에 복잡한 정치 놀음이 오가는 군대 얘기가 너무 싫었거든요. 형은 거기에서 탑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이 있었지만 나는 다른 세계로 가고 싶었어. 쌍둥이라서 정말 웬만한 건 다 똑같았는데 진로는 그렇게 달라졌어요. 난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

"...형이 탑건에 있던 시절에 하던 맵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버릭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형은 당신한테 질 수 없다고 길길이 날뛰는 게 보였는데 맵은 이기는 것보다는 자기 방식을 개척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서."

"..................왜 가사 잘 쓴다고 소문난지 알겠네요."



처음엔 그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별 생각 없이 닉을 따라나선 것이었는데, 매버릭은 자신이 생각보다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5개월만에 처음으로, 과열된 머리에 바람을 쏘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버릭은 모처럼 저녁 요리를 말끔하게 먹어치웠고 디저트를 먹을 때 즈음에는 닉과의 대화에서 박수를 치며 웃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내 비행이 감에 의존한 거라고 하지만 그건 너무 부정확한 설명이예요."

"임프로비제이션 같은 거랄까? 정해진 규범은 없지만 논리와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닌 거죠. 그걸 새롭게 재해석하는 거지."

"아 정말 그래요. 난 음악은 잘 모르지만 한창 즉흥 연주에 빠져 있는 재즈 밴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어요. 내가 비행할 때의 기분과 저 사람들의 기분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맞을 거예요. 때로는 규칙을 어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더 중요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인 거고."

"......물론 상관들은 그런 말 싫어하겠지만."

"......우리 아버지같은 사람?"



둘은 유쾌하게 웃었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었고 닉은 매버릭을 관사까지 데려다주었지만 그의 걸음 속도는 그의 긴 다리와 어울리지 않게 점점 느려지기만 했다. 매버릭은 이를 뻔히 알면서도 웬지 싫지 않았다. 그들이 매버릭의 관사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둘의 분위기는 전형적인 첫 데이트의 마무리 장면이 되어 있었다. 아쉬움과 조심스러움과 수줍음과 어색함이 뒤섞인 채 적당한 인삿말을 찾던 중 닉은 매버릭에게 장난스러운 요구를 해왔다.


"우리...말 놓을까요?"

"그래, 그러지 뭐."

"근데...내가 형보다 고작 몇 분 늦게 태어난 건 알지? 그건 내가 사실 매버릭보다 세 살 위라는 뜻인데."

"....그래서?"

"흠, 형이라고 불러주면 안 돼?"



매버릭은 도발적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 아이스한테도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른 적 없는데."

"글쎄, 그건 그거고...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그렇게 불러주면 안 되나?"

"싫은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매버릭을 보고 닉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내 스타일이라니까......"


매버릭이 닉의 미소가 동료들 앞에서 윙맨 고백을 하던 날의 아이스와 너무도 똑같아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 닉의 입술이 매버릭의 입술을 덮쳤다. 그리고 매버릭은 그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형은 널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달콤한 첫 키스가 엘리트 파일럿의 폐활량으로도 감당하기 벅찰 만큼 이어진 후에야 비로소 끝났을 때, 닉이 지금까지의 유머러스한 태도와는 달리 다소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말 하면 내가 자책골을 넣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형은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을 거고 어떻게든 널 지켜내려고 했을 거야. 물론 형한테나 너한테나 쉬운 길은 아니었겠지."

"......"

"너는 형을 포기해도 형은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영원히. 난 알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우린 같은 유전자를 가졌으니까."

"......"

"......지금의 내 마음이...바로 형의 마음일 테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더없이 눈부시고 아름다운 날씨였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커플이 펑-하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순간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톰 카잔스키 시니어는 근래 들어 가장 활기 넘치는 카잔스키 저택을 둘어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비록 장남보다 앞선 결혼이긴 했지만 연예계로 진출해 난봉꾼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둘째 아들의 결혼 결정은 그에게 더없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주니어와 겨룰 정도로 뛰어난 해군 파일럿이라니, 군대는 죽기보다 싫다며 도망다니던 녀석이 배우자라도 가풍에 따라 선택했다는 것은 그에게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경은 사실 오늘의 주인공인 둘째 아들보다 첫째 아들에게 더 쏠려 있었다. 


"...와, 웃지도 않는 거 봐. 너무 무서운데. 근데 그래서 더 멋있다."
"되게 냉정하대. 눈 진짜 높을 것 같다."



남성체 여성체 할 것 없이 젊은 싱글 오메가라면 모두가 톰 카잔스키 주니어를 주목하고 있었다. 카잔스키 저택에 초대받은 그들은 하나같이 내로라 하는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그러나 아이스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 점이 오히려 더 그의 주가를 높이고 사람들을 안달나게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시니어는 아들이 아무에게나 쉽게 반하는 금사빠이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어딘가 완전히 막혀 버린 듯한 주니어의 표정은 시니어에게 설명할 수 없는 거슬림을 선사했다. 아이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무서워하며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는 알렉스 밴더비크의 창백한 표정을 보자 시니어의 거슬림은 한층 더 배가되었다.


"주니어. 가서 인사 정도는 먼저 해야 하는 게 예의 아니겠냐? 너도 엄연히 오늘 집안 행사의 호스트인 걸 잊지 말아라."


아버지의 말에 아이스는 영혼 없이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향해 쭈뼛거리며 미소를 보이는 알렉스 밴더비크의 딱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언제 왔더라.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저 딱한 오메가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스는 짜증이 났다. 이 모든 상황이 초현실인 것만 같았다. 1년 전만 해도 다른 이에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결혼을 약속하는 매버릭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아이스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동생의 자리에 자신을 이입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주니어. 가서 인사라도 좀 하라니까."


아버지의 두 번째 재촉에 아이스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알렉스 쪽으로 향했다.


"오랜만이네요. 와줘서 고마워요. 공부는 무사히 마치고 온 건가요?"


아이스의 딱딱하고 형식적인 인사에도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하며 환한 미소를 보이는 알렉스를 보며 아이스는 웬지 모를 절망을 느꼈다. 가능성 없는 희망, 그게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인데, 왜 수많은 인간이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까.


"네. 당연히 와야죠. 동생분 약혼 축하드려요. 벌써 최연소 소령 진급 대상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엄청나시네요...톰은...교제하는 분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걱정이죠. 동생한테 벌써 뒤쳐지기 시작이라."



어느새 아이스의 곁에 와 있던 시니어가 대화를 나꿔챘다. 아이스는 심하게 불쾌해졌다. 아버지의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느껴졌다. 이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시니어는 한 술 더 떠 알렉스에게 아이스의 옆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곧 아이스가 영국으로 단기 파병을 갈지도 몰라서요. 안 그래도 영국 유학을 했으니 알렉스가 영국에 대한 이야기도 좀 많이 해주면 좋을 것 같네요."

"아, 그럴까요?"



알렉스 밴더비크는 시니어의 안내에 못이기는 척 아이스의 자리 쪽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스는 속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아버지에게 뭐라도 한마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아버지......"


그러나 시니어는 이미 고개를 돌리고 집사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느라 바빠진 상태라 아이스의 말을 듣지 못했다. 아이스는 이를 꽉 깨물었다.

시니어의 이런저런 지시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집사는 이내 와인 셀러에서 빈티지 와인을 한 병 가져왔다. 와인 애호가로 소문난 자신의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카잔스키 가문 와인 셀러에서 가장 가치있는 와인. 집사가 코르크를 따자 시니어는 와인을 넘겨받았다. 


"여러분, 이 와인이 제가 제일 아끼는 거라는 거 많이들 아실 겁니다. 대체 어느 특별한 날 이 와인을 따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저는 그만큼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이 첫번째 잔을 제 둘째를 구원해준 특별한 사람, 피트 미첼에게 주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시니어는 매버릭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매버릭은 다소 당황한 듯 어설프게 와인잔을 쥐고 와인을 받았다.


"어떤 맛일지 나도 궁금하구나, 맛보고 먼저 얘기해주겠니?"


시니어가 인자한 표정을 띠며 매버릭에게 시음을 권했다. 그러나 매버릭은 주춤거렸다. 


"아...저기...그게..."

"왜? 와인을 안 좋아하니?"

"그게 아니라..."

"아버지, 피트 지금 술 못 마셔요. 임신 3개월차거든요. 미리 말씀 못드려서 죄송해요."



닉이 끼어들어 대신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스는 심장이 납덩어리가 되어 떨어지는 듯했다. 벌써...임신을 했다고? 바보같다 생각하면서도 아이스는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였다. 매버릭이 아이스와 사귀던 시절에는 둘 다 피임에 철저히 신경을 쓰곤 했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약속과도 같았다. 언젠가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행에 미쳐있는 20대 파일럿에게 이른 출산 계획이 달가울리 없을테니 그게 매버릭에 대한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아이스는 자신의 과거가 미련스럽게 느껴져 증오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닉, 이 자식이. 내가 그렇게 신사적으로 살라고 교육을 시켰건만......"



타박을 하면서도 첫 손주를 본다는 생각 때문인지 눈에 띄게 들뜬 시니어의 입이 귀 밑까지 찢어졌다. 


"그것도 그렇고 피트, 너는 아이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손주를 안겨준다니 정말 장하고 고맙다."


자신만 제외하고 모두가 행복한 듯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아이스는 끝도 없는 소외감을 느꼈다.

내가 매버릭과 결혼한다 했어도 아버지는 저렇게 반가워했을까. 매버릭을 저렇게 예뻐하셨을까. 아마도 아니었겠지. 왜? 같은 자식인데 나와 닉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치는 왜 이렇게 달라야 할까? 


"와, 정말 축하드려요. 아기 태어나면 정말 예쁘겠어요."


알렉스 밴더비크가 아이스의 옆에서 매버릭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다음 순간 매버릭이 알렉스에게 보인 반응은 아이스를 분노의 극한으로 몰고 갔다.


"감사합니다. 형님 커플도 정말 잘 어울려요."

"아, 하하...저희는 사실...아직 커플은...아닌데..."



아니라고 빼면서도 그 말이 싫지 않은지 알렉스는 뒷말을 뭉갰다. 아이스는 눈에 핏발이 서는 것만 같았다. 매버릭, 너, 대체 왜, 왜 이래.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스는 이제 매버릭이 이가 갈릴 정도로 미웠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매버릭이 닉에게 소근거리며 자리를 뜨자 아이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아이스는 저택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가려는 매버릭을 연회장과 저택 사이 길목의 온실 앞에서 붙잡았다. 매버릭은 설마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온실로 몰아넣는 아이스에게 크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왜 하필 닉이야?"

"......"

"왜 닉이냐고?"



매버릭은 조금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천한 제가 감히 동생분을 차지해서 죄송하네요, 톰 카잔스키 도련님."


매버릭이 이죽거리자 아이스는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매버릭!"

"......"

"너 정말 왜 이래? 네가 사랑하는 게 정말 닉이야?"

"......"

"솔직하게 말해! 네가 사랑하는 게 닉이 맞냐고!"

"네, 맞는데요, 형님, 저는 닉을...흐읍..."



아이스는 계속해서 빈정대는 매버릭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틀어막았다. 동생의 임신한 배우자를 건드리는 파렴치한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매버릭은 만만찮게 저항했다. 하지만 아이스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이스의 강압적인 키스는 두 사람이 헐떡일 때까지 계속됐다. 
아이스가 놓아주고 난 뒤에야 숨을 겨우 진정시킨 매버릭은 한층 진지해진 목소리로 아이스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아이스, 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닉을 사랑해. 정말로."


아이스는 매버릭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눈물이 살짝 고인 녹색 눈동자에는 거짓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아니, 매버릭."



이번에는 아이스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배어나왔다. 매버릭의 눈 속에 기만은 없었다. 대신 아이스는 그 속에서 분명한 혼란을 보았다.


"네가 사랑하는 건 나야. 하지만 넌 겁쟁이라 나를 가질 용기가 없었지."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스의 눈 앞이 번쩍했다. 분노에 찬 매버릭이 아이스의 뺨을 있는 힘껏 내리친 것이었다. 매버릭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온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스는 자신의 뺨을 쓸어보았다. 얼얼한 통증에서 느껴지는 것은 어이없게도 쾌감이었다. 매버릭의 손길이 자신에게 닿은 것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매버릭이 나가고 난 다음에도 아이스는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뺨의 얼얼한 감각을 느끼며 온실을 나가지 못했다. 

'넌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가질 용기가 없었지.'

그러나 매버릭의 매운 손맛보다도 아이스에게 한층 더 강렬한 짜릿함을 선사한 것은, 아이스의 마지막 말에 크게 흔들렸던 매버릭의 눈동자였다.


#아이스매브
#닉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