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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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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사운드웨이브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호감을 가지고 있음. 확실한 검증을 위해 다시 한번 페이스 플레이트를 드러냈었음."
"잠깐, 또?"
"······재즈가 먼저 요청함. 그 결과, 아주 확실한 근거 두 가지를 도출해냄. 첫 번째 근거, 지난 일 대 일 전투에서 대화를 나눈 순간의 전파의 파동과 스파크의 소리를 분석함."
일렬로 앉은 카세티콘들이 호오, 하며 흥미롭게 모니터를 주시했다. 사운드웨이브가 버튼을 누르자 카세티콘들(정확히는 럼블과 프렌지의 유치한 취향이 반영된)의 수준에 맞춘 동글동글 색색깔의 화면이 나타났다.
맨 위에 큰 글씨로 '첫 번째 근거'라고 적혀있었다. 다시 버튼을 누르자 사운드웨이브와 재즈가 나눈 대화가 재생되며, 그 아래로는 재즈의 전자파와 스파크의 박동, 소리가 대화를 나눔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재즈는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
"두 번째 근거, 사운드웨이브가 페이스 플레이트를 드러내자 극명한 감정의 변화를 보임."
이번엔 모니터에 사운드웨이브의 시점으로 세척액을 흘리는 재즈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영상은 사운드웨이브가 재즈의 세척액을 닦아주기 직전에 끊어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무한반복되었다.
"따라서, 재즈가 상관에게 페이스 플레이트에 관해 함구한 것은 호감이 가는 이의 새로운 모습을 홀로 독점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함."
"어떡해, 일리있어······!"
럼블이 충격적이라는 듯, 립 플레이트를 서보로 막고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디셉티콘 정보부 휘하 메크들의 허니트랩 전략 결과물을 근거로 하여 볼 때, 허니트랩 전략 사용시 최소 오토봇의 기밀정보부터 크게는 오토봇 재즈의 전향을 기대할 수 있음."
"결론. 못 죽인다는 것. 오토봇!"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즈소우가 날카롭게 외쳤다. 사운드웨이브는 카세티콘들을 바라보았다. 사실상 럼블과 프렌지를 제외한 다른 카세티콘들은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두 서보를 꼬고 엎드려있던 래비지가 조용히 선두로 립 플레이트를 열었다.
"내가 봤을 때 재즈라는 오토봇은 사적인 감정에 흔들릴 메크가 아닌데."
"동감한다. 금방 마음을 정리할 것이다."
"먼저 페이스 플레이트를 보여달라고 한 것도 하나의 근거가 되기는 하지만······ 이런 거 해본 적 있어······?"
"허니트랩. 불필요."
당연히 카세티콘들의 반발도 생각했다.
하지만 사운드웨이브는 오늘 이 발표를 위해 이제껏 럼블과 프렌지가 썬더크래커의 쿼터에 놀러가는 것을 방관해 왔었다. 예상대로 럼블과 프렌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야! 오토―멍청이들은 하나같이 다 마음이 여려서 절대 정리 못할걸?"
"맞아! 보스의 페이스 플레이트면 충분히 성공해!"
카세티콘들의 언쟁이 시작되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어차피 어느쪽이 이길지 알고 있었다.
"우리가 전쟁 하루이틀 해? 그거 안된다니까!"
"허니트랩에 넘어와서 디셉티콘으로 전향한 메크도 많거든! 예를 들어, 어······ 많아! 그치, 럼블?"
"맞아! 썬더크래커가 보여준 데이터패드에는 전향한 오토봇들이 많이 나왔어!"
"그냥 많다고 하면 다냐! 확실한 이름을 대!"
"음······ 옵티머스 프라임?"
"누가 쟤네 그 자식 쿼터에 들어가게 둔 거야?"
지레 찔린 사운드웨이브는 목청을 높히기 시작한 카세티콘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모니터를 응시했다. 모니터 속 재즈는 울고 있었다.
[······.]
사운드웨이브는 카세티콘들이 울 때면 재즈에게 그랬던 것처럼 디짓으로 다정하게 눈가를 쓸어주고 울지 말라며 속삭이곤 했다.
오래된 인연과 스파크 본딩으로 인해 그들이 고통스러우면 사운드웨이브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전쟁이 수백만 년간 지속되며 그들도 어느 순간부터 더는 울지 않았다. 강인해진 것이다. 그래서 사운드웨이브는 더는 우는 이를 달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재즈의 눈가를 쓸어주고 부드럽게 달래어준 건 충동에 불과했다. 눈물에 약해서, 그래서 카세티콘을 겹쳐본 것뿐이다. 그날 희미하게 느껴졌던 스파크의 통증이 이를 증명했다. 그렇게 사운드웨이브는 자기합리화를 마쳤다.
그 사이 허니트랩― 정확히는 재즈의 생사여부를 둔 언쟁은 당연히 럼블과 프렌지의 승리로 돌아갔다. 나머지 카세티콘들은 립 플레이트를 비죽거리면서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레이저비크의 옵틱이 흉흉했다. 안되기만 해봐라. 럼블이랑 프렌지 너네 긴장해라.
"협조 감사함. 실망시키지 않겠음."
럼블과 프렌지가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상한대로 상황이 끝나니 딱 시간이 맞았다. 사운드웨이브는 카세티콘 하나하나를 다 안아주며 자신이 없는 동안 사고를 치거나 쿼터 밖을 나가지 말라며 당부했다. 인사가 다 끝나고 나서야 그는 바이저와 마스크를 쓰고 쿼터를 나섰다.
쿼터문이 닫기기 전, 그가 깜빡했다는 듯 살짝 뒤를 돌곤 말했다.
[럼블, 프렌지: 앞으로 썬더크래커의 쿼터 방문을 금지함.]
*
[사운드웨이브: 재즈가 함께해주길 원함.]
"뭐······ 라고, 이쁜아?"
재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웃는 페이스 플레이트로 헬름을 갸웃거렸다. 사운드웨이브는 친절히 다시 설명했다.
[재즈: 사운드웨이브에게 사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음. 사운드웨이브: 마찬가지.]
"오우."
[따라서 오토봇 재즈가 디셉티콘으로 전향하길 원함.]
"너무 화끈한 제안인데."
재즈가 푸하하 웃으며 사운드웨이브의 동체를 장난스레 툭 쳤다. 그는 헛숨을 들이키더니 다시 웃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아무말도 못 들은 척 자신을 지나치려는 재즈의 앞을 막고 동체를 숙여 시선을 아주 가까이, 그리고 나란히 했다. 그리고 그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재즈: 사운드웨이브의 페이스 플레이트를 좋아함. 사운드웨이브: 재즈가 전향할시 페이스 플레이트를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음.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해줄 것을 약속함. 재즈: 현명한 메크.]
"······."
찰카닥, 하고 사운드웨이브의 바이저가 해제된다. 그의 노란 옵틱을 마주한 재즈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바이저를 해제했다. 헬름이 어찌나 가까운지 두 옵틱의 거리는 겨우 디짓 두 개가 들어갈 정도였다.
두근―
두근―
두근―
역시나 재즈의 호흡과 스파크의 박동이 빨라진다. 파장도 불규칙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사운드웨이브는 마지막을 장식하듯 옵틱을 살짝 휘며 아주 옅게 웃었다.
그 눈웃음에 반대로 재즈의 옵틱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동요하고 있었다. 사운드웨이브는 그가 전향하겠다는 말을 할 가능성을 28%으로 잡았다.
전향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72%의 가능성 중 5%는 재즈 본인의 의지 때문이고, 나머지 67%는 이곳에 있는 다른 오토봇들의 방해였다.
만약 지금 상황이 디셉티콘―오토봇간의 정기회의가 아니라 교전중이었다면 재즈의 전향 가능성은 89%였을 것이다. 사운드웨이브는 내심 아쉬웠지만 원래 허니트랩은 모든 가능성에 걸어보아야 하는 것. 이번으로 되지 않는다면 다음이 있었다. 디셉티콘의 정보참모는 아주 끈질기니까.
"홀리몰리 마이 프라이머스······."
싸늘한 회의실 속, 서로 헬름을 가까이 한 두 메크를 두고 오토봇 진영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재즈는 그 중얼거림으로 정신을 차린 것인지 옵틱을 슬 찌푸리며 동체를 물렸다. 사운드웨이브도 바이저를 다시금 장착하고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재즈가 바이저도 쓰지 않은 채 느글느글 웃는다. 그리곤 두 서보를 쫙 펼치며 말한다.
"오······ 사운더스, 사운디, 이쁜아― 차라리 네가 오토봇으로 전향하는 게 어때? 보아하니······ 날 꽤나 마음에 둔 것 같은데."
그 말에 디셉티콘 진영의 누군가가 허! 하고 비웃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사운드웨이브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재즈: 사운드웨이브의 제안에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음. 전향을 제안함. 먼저 대답해줄 것을 요구함.]
"이쁜아, 지금 말 돌리는 거야?"
각 진영의 정보를 담당하는 중요한 두 메크가 서로 전향을 제안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거절하지 않은 채 상대의 대답을 기다린다.
회의실에 또다시 침묵과 함께 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이윽고 오토봇, 디셉티콘 할 것 없이 무기를 꺼내 겨눴다.
디셉티콘은 사운드웨이브를, 오토봇은 재즈를.
둘 중 하나라도 전향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자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자비없이 스파크가 꺼지게 될 것이다.
[사운드웨이브: 전향하지 않음.]
"당연하지만 나도 전향할 생각은 일체 없어."
둘은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재즈는 태연한 얼굴과 그렇지 못한 스파크 박동을 보이며 본인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느새 바이저도 다시 장착한 채 느긋하게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데이터패드를 만지고 있었다.
사운드웨이브 또한 디셉티콘 정보참모의 자리로 향한 순간이었다. 널레이를 거둔 스타스크림이 냅다 그를 끌고 회의장 밖으로 향했다. 스타스크림이 그를 거칠게 벽으로 밀쳤다. 사운드웨이브는 간실히 비틀거리며 벽에 부딪히는 불상사만은 면할 수 있었다. 그가 문이 닫힌 것을 확인 후 짜증스레 물었다.
"너 진짜 저 새끼 좋아하냐?"
[부정. 허니트랩 전략 사용중임.]
그는 잠시간 다행이라는 듯 숨을 내뱉다가 이내 팔팔 뛰며 분노를 표출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허니트랩을 해? 내가 뭐, 정보부는 아니라서 잘 모르긴 한데··· 허니트랩이라는 게 상대 비위 맞춰주면서 살살 녹여먹는 거라는 것 정도는 알거든? 그런게 대체 네가 저 오토봇 녀석 니즈를 충족해줄 만한 게 뭐가 있다고?"
[페이스 플레이트.]
그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사운드웨이브가 풀어서 설명했다.
[재즈: 사운드웨이브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큰 호감을 가짐.]
"······저 새끼 페티시 이상한 거 알면서 이거 하는 거냐?"
아무래도 스타스크림은 그가 말하는 '페이스 플레이트'가 바이저와 마스크 아래에 있는 진짜 페이스 플레이트를 말하는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운드웨이브는 이렇게 된 김에 자신이 타인에게 맨얼굴을 드러냈다는 걸 얘기하고 싶지 않아 오해를 정정해주지 않았다.
"좋아. 그래. 네가 허니트랩 작전을 쓰든 내 알 바는 아니거든? 그런데 정도가 있지. 아까 그건 선을 넘었어! 디셉티콘들 앞에서 그걸 왜 고민을 처하고 있어? 구멍 숭숭 난 고철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 메가―깡통이랑 가까이 있다가 너도 머리가 깡통이 되어버린 거냐?"
[······비논리적으로 행동한 것을 인정함. 사과하겠음. 하지만 고민한 척을 한 것은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한 작전 중 하나였음. 그리고 스타스크림: 불경함. 스타스크림 또한 전적이 있음.]
"······아니, 그걸 왜 우리까지 착각하게 만드냐고! 차라리 귀뜸을 좀 해주던가!"
[적절한 타이밍이 없었음. 카세티콘들과 협의된지 얼마 되지 않음.]
네 상관이 카세티콘보다 우선순위 아래냐! 스타스크림은 본인의 콕핏을 탕탕 치며 답답해했다. 여간 억울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수습은 어떻게 할 건데? 다른 디셉티콘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스타스크림: 오토봇 제트파이어와 비밀 연애중임.]
돌연 그가 립 플레이트를 닫았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사운드웨이브를 쳐다봤다.
"너, 너 그걸 어떻게!"
[디셉티콘의 모든 회신은 사운드웨이브를 거쳐감.]
"이런 썅!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그 얘기가 왜 나오냐고 소리지르긴 했지만, 총명한 항공참모는 역시나 사운드웨이브가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알아차렸다.
"일은 네가 저질러놓고 나보고 수습하라고?"
[스타스크림: 사운드웨이브가 해당 작전을 실행하는 동안 방해가 될 만한 유언비어가 퍼지지 못하도록 행동해주길 바람.]
스타스크림은 환멸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사운드웨이브: 스타스크림이 반역 실패 후 메디컬 베이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작성되지 않은 모든 서류를 처리함. 매일. 해당 제안을 거부할 경우 로드 메가트론께 그간 항공참모의 저조했던 업무효율과 지속되는 반역모의의 상관관계로 오토봇 제트파이어와의 관계를 긴밀히 엮어 보고할 것임.]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알아서 하면 되잖아······. 이상한 소문 안 나게, 졸개들 사이에서 뒷말 안 나오게 하라 이거지?"
스타스크림의 평소 성질머리를 생각했을 때 이정도 협박에서 끝난 게 행운이었다. 두 메크가 서로에게 보낸 사랑이 담긴 회신를 읽을 필요가 없어져서 다행이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스타스크림의 립 플레이트가 사운드웨이브의 오디오 리셉터에 가까워진다. 그의 잘 빠진 디짓이 흠집없는 카세트 사출구를 툭툭 건드렸다.
"허니트랩인지 뭔지 계속할 거면, 네 상관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가져오는 게 좋을 거야."
[사운드웨이브: 유념하겠음.]
회의는 언제와 같이 고성방가와 데이터 패드가 날아들었다. 애초에 이 '회의'라는 게 중립구역에서 각 진영의 수장과 여러 간부들이 모여 서로 얼마나 좆같은지 화를 내는 자리에 가깝긴 했지만, 오늘따라 오토봇은 더 열정적으로 이 회의의 존재의의를 다하는 중이었다. 중립구역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총탄이 벽에 박혔을 것이다.
이번에 화두되었던 것 중 하나가 디셉티콘측에서 오토봇 기지의 메인 시스템을 무려 4분간 통째로 장악했던 것인데, 이는 오토봇의 보안 시스템이 몹시 취약하다는 걸 만천하에 공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이미 내부에서 사전에 언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사안이었다.
모두들 회의 시작 전의 그 일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역시 성질이 곤두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아무래도 이쁜이가 프라울을 자극한 모양이네.'
오토봇들 앞에서 오토봇에게 전향하라고 했으니 그럴 만했다. (사실 이런 일이 전례가 없던 건 아니었다. 일전에 디셉티콘의 항공참모가 오토봇 측의 한 메크에게 다시 전향하라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구멍난 인원수 맞추기용으로 대동한 상급 병사들끼리 서로 알아보고 즉석으로 전향해버린 사례도 여럿 있었다.)
극대노 상태인 프라울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데이터 패드를 종잇장 흔들듯 휘적거리며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프라울이 간과했던 건, 디셉티콘측이 이미 모든 데이터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새 IP를 바꿔 완벽한 알리바이도 만들어냈다. 이 모든 게 옵틱이 아름다운 디셉티콘 정보참모의 공이었다.
-증거있어? 증거 있냐고!
-메크가 상도덕이 있지······!
상도덕이 있니 없니를 논하는 동안에도 재즈는 회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데이터 패드를 보며 멍을 때리다가 내용을 놓치거나 스스로도 모르게 시선이 사운드웨이브를 향해있었다.
정작 사운드웨이브는 회의가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그를 봐주지 않았다. 좀전만 해도 먼저 바이저를 벗고 옵틱을 마주쳤으면서 매몰차기 그지없었다.
'전향을 하라니. 머리 좀 썼는데······.'
순간 혹했던 건 사실이다. 그를, 아니 그의 얼굴을 더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선명한 과거를 추억하고 싶었다. 사운드웨이브가 약간 오해를 하고 있더라도 어쨌거나 그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큰 뜻을 가지고 있는 건 맞으니, 아마 그걸 노리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즈는 과거를 그리워할지언정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었다. 소년병들에게 자신이 아는 평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이가 되고자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 이타적인 결의는 결코 매몰되지 않는다. 디셉티콘 사운드웨이브는 이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테지.
재즈는 옵틱을 꾹 감았다. 피곤했다. 어차피 오토봇 기지로 돌아가면 프라울과 라쳇이 자신을 앉혀두고 오만 소리를 다 할 게 뻔한데, 체력을 아껴놓는 게 좋았다. 무슨 말을 속삭거렸냐느니, 정보를 넘겨준 게 아니냐느니······. 운이 나쁘면 옵티머스까지도 한소리 할지도······.
―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큰 꾸지람이 없다.
첫 며칠은 신났다. 지루한 잔소리와 꼬치꼬치 물어오는 질문이 없어서 역시 다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실제로 전향 의사가 없는 재즈 입장에선 별 일 아니기도 했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달되는 임무도 없고, 데이터 서류작업만 내려와서 며칠 째 기지 밖으로 못 나가고 있었다.
'말이 안 통할 것 같으니 아예 접촉을 원천차단한 거로구만~'
내가 그 정도로 말이 안 통해보이는 타입이던가? 재즈는 피식 웃으며 마지막 서류작성을 끝냈다. 다들 꽉 막힌 메크는 아니니 곧 다시 평소처럼 돌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기지 내에서 요양해야겠다고 생각한 재즈는 정확히 열흘만에 생각을 바꿨다.
"이 주면 많이 버틴 거지! 이게 몇 번째 반려야?"
"아무튼 안돼. 절대 안돼! 나돌아다닐 생각은 하지도 마!"
"에이, 그러지말구. 프라울~ 네가 보기엔 내가 바깥에서 디셉티콘이랑 붙어먹을 메크같아?"
"그래, 이 새끼야! 그러니까 어디 갈 생각말고 곱게 개인 쿼터로 돌아가!"
벌써 73번째 외출요청 기각이었다. 재즈는 제 쿼터 내부를 빙빙 돌며 답답함을 삭혔다.
몰래 잠깐 나갈라하면 어디서 보고 있는 건지 오만 데서 스펙 옵스 대원들이 튀어나오고, 그렇게 쿼터로 잡혀 돌아오면 본인 담당이 아닌 막중한 양의 서류작업이 안겨진다. 차라리 말로 뭐라할 때 얌전히 돌아가는 게 신상에 좋았다.
디셉티콘 정보참모와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전향할 의사가 없다고 몇 번을 말해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최근 부쩍 진영을 뛰어넘은 사랑의 탈영병들이 늘어나기도 했고, 그들은 이미 재즈와 사운드웨이브가 남들 앞에서 헬름을 맞대며(사실 콧날조차 닿지도 않았는데!) 은밀한 밀어(너 내 얼굴 좋아하지? 전향하면 계속 보여줄게~)를 속삭이는 걸 1열에서 직관했으니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어느정도 재즈 본인의 업보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자판 두드리는 건 이제 지쳤다. 자유로운 영혼인 그는 도저히 이 무료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 그를 차분하기 만들어줄 게 필요했다.
재즈는 지끈거리는 헬름을 문지르다가 문득 누군가를 떠올렸다. 본인을 이 상황에 처하게 한 당사자이자, 이젠 발칙하게도 허니트랩까지 시도하는 이쁜이를.
아직도 시스템이 만들어낸 환상같았다. 이쪽을 향해 미소짓고, 울지 말라며 다정한 목소리로 눈가를 쓸어주다니. 그의 옵틱이 오로지 저를 향하고,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걱정'이라는 감정이 깃들던 순간이 거짓이 아니라니.
본인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자가 아닌, 적에게, 그것도 자신에게 이타심을 보이다니.
아주 오래 전이다. 소강상태로 접어든 전장에서 그가 울고 있는 자신의 카세티콘을, 음성변조된 모노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만약 방해받지 않았다면, 사운드웨이브는 그때처럼 이번엔 자신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려주었을까?
재즈는 잠시 옵틱을 감고 사운드웨이브가 그 목소리로 저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그러자 동체를 녹일 듯이 뜨겁게 달궈진 스파크가 수천 갈래로 뻗어나갔다. 기지를 나가지 못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답답함이 그를 짓눌렀다. 동체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아······."
재즈는 인정했다. 사운드웨이브, 그는······ 생각보다 조금 더 자신의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단지 페이스 플레이트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날 밤, 재즈가 떠올린 건 옛 인터페이스 파트너들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걱정어린 표정을 한 사운드웨이브였다.
재즈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날들을 보내는 동안 사운드웨이브는 다른 의미로 바쁘게 지냈다.
그는 허니트랩 전략의 성공률을 올리기 위해 공을 들였다. 재즈라는 한 메크의 사적인 면을 면밀히 파악하려 오토봇들을 많이 잡아들였고, 그들의 브레인 모듈을 무력화시켜 메모리 시스템을 뒤졌다.
사이버트론 전쟁 피난민일지라도 재즈와 접촉이 있었을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들였다. 그의 희생양이 된 메크들 중에는 재즈의 현동료부터, 아주 오래전 재즈에게 구해진 전쟁 피난민, 재즈와 접점이 있던 디셉티콘 전향병, 재즈의 옛이야기를 즐겨듣던 소년병, 전쟁 전 재즈의 오랜 지인, 재즈의 옛 인터페이스 파트너까지 다양하게도 있었다.
그리고 웬만해선 산 채로 다시 수감소로 넣어지는 오토봇들과는 다르게 피난민은 그의 시술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이 메모리를 재생하는 동안 스파크 과부하로 죽거나 불구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사운드웨이브는 쓸모없어진 메크의 동체를 실험체가 부족하다는 과학장교의 연구실로 보냈다.
-와, 이거 나 주는 거야? 그래도 돼?
-여기는 재즈. 목표물을 찾지 못했다. 복귀허가를 요청한다. 반복한다······
-정말 둘이 콘적스 엔듀라를 맺는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미쳤어? 제정신이야? 재밌겠다! 나도 같이 가!
-알잖아, 내가 그런다고 안 할 성격 아니라는 거~
-좋아, 항복― 항복!
-괜찮은 거야? 라쳇한테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토봇 소속 재즈 중위입니다. 사이버트론 전쟁 피난민이십니까?
-올스파크에 맹세코 거짓 한 톨 없어!
-그래서 말이야······ 도색을 새로 하고 나면 꼭 옆에 있던 레이싱장을 갔었거든······.
-원래 저쪽에는 커다란 탑이 하나 있었죠. 예, 이젠 흔적도 없지만요. 지금은 그렇지만, 한때는 아이아콘의 명물이라고도 불렸었던 건데···.
-날 좋아한다고? 이거 쑥스러운걸.
수백 시간에 걸쳐 재즈를 분석한 결과는 꽤 유의미했다. 재즈라는 오토봇은 사운드웨이브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메크였다.
재즈는 만인의 사랑과 호감을 받는다. 모두가 재치있고 긍정적인 그를 좋아한다.
그는 때때로 동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희생정신을 불태우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리더쉽을 선보이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듬직한 면모를 드러냈다.
또, 믿음이 가는 자에게 가끔은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겐 철옹성같은 굳은 의지를 보였다. 유치하고 가벼운 태도를 보이지만 뒤끝이 길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향한 원망이나 앙금을 대화로 풀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었다.
무엇보다······ 전쟁을 끝내고 소년병들에게 평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은 수십 번은 돌려보았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평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타적인 태도는 사운드웨이브의 논리 회로를 녹아내리게 만들었지만, 끝끝내 그를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타인이 삶의 동기가 되는 건 비논리적이지만, 동시에 효율적이다. 디셉티콘이 이에 영향을 받는다면······.'
사운드웨이브는 순수하게 그에게 감명받았다. 특히 이타적인 면모를 높게 샀다. 그의 그런 면모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쭉 현재진행형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처음 본 상대를 구하기 위해 몸바쳐 희생할 수 있는 메크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물론 오토봇들은 대부분이 그런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운드웨이브는 특별히 재즈에게 집중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들 사이에서도 굴하지 않고 가장 빛나는 존재인 그가 마음에 들었다.
재즈는 디셉티콘으로 와야 한다.
그의 빛이 이곳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궁금하지 않은가? 그 빛은 이곳에서 퇴색될 것인지, 아니면 주변의 어둠을 집어삼킬 것인지. 자신은 그 빛을 감내해낼 수 있을지, 감내하지 못하고 소멸될 것인지.
사운드웨이브는 비논리적으로 결정하고 논리적으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어두운 쿼터 속, 빛이라고는 재즈의 모습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는 수십 대의 모니터들뿐이었다. 그 한가운데 앉아있는 메크는 모니터들이 발산하는 빛을 받는데도 여전히 어두웠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닌가.
트포 재즈사웨 약젯파스스
서로의 이타심에 제대로 폴인럽~하고 점점 변화하는 걸 보고 싶음...
진짜 내가 보고 싶은 장면만 써서 개연성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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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ygall.com/615037401 압해2
설정날조?많음ㅈㅇ 보고싶은것만씀ㅈㅇ 용어잘모름ㅈㅇ
"재즈, 사운드웨이브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호감을 가지고 있음. 확실한 검증을 위해 다시 한번 페이스 플레이트를 드러냈었음."
"잠깐, 또?"
"······재즈가 먼저 요청함. 그 결과, 아주 확실한 근거 두 가지를 도출해냄. 첫 번째 근거, 지난 일 대 일 전투에서 대화를 나눈 순간의 전파의 파동과 스파크의 소리를 분석함."
일렬로 앉은 카세티콘들이 호오, 하며 흥미롭게 모니터를 주시했다. 사운드웨이브가 버튼을 누르자 카세티콘들(정확히는 럼블과 프렌지의 유치한 취향이 반영된)의 수준에 맞춘 동글동글 색색깔의 화면이 나타났다.
맨 위에 큰 글씨로 '첫 번째 근거'라고 적혀있었다. 다시 버튼을 누르자 사운드웨이브와 재즈가 나눈 대화가 재생되며, 그 아래로는 재즈의 전자파와 스파크의 박동, 소리가 대화를 나눔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재즈는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
"두 번째 근거, 사운드웨이브가 페이스 플레이트를 드러내자 극명한 감정의 변화를 보임."
이번엔 모니터에 사운드웨이브의 시점으로 세척액을 흘리는 재즈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영상은 사운드웨이브가 재즈의 세척액을 닦아주기 직전에 끊어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무한반복되었다.
"따라서, 재즈가 상관에게 페이스 플레이트에 관해 함구한 것은 호감이 가는 이의 새로운 모습을 홀로 독점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함."
"어떡해, 일리있어······!"
럼블이 충격적이라는 듯, 립 플레이트를 서보로 막고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디셉티콘 정보부 휘하 메크들의 허니트랩 전략 결과물을 근거로 하여 볼 때, 허니트랩 전략 사용시 최소 오토봇의 기밀정보부터 크게는 오토봇 재즈의 전향을 기대할 수 있음."
"결론. 못 죽인다는 것. 오토봇!"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즈소우가 날카롭게 외쳤다. 사운드웨이브는 카세티콘들을 바라보았다. 사실상 럼블과 프렌지를 제외한 다른 카세티콘들은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두 서보를 꼬고 엎드려있던 래비지가 조용히 선두로 립 플레이트를 열었다.
"내가 봤을 때 재즈라는 오토봇은 사적인 감정에 흔들릴 메크가 아닌데."
"동감한다. 금방 마음을 정리할 것이다."
"먼저 페이스 플레이트를 보여달라고 한 것도 하나의 근거가 되기는 하지만······ 이런 거 해본 적 있어······?"
"허니트랩. 불필요."
당연히 카세티콘들의 반발도 생각했다.
하지만 사운드웨이브는 오늘 이 발표를 위해 이제껏 럼블과 프렌지가 썬더크래커의 쿼터에 놀러가는 것을 방관해 왔었다. 예상대로 럼블과 프렌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야! 오토―멍청이들은 하나같이 다 마음이 여려서 절대 정리 못할걸?"
"맞아! 보스의 페이스 플레이트면 충분히 성공해!"
카세티콘들의 언쟁이 시작되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어차피 어느쪽이 이길지 알고 있었다.
"우리가 전쟁 하루이틀 해? 그거 안된다니까!"
"허니트랩에 넘어와서 디셉티콘으로 전향한 메크도 많거든! 예를 들어, 어······ 많아! 그치, 럼블?"
"맞아! 썬더크래커가 보여준 데이터패드에는 전향한 오토봇들이 많이 나왔어!"
"그냥 많다고 하면 다냐! 확실한 이름을 대!"
"음······ 옵티머스 프라임?"
"누가 쟤네 그 자식 쿼터에 들어가게 둔 거야?"
지레 찔린 사운드웨이브는 목청을 높히기 시작한 카세티콘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모니터를 응시했다. 모니터 속 재즈는 울고 있었다.
[······.]
사운드웨이브는 카세티콘들이 울 때면 재즈에게 그랬던 것처럼 디짓으로 다정하게 눈가를 쓸어주고 울지 말라며 속삭이곤 했다.
오래된 인연과 스파크 본딩으로 인해 그들이 고통스러우면 사운드웨이브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전쟁이 수백만 년간 지속되며 그들도 어느 순간부터 더는 울지 않았다. 강인해진 것이다. 그래서 사운드웨이브는 더는 우는 이를 달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재즈의 눈가를 쓸어주고 부드럽게 달래어준 건 충동에 불과했다. 눈물에 약해서, 그래서 카세티콘을 겹쳐본 것뿐이다. 그날 희미하게 느껴졌던 스파크의 통증이 이를 증명했다. 그렇게 사운드웨이브는 자기합리화를 마쳤다.
그 사이 허니트랩― 정확히는 재즈의 생사여부를 둔 언쟁은 당연히 럼블과 프렌지의 승리로 돌아갔다. 나머지 카세티콘들은 립 플레이트를 비죽거리면서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레이저비크의 옵틱이 흉흉했다. 안되기만 해봐라. 럼블이랑 프렌지 너네 긴장해라.
"협조 감사함. 실망시키지 않겠음."
럼블과 프렌지가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상한대로 상황이 끝나니 딱 시간이 맞았다. 사운드웨이브는 카세티콘 하나하나를 다 안아주며 자신이 없는 동안 사고를 치거나 쿼터 밖을 나가지 말라며 당부했다. 인사가 다 끝나고 나서야 그는 바이저와 마스크를 쓰고 쿼터를 나섰다.
쿼터문이 닫기기 전, 그가 깜빡했다는 듯 살짝 뒤를 돌곤 말했다.
[럼블, 프렌지: 앞으로 썬더크래커의 쿼터 방문을 금지함.]
*
[사운드웨이브: 재즈가 함께해주길 원함.]
"뭐······ 라고, 이쁜아?"
재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웃는 페이스 플레이트로 헬름을 갸웃거렸다. 사운드웨이브는 친절히 다시 설명했다.
[재즈: 사운드웨이브에게 사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음. 사운드웨이브: 마찬가지.]
"오우."
[따라서 오토봇 재즈가 디셉티콘으로 전향하길 원함.]
"너무 화끈한 제안인데."
재즈가 푸하하 웃으며 사운드웨이브의 동체를 장난스레 툭 쳤다. 그는 헛숨을 들이키더니 다시 웃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아무말도 못 들은 척 자신을 지나치려는 재즈의 앞을 막고 동체를 숙여 시선을 아주 가까이, 그리고 나란히 했다. 그리고 그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재즈: 사운드웨이브의 페이스 플레이트를 좋아함. 사운드웨이브: 재즈가 전향할시 페이스 플레이트를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음.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해줄 것을 약속함. 재즈: 현명한 메크.]
"······."
찰카닥, 하고 사운드웨이브의 바이저가 해제된다. 그의 노란 옵틱을 마주한 재즈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바이저를 해제했다. 헬름이 어찌나 가까운지 두 옵틱의 거리는 겨우 디짓 두 개가 들어갈 정도였다.
두근―
두근―
두근―
역시나 재즈의 호흡과 스파크의 박동이 빨라진다. 파장도 불규칙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사운드웨이브는 마지막을 장식하듯 옵틱을 살짝 휘며 아주 옅게 웃었다.
그 눈웃음에 반대로 재즈의 옵틱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동요하고 있었다. 사운드웨이브는 그가 전향하겠다는 말을 할 가능성을 28%으로 잡았다.
전향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72%의 가능성 중 5%는 재즈 본인의 의지 때문이고, 나머지 67%는 이곳에 있는 다른 오토봇들의 방해였다.
만약 지금 상황이 디셉티콘―오토봇간의 정기회의가 아니라 교전중이었다면 재즈의 전향 가능성은 89%였을 것이다. 사운드웨이브는 내심 아쉬웠지만 원래 허니트랩은 모든 가능성에 걸어보아야 하는 것. 이번으로 되지 않는다면 다음이 있었다. 디셉티콘의 정보참모는 아주 끈질기니까.
"홀리몰리 마이 프라이머스······."
싸늘한 회의실 속, 서로 헬름을 가까이 한 두 메크를 두고 오토봇 진영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재즈는 그 중얼거림으로 정신을 차린 것인지 옵틱을 슬 찌푸리며 동체를 물렸다. 사운드웨이브도 바이저를 다시금 장착하고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재즈가 바이저도 쓰지 않은 채 느글느글 웃는다. 그리곤 두 서보를 쫙 펼치며 말한다.
"오······ 사운더스, 사운디, 이쁜아― 차라리 네가 오토봇으로 전향하는 게 어때? 보아하니······ 날 꽤나 마음에 둔 것 같은데."
그 말에 디셉티콘 진영의 누군가가 허! 하고 비웃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사운드웨이브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재즈: 사운드웨이브의 제안에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음. 전향을 제안함. 먼저 대답해줄 것을 요구함.]
"이쁜아, 지금 말 돌리는 거야?"
각 진영의 정보를 담당하는 중요한 두 메크가 서로 전향을 제안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거절하지 않은 채 상대의 대답을 기다린다.
회의실에 또다시 침묵과 함께 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이윽고 오토봇, 디셉티콘 할 것 없이 무기를 꺼내 겨눴다.
디셉티콘은 사운드웨이브를, 오토봇은 재즈를.
둘 중 하나라도 전향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자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자비없이 스파크가 꺼지게 될 것이다.
[사운드웨이브: 전향하지 않음.]
"당연하지만 나도 전향할 생각은 일체 없어."
둘은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재즈는 태연한 얼굴과 그렇지 못한 스파크 박동을 보이며 본인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느새 바이저도 다시 장착한 채 느긋하게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데이터패드를 만지고 있었다.
사운드웨이브 또한 디셉티콘 정보참모의 자리로 향한 순간이었다. 널레이를 거둔 스타스크림이 냅다 그를 끌고 회의장 밖으로 향했다. 스타스크림이 그를 거칠게 벽으로 밀쳤다. 사운드웨이브는 간실히 비틀거리며 벽에 부딪히는 불상사만은 면할 수 있었다. 그가 문이 닫힌 것을 확인 후 짜증스레 물었다.
"너 진짜 저 새끼 좋아하냐?"
[부정. 허니트랩 전략 사용중임.]
그는 잠시간 다행이라는 듯 숨을 내뱉다가 이내 팔팔 뛰며 분노를 표출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허니트랩을 해? 내가 뭐, 정보부는 아니라서 잘 모르긴 한데··· 허니트랩이라는 게 상대 비위 맞춰주면서 살살 녹여먹는 거라는 것 정도는 알거든? 그런게 대체 네가 저 오토봇 녀석 니즈를 충족해줄 만한 게 뭐가 있다고?"
[페이스 플레이트.]
그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사운드웨이브가 풀어서 설명했다.
[재즈: 사운드웨이브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큰 호감을 가짐.]
"······저 새끼 페티시 이상한 거 알면서 이거 하는 거냐?"
아무래도 스타스크림은 그가 말하는 '페이스 플레이트'가 바이저와 마스크 아래에 있는 진짜 페이스 플레이트를 말하는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운드웨이브는 이렇게 된 김에 자신이 타인에게 맨얼굴을 드러냈다는 걸 얘기하고 싶지 않아 오해를 정정해주지 않았다.
"좋아. 그래. 네가 허니트랩 작전을 쓰든 내 알 바는 아니거든? 그런데 정도가 있지. 아까 그건 선을 넘었어! 디셉티콘들 앞에서 그걸 왜 고민을 처하고 있어? 구멍 숭숭 난 고철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 메가―깡통이랑 가까이 있다가 너도 머리가 깡통이 되어버린 거냐?"
[······비논리적으로 행동한 것을 인정함. 사과하겠음. 하지만 고민한 척을 한 것은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한 작전 중 하나였음. 그리고 스타스크림: 불경함. 스타스크림 또한 전적이 있음.]
"······아니, 그걸 왜 우리까지 착각하게 만드냐고! 차라리 귀뜸을 좀 해주던가!"
[적절한 타이밍이 없었음. 카세티콘들과 협의된지 얼마 되지 않음.]
네 상관이 카세티콘보다 우선순위 아래냐! 스타스크림은 본인의 콕핏을 탕탕 치며 답답해했다. 여간 억울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수습은 어떻게 할 건데? 다른 디셉티콘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스타스크림: 오토봇 제트파이어와 비밀 연애중임.]
돌연 그가 립 플레이트를 닫았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사운드웨이브를 쳐다봤다.
"너, 너 그걸 어떻게!"
[디셉티콘의 모든 회신은 사운드웨이브를 거쳐감.]
"이런 썅!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그 얘기가 왜 나오냐고 소리지르긴 했지만, 총명한 항공참모는 역시나 사운드웨이브가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알아차렸다.
"일은 네가 저질러놓고 나보고 수습하라고?"
[스타스크림: 사운드웨이브가 해당 작전을 실행하는 동안 방해가 될 만한 유언비어가 퍼지지 못하도록 행동해주길 바람.]
스타스크림은 환멸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사운드웨이브: 스타스크림이 반역 실패 후 메디컬 베이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작성되지 않은 모든 서류를 처리함. 매일. 해당 제안을 거부할 경우 로드 메가트론께 그간 항공참모의 저조했던 업무효율과 지속되는 반역모의의 상관관계로 오토봇 제트파이어와의 관계를 긴밀히 엮어 보고할 것임.]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알아서 하면 되잖아······. 이상한 소문 안 나게, 졸개들 사이에서 뒷말 안 나오게 하라 이거지?"
스타스크림의 평소 성질머리를 생각했을 때 이정도 협박에서 끝난 게 행운이었다. 두 메크가 서로에게 보낸 사랑이 담긴 회신를 읽을 필요가 없어져서 다행이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스타스크림의 립 플레이트가 사운드웨이브의 오디오 리셉터에 가까워진다. 그의 잘 빠진 디짓이 흠집없는 카세트 사출구를 툭툭 건드렸다.
"허니트랩인지 뭔지 계속할 거면, 네 상관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가져오는 게 좋을 거야."
[사운드웨이브: 유념하겠음.]
회의는 언제와 같이 고성방가와 데이터 패드가 날아들었다. 애초에 이 '회의'라는 게 중립구역에서 각 진영의 수장과 여러 간부들이 모여 서로 얼마나 좆같은지 화를 내는 자리에 가깝긴 했지만, 오늘따라 오토봇은 더 열정적으로 이 회의의 존재의의를 다하는 중이었다. 중립구역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총탄이 벽에 박혔을 것이다.
이번에 화두되었던 것 중 하나가 디셉티콘측에서 오토봇 기지의 메인 시스템을 무려 4분간 통째로 장악했던 것인데, 이는 오토봇의 보안 시스템이 몹시 취약하다는 걸 만천하에 공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이미 내부에서 사전에 언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사안이었다.
모두들 회의 시작 전의 그 일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역시 성질이 곤두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아무래도 이쁜이가 프라울을 자극한 모양이네.'
오토봇들 앞에서 오토봇에게 전향하라고 했으니 그럴 만했다. (사실 이런 일이 전례가 없던 건 아니었다. 일전에 디셉티콘의 항공참모가 오토봇 측의 한 메크에게 다시 전향하라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구멍난 인원수 맞추기용으로 대동한 상급 병사들끼리 서로 알아보고 즉석으로 전향해버린 사례도 여럿 있었다.)
극대노 상태인 프라울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데이터 패드를 종잇장 흔들듯 휘적거리며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프라울이 간과했던 건, 디셉티콘측이 이미 모든 데이터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새 IP를 바꿔 완벽한 알리바이도 만들어냈다. 이 모든 게 옵틱이 아름다운 디셉티콘 정보참모의 공이었다.
-증거있어? 증거 있냐고!
-메크가 상도덕이 있지······!
상도덕이 있니 없니를 논하는 동안에도 재즈는 회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데이터 패드를 보며 멍을 때리다가 내용을 놓치거나 스스로도 모르게 시선이 사운드웨이브를 향해있었다.
정작 사운드웨이브는 회의가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그를 봐주지 않았다. 좀전만 해도 먼저 바이저를 벗고 옵틱을 마주쳤으면서 매몰차기 그지없었다.
'전향을 하라니. 머리 좀 썼는데······.'
순간 혹했던 건 사실이다. 그를, 아니 그의 얼굴을 더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선명한 과거를 추억하고 싶었다. 사운드웨이브가 약간 오해를 하고 있더라도 어쨌거나 그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큰 뜻을 가지고 있는 건 맞으니, 아마 그걸 노리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즈는 과거를 그리워할지언정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었다. 소년병들에게 자신이 아는 평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이가 되고자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 이타적인 결의는 결코 매몰되지 않는다. 디셉티콘 사운드웨이브는 이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테지.
재즈는 옵틱을 꾹 감았다. 피곤했다. 어차피 오토봇 기지로 돌아가면 프라울과 라쳇이 자신을 앉혀두고 오만 소리를 다 할 게 뻔한데, 체력을 아껴놓는 게 좋았다. 무슨 말을 속삭거렸냐느니, 정보를 넘겨준 게 아니냐느니······. 운이 나쁘면 옵티머스까지도 한소리 할지도······.
―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큰 꾸지람이 없다.
첫 며칠은 신났다. 지루한 잔소리와 꼬치꼬치 물어오는 질문이 없어서 역시 다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실제로 전향 의사가 없는 재즈 입장에선 별 일 아니기도 했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달되는 임무도 없고, 데이터 서류작업만 내려와서 며칠 째 기지 밖으로 못 나가고 있었다.
'말이 안 통할 것 같으니 아예 접촉을 원천차단한 거로구만~'
내가 그 정도로 말이 안 통해보이는 타입이던가? 재즈는 피식 웃으며 마지막 서류작성을 끝냈다. 다들 꽉 막힌 메크는 아니니 곧 다시 평소처럼 돌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기지 내에서 요양해야겠다고 생각한 재즈는 정확히 열흘만에 생각을 바꿨다.
"이 주면 많이 버틴 거지! 이게 몇 번째 반려야?"
"아무튼 안돼. 절대 안돼! 나돌아다닐 생각은 하지도 마!"
"에이, 그러지말구. 프라울~ 네가 보기엔 내가 바깥에서 디셉티콘이랑 붙어먹을 메크같아?"
"그래, 이 새끼야! 그러니까 어디 갈 생각말고 곱게 개인 쿼터로 돌아가!"
벌써 73번째 외출요청 기각이었다. 재즈는 제 쿼터 내부를 빙빙 돌며 답답함을 삭혔다.
몰래 잠깐 나갈라하면 어디서 보고 있는 건지 오만 데서 스펙 옵스 대원들이 튀어나오고, 그렇게 쿼터로 잡혀 돌아오면 본인 담당이 아닌 막중한 양의 서류작업이 안겨진다. 차라리 말로 뭐라할 때 얌전히 돌아가는 게 신상에 좋았다.
디셉티콘 정보참모와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전향할 의사가 없다고 몇 번을 말해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최근 부쩍 진영을 뛰어넘은 사랑의 탈영병들이 늘어나기도 했고, 그들은 이미 재즈와 사운드웨이브가 남들 앞에서 헬름을 맞대며(사실 콧날조차 닿지도 않았는데!) 은밀한 밀어(너 내 얼굴 좋아하지? 전향하면 계속 보여줄게~)를 속삭이는 걸 1열에서 직관했으니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어느정도 재즈 본인의 업보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자판 두드리는 건 이제 지쳤다. 자유로운 영혼인 그는 도저히 이 무료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 그를 차분하기 만들어줄 게 필요했다.
재즈는 지끈거리는 헬름을 문지르다가 문득 누군가를 떠올렸다. 본인을 이 상황에 처하게 한 당사자이자, 이젠 발칙하게도 허니트랩까지 시도하는 이쁜이를.
아직도 시스템이 만들어낸 환상같았다. 이쪽을 향해 미소짓고, 울지 말라며 다정한 목소리로 눈가를 쓸어주다니. 그의 옵틱이 오로지 저를 향하고,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걱정'이라는 감정이 깃들던 순간이 거짓이 아니라니.
본인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자가 아닌, 적에게, 그것도 자신에게 이타심을 보이다니.
아주 오래 전이다. 소강상태로 접어든 전장에서 그가 울고 있는 자신의 카세티콘을, 음성변조된 모노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만약 방해받지 않았다면, 사운드웨이브는 그때처럼 이번엔 자신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려주었을까?
재즈는 잠시 옵틱을 감고 사운드웨이브가 그 목소리로 저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그러자 동체를 녹일 듯이 뜨겁게 달궈진 스파크가 수천 갈래로 뻗어나갔다. 기지를 나가지 못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답답함이 그를 짓눌렀다. 동체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아······."
재즈는 인정했다. 사운드웨이브, 그는······ 생각보다 조금 더 자신의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단지 페이스 플레이트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날 밤, 재즈가 떠올린 건 옛 인터페이스 파트너들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걱정어린 표정을 한 사운드웨이브였다.
재즈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날들을 보내는 동안 사운드웨이브는 다른 의미로 바쁘게 지냈다.
그는 허니트랩 전략의 성공률을 올리기 위해 공을 들였다. 재즈라는 한 메크의 사적인 면을 면밀히 파악하려 오토봇들을 많이 잡아들였고, 그들의 브레인 모듈을 무력화시켜 메모리 시스템을 뒤졌다.
사이버트론 전쟁 피난민일지라도 재즈와 접촉이 있었을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들였다. 그의 희생양이 된 메크들 중에는 재즈의 현동료부터, 아주 오래전 재즈에게 구해진 전쟁 피난민, 재즈와 접점이 있던 디셉티콘 전향병, 재즈의 옛이야기를 즐겨듣던 소년병, 전쟁 전 재즈의 오랜 지인, 재즈의 옛 인터페이스 파트너까지 다양하게도 있었다.
그리고 웬만해선 산 채로 다시 수감소로 넣어지는 오토봇들과는 다르게 피난민은 그의 시술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이 메모리를 재생하는 동안 스파크 과부하로 죽거나 불구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사운드웨이브는 쓸모없어진 메크의 동체를 실험체가 부족하다는 과학장교의 연구실로 보냈다.
-와, 이거 나 주는 거야? 그래도 돼?
-여기는 재즈. 목표물을 찾지 못했다. 복귀허가를 요청한다. 반복한다······
-정말 둘이 콘적스 엔듀라를 맺는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미쳤어? 제정신이야? 재밌겠다! 나도 같이 가!
-알잖아, 내가 그런다고 안 할 성격 아니라는 거~
-좋아, 항복― 항복!
-괜찮은 거야? 라쳇한테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토봇 소속 재즈 중위입니다. 사이버트론 전쟁 피난민이십니까?
-올스파크에 맹세코 거짓 한 톨 없어!
-그래서 말이야······ 도색을 새로 하고 나면 꼭 옆에 있던 레이싱장을 갔었거든······.
-원래 저쪽에는 커다란 탑이 하나 있었죠. 예, 이젠 흔적도 없지만요. 지금은 그렇지만, 한때는 아이아콘의 명물이라고도 불렸었던 건데···.
-날 좋아한다고? 이거 쑥스러운걸.
수백 시간에 걸쳐 재즈를 분석한 결과는 꽤 유의미했다. 재즈라는 오토봇은 사운드웨이브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메크였다.
재즈는 만인의 사랑과 호감을 받는다. 모두가 재치있고 긍정적인 그를 좋아한다.
그는 때때로 동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희생정신을 불태우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리더쉽을 선보이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듬직한 면모를 드러냈다.
또, 믿음이 가는 자에게 가끔은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겐 철옹성같은 굳은 의지를 보였다. 유치하고 가벼운 태도를 보이지만 뒤끝이 길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향한 원망이나 앙금을 대화로 풀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었다.
무엇보다······ 전쟁을 끝내고 소년병들에게 평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은 수십 번은 돌려보았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평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타적인 태도는 사운드웨이브의 논리 회로를 녹아내리게 만들었지만, 끝끝내 그를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타인이 삶의 동기가 되는 건 비논리적이지만, 동시에 효율적이다. 디셉티콘이 이에 영향을 받는다면······.'
사운드웨이브는 순수하게 그에게 감명받았다. 특히 이타적인 면모를 높게 샀다. 그의 그런 면모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쭉 현재진행형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처음 본 상대를 구하기 위해 몸바쳐 희생할 수 있는 메크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물론 오토봇들은 대부분이 그런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운드웨이브는 특별히 재즈에게 집중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들 사이에서도 굴하지 않고 가장 빛나는 존재인 그가 마음에 들었다.
재즈는 디셉티콘으로 와야 한다.
그의 빛이 이곳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궁금하지 않은가? 그 빛은 이곳에서 퇴색될 것인지, 아니면 주변의 어둠을 집어삼킬 것인지. 자신은 그 빛을 감내해낼 수 있을지, 감내하지 못하고 소멸될 것인지.
사운드웨이브는 비논리적으로 결정하고 논리적으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어두운 쿼터 속, 빛이라고는 재즈의 모습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는 수십 대의 모니터들뿐이었다. 그 한가운데 앉아있는 메크는 모니터들이 발산하는 빛을 받는데도 여전히 어두웠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닌가.
트포 재즈사웨 약젯파스스
서로의 이타심에 제대로 폴인럽~하고 점점 변화하는 걸 보고 싶음...
진짜 내가 보고 싶은 장면만 써서 개연성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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