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77823503
view 1459
2023.12.24 19:25
1: https://hygall.com/576661908
2: https://hygall.com/576662488
3: https://hygall.com/577050453
4. https://hygall.com/577564842

캐붕, 날조, 노잼ㅈㅇ 문제시 칼삭


 

말을 달리던 연화는 문득 누군가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산짐승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검을 고쳐 잡으며 걸음을 늦추었다. 무공이 얼추 돌아왔으니 습격이 두렵진 않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랑야각까지 따라오도록 둘 수는 없었다. 연화가 말에서 내려 주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자신의 모습을 능숙하게 숨긴 이를 단번에 찾아내지 못할지라도 그의 존재를 의식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랑야산을 내려왔을 때부터 열심히 뒤를 밟았으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건 뭐야? 내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던 건가? 아니면 설마 수줍음을 타는 거야? 우리 사이에? 이제 와서?”

 

상대방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연화가 체념한 표정으로 콧잔등을 만지작거렸다.

 

좋아, 정체를 숨기고 싶다면 네 마음대로 해. 대신 나를 따라오는 건 여기까지만 해줬으면 좋겠네. 내가 지금 홑몸이 아니라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일 수가 없거든.”

그게 무슨 소리지. 그새 살림을 차리기라도 한 건가?”

 

뒤를 돌아보자 얼굴의 반을 가면으로 가린 사내가 서 있었다. 고작 이 한 마디에 나타난다고, 여전히 순진한 면이 있단 말이야,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사내가 이를 악문 채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다른 사람과 연을 맺은 건가? 그게 누구지? 어떤 사람이길래 네가 그렇게 홀랑 마음을 줬단 말이야.”

연이라그래, 그것도 연이라면 연이겠지

 

부자간의 인연도 연이니까, 뒷말을 속으로 삼킨 채 풀어진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이 분한지 사내가 성큼 다가와 낮게 이죽거렸다.

 

아까 네가 배웅한 이는 누구지? 호위가 꽤 많던데 너는 국경을 넘진 못하더군. 설마 이번에도 입 한 번 열어보지 못하고 다른 자에게 정인을 보내는 건가.”

네가 알 거 없어.”

무공은커녕 닭 한 마리도 못 잡게 생겼던데너는커녕 제 몸 하나 지키지도 못할 사내가 뭐가 좋은 거지?”

 

너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련해지는 것 같군,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소했다.

 

이봐 적 맹주, 미련한 것도 나이고 그 미련함 때문에 애달픈 사람도 나일 텐데 어째 자네가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네가 미련하게 구는 바람에 내력을 회복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거참,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 강호에는 나 말고도 고수가 많으니 그중에서 결투 상대를 알아봐도 충분하대도.”

나는 너와 붙고 싶은 거다.”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연화가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해야 이 고집 센 이를 돌려보낼 수 있을까, 웬만한 설득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시원하게 한 판 붙고 나면 여한 없이 떠나려나, 하지만 승부를 보고 나면 저 이를 버티게 했던 큰 이유가 사라져 버리는 거 아닌가, 무엇 하나 쉽게 결정할 수 없어 마음이 복잡했다. 한참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연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적 맹주, 나는 더이상 이상이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지금처럼 한가로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수가 있어? 예전처럼 나를 해독시키겠다며 끌고 가 사방으로 굴리려고?”

네가 내력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거다.”

그래서, 방법은 찾았어?”

수하들을 시켜 알아보고 있다.”

확실하게 알아내면 그때 다시 찾아와.”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다른 손을 휘저어 이만 가달라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상대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직 너의 거취를 확실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네가 도망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장담하지?”

그러면, 내 집까지 따라올 거야? 아까 말했잖아. 혼자 사는 것도 아니라서 낯선 사람을 들일 수 없다고.”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아는데 어째서 내가 낯선 사람이지?”

 

순간 연화는 울고 싶어졌다. 앞뒤가 꽉 막힌 것처럼 굴기는 해도 나름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적비성을 데려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린신은 군말이 많긴 해도 제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적비성은 말보다 손이 앞서긴 하지만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다. 다만,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니 행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든 나랑 같이 가야겠다는 거지?”

그렇다.”

하지만 적 맹주 정도의 실력이면 내가 어디로 도망을 가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 않나?”

너를 이렇게 찾아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할 필요는 없지.”

그러면 하나만 약속해. 누구에게든지 무력을 사용하거나 무례하게 굴지 않겠다고.”

 

그 정도쯤이야, 목적을 달성한 적비성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면 연화는 눈앞이 캄캄했다. 매 의부가 떠나자마자 객식구가 생기다니 린 의부에게는 뭐라고 설명한담.

 

*

린신은 너무나 덤덤한 표정으로 적비성에게 방을 내주었다. 저 자가 누구인지, 자신을 매장소를 배웅하러 갔는데 어째서 손님을 데려온 것인지 묻지 않느냐는 연화의 말에 린신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이상이일 적에도, 이연화로 지내는 동안에도 이름을 날렸지. 그러니 누군가는 너를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내력도 돌아왔으니 네가 충분히 제압할 수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데려왔다는 것은 무공을 하기 곤란한 상황이었거나 굳이 제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겠지. 아니면 혹시 내가 저 자를 처리해주길 바랐던 것이냐?”

아닙니다.”

그래, 아옹다옹 다투긴 해도 너랑 제법 가까운 이가 아니냐. 오만한 표정과 당당한 풍채를 보니 저 자는 금원맹의 맹주 적비성이겠지?”

맞습니다.”

랑야각의 존재를 모르는 눈치니 이쪽 사람은 아니겠지. 그러면 네 주변 인물 중 하나일 텐데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겁도 없이 발을 들일 위인은 금원맹 맹주와 천기산장 소장주 밖에 없지 않느냐. 소장주는 애송이이긴 해도 예의는 갖추었을 테니, 방을 맡겨놓은 양 구는 이는 금원맹주겠지.”

 

나이도 적지 않게 먹은 녀석이 지금 누구한테 잘 보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쯧쯧, 린신이 부채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혀를 찼다.

 

그나저나 연화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벗이 찾아왔으니 이만 떠나고 싶은 게냐? 금릉에 간 사이에 네가 떠난 걸 알면 장소가 적잖이 실망할 텐데

여기에 가족이 있는데 제가 왜 떠납니까? 그리고 저 아직 의부님한테서 의술도 제대로 못 배웠는데요.”

 

나중에라도 의원 노릇하게 될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돌팔이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배워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화의 말에 린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네가 지금 배울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지난번에 보니 음식 솜씨도 영 아니더구나. 장소가 없어 무료하던 차에 잘됐다. 이참에 너한테 의술이랑 요리를 좀 가르쳐야겠다.”

그런데 의부께서는 요리를 할 줄 아십니까? 지금까지 의부가 요리하시는 걸 한 번도 못 봤는데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한 번 하면 잘한다.”

 

아 네 그러시겠죠, 연화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매장소가 없는 동안 랑야각이 더 요란해질 것 같았다.




랑야방 연화루 각주종주 정왕종주 비성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