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태웅명헌 우성명헌 이건 이상했다




 *

 제브라 엔젤 둘. 플래티넘 엔젤 하나. 풀블랙 엔젤 하나. 카디널테트라 무리. 이끼를 열심히 먹고있는 안시 한마리. 아니 두마리.

 

 명헌은 유유히 움직이는 물고기떼를 바라보며 숫가락에 올려둔 칼국수와 수제비를 삼켰다. 맛있어용. 국물도 한 입 떠먹으며 두세번 면을 씹고는 김치만두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그새 새카만 풀블랙 엔젤피쉬가 명헌 쪽으로 다가왔다.

 

 명헌의 단골 칼국수집에는 커다란 열대어 어항이 있었다. 이 동네에 이사온 이래로 명헌은 휴가를 받으면 으레 국수집에 들러 칼제비에 김치만두와 갈비만두 한 판씩을 시키고 물고기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여기 사장님은 엔젤피쉬를 좋아하신다. 형광빛 카디널테트라 군영을 헤치고 엔젤피쉬의 건강한 지느러미가 물살에 나부꼈다.

 

 그간 명헌은 여러 사람들과 이 곳을 방문했다. 플레이오프 나란히 진출 실패해 상심한 현철이라던지. 물생활에 관심있는 코치라던지. 날씨는 덥고 부장은 짜증난다며 반차를 내고 달려온 대학 동기라던지.
 

 그리고 우성과도 함께 왔었다. 꽤 여러 번. 우성은 올때마다 바지락 칼국수를 시켰고 김치보다는 깍두기를 많이 먹었다. 그래서 명헌은 우성과 함께 올때면 처음부터 깍두기를 많이 잘랐고 갈비만두도 한 판 더 시켰다. 우성은 갈비만두도 좋아했다.

 

 그런데 올해는 혼자오게 되었네용. 명헌은 마지막 갈비만두와 깍두기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우성과 다시 올 일이야 없을 거라고 작년 겨울부터 알고 있었지만.

 

 올해는 태웅과 한 번쯤은 올 줄 알았는데 말이에용.

 

 태웅을 닮은 커다란 풀블랙 엔젤이 유유히 명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휴가 5일차. 태웅과 아무 말을 하지 않은지도 5일이 되었다.

 

 

 

 *

 6일 전 한낮의 원온원이 끝나고 명헌이 통화 종료 후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태웅은 이상하게 굴었다.

 

 태웅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미묘하게 반응속도도 느려졌다. 그러다 눈만 마주쳐도 화들짝, 놀라는것이 고장난 고양이가 따로 없었다.


 이쯤되니 명헌도 같이 고장이 날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 거지용?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돌아올 때 까지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태웅도 더위를 먹은 걸까용?

 

 그래도 뒷목에 쿨링팩을 붙여주는 손은 차분했다. 명헌은 태웅에게 팩을 건네고 뒤를 돌아 고개를 숙였다. 포장지를 뜯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차갑고 축축한 팩이 뒷목에 얹어졌다. 태웅은 말없이 목에 붙은 팩을 두어번 꾸욱, 눌렀다. 가냘픈 손길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솜털같은.

 

 갈게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내뱉듯이 말한 태웅이 서둘러 나갔다. 명헌도 서둘러 답했다. 잘가용.

 

 정적이 금방 집을 채웠다. 명헌은 자신의 축축한 뒷목을 쓰다듬었다. 왜 저러는 거지용.

 

 서태웅의 고장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다음날 인터뷰장에서 만난 태웅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색한 거리감이 있게 굴었다.


 그렇다고 태웅이 예의없게 행동했다는건 아니었다. 태웅은 묻는 말에 잘 대답했고 해야할 일을 모두 했다. 주변 스텝들에게 태웅이 오늘 이상하지 않나용, 하고 묻는다면 모두들 평소같으신데요, 라고 대답할 터였다. 하지만 뭐랄까.

 

 치대지…. 않았다.

 

 치대는 서태웅. 치댄다. 이게 맞는 말일까용? 명헌은 ‘치댄다’ 라는 단어를 떠올린 자신이 놀라웠다. 그치만용.

 

 훈련 끝 쉬는 시간에 몸을 붙여 옆에 앉는 서태웅. 뜨거운 몸은 붙여 앉으면서 차가운 얼음통은 얼굴에 대주던 서태웅. 버스에서 졸 때는 어깨에 얼굴을 묻는 서태웅. 쉬는 날 갑자기 불러도 꽤 재밌다는 얼굴로 따라오는 서태웅. 가끔은 쉬는 날 먼저 조깅이나 일대일을 하자며 대뜸 찾아오는 서태웅. 야밤에 갑자기 불러도 오히려 또 부르라는 서태웅. 물고기에 관심도 없으면서 어항 같이 만들자는 서태웅. 말주변도 없으면서 말 붙이고 싶다던듯이 굴던 서태웅. 눈을 똑바로 맞추고 말을 듣는 서태웅.

 

 그런데 오늘은 저멀리 앉아서 핸드폰에 얼굴을 콕, 박고있는 서태웅.

 

 뭐야. 친구하자는거 아니었나용. 갑자기 이렇게 변하는게 어딨나용. 서운해용. 인간대 인간으로서.

 

 서운하다. 라니.

 

 ….하 가관이에용. 명헌은 자신이 ‘서운함’ 을 느낀다는 것에 절망했다. 어느날부터 갑자기 팀원이 자신을 피한다면 주장 이명헌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더 생각할 거 없다. 찾아가 물어본다. 갑자기 왜 이래용. 무슨 문제가 있나용. 농구, 취미, 우정과 생활, 모든 면에서 그랬다. 명헌은 거침없이 질문하고 망설임없이 실행하고 명확하게 답을 내리며 살았다. 그렇게 명헌은 언제나 답이 있는 최고의 가드가 되었다. 

 

 명헌도 알았다. 사랑이 자신을 자신없고 겁많고 애매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이 모든 연약하고 복잡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모두 내가 태웅을 좋아해서겠지용.

 

 하지만 태웅이 먼저 저렇게 굴었는데용…! 보통의 남자애들은 저렇게 간지럽게 굴지 않는다고…!
 

 가만이 앉아있던 명헌의 속에 다시 화가 올라왔다. 가끔 저렇게 우정의 표현이 구애의 행태와 비슷한 놈들이 있다. 그래서 죄없는 동성애자를 시험에 들게하는 남자들이 있다. 저런 경우에 제멋대로 설레서 줄줄이 새는 마음에 고백이라도 엎질렀다가는.

 

 태웅이 핸드폰을 몇 번 만지는 그 짧은 사이 명헌은 혼자 서운해하고, 이유를 찾고, 화도 냈다가, 가라앉았다. 빤하디 빤하다. 태웅의 표정부터 대답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구태여 몸소 반복할 필요는 없다. 작은 불꽃은 한두번의 짓이김에 쉬이 꺼졌다.

 

 가능성 없는 마음은 자각과 동시에 묻히는게 맞지용.

 

 그러나 잘 죽지도 않는 불꽃은 다시 한 번 빼꼼, 살아났다. 우성같은 경우도 있지 않나용?
 

 그래서 다시 불꽃에 물을 끼얹었다. 열여덟살의 우성은 모든면에서 일대일생의 예외. 그리고 우성도 결국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우성이 정말 나를 사랑했던게 맞을까용- 까지 갔을 무렵, 인터뷰어가 두 선수를 불렀다. 이명헌과 서태웅은 프로페셔널한 농구선수였으므로 인터뷰에서는 가여울정도로 아무 티도 나지 않았다.

 

 

 

 *

 재회는 알만한 곳에서 생각치도 못하게 이루어졌다.

 

 명헌은 칼제비를 먹고 돌아가는 길에 있는 야외농구장에서 태웅을 보았다. 6일전 마지막으로 원온원을 했던 그 농구장이다. 땀에 젖은 채로 자유투를 넣고 있던 태웅이 명헌과 눈을 마주쳤다.

 

 "여기서 보네용."

 

 태웅이 끄덕, 눈인사를 했다. 제법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제는 고장 안 나는군용. 명헌도 며칠 지났다고 눈을 마주쳐도 마음이 제법 편안했다.

 

 명헌은 태웅과 조금 떨어진 자리 바닥에 앉아 태웅의 자유투를 구경했다. 성공. 성공. 성공. 깔끔한 폼이었다.

 

 제법 선선한 여름 바람이 태웅의 젖은 머리카락과 명헌의 드러난 목을 스쳤다. 명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골대 옆에 섰다. 림을 통과한 공을 주워 태웅에게 패스했다. 성공. 패스. 성공. 패스. 성공. 패스.

 

 "오랜만이에용."

 "…네."

 

 태웅이 마지막 패스를 받은 공을 잡고 눈을 마주쳐왔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할 말을 만드는 듯한 모습이 꽤…. 난처해 보이고 귀여웠다. 귀여운 후배님. 이쯤 됐으면 되었다. 명헌은 팽팽 머리를 돌리고 있단게 눈에 보이는 태웅을 도와주기로 했다.

 

 "내기라도 할까용."

 "어떤 내기요."

 "이긴 사람 질문에 무조건 대답하기."
 "….좋아요."

 

 태웅이 농구공을 두어번 튀기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는 여전히 느리고 간결하고 듣기에 좋았다.

 

 "자유투 내기로 할까요."
 "아니용."

 

 그래서 그 느긋한 목소리에 외려 명헌의 장난기가 울컥 솟았다.

 

 "그네 멀리뛰기."

 "…?"

 "옆에 마침 그네가 두 개 있네용."

 "…."

 "…..우리 동네 그네 튼튼해용. 몇 번 해봤어용."

 "….좋아요."

 

 그렇게 잘 단련된 197cm와 180cm의 농구선수는 나란히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운동선수 둘의 내기는 결국 경험이 부족한 태웅의 패배로 끝이 났다. 태웅은 자신의 착지지점이 명헌에 비해 한참 모자라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되었던 패배는 싫은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얼굴도 꽤 귀여웠다.

 

 평온한 얼굴에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명헌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겼어용.

 

 "그럼 질문."

 "네."

 

 질문. 질문하고 싶은거야 많았다. 갑자기 왜 나를 피했나용. 내가 뭐 잘못했나용. 아니면 태웅이 뭘 잘못했나용. 말하기 싫나용. 그럼 지금은 괜찮나용. 계속 앞집 형 옆집 동생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거 맞나용. 아니면 그냥 보통의 팀메이트처럼 지내고 싶나용. 근데 태웅은 원래 친해지고 싶으면 그렇게 간지럽게 구나용. 이건 안되고. 이제 어항 사러 갈건데 같이 갈까용.

 

 그러나 땀에 젖은 태웅의 조금 긴장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 필요 없는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명헌은 느리게 입을 열었다. 태웅.

 

 "잘.... 지냈나용."

 

 타이밍도 좋게 옅은 바람이 불어왔다. 태웅의 얼굴이 이내 풀어졌다.

 

 네. 선배도 잘 지내셨나요.

 그냥저냥용.

 내기 또 해요.

 좋아용.

 이번엔 자유투 내기 해요.

 그래용.

 

 10개씩 번갈아가면서 할까용. 좋아요. 태웅이 명헌에게 공을 넘겼다. 선배 먼저 해요.







----
진짜 오랜만..

+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