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93705567
view 912
2018.02.14 02:53
fc7084467a523dfd83eae38852475253 (1).gif
ㄱㅈㅅㅁㅇ, ㄴㅈㅁㅇ










-뭐라고?


바비 아저씨는 그제서야 낡아서 바스러지기 일보직전인 고서에서 눈을 떼고 눈 앞의 악마를 바라보았어. 온갖 고급진 옷가지로 온 몸을 둘러감은 지옥의 왕은 드물게도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지. 고요한 방 안에 툭툭 구두코가 멋쩍게 마룻바닥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들려왔음.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봐'라고 말했어, 자기야.


별안간 능글능글한 웃음기가 싹 빠진 담백한 음성이 바로 귓전에서 들려왔어. 남자는 놀라서 움찔 몸을 틀었지. 조금만 고개를 내밀면 코 끝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지옥의 왕은 평소와 다름 없이 흠 한 점 없는 매끄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음.


-그럼 뭐...... 조슈아에서 파는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응. 여기.


대수롭지 않게 뱉은 말을 마치자 마자 크라울리는 남자의 손에 커피잔을 쥐어주었어. 정말로 갓 끓여낸 커피였는지 손 끝이 다 아릴만큼 뜨거웠지. 아니나 다를까 컵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음. 눈 깜짝할 새에 나타난 요술 커피를 미심쩍어 하면서도 한 모금 들이킨 바비 아저씨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음. 혀 끝에 텁텁하게 감기는 달짝지근한 커피맛이 단골 식당의 것 그대로였거든.

놀란 바비 아저씨의 얼굴을 찬찬히 감상하던 악마가 이내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부드럽게 물었어.


-더 필요한 건?
-......없는데.
-어렵게 생각 할 것 없어, 자기야.


허락의 의미라고 생각한 걸까? 크라울리의 목소리에 아주 약간 힘이 실렸어. 더도 덜도 아닌 딱 커피 한 잔 만큼의 힘이.


-내가 램프의 요정처럼 보여? 이 정장이 얼마나 훌륭한 지 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안목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런 착각은 안 할텐데. 자기 애인은 전 교차로 악마들의 왕이자 지금은 지옥의 정점인 유능한 남자라고. 소원 세 개만 들어주고마는 구두쇠짓은 안 할 테니 원하는 게 있으면 그렇게 날 세우지 말고 뭐든......
-이거 봐.


탁, 책상 위에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단호했지. 장황하게 떠들어대던 악마가 찔끔 입을 다물어버렸음.


-무슨 일이야?
-별로...... 아무것도.
-아무것도?


어딘가 찜찜한 느낌이 슬그머니 남자의 목덜미에 엉겨붙었어.

바비 싱어라는 남자는 대체로 타인의 감정에 둔감한 편이었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미묘한 위화감을 감지한 남자는 의심 많고 예민하기 그지 없는 악마가 지레 겁 먹고 도망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신중을 기해 읽던 책을 덮어버렸음. 그리곤 악마의 얼굴 한복판을 빤히 쳐다보았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빠안히.


-네게 뭔가 해 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한참을 말이 없던 크라울리가 마침내 더듬더듬 말문을 텄어. 그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었던 바비 아저씨는 침묵을 고수했지. 치사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음. 쏟아지는 말의 홍수 속에 진심 한 조각을 숨기고 마는 멍청이에겐 이 방법이 제일 잘 먹혔으니까.


-다, 당신이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자긴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이걸 해달라 저걸 해달라 요구하는 일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딱히 뭔가를 바라는 눈치도 아니잖아. 이게 말이 돼? 인간은 욕망하는 동물이야. 갈구하고 열망하는 게 본성이라고. 그런데 너는, 넌 네가 무슨 성인군자라도 되는 양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만 말하고, 그러니 내가 불안하지 않을 수가.......


거기까지 말하고 크라울리는 가만히 혀 끝을 깨물었지. '제기랄.'

남자는 제자리에 잠잠하게 가라앉아 악마를 바라보고 있었어. 쏘아보는 시선이 마치 단단한 벽처럼 느껴질 만큼 올곧았지. 시리게 빛나는 회청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던 크라울리는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바비 아저씨가 결코 움직이지 않으리란 사실을 직감했음.


-네가 물질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는 인간이라는 건 알아. 그렇지만...... 그래서 더 네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고요하고 쓸쓸한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떨어져내렸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크라울리는 더는 말하지 않았지. 묵지근한 적막이 오래도록 이어졌음. 바비 아저씨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며 말했어.


-좋아. 그러면 커피 한 잔 더.


악마의 오른손이 반사적으로 치켜올라갔어. 남자는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그러쥐었지.


-그거 말고.
-어?
-나랑 같이 사러 가.


깜빡. 남자가 뱉은 말에 악마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닫혔다가 열렸어.


뜸 들이는 시간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길어지기 시작하자 바비 아저씨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지.


-......데이트 하자는 소리야.
-나도 알아들었어. 난 그냥.


아랫입술을 우물거리던 지옥의 왕은 끝내 고개를 수그렸음. 그리곤 한숨을 푹 내쉬었지. 크라울리의 귓바퀴도 어느 샌가 새까맣게 달아올라있었어.


-알았어...... 입 다물게.
-외투 가져올테니 기다려.


여전히 쥐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기 전에 바비 아저씨는 슬쩍 손끝으로 크라울리의 손목 안 쪽을 문질렀음. 자신이 살이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이 지극히 짧은 순간조차 아쉬워 한다는 걸, 이 헛똑똑이는 알기나 할까? 분수에 차고 넘쳐 너를 더 붙들어 둘 엄두도 내지 못 하는 이 알량함을?


-조금 걷자구.


남자는 비로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어. 여전히 홧홧하게 달은 얼굴이 빨리 식길 바라면서 바비 아저씨는 나직히 중얼거렸지. "갈 길이 멀구먼."


다시 한 입 들이킨 커피는 아직도 뜨거웠음.










크로비 슈내
2018.02.14 (02:54:20) 신고
ㅇㅇ
모바일
센세 첫댓따묵
[Code: ef77]
2018.02.14 (04:01:41) 신고
ㅇㅇ
모바일
와 크로비 개오랜만 ㅠㅜㅜㅜㅠ두번째 댓 냠냠하고 가여 센세 어나더는 내가 첫댓!
[Code: 5332]
2018.02.14 (08:10:05) 신고
ㅇㅇ
모바일
아 존좋ㅠㅠㅠㅠㅠㅠㅠ 센세 넘 간질간질하고 좋아요ㅠㅠㅠㅠㅠ 자낮한 주인님 존커인데 그거 뿌수려는 바비아저씨도 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달달하다ㅜㅜ
[Code: 1250]
2018.02.14 (08:19:12) 신고
ㅇㅇ
모바일
와 세상에 어떡해 이게무슨일이야.... 서툰 주인님 뭘 해줘야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주인님 너무 사랑스럽다... 흑흑 바비아저씨 지나치게 스윗한거 아닙니까 선생님 필요한거 없냐니 아저씨에게 필요한 건 주인님이라는 걸 오래오래 주인님 옆에서 알려주면서 깨닫도록 해 주시겠지 하ㅠㅠㅠㅠ 이맛에 크로비 판다 자낮한 권력자와 다정한 인간 조합 최고지오
[Code: b721]
2018.02.14 (11:25:25) 신고
ㅇㅇ
모바일
필요한게 없냐고 하는 주인님을 두고 음란한 생각을 했는데 좆잡고 반성합니다ㅠㅠㅠㅠㅠㅠ 쓸모있는 존재가 되고싶어하는 주인님 은은한 찌통인데 너무 사랑스럽고 커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둘 쑥쓰러워 하는 모습에 간질간질 떨리고 존나 좋아서 옥겨니 죽어욧!!!!!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f7d]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