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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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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극장에 출근하는 순간부터 허니 표정이 좋질 않았다. 평소 건강식을 한다면서 토끼마냥 당근이나 오이, 방울토마토를 넣어다니던 지퍼백은 온데간데 없고, 잘 먹지도 않던 초콜릿을 세 개나 들고 있었다. 어제는 밥을 평소보다 많이 먹지도 않았으면서 체해서는 소화제를 먹고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더니 한구석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질 않나. 다들 속으로 아, 그 시즌이 왔구나 할 뿐이었다.



"허니, 추워?"



허니가 끄덕거리더니 하나도 안 괜찮은 표정으로 괜찮다고 했다. 그걸 힐끗 보던 마이크가 날씨도 후덥지근한데 왜 들고 왔나 싶었던 제 셔츠를 건넸다. 허니가 힐끔 그 셔츠를 내려다보더니 고맙다며 그 자리에서 셔츠를 걸쳤다. 하루종일 마이크의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는 허니를 보고 단원들은 긴가민가했겠지. 둘이 무슨 사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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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중에 미안하지만... 허니가 아직 밥을 안 먹은 거 같아서, 나도 아까 대본 보다 보니까 걸러가지고.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 오래는 안 걸릴 거야. 혼자 먹기 싫어서 그래, 진짜 미안."



잔뜩 곤두섰는지 좋게좋게 말하는 타입의 허니가 제법 날선 말을 총연출 앞에서 뱉고 있었다. 좀 있으면 의견 교환이 아니라 싸우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이크는 총연출과 허니 사이에 서서 총연출에게 부탁했다.


마이크가 어떤 의도로 막아선 건지 대충 짐작한 총연출은 고개를 끄덕였고, 마이크는 허니의 팔목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허니가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치즈버거 노래를 부른다던 이야기를 들은 터라 한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치즈버거? 더블로 할 거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끄덕거리는 허니를 보고, 마이크는 자연스레 주문했다. 자리에 앉혀놓고,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 허니 앞에 마주앉아 더블치즈버거를 입에 물었다. 허니가 힐끔힐끔 제 눈치를 보기에 어깨를 으쓱하곤 말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허니가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아보여 마이크는 제 앞에 있는 허니의 발을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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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




"... 아니거든요. 누굴 진짜 돼지로 아나."



"너 그렇게 도시락가방끈 짧은 거 티나면 안돼. 밥먹었으면 당연히 디저트 먹어야될 거 아냐."



"오늘 초콜릿도 엄청 먹었는데."



"뭐 어때. 어차피 집에서 걸어왔고, 집 또 걸어갈 거잖아.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는다고 건강 하루 아침에 나빠지지 않아. 살도 안 찌고."



"오늘 되게 꼬시네..."



문장을 마치면서 빵빵해진 두 볼이 귀여워서 무의식 중에 쿡 찔렀다가 들려온 대답이 되게 꼬신단 말이어서 마이크는 순간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티났나? 막상 허니 본인은 자꾸 먹으라고 꼬신다는 뜻이었어서 아무 변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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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같이 아이스크림 먹어주던가."



단둘이 밥먹는 건 또 처음이라 둘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마이크는 허니가 곤두서있어서 밥이라도 먹이려던 마음이 앞서서 데리고 나온 거였지만 나중에야 단둘이라는 걸 깨닫게 됐고, 허니는 마이크한테 이끌려나오는 순간부터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입가에 안묻히고 먹으려고 꽤나 애를 썼다.



"공연 끝나면 뭐할 거야?"



"새 극본 구상할 거 같은데... 모르겠어요. 어디 여행은 가고 싶은데, 어딜 가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 따뜻한 나라라도 다녀올까 싶긴 해요."



"집은 안 다녀오고?"



"... 가봤자 남자친구 없냐고나 물어볼 거니까- 옆집 딸이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요. 잊혀질 때쯤 가야 해요."



마이크는 아이스크림을 한입 와앙, 하고 먹는 허니를 흐뭇하게 내려다봤다. 옆집 딸 결혼 이야기를 주구장창 하는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그 종알거림이 듣기 좋아 허니가 이야기에 열중한 사이 몰래 살짝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극장에 가까워지자 둘다 상대방이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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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같이 놀러갈래? 교외 쪽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는데, 네가 좋아할 거 같아서."



마이크보다야 분명 외향적이었지만, 시끄러운 건 싫어하는 허니가 뉴욕에 살면서 항상 부르짖는 것은 '조용한 곳'이어서 마이크는 넌지시 물었다. 안된다고 하면 뭐 어쩔 수야 없지만. 버스를 타고 교외까지 나갔다오려면 꼬박 하루를 내어야 하고, 하루종일 일 외에 같이 있을 기회를 꼭 만들고 싶어서 물었다. 네살짜리도 제 맘을 표현하는데, 네이선 같은 남자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으니까.



"오, 둘이서요?"



"... 응. 둘이. 좀 그래?"



"아뇨! 둘이, 둘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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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좋아. 이제 들어가자."



아까보다는 표정이 밝아졌지만 양뺨도 모자라서 목까지 붉어진 허니와, 어딘가 뿌듯하고 행복해보이는 마이크가 들어오는 걸 보고 총연출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돌아서자 단장이 묘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눈짓과 고갯짓으로 쟤네 둘 뭐 있냐고 물어오는 총연출에게 단장은 어깨를 으쓱거리기만 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의외지만 꽤나 잘 어울렸다. 내향적이지만 쌔씨하고 재능있는 배우와, 외향적이고 다정한 작가는 괜찮은 조합이니까. 무엇보다 마이크는 학부시절부터 똥차 콜렉터로 유명했는데, 허니는 좋은 사람인 게 너무 분명해서. 총연출은 코를 슥 훔치면서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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