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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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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는 허니를 의식하게 된 순간부터, 허니를 눈으로 좇는 제 자신을 발견했다. 오늘은 청남방에 청바지까지 입고 와서 그저 초여름 그 자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말갛고 부드러워보여서 괜스레 볼이라도 한번 콕 찔러보고 싶게 했다. 



"션샌니, 우리랑 같이 노라여!"



유치원생들 상대로 봉사활동을 왔는데, 아이들 눈에는 저희와 나이차가 제일 적게 나보이는 허니가 저번부터 맘에 든 모양이었다. 허니는 그런 아이들을 잘도 다뤘다. 여자애들은 허니 팔을 잡고 놔주질 않았고, 남자애들은 수줍어서 가끔 바짓자락이나 잡다가 마이크 뒤에 숨곤 했다.



"어어, 차례대로 앉아있으면 머리 땋아줄게. 기다리세요."



아빠다리를 한 허니의 무릎에 앉아 머리를 땋아주길 기다리는 여자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다. 극단을 하면서 헤어도 자체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허니는 연출 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잘 만지는 편이었다. 막상 본인 머리는 집게 하나로 버티고 있으면서. 캐치볼을 하면서도 허니를 힐끔거리는 마이크를 한 아이가 포착하고는 크게도 물어봤다.



"션샌니, 머리 무꼬시퍼여? 왜 허니션새니 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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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어? 선생님도 머리 묶고싶은데, 머리가 짧아서- 부러워서 쳐다봤어."



"션샌니, 머리 이만큼, 할 수 이떠."



선생님도 머리를 이만큼 기르면 할 수 있단 말이 귀여워서 마이크는 아이를 끌어안았지만, 허니는 아이 머리를 땋아주면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를 왜 쳐다봐? 말도 안되게 신경이 쓰이는데, 또 왜 쳐다봤냐고는 물어볼 수 없어서 허니는 아이들의 머리에만 집중했다. 아이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도 마이크를 힐끔힐끔 보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서 시무룩해질 뿐이었다.



"션샌니, 나중에 션샌니랑 겨론할래여..."



"나랑? 이거 반지야, 네이선?"



수줍어서 마이크 뒤에 숨던 아이 하나가 집에 갈 때가 되니 용기를 내서 허니에게 다가와 자기가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반지를 끼워줬다. 큐빅이 달린 반지는 제법 예뻤고, 무엇보다 사이즈 조절이 되어서 허니의 약지에도 맞았다. 



"... 션샌니, 저랑 겨론해주세여."



"어어, 고마워... 우리 안을까?"



허니에게 용기내서 청혼한 아이는 네이선이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칼에, 반짝거리는 파란 눈을 가지고 가지고 있어 단원들이 모두 마이크의 아들이 아니냐고 하던. 허니에게 폭 안겨서 있다가 허니의 볼에 쪽하고 입을 맞추더니, 작은 두 손으로 허니의 양뺨을 잡고는 입술에도 뽀뽀를 해서 모두의 눈만 동그래질 뿐이었다.



"너어, 션샌니한테 물어보지도 않구...!"



"마쟈, 션샌니한테 뽀뽀해두 되냐구 물어바야지!"



"어어, 괜찮아. 뽀뽀해도 돼. 울지 마. 선생님 반지도 꼈잖아."



아이들이 물어보지도 않고 뽀뽀했다고 뭐라 하자 울먹거리는 네이선을 꼭 안아주며 달래는 허니의 품에 안겨서 네이선은 좀처럼 내려오질 않았다. 허니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걸 겨우 달래 집에 보내고, 극단 단원들은 다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허니의 오른손 약지에는 늘 끼고 다니는 실버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고, 왼손 약지에는 네이선이 끼워준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오늘 그럼 회의 정리는 약혼까지 한 허니가 하자. 반지 한번 자랑해줄래?"



"여러분, 보세요. 22살 연하 꼬마신랑이 끼워준 약혼반집니다~"



"이와중에 알도 크네. 부럽다, 허니. 네이선어머님 말씀으로는 반지 사놓은지 꽤 됐다며. 집 가서 하루종일 허니 이야기밖에 안하더니 반지 사러 가자고 했대."



"찐사다. 허니, 네이선 클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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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회의 내용 정리도 듣고 싶은데. 난 오늘 청혼도 못받아서 절대 질투나서 그런 거 아니고. 하루종일 캐치볼하느라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어서."



마이크가 너스레를 떨자 다들 한바탕 웃어제꼈다. 다만 마이크를 대학시절부터 본 극단의 단장만이 마이크가 조금 이상하다는 사실을 캐치했다. 마이크가 저렇게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애가 아닌데. 브리핑을 마치고 집에 갈 때가 되자 허니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더니 뭐라고 말하는 마이크를 보고 단장은 확신했다. 아, 마이크 이 자식 되게 투명하네. 저 정도로 속을 내비치는 애가 아닌데.



"반지 아직도 끼고 있어?"



"아, 집가서 씻을 때 빼려구요. 귀엽지 않아요? 지난번에 왔을 때 선생님은 무슨 색깔 좋아하냐 해서 파란색이라 했더니 파란색 큐빅이에요. 진짜 귀여워."



"되게 계획적이네. 내 뒤에 숨어있던 건 다 추진력을 얻으려고 그랬나봐."



"뭐야, 질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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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조금?"



하루종일 데리고 있다가 뺏겨서 질투하냐고 덧붙이려던 허니는 마이크의 대답에 굳었다. 네이선을 뺏겨서 질투하는 거겠지. 겨우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허니는 웃었다. 다행스럽게도 집에 거의 다 와서 뱉은 말이라 잠시 흐르던 정적도 끝이 났다.



"새신부는 들어갈게요. 내일 봐요, 선배."



"그래, 잘 쉬고. 오늘 애들 머리 다 땋아주느라 고생했어."



"선배도 오늘 고생 많았어요. 가서 얼른 씻고 자요."



손을 휘휘 흔들더니 제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허니에게 괜히 한번 뒤를 돌아 한번 더 손을 흔들었다. 유치하게 질투난다고 해버렸다. 허니야 네이선을 뺏겨서 질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저가 질투한 게 네살짜리 꼬맹이라는 걸 모르겠지. 저가 극단 내에서 연애하는 게, 혹은 이별하는 게, 무엇보다 허니의 마음이 저와 같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데이트 신청을 한번 못한 동안 그 꼬맹이는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허니에게 청혼도 하고 뽀뽀도 한 게 좀 부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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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 거라곤 허니의 집 앞에 매일 데려다주는 것뿐이라니. 마이크는 가는 길 내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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