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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2 11:20
*약빻?
**알오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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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천재 화가나 그래픽 전문가들이 달려들어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마이애미의 노을진 해변. 다양한 푸른색과 붉은색 색조가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그라데이션으로 펼쳐지는 타이밍. 아이스와 매버릭 두 사람 모두가 사랑해마지 않는 하늘이 숨막히는 마법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 해변과 하늘을 배경으로 한층 더 빛나는 매버릭의 눈동자.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신비롭고도 영롱한 아름다움. 그 속에서 보이는 자신을 향한 애정.


"...사랑해, 맵."


너무 빠른가 싶어 꾹 눌러놓았던 그 말을, 아이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터뜨려버렸다. 이윽고 아이스의 입술이 매버릭에게 닿았고 매버릭은 망설임 없이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매버릭의 체취, 귀여우면서도 동시에 몹시 자극적인 숨소리, 입술과 혀의 매끄러우면서도 탱글한 감촉, 자신을 끝도 없는 블랙홀로 빨아들이는 것 같은 도발적인 혀놀림. 아이스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주변 공기의 분자 하나까지도.

그때 아이스는 다짐했다. 평생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하고 네 꿈을 지켜줄 거라고. 그 어떤 일도 힘들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도착했습니다."


정신 없이 회상의 늪에 빠져들고 있던 아이스는 택시 기사의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마치 가상현실에 빠져들었다가 나온 것 같은 위화감. 아이스는 한낮에도 속절없이 꿈을 꾸는 자신의 대책 없음에 기가 찼다. 매버릭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믿었던 시절의 모든 기억은 아이스의 단골 소환 대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스가 가장 자주 더듬는 기억은 두 사람이 탑건의 여정을 보낸 미라마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키스를 했고 동료에서 연인이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 녹화된 그날의 장면은 그가 우울해질수록 더 자주 재생되었지만, 재생이 끝난 후 아이스의 기분은 더욱 우울해지기 일쑤였다.

커다란 숨을 내쉬며 택시에서 내린 아이스는 카잔스키 저택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이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펼쳐질 풍경은 웬만한 사람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완벽한 그림일 것이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행복하고 미래가 창창한 커플이 부유한 가문의 축복까지 듬뿍 받으며 미래를 약속하는 장면. 아름다운 만큼 아이스에게는 지옥이겠지만.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스는 한숨을 쉬며 무거운 걸음으로 저택 부지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숲이라 할만큼 넓은 프론트 정원 때문에 장신의 군인인 그의 걸음으로도 약 30초를 걸은 후에야 비로소 약혼식 준비로 바쁜 담당 일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음도 들리기 시작했다. 겉으로 늘 완벽해보이는 훈련받은 매너와 별개로 실제로는 상당히 내향적인 아이스는 늘 집안 행사가 성대하게 펼쳐지곤 하는 자신의 집안 분위기가 늘 괴로웠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쪽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시끄럽지 않다면, 왁자지껄하지 않다면, 자신의 음울함이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아이스는 완벽하게 표정 관리를 할 자신이 없었다. 


"왔구나. 오는 길에 별 일은 없었고?"

"네, 아버지."

"그래, 내일 해군 뿐 아니라 해병, 육군, 공군 장성급 손님들도 많이 오시는 거 알고 있지? 너야 늘 완벽하지만 그쪽은 해군 문화랑 또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해군 파일럿으로서의 의견보다는 좀 더 넓은 맥락에서 국가 보안을 보고 있다는 시선을 어필하는 게 중요할 거다. 얼마 전에 남미 쪽에서 있었던 해병대 작전에 대해 잘 알고 있지? 그 작전에 대해서..."



6개월만에 만난 아버지와의 대화는 아이스가 예상한 바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다소 입에 발린 칭찬에 섞인 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으며 아이스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닉에 대한 질투심이 본격적으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닉은 아마도 이런 잔소리를 듣지 않으리라. 아버지는 닉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으니까.

아이스와 닉은 일란성 쌍둥이였고 외모와 유전자를 포함해 당연하게도 많은 것이 동일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두 사람은 진로 선택에 대해서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갔다.

둘은 모두 다섯 살 무렵부터 일류 선생님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상류층 교양 교육의 일환일 뿐이었지만 닉은 음악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아이스 역시 음악을 좋아했고 영특했던 만큼 또래보다 빠른 진도를 보였지만 닉은 음악에 대해 한층 더 진지했다. 결국 사춘기에 접어든 닉은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가 화를 내고 반대할 것을 알면서도.

아이스는 언제나 아버지의 기대를 빠르게 알아채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아이였지만 닉은 그렇지 않았다. 닉은 언제나 아버지의 기대를 배반했고 어릴 때는 그에 대한 무시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닉은 집에서 쫓겨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미운 털이 박히는 바람에 그의 신탁 상속 수입은 아이스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만한 보상도 있었다.
닉은 언제나 활화산 같은 에너지와 열정으로 가득했다. 적어도 아이스가 보기에 닉은 자신보다 훨씬 자유롭고 매력적인 영혼이었다. 닉이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는 엄청났지만 닉은 결국 자신의 고집을 관철했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현재 결과는 현실적으로도 꽤 괜찮았다. 아직 슈퍼스타라 할 수는 없어도 가장 주목받는 라이징 스타 중 하나임이 분명한 닉은 엘리트 군인 집안인 카잔스키 가문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캐릭터였다.

그리고 마치 돌아온 탕아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듯, 아버지도 이제는 닉의 용기와 재능을 인정하고 있었다.

물론 아버지의 관용과 여유는 어디까지나 장남인 아이스가 이미 집안의 전통을 훌륭하게 이어나갈 것이라는 확신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아이스는 자신이 언제나 아버지의 최애 아들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카잔스키 가문의 유산을 이어나갈 장본인은 누가 봐도 아이스였다. 아이스 본인도 이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스가 닉의 자유를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일 것이다. 해군 파일럿으로서 자신의 진로나 직업에 딱히 후회를 한 적은 없었다. 아이스는 파일럿으로서의 일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닉이 가진 치열함과는 달랐다. 게다가 파일럿으로서의 찰떡같은 적성이 아버지를 기쁘게 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따라온 높은 기대는 그다지 달갑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그로 인해 영원할 줄 알았던 매버릭과의 사이가 예상치 못하게 틀어지게 된 이후로는.

어쩌면, 아이스는 매버릭의 변칙적이고 신출귀몰한 비행을 처음 접했을 때 자신의 직업에서는 불가능할 줄 알았던, 동생이 가진 것과 유사한 에너지와 자유로움을 느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매버릭과 닉은 서로의 그런 유사한 에너지에 끌렸을지도 모른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이스는 미칠 것 같은 질투와 소외감에 사로잡혔다.


"...참, 그리고 이번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알렉스가 귀국해서 참석한다는 거다."

"...예?"

"이런, 주니어.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그래도 두어 번 만났잖니. 물론 알렉스 출국 일정이 바빠서 연애라고까지 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 영구 귀국했으니 잘 해보려무나. 그 집안은 물론이거니와 알렉스도 너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다더라. 네가 그때 그만 만나자고 해서 망설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지금 따로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 그러니까 데이트 신청해서 좀 더 만나 봐."



알렉스 밴더비크. 2명의 상원의원, 1명의 주지사, 1명의 공군 장성을 배출한 명문가의 오메가 자제. 준수한 외모에 훌륭한 교육을 받은 그는 밴더비크 가문과 혼맥을 맺고 싶어하는 많은 집안에서 탐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이스에게 그 이름은 악몽과도 같았다. 아이스는 정확히 2년 전에 아버지의 강력한 권고로 알렉스와 두 번 정도 형식적인 만남을 가졌다. 아이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평생동안 잊지 못할 회한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때 그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우린 여기까지야."


아이스가 집안 소개로 다른 오메가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매버릭은 아이스를 용서하지 않았다. 아이스는 그저 아버지에게 최소한의 노력의 증거를 보여주려고 형식적으로 만난 것 뿐이라고 설명했고, 곧 매버릭을 집안에 소개하고 싶다고도 했다. 다만 아버지의 너무 당연한 기대를 진정시키고 설득시킬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 뿐이라고. 그 모든 설명은 1%의 과장도 없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매버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매버릭, 제발...날 못 믿는 거야? 난 너 아니면 안 돼. 너랑 결혼 못 하면 차라리 안 하고 말 거야. 내가 거짓말하는 거 같아?"

"......"

"내가 확인시켜 줄 수도 있어. 난 분명히 더 못 만난다고 말했어. 그냥 집안끼리 예의 차려야 하니까 만난 거라고. 알렉스한테 전화해서 직접 들을래? 날 못 믿겠으면?"

"...못 믿는 거 아냐."

"...응?"

"못 믿어서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럼 뭐가 문젠데? 왜 자꾸 헤어지자는 거야?"

"난 그런 가시밭길 가기 싫어.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관대하게 이해해주고 참아줘야 되는 그런 대상이 되기 싫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나랑 사귀는 걸 허락받는다고 해도 너희 아버지는 그걸 반가워하시진 않겠지. 기회비용이 너무 크잖아? 너는 언제나 집안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자식이었고 앞으로의 잠재력도 엄청나지. 그 집안하고 결혼한다면 더더욱."

"네가 없으면 나한테 그런 건 아무 의미도..."

"네가 어떻게 느끼든 말이지,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싫다고. 갚을 수도 없는 빚을 잔뜩 지고 시작해야 되는 것 같은 그런 관계가 싫어."

"매버릭, 그게 무슨 말이야? 절대 그렇지 않아. 내가 약속할게. 너 절대로 눈치 볼 일 없..."

"이해를 못하네. 네가 그렇게 더 노력할수록 나는 점점 더 빚쟁이가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몰라?"

"......"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든 내가 그런 위치에 가기 싫다고. 미안해. 난 여기까지야." 



너무나 단호하고도 매몰찬 매버릭의 말에 눈앞이 새카매지던 순간의 기억이 아이스의 의식을 치고 올라와 점령했다. 이미 지난일임에도 아이스는 또다시 정신이 혼미해져 눈을 잠시 질끈 감았다. 숨이 가빠졌다.


"...주니어,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갑자기 안색이 안 좋은데 오면서 멀미라도 한 거냐?"


아버지의 말에 아이스는 겨우 의식을 현재로 돌려놓았다. 


"아, 아니요. 그냥 좀 목이 말라서. 일단 짐 좀 풀고 쉬겠습니다."

"...그래, 그러려무나."



아이스는 겨우 아버지 앞에서 물러나 캐리어를 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스는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쳐박은 후 곧바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온몸이 노곤해져 얼마 되지 않는 짐을 푸는 것조차도 버겁게 느껴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한 번 재생되기 시작한 회상 테이프는 아이스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이왕이면 행복한 기억이면 좋으련만, 알렉스 밴더비크의 이름이 촉발시킨 끔찍한 이별 회상은 아이스의 마음을 계속해서 후벼팠다. 


"야, 아이스 축하한다 짜식. 그렇게 매버릭 되찾으려고 노력하더니 드디어 성공했구나."

"...무슨 말이야?"

"너 매버릭 다시 만난다며?"

"누가 그래?"

"어? 아니야? 방금 전에 치퍼랑 통화했는데 걔가 지난주에 매버릭 부대 근처에서 매버릭이랑 네가 만나는 거 봤다던데..."



매버릭에게 단호한 이별 통보를 받고도 포기하지 못한 아이스가 계속해서 매버릭과의 재결합을 시도한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아이스는 슬라이더로부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 아니었어?"


순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분노가 아이스의 단전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올랐다. 아이스는 슬라이더에게 대답할 새도 없이 관사를 박차고 나가 바로 닉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이 새끼 지금 뭐하는 거야?"
.
.
.

아이스매브
닉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