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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23:57
서브스턴스 주의 사항으로 계속 이야기 하잖아 둘은 하나라고 기억하라고.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문제임
왜 둘이 하나야? 이미 다른 육체가 실존하고 있는데 어떻게 둘이 하나냐고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게임인거지
이미 내 몸과 정신은 두 개로 쪼개졌고 그 둘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경험 모순된 경험을 반복적으로 할텐데 어떻게 둘이 같을 수가 있어. 이게 진짜 공포인 거임
아름다운 얼굴, 늙은 육체 젊은 육체를 넘어선 '존재'에 대한 공포인 거임
우리는 이런 공포를 일상에서도 경험함
간단한 예를 들자면, sns에서 전시되는 나와 실실적 존재인 나가 다른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할 거임
더 옛날엔 우리는 아바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우리를 표현하기도 했었음
그리고 더 일상적이게는 혐생을 살아가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다운 나가 다르기도 하지
근데 이런 더 나은 나에 대한 존재적 공포의 기저에는 관음의 시선이 깔려있음. sns, 더 나아가 모든 미디어매체는 합법적 관음 시스템이라고 봐도 무방함. 그리고 이러한 관음 시스템을 통해 자기과시를 하는 사람들의 반대편엔 그런 사람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존재함. 마치 수를 미워하는 엘리자베스처럼. 우스운 건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관음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볼 건 다 보면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임. 사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게 우리는 관음할 수 있는 매개체에 너무 노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 엘리자베스 거실에서 보이는 수의 대형 광고판처럼 말이야.
당장 영화속의 노출장면을 우리는 불편해하면서도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니까. 아 이 얼마나 관음적인 순간인지 스스로의 모순에 아주 돌 것 같은거지
이런 돌 것 같은 느낌이 진짜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공포인거야
사회에 만연한 관음병적 시선
그래서 이 영화에서 필수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장면이 노출씬이었을 거임. 그것도 아주 추접스러울정도로 관음적이게.
이걸 보는 관객이 아주 불편하도록 매우 집요하게.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의 방식이 참 불편할거임.
그런데 우리는 관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현대사회에서?
그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영화가 말그대로 공포스럽게 다가오더라. 관음의 세계에서 나로서 살아남기. 그런데 그 관음하는 존재가 나 스스로일 수도 있다는 공포
어떤 펄럭 여배우가 최근에 한 말이 생각나더라 '거울 너무 자세히 보지 마세요.'
엘리자베스가 입고 나오는 노란색 코트.
포스터 이미지 중에 계란노른자에서 분화하는 모습을 노란색 코트로 형상화한거라 생각했음.
노란색코트 = 정체성임
기억이 정확한진 모르겠는데 일단 나붕 기억으로는 수가 정체성 자각이 있었을 땐 노란색 코트 입었는데 후반부부턴 안입음 엘리자베스만 계속 노란코트입음.
리지는 죽을 때까지도 노란색 코트를 입고 죽거든
내가 나로서 오로지 존재하고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게 이토록 눈물겨워지다니 비극이 아닐 수가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노란색이 질투와 속임수의 상징색이란 걸 떠올리면 비극이 더 강렬하게 다가옴...
+ 글 다 쓰고 알았는데 이 영화에 히치콕 현기증 사운트랙에 사용된 음악이 나오더라고? 그런데 아주 재밌는 점이 뭐냐면 평론가들 사이에서 히치콕의 영화세계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 주제가 바로 관음이란 말임 ㅋㅋ 생각할수록 감독이 여기저기에 장치를 많이 깔아둔 것 같다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문제임
왜 둘이 하나야? 이미 다른 육체가 실존하고 있는데 어떻게 둘이 하나냐고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게임인거지
이미 내 몸과 정신은 두 개로 쪼개졌고 그 둘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경험 모순된 경험을 반복적으로 할텐데 어떻게 둘이 같을 수가 있어. 이게 진짜 공포인 거임
아름다운 얼굴, 늙은 육체 젊은 육체를 넘어선 '존재'에 대한 공포인 거임
우리는 이런 공포를 일상에서도 경험함
간단한 예를 들자면, sns에서 전시되는 나와 실실적 존재인 나가 다른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할 거임
더 옛날엔 우리는 아바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우리를 표현하기도 했었음
그리고 더 일상적이게는 혐생을 살아가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다운 나가 다르기도 하지
근데 이런 더 나은 나에 대한 존재적 공포의 기저에는 관음의 시선이 깔려있음. sns, 더 나아가 모든 미디어매체는 합법적 관음 시스템이라고 봐도 무방함. 그리고 이러한 관음 시스템을 통해 자기과시를 하는 사람들의 반대편엔 그런 사람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존재함. 마치 수를 미워하는 엘리자베스처럼. 우스운 건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관음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볼 건 다 보면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임. 사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게 우리는 관음할 수 있는 매개체에 너무 노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 엘리자베스 거실에서 보이는 수의 대형 광고판처럼 말이야.
당장 영화속의 노출장면을 우리는 불편해하면서도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니까. 아 이 얼마나 관음적인 순간인지 스스로의 모순에 아주 돌 것 같은거지
이런 돌 것 같은 느낌이 진짜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공포인거야
사회에 만연한 관음병적 시선
그래서 이 영화에서 필수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장면이 노출씬이었을 거임. 그것도 아주 추접스러울정도로 관음적이게.
이걸 보는 관객이 아주 불편하도록 매우 집요하게.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의 방식이 참 불편할거임.
그런데 우리는 관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현대사회에서?
그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영화가 말그대로 공포스럽게 다가오더라. 관음의 세계에서 나로서 살아남기. 그런데 그 관음하는 존재가 나 스스로일 수도 있다는 공포
어떤 펄럭 여배우가 최근에 한 말이 생각나더라 '거울 너무 자세히 보지 마세요.'
엘리자베스가 입고 나오는 노란색 코트.
포스터 이미지 중에 계란노른자에서 분화하는 모습을 노란색 코트로 형상화한거라 생각했음.
노란색코트 = 정체성임
기억이 정확한진 모르겠는데 일단 나붕 기억으로는 수가 정체성 자각이 있었을 땐 노란색 코트 입었는데 후반부부턴 안입음 엘리자베스만 계속 노란코트입음.
리지는 죽을 때까지도 노란색 코트를 입고 죽거든
내가 나로서 오로지 존재하고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게 이토록 눈물겨워지다니 비극이 아닐 수가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노란색이 질투와 속임수의 상징색이란 걸 떠올리면 비극이 더 강렬하게 다가옴...
+ 글 다 쓰고 알았는데 이 영화에 히치콕 현기증 사운트랙에 사용된 음악이 나오더라고? 그런데 아주 재밌는 점이 뭐냐면 평론가들 사이에서 히치콕의 영화세계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 주제가 바로 관음이란 말임 ㅋㅋ 생각할수록 감독이 여기저기에 장치를 많이 깔아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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