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일본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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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1 13:30
노부의 부모님은 최근에 정년 퇴직을 하고 집에서 놀고 계시는데 최근 들어 낙이 하나 생겼겠지. 마치다를 불러서 놀게 하는 거. 별로 잘 먹지도 않으니 음식 해다 먹이는 재미는 없고, 디저트랑 커피 잔뜩 밀어주며 테라스에서 놀라고 하는 거임. 사실 노는 건 아니고 노트북으로 일하는 거지만. 마치다는 평소에도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노트북 앞에 딱 붙어 일만 했음. 노부가 스케줄표 대로 퇴근하는 운 좋은 날이면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지만 보통은 자정을 넘겨서 들어왔음. 그러니 거의 하루 종일 혼자인 마치다에게도 그 집은 놀이터였을듯. 도도한 고양이 두 마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캡슐 커피도 마음껏 마실 수 있고 빵이며 케이크며 좋아하는 디저트가 잔뜩 늘어져 있으니까. 애초에 노부 부모님이 마치다 꼬시려고 그런 거 잔뜩 사다 놓고 연락하심. 반면에 노부는 본가에 거의 안 가겠지. 결혼 전엔 부모님이 호출해야만 3~4개월에 한번 얼굴 슥 비추고 말았을 거임. 스스로 가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되고.
마치다가 낮에 그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걸 노부는 한참동안 몰랐을 거임. 생활 패턴이 안 맞아 길게 대화할 일도 없고 점심 시간에 짬 내서 연락할 여유도 없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노부 퇴근 시간 맞춰서 어머니가 오늘 집에 좀 오라며 연락을 하신 거임. 노부는 의아한 표정으로 답장을 보냈겠지.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이 돌아오자 노부는 거기에 대한 답장을 안 했음. 그냥 심심하신가 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10분 뒤에 다시 진동음이 울림. 서면으로 인터뷰해야 할 게 잔뜩 밀려 있어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던 참이었음. 근데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엔 쌩뚱맞게 마치다 사진이 있었겠지. 고양이랑 같이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 이게 뭐지? 언제 이런 걸 찍으셨지? 하며 그 사진을 확대해 마치다 얼굴만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메시지가 하나 더 들어올듯. '와서 같이 놀아.' 노부는 곧장 전화를 걸었겠지. 어머니가 아니라 마치다에게.
"지금 부모님 집 가있어요?"
"어떻게 알았어? 이따 저녁에 돌아가려고."
"거긴 뭐하러 가요. 당신도 바쁜데..."
"여기 오면 고양이도 있고, 맛있는 것도 많아서... 그래서 여기 자주 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에요?"
"응. 여기 오면 말할 사람도 있고 좋아."
"아... 미안해요. 일찍 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일이 내 마음처럼 잘 안 되네요."
"탓하는 건 아니었어... 신경쓰지 마. 응?"
노부는 인터뷰에 서둘러 답변을 보내고는 본가로 차를 몰았음. 도대체 왜 바쁜 사람을 노인네들 집에 묶어두는지 이해가 안 가다가도 거기에 고양이가 있어서 좋다는 마치다 말에 그냥 그런가보다 싶기도 했겠지. 저녁 8시쯤 집으로 올라가니 마치다는 없고 고양이 두 마리랑 부모님만 노부를 반겼을듯. 현관에 신발은 있었는데 분명히. 자주 좀 오라는 소리를 들으며 식탁 앞에 앉았지만 눈은 계속 마치다만 찾았겠지. "저녁 먹고 졸리다고 방에 들어갔어. 네 방에." 노부는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기는 싫어 일단 식탁 앞에 계속 앉아 있었을듯. 어머니가 타주신 차에 디저트를 먹고 있는데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리에 스쳤을 거임.
"저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가 뭐예요? 여기에 오면 맛있는 게 많아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집에선 군것질하는 거 못 봤는데."
어머니는 잠깐 생각하시더니 어깨를 으쓱하셨음. 다 좋아한다고. 진짜 단맛이 나는 건 다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카페 가서 돈 쓰느니 여기 와서 커피 마시고 디저트 먹고 저녁도 먹으면 얼마나 좋냐면서 매우 흡족해 보이셨지. 하나뿐인 아들이 무뚝뚝해도 너무 무뚝뚝해서 항상 외로웠던 분인데 집안에 마치다가 들어온 뒤로는 얼굴이 환해진 것 같았음.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딱히 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기분탓이려나 했더니 착하고 사랑스러운 마치다 덕이었던 거지. 마치다는 그런 사람이었음.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아무 걱정 없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만 자고 일어나요. 이제 집에 가야죠."
깜깜한 방 안에서 마치다의 이마를 어루만졌음. 노부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뜬 마치다는 비몽사몽한 채로 노부를 당겼지. 제 옆으로. 대학 시절 혼자 쓰던 침대라 비좁았지만 둘이 찰싹 붙어 누우니 괜찮았음. 마치다가 품으로 계속 파고 드니 더이상 일어나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을듯.
"여기에서 잘 거예요? 엄청 불편할 텐데. 이렇게 좁잖아요."
"으응..."
사실 잠에 완전히 취해있지는 않았음. 아무래도 자기 집이 아니니 깊이 잘 수도 없었고. 그런데 그냥 잠에 못 이기는 척 계속 널브러진 이유는, 이렇게 있다가도 노부는 언제나 갑자기 튀어나갈 사람이었기 때문임. 호출벨이 울리면, 때로는 눈인사 조차 없이 그냥 등만 보이고 떠나버렸으니까. 집으로 돌아가자며 어쩌고 저쩌고 부산 떨다가 호출이 울릴까봐 싫었던 거임. 차라리 1초도 낭비하지 말고 계속 이대로 멈춰 있다가 호출벨이 울리면 좀 나을 것 같았음. 노부는 그 속도 모르고, 마치다가 피곤한 줄만 알았지. 그래서 그냥 그대로 잠들기로 했음. 대학교 졸업한 뒤로는 이 방에서 잔 일이 없었겠지. 언제나 밤이 되기 전에 돌아갔을 거니까. 그런 침대에 이젠 부인과 함께 몸을 구기고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음.
오랜만에 호출 소리 없이 푹 자고 일어난 노부는 좁은 침대 때문에 등이 결렸을 거임. 그래도 제 옆에서 세상 모르고 잠든 마치다를 보니 미소가 지어졌겠지. 이게 얼마만에 느끼는 여유인지. 노부는 괜히 방 문 너머 거실쪽을 힐끔거리고는 마치다 뺨과 목에 뽀뽀를 했음. 이불 아래로 팔을 더 깊이 넣어서 마른 허리를 감싸 안기도 하고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었지. 살짝 큰 숨을 내쉬며 마치다가 눈을 떴고 이내 버둥버둥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겠지. 아무래도 어른들 있는 집이라 좀 그랬음. 노부는 머쓱하게 웃으며 잘 잤냐고 인사했지. 마치다는 또 부리나케 제 남편 곁을 벗어난 게 미안해서 이내 다시 앉을 거임.
"아침에 같이 눈 뜨는 거 오랜만인 것 같아... 그치."
"그러게요. 좁아서 불편했죠."
뺨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맞추려던 찰나 고양이가 문을 박박 긁었음. 마치다는 노부에게 고양이를 보여주겠다며 신나게 침대를 또 벗어났음. 노부는 아쉽게 머리를 긁적이겠지. 마치다랑 결혼하기 전부터 여기서 키우던 고양이니 안 보여줘도 된다고, 내가 당신 보다 더 오래 걔네를 봤다고 말하고 싶었을듯. 그래도 신난 모습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고양이 좀 보여달라고 은근 조를 것 같다. 거의 10년만에 집에서 잔 노부 덕에 부모님은 입이 귀에 걸려서 음식 차리고 계실듯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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