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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11:26
캐붕주의 노잼주의 아무것도모름주의 날조주의





천자가 바뀌었다.
귀하신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일반 평민들에게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누가 천자가 되던, 그들은 언제나 수탈 당하는 입장에 있어, 이놈이 뺏어가듯 저놈이 뺏어가든 크게 차이가 없었다.

궁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반발하던 이들 중 일부는 천자의 열렬한 신하가 되어있었고, 일부는 자취를 감췄다.
이제 조정에서는 아무도 천자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대희국은 어느새 ‘선윤’ 으로 이름이 바꾸었다.



방다병은 나라 전체를 뒤져 소문난 의원을 찾고 있었다.
하효혜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지 7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약 4개월 전 동쪽 끝 화주에 신의가 있다하여 그를 모셔오기로 했고 2개월이 지난 지금, 그가 곧 도성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소식을 받았다.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는 몰라 4일째 성문 앞에서 의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였다.

방다병은 왕복을 데리고 성문으로 향했다.
초조함으로 서두른 탓에 해가 뜨기도 전에 성문에 도착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오지 않을 거라 판단한 방다병은 왕복과 객잔으로 가 잠시 몸을 녹이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지만 방다병은 음식을 휘저을 뿐 먹지 못하고 있었다.
“ 오늘은 오시겠죠? 여기서 천기산장으로 가려면 또 시간이 지체될텐데. ”
방다병은 원하지도 않는 태자 자리를 지키느라 모친의 상태도 몰랐던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했다.

“ 장님이라고 하던데, 제대로 된 진료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상한 소리나 안했으면 좋겠는데.. ”
“ 그리 의심되시면, 저는 돌아가봐도 상관없습니다. ”
방다병은 옆에서 들린 소리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두툼한 망토를 두른 사내가 찻잔을 입에서 떼며 방다병을 응시했다.
머리에는 연꽃 모양의 구리 비녀를 꽂고 있었고 바닥에는 진료함 같은 나무 상자가 놓여져 있었다.

방다병을 응시하는 사내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있었고 눈은 방다병의 어깨 언저리를 향해 있었다. 초점이 없는 까만 눈이 구슬같이 느껴졌다.

“ 이..연화 의원님이십니까? ”
“ 네 ”
“ 죄송합니다. 뒷말을 하려던 건 아니였습니다. 모친의 병세가 깊어 걱정되는 바람에 ”
방다병은 창피했다. 군자답지 못하게 남의 말 한 것도 모자라 당사자 앞에서 하다니.

이연화가 진료함을 들고 몸을 일으켜 객잔 밖으로 향했다. 방다병과 왕복도 엉거주춤 일어났다.
화가 난건가. 기분이 나빠 이대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쩌지 싶어 이연화에게 급하게 다가갔다.
“ 의원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가시면.. ”
“ 안내해주시지요. ”

살짝 웃고는 객잔을 나선 이연화의 뒤를 누런 개가 따라붙었다.
방다병이 앞서 가는 이연화의 옷소매를 잡았다.
“ 아- 이쪽으로. 마차를 가지고 왔.. ”
왈왈-
방다병을 향해 개가 으르렁 거리며 짖기 시작했다.
“ 괜찮아. 아는 사람이야. ”
사람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개는 짖는 걸 멈추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마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가는 내내 방다병의 고개는 옆의 이연화를 향해 있었다.
신기했다. 장님이라고 들었는데 앞이 보이는 것처럼 꼿꼿하게 앞을 응시하고 걷고 있었다.

“ 제가 이렇게 걷는 게 신기하십니까? ”
“ 지..진짜 안보이시는 게 맞습니까? ”
“ 네 안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빛과 어둠은 구분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
“ 그럼 어찌 제가.. 보고 있는 걸 아시는 겁니까? ”
“ 사람은 시선이 향한 곳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기 마련입니다. 아주 미세하게 공자는 계속 제 쪽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물론 공자가 다가오는 만큼 제가 비켜서고 있었지만요. 그리고 공자의 숨소리가 제 쪽을 향해 있는게 느껴졌거든요. ”
방다병의 입이 떡 벌어졌다.
“ 하나의 감각이 사라지면, 다른 감각이 발달됩니다. 특별한 일은 아니죠. ”
이연화가 남의 일을 말하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마차 앞에 섰다. 방다병이 먼저 올라 타고는 잠시 고민을 했다. 마차도 혼자 탈 수 있으려나? 이연화를 슬쩍 돌아봐자 이연화가 방다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잡아주시겠습니까? ”

내밀어진 하얀 손가락이 꼭 빙편 같다고 생각하며 뻗어진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아무리 겨울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차가운 손은 처음이였다. 방다병은 이연화의 손을 제대로 쥐지 못했다.
손을 세게 잡았다간 얼음 조각같은 손이 녹아내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두 사람은 마차 안에 마주 보고 앉았다. 누런 개가 이연화를 따라 마차 안으로 들어와 두 사람 사이, 발치에 엎드렸다.
이연화는 마차에 타자마자 눈을 감았다.
방다병은 이연화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나이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자신보다 많은 건 확실했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목구비는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호리호리하고 키가 늘씬했다. 장님이라고는 해도 매력있는 외관이 아닐 수 없었다.
방다병은 의원을 실력이 아닌 외모를 평가하고 있는 자신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큼큼 소리를 내었다.
이연화가 살짝 웃더니 눈을 떴다. 어디를 응시하는 지 알 수 없는 까만 눈에 방다병은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
“ 모친의 병세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 미리 듣는 건 병세를 판단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진맥 후에 궁금한 건 따로 물을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
“ 아..네. ”
방다병은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방다병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이연화에 대해 관찰하고 추측하고 상상하는 사이, 왕복이 천기산장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한시진 (2시간)정도의 길다면 긴 시간이였지만 방다병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방다병이 얼른 마차에서 내려 이연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자 제 손을 잡으세요. ”
이연화가 살짝 웃더니 혼자서 마차 계단을 내려왔다.
“ 처음은 도움이 필요하나, 한번 경험하면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 공자의 도움이 늘 필요하진 않을겁니다. 하지만 고맙습니다. 신경써주셔서요. ”
방다병이 내민 손을 거두웠다. 어쩐지 아쉽고 섭섭했다.

천기산장의 입구부터 대문까지는 거리가 좀 되었다. 방다병은 앞서 걸으며 계속 뒤를 돌아 이연화를 살폈다.
이연화는 마치 보이기라도 하는 듯 주변을 살폈다.
“ 이곳은 꽤 크구나. 그치 불여우? ”
불여우가 갑자기 뛰어가 담장 앞에서 몇번 짖고는 이연화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연화가 허리를 굽히고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대문까지는 10장 (30미터) 정도 되겠구나. ”
이연화와 개의 대화를 엿들은 방다병이 발걸음을 늦춰 이연화의 옆으로 나가왔다.
“ 이 친구의 이름이 불여우입니까? ”
“ 예, 귀엽지요? 여우들에게 공격당하고 있길래 구해줬더니 그 뒤로 저를 따라오더라고요. 앞으로 여우들을 만나도 당하지 말라고 불여우라고 지었죠. ”
불여우를 내려다보는 이연화의 눈빛이 따뜻해보였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방다병도 불여우를 내려다 보며 살짝 웃었다.

대문으로 들어가려면 긴 계단을 올라야했다. 방다병이 이연화의 망토를 살짝 잡았다.
“ 앞에 계단이 있는데 손을 잡아드릴까요? ”
“ 계단은 괜찮습니다. 불여우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
“ 계단이.. 높고 거칠어요. 혹시 모르니 제 손을.. ”
이연화가 망토 안에서 손을 꺼냈다.
“ 그럼, 잡아주실래요? ”
두툼한 망토 안에 있었어도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안쓰러웠다. 마차를 탈 때는 가볍게 손을 맞댄 수준이였지만 지금은 이연화의 손을 전부 감싸듯 쥐었다. 외부 바람을 막고 온기를 나눠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올라 대문 앞에 섰다. 방다병은 어전히 이연화의 손을 잡고 있었다.
“ 천기산장은.. 처음이잖아요. 처음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으니, 계속 제가 잡아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요. ”
이연화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 방다병은 어쩐지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 먼길 오시느라 피곤하실테지만, 제 마음이 조금 급해서 그렇습니다. 예의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바로 모친을 봐주실 수 있을까요? ”
“ 그렇게 할게요. 다만 옷은 좀 갈아입고 싶어요. 바깥의 먼지와 안좋은 것들은 묻어있을 수 있으니까요. ”

준비를 마친 이연화가 하효혜의 방으로 들어섰다.
방 입구에서 서서 눈을 감고 잠시 냄새와 온도를 파악했다. 천천히 하효혜의 침상으로 다가가 놓여진 의자에 앉아 진맥을 시작했다.
방다병은 옆에 초조한 듯 서있었다.
“ 병자의 근처에서 시중을 드는 시녀가 있으면 같이 불러주십시오. ”
방문 앞에 있던 시녀가 들어왔다.
“ 제가 앞이 보이지 않으니 저 대신 보고 말씀해주세요. 두 분께 묻는 건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 입니다. ”

“ 환자의 얼굴 혈색은 어떻습니까? 검거나 붉거나, 평소랑 어떤 식으로 다른지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
이연화가 진료함을 더듬으며 종이와 붓을 꺼냈다.
“ 조금 창백하기는 하나 평소와 비슷하세요. ”
측근 시녀인 리아가 말했다.
“ 제가 보기에도 조금은 창백하게 느껴요. 그 외에는 잘 모르겠고요. 근데.. 입술이.. 원래 얼굴이 창백해지면, 입술도 창백해지지 않나요? ”
방다병의 말에 리아가 하효혜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
“ 아! 그러네요. 입술이 마치 연지를 연하게 바르신 것 같네요. ”
이연화가 잠시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 병자의 표정은 편안해보이던가요? 고통이 느껴지는 표정인가요? ”
리아와 방다병이 하효혜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 편안해보여요. 그냥 보면 주무시고 있는 것 같아요. ”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
그 뒤로도 외관과 상태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다.

“ 그럼 병세는 언제부터 인가요? ”
“ 7개월이 조금 넘었어요. 작년, 대인께서 서남으로 시찰을 나가셨어요. 그리고 몇개월 만에 돌아오셨고요. 그리고 나서 한달 정도 지나고, 마님은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신거고요. ”
방다병이 침울한 얼굴을 했다. 모친의 병세가 나타난건 7개월이 넘었지만 자신은 5개월 전 알게 되었다.
바로 알았다면, 그 때 바로 원인을 찾아 치료를 했다면. 이렇게 오랜시간 제 모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줄 몰랐다.



8개월 전 방다병은 아버지인 방칙사의 설득으로 궁에 입궁했다.
외숙인 줄 알았던 선고도가 친부임을 알았을 때도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는데, 자신의 친부가, 선고도가, 용의 혈통으로 황좌를 이어받았다 했을 때는 잠시 넋이 나갔었다.

놀라긴 했지만 방다병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고도가 친부라 해도 지금에 와서는 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사부인 이상이의 사형이라는 관계가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방다병은 궁에서 선고도를 만났다.
높디 높은 용상에 앉은 선고도를 무심한 눈으로 올려다 봤다.
선고도는 방다병에게 궁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자식이라고는 방다병 하나이니, 사직과 나라를 위해서 황통을 굳건히 해야한다며 태자가 되라고 했다.
방다병은 코웃음을 쳤다. 그동안 외면했던 시간이 얼마인데 이제와서 자식 운운하는 거냐며, 자신은 권력도 황실도 다 싫다고 말하며 궁을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결국, 궁으로 들어와 태자 책봉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인 방칙사가 몇날 며칠을 방다병을 설득했다. 진정한 황가의 혈맥이며 용의 혈통인 황제의 심려를 덜어야한다며 태자가 되어 나라와 백성을 짊어진 폐하에게 도움이 되기를 청했다.
선고도의 압박과 방칙사의 설득으로 방다병은 그렇게 태자가 되었다.

급박하게 입궐하고 태자가 되어 황궁에 갇혔다. 방다병은 갇혔다고 생각했다.
불현듯 자신의 입궁에 대해 하효혜가 격렬하게 반대하던게 떠올랐다. 태자로 책봉되고, 태자 자리에 앉아있는 내내 방다병은 하효혜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하효혜가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되었다.
방다병은 분노했다. 소식이 통제되었고, 일신의 자유를 빼앗겼다. 제 어머니의 신변에 문제가 있음에도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함에 불같이 화를 냈다.

태의며 용하다는 의원들을 천기산장으로 보냈지만 병세에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수소문을 해서 화주에 신의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의원을 천기산장으로 청했다. 그리고 하효혜의 병세가 나아질 때까지 천기산장에 머무르겠다고 통보했다.
선고도는 태자 자리를 내팽겨치고 떠날 것 같은 방다병을 달래주기위해 그의 요청을 허락했다.



상념에서 깨어났다. 리아와 이연화는 계속 이야기 중이였다.
“ 혹시 대인께서 서남지역의 풍토병을 옮아오신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깨어나지 않는 병은 없다고 했어요. ”

“ 그 쯤 평소와 다른 일들이 있었나요? 아무리 사소하더도 생각나는 건 다 말씀해주세요. ”
“ 7개월 전이면 우리 소공자님이 태자.. ”
“ 리아! 아.. 제가 관직에 올랐습니다. 별 볼일 없는 직무이긴 하나, 어쨌든 나랏..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
“ 그렇군요. 혹시 다른 일 들은요? ”
“ 천기산장으로 선물이 많이 들어왔어요. 소공자님이.. 관직에 오르셔서요. 그 외에는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
이연화가 종이에 무언가 써내려 갔다.
“ 공자는요? ”

방다병이 입을 달싹거렸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했으나 결국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고, 이연화라는 의원을 다 믿을 수는 없었다. 결국 방다병은 입안을 맴도는 ‘아버지가 변했다’는 말을 삼켜버렸다.





다병연화 연화루 이연화



ㅇㅇㅊㅇ 좆목짤 보고 나니까 뽕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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