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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0 05:05
케이가 쓰러지자 가루베와 류세이는 혼비백산해서 당장 구급차를 부르겠다고 난리쳤지만 료이치로는 창백해진 얼굴로도 침착하게 케이를 바 뒤쪽의 휴게실로 옮기자고 했다. 노부가 케이를 안고 따라가 보자 휴게실은 평소에 가루베와 고토가 쓰는 곳인지 크고 편안한 소파도 있어서 케이를 소파 위에 눕히라고 한 고토는 케이가 몸부림을 쳐도 떨어지지 않도록 1인용 소파도 두 개를 큰 소파에 붙여서 더블베드처럼 만들어놓고 숨을 돌렸다.
"마치다 형 왜 이러는데요, 정말 구급차 안 불러도 돼요?"
"지병 같은 것도 없잖아.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가루베와 류세이는 연신 발을 동동 구르며 모두를 재촉했다. 그러나 노부도 케이를 병원에 데려가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노부가 그랬을 때처럼 갑자기 고토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지나친 고통과 충격으로 실신한 걸 테니까. 노부가 설명을 하려고 했을 때 고토가 고개를 젓더니 케이의 셔츠 단추를 한 개 풀고 손목의 단추도 풀어준 다음 케이의 발치에 앉았다.
"괜찮아. 형은 기억이 조작된 부분도 많지 않아서 금방 깨어날 거야."
"기억이라니?"
류세이는 답답한 듯 목에 감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버리며 짜증을 냈다.
"아까부터 뭘 다들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하는 거야, 사고 조작이니, 기억 조작이니... 설명 좀 해."
노부는 케이가 깨어날 때까지 좀 기다리라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바에 들어온 후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쿠니시타가 차분하게 반박했다.
"사고 조작이라니, 그 교통사고는 조작 같은 게 아니었어."
"아까, 마치다가...!"
류세이는 항변하려고 했지만 쿠니시타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힘이 작용했을 수는 있지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건 아니야. 음주운전이었잖아? 스토킹범이 술을 마시게 하거나, 술먹고 운전대를 잡게 하거나, 납치를 시도하게 하는 걸 누가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인위적이 아니라 사람이 아닌 다른 힘이 개입했다는 거야? 노부는 케이의 손을 잡고 케이의 안색을 살피면서 대화를 반쯤 흘려듣고 있었지만, 쿠니시타의 말에는 저절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그걸 고토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알아?
류세이는 계속 답답해했지만, 고토가 케이가 깨어난 후에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했기 때문에 다들 케이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케이는 정말로 고토 말대로 기억이 조작된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노부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깨어났다. 약 2시간 후에 깨어난 케이는 케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노부를 보고 눈을 깜빡거리다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여전히 케이의 발치에 앉아 있던 고토를 바라봤다.
"형, 머리는 좀 어..."
그리고 고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케이는 고토를 확 끌어안았다. 노부와 고토는 물론이고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당황했지만 케이는 고토를 끌어안고 '타다오미'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울기만 했기 때문에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들어야겠다고 케이가 깰 때만 기다리던 류세이도 놀란 모양이었다. 케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류세이는 다음에 얘기하자며 가루베를 데리고 먼저 떠났고, 휴게실에는 겨우 울음을 그친 케이와 노부, 고토와 쿠니시타만이 남아 있었다.
케이는 고토가 꿀을 타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가져다주자 한 모금 마시고 또 울컥했지만 겨우 울음을 참고 따뜻한 우유를 한 잔 비웠다. 그리고는 빈 손을 꼭 쥐고 고토를 바라봤다.
"타다오미,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우리가 계속 같이 환생하는 게 네 덕분이야?"
고토는 케이의 꿀우유를 가져올 때 같이 가지고 왔던 제 몫의 꿀우유를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노부유키 형도 떠났다는 말을 듣고나서..."
케이에게는 당연히 기억에 없을 일이었다. 케이가 먼저 떠나고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케이가 알 수는 없으니까. 케이는 노부가 자신을 따라 죽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지 흠칫 놀라서 옆에 앉아 있던 노부의 손을 꽉 쥐었다. 노부는 창백해진 케이를 품에 안고 케이의 팔을 토닥였다.
"형이 그때 마지막에 그렇게 썼잖아요. 다음 세상이 있다면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케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고토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말로 우리를 그렇게 원망했는지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불러서 물어봤어요. 그런데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대화는 안 됐어요. 형은 계속 똑같은 말만 하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알고 싶다고."
"...그랬어?"
"네. 노부유키 형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고요."
케이는 또 울컥하는지 여전히 잡고 있던 노부의 손을 또 꼭 잡았다.
"그런데..."
고토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소파 옆 벽에 기대 서 있던 쿠니시타가 고토에게 다가가서 고토의 어깨를 감싸쥐어 주었다. 그것뿐이었지만 고토는 그게 격려가 됐는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삶에서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째서인지 전 아마미야 료이치로가 돼 있었고, 형은 절 기억하지 못했죠. 그리고 형 말고는 아무도 그때를 기억하지조차 못했고요."
"네가 기억을 지운 게 아니야?"
이건 좋지 않았다. 노부가 심각한 얼굴로 고토를 바라봤지만 고토는 고개를 저었다. 노부는 제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얼굴 근육이 무섭게 굳는 게 느껴졌다. 케이의 기억을 건드린 게 고토가 아니었다고? 다른 힘이 개입한 게 아닐까 우려하긴 했는데 그게 진짜였다니. 그렇다면 케이에게서 고토의 기억을 지운 게 좋은 의도였다고 믿을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서 고토의 기억을 지우고, 과거조차 떠올리지 못하게 한 것이 선의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건데.
"전 그런 적 없어요. 제가 한 건 형과 노부유키 형, 그리고 소라 형이랑 다른 사람들을 전부 환생시켜서 다시 만나게 한 것뿐이었어요. 제가 형들을 환생시키려고 했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났었던 사람들은 형과 노부유키 형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다 이 세상을 떠나면 다 함께 환생할 수 있게 한 것뿐이었는데. 실제로 다시 만나고 보니 제가 안배해두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고토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케이와 노부를 바라봤다.
"게다가... 노부유키 형이 매번 그렇게 떠나서... 케이타 형이나 노부유키 형 앞에 제가 고토라고 나설 수도 없었어요. 두 사람이 나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케이는 얼른 고개를 젓고 팔을 뻗어서 다시 고토를 안았다.
"아니야. 네가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어. 네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널 위해서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한 것도 아니었잖아. 우리를 위해서 네 힘을 써 준 건데, 네가 왜 미안해. 미안해하지 마."
노부는 고토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는 케이와 케이의 품에서 울고 있는 고토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토를 바라보고 있던 쿠니시타는 노부의 시선을 눈치채고 노부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다면 의심스러운 건 너뿐인데...
케이가 통화한 상대는 분명히 쿠니시타였다. 그 통화가 끝날 때까지 쿠니시타는 고토를 바꿔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사고가 우연이 아닌 걸 알고 있다'는 말을 쿠니시타는 알아들었단 말이었다. 게다가, 고토는 사고가 발생한 것도 모르고 일하고 있었는데 쿠니시타가 와서 알려줬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까 쿠니시타가 류세이에게 사고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쿠니시타는 사고에 얽힌 정황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쿠니시타가 배후 조종이라고 하기엔 고토의 회고록에서는 쿠니시타에 대한 언급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쿠니시타가 혁명의 자금을 지원했다던가 어떤어떤 일들을 했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꼭 필요한 기록이 아니면 이상할 정도로 언급이 없었다. 아까 노부가 '료이치로'를 보고 고토 타다오미라고 부르고, 고토가 자연스럽게 대답했을 때, 케이는 몰아닥치는 기억으로 실신했었고, 류세이와 가루베는 케이가 실신한 데 놀라서 잠깐은 정신이 없었지만, 노부와 고토가 케이가 곧 깨어날 거라고 했을 때, 두 사람은 분명히 물었었다.
케이는 정말 괜찮은 것이냐든가, 이게 무슨 일이냐든가, 고토 타다오미는 누구냐든가, 그 사고는 어떻게 된 거냐든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류세이와 가루베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도 쿠니시타 이치로는 아무런 의문이나 혼란을 드러내지 않고 시종일관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몬, 따라와. 야오토메 너도 이놈들부터 잡고 나서 난동을 피우든 말든 해. 쿠니시타와 야먀토, 노보루, 가루베도 같이 가지."
고토의 회고록에서도 노부가 그렇게 말했다고 기록돼 있었고, 노부도 분명히 그때 츠지무라와 미야무라, 쿠로사와를 두고 전부 다 데리고 간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고토는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 사라져 버린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쿠니시타가 그때 정말 같이 있었나? 8명의 귀족 난봉꾼들을 다 체포해 왔던 건 분명히 기억하고 있고, 그때 함께 따라간 사람들이 뭘 했는지도 기억했다. 아몬이 어떤 귀족놈의 명치에 주먹을 꽂은 것도 기억하고, 류세이가 다른 귀족의 머리를 후려찼던 것도 기억했다. 야마토가 누군가의 멱살을 잡았고, 노보루가 누군가의 팔을 꺾었었다. 가루베는 다른 귀족 놈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었다.
그런데...
쿠니시타 이치로, 넌 그때 뭐했어?
노부는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마주보고 있는 쿠니시타를 보며 츠지무라가 했던 경고를 떠올렸다. 츠지무라는 당시 '단풍의 기억'을 넘겨주며 고토 타다오미라는 사람이 혁명 당시의 실존 인물인지조차 확실하지 않고, 이 이야기가 정말 있었던 일을 기록한 건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노부는 고토 타다오미가 분명히 혁명단에 실존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혁명 당시의 일이라면 자신도 어느 시점 이전까지는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츠지무라의 경고를 흘려들었다.
절대 흘려들어선 안 됐던 경고까지도.
책이란 게 다 그렇죠. 작가가 모든 정보를 쥐고 있고, 독자는 작가의 정보를 전달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작가의 서술이 진실일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믿지만, 그 서술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사실 작가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정보의 조작이나 누락이 있어도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는 것이 모두 진실이고, 진실의 모든 것이라 믿게 되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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