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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22:28
리차징 베드의 희미한 조명만이 아른거리는 어두운 방.
얼마나 이렇게 있었던 건지, 정신을 차리고 나서도 영 맞춰지지 않는 초점에 고생을 좀 했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자 간만에 힘이 들어간 부품 구석구석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쑤셔왔다. 하지만 이 정도는 긴 세월 일상과도 같았던 것이라 소리없이 동체를 세우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가장 통증이 커야 했을 관절이 누군가 계속 움직여주기라도 한 듯 부드러웠던 덕이 컸다.
그대로 맞은편에서 한창 리차징 중인 검은 헤드의 동체를 물끄럼 바라보다가, 또 고민을 좀 하다가. 저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는 않음을 깨닫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네 앞에 서자 기억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 보이스박스를 재차 점검해야 했지만, 차분히 숨을 고른 뒤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눈 앞의 둥근 헤드를 콩콩 두드렸다.
"디."
외부 자극 탓에 강제로 리차징에서 깨어난 짙은 호박빛 옵틱이 제 목소리에 서서히 선명함을 되찾았다. 드물게 크게 놀란 듯 조리개가 들쭉날쭉 변하다 평소의 크기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는 것은 순수하게 즐거웠다.
"...왜 그래, 팩스."
투덜거림을 얇게 코팅했을 뿐인 깊은 애정이 오디오 리셉터를 통해 스몄다. 피곤을 표현하려는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있지만, 이미 몸을 반쯤 베드에서 뺀 채 그래봤자...
아아. 참으로 다정한 나의ー
"잠깐 나가자.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패애액스, 그게 리차징보다 정말로... 더 중요한 거지?"
나는 아직 답하지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른하게 어깨를 으쓱인 너는 순순히 끌려나왔다. 정확히는 따라왔다는 표현이 맞을 모양새였다. 내가 부드럽게 네 팔뚝을 쥔 채 반 보 앞서 걷긴 했으나 힘은 전혀 주지 않았으니. 오히려 네가 나의 걸음과 행선지를 예측해 반 보 느리게 걷는 것에 가까웠다.
나란히 건물 옥상에 올라섰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좋게 동체를 감쌌다. 아래를 내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높고 맑은 정경이 펼쳐진 이곳은 두꺼운 특수유리로 싸여있는 정교한 요새다. 그렇게 오래 지나진 않은 과거에 내가 위치를 골랐고 네가 자재를 골랐었지. 밤에도 꺼지지 않는 화려한 빌딩의 빛과 눈부시게 흐르는 에너존 줄기가, 이 행성의 단단한 자유와 풍요를 증명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리차징까지 끊어가며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뭔데?"
고단하단 투로 헤드를 짚으며 저를 불퉁하게 바라보는 지금 네 모습이 기대할 때의 그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너는 모르겠지.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그저 닮았을 뿐인, 다른 이의 모습임을 이제 사무치도록 알았다.
"아. 그게, 사실은."
"사실은?"
"...그냥 너랑 밖에 나오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했어."
길게 생각하지 않고 떠올린 문장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었다. 연배에 맞지 않는 일탈이라도 한 것처럼 동체 하부부터 밀려드는 기묘한 해방감에 웃음을 터뜨렸다. 내 언행에 기가 막힌다는 듯 실소한 네가 적당히 화난 그의 표정을 고민하며 나와 옵틱을 맞춰왔고, 그 짧은 틈에 줄곧 엉켜있던 스파크 속 무언가가 툭 끊어져 풀렸다. 너무 긴 세월 서로 들러붙어 녹고 우그러졌던 감정의 뭉치 안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래. 그와 함께 영영 잃었다고 여겼던 사랑 같은 것을.
"거짓말해서 미안해, 메가트론. 그리고..."
고마워.
과거 저였을지도 모를 이의 흉내도 그만둔 채 덧붙이자 네가 굳었다. 그대로 한참을, 묵묵하게 저를 응시하던 옵틱에 서서히 물기가 어리는 것을 나는 책임지듯 버티고 서서 지켜보았다. 깊고 짙은 호박빛.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의 밝고 찬란한 노란 빛과는 분명히 다른.
그 차이가 네 옵틱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는 것을 넌 언제쯤 믿어줄런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더 이상의 변명도 사과도 끼어들게 할 수는 없었다. 대화를 잇는 대신 그리운 크기의 동체에 팔을 둘러 지그시 힘을 넣고, 마음껏 무게를 실어 그 품에 기댔다. 네 스파크가 거세게 통통거리며 금속을 울리는 소리가 초침을 대신해주었다. 그대로 이마를 맞대고, 서로의 도색이 조금 묻어날 만큼 문지르다, 젖은 뺨을 감싸 당겨 입을 맞추었다. 정말ー너무나도 긴 세월을 갈망했던ー평범한 행복이 잠처럼 쏟아졌다. 모든 것이 느릿느릿 고요해지는 와중 단 하나. 네가 오라이온 팩스와 평화로이 작별할 마지막 기회를 내가 앗은 것이 순간 마음에 걸렸으나, 곧 손을 움켜쥐어온 무시무시한 악력에 안심하며 미소지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오라이온 팩스가 아닌
그의 가장 사적인 적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
길고 긴 내전이 끝나고... 옵대장 메가카 프라임 호국경으로서 또 고생고생하며 행성 안정화시킴 신설된 의회도 민주적으로 순항중이니 더이상 특별한 수장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
그러나 은퇴준비 막바지에 터진 외침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매트릭스 개방 희생토끼한 옵
다행히 동체가 좀 줄어들었을 뿐 죽지는 않았는데
얼마 안 있어 이상을 느끼기 시작함
몇 주 단위로 기억이 자꾸 끊기고 사라진다는 걸
검사 결과 모든 기능이 서서히 멈추고 있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음
그렇게 몇 사이클 지나자 기억이 코그리스 시절까지 돌아갔고
다음부터는 몸과 기억의 괴리가 너무 커서 혼란이 더 심해질 것을 염려한 본인+주치의 판단으로 코그도 제거함
기억이 사라지고 리셋되는 주기도 점점 더 빨라지는 와중
오라이온이 된 옵이 불안한 순간마다 중얼거리는 이름을 메가카가 모를 리 없었음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진단결과 담담히 듣던 메가카
다음 옵 기억 리셋 소식에 맞춰 제 손으로 자기 코그 뽑고 옴
일동경악하는 가운데 메가카만 태연함 은퇴했으니 괜찮지 않냐며
오랜 숙적이자 친구이자 사실상 콘적스관계나 다름없었던
그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마지막을 위해
제가 가장 혐오하는 모습이지만
지금의 그가 가장 바랄 모습으로 지내기로 한 메가카였음
그렇게 메가카는 오라이온의 디식스틴을 연기하며
리차징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가는 그의 곁을 지켰고
열흘만에 눈을 뜬 건 옵티머스였음
메가옵티 메가오라
얼마나 이렇게 있었던 건지, 정신을 차리고 나서도 영 맞춰지지 않는 초점에 고생을 좀 했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자 간만에 힘이 들어간 부품 구석구석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쑤셔왔다. 하지만 이 정도는 긴 세월 일상과도 같았던 것이라 소리없이 동체를 세우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가장 통증이 커야 했을 관절이 누군가 계속 움직여주기라도 한 듯 부드러웠던 덕이 컸다.
그대로 맞은편에서 한창 리차징 중인 검은 헤드의 동체를 물끄럼 바라보다가, 또 고민을 좀 하다가. 저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는 않음을 깨닫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네 앞에 서자 기억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 보이스박스를 재차 점검해야 했지만, 차분히 숨을 고른 뒤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눈 앞의 둥근 헤드를 콩콩 두드렸다.
"디."
외부 자극 탓에 강제로 리차징에서 깨어난 짙은 호박빛 옵틱이 제 목소리에 서서히 선명함을 되찾았다. 드물게 크게 놀란 듯 조리개가 들쭉날쭉 변하다 평소의 크기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는 것은 순수하게 즐거웠다.
"...왜 그래, 팩스."
투덜거림을 얇게 코팅했을 뿐인 깊은 애정이 오디오 리셉터를 통해 스몄다. 피곤을 표현하려는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있지만, 이미 몸을 반쯤 베드에서 뺀 채 그래봤자...
아아. 참으로 다정한 나의ー
"잠깐 나가자.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패애액스, 그게 리차징보다 정말로... 더 중요한 거지?"
나는 아직 답하지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른하게 어깨를 으쓱인 너는 순순히 끌려나왔다. 정확히는 따라왔다는 표현이 맞을 모양새였다. 내가 부드럽게 네 팔뚝을 쥔 채 반 보 앞서 걷긴 했으나 힘은 전혀 주지 않았으니. 오히려 네가 나의 걸음과 행선지를 예측해 반 보 느리게 걷는 것에 가까웠다.
나란히 건물 옥상에 올라섰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좋게 동체를 감쌌다. 아래를 내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높고 맑은 정경이 펼쳐진 이곳은 두꺼운 특수유리로 싸여있는 정교한 요새다. 그렇게 오래 지나진 않은 과거에 내가 위치를 골랐고 네가 자재를 골랐었지. 밤에도 꺼지지 않는 화려한 빌딩의 빛과 눈부시게 흐르는 에너존 줄기가, 이 행성의 단단한 자유와 풍요를 증명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리차징까지 끊어가며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뭔데?"
고단하단 투로 헤드를 짚으며 저를 불퉁하게 바라보는 지금 네 모습이 기대할 때의 그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너는 모르겠지.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그저 닮았을 뿐인, 다른 이의 모습임을 이제 사무치도록 알았다.
"아. 그게, 사실은."
"사실은?"
"...그냥 너랑 밖에 나오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했어."
길게 생각하지 않고 떠올린 문장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었다. 연배에 맞지 않는 일탈이라도 한 것처럼 동체 하부부터 밀려드는 기묘한 해방감에 웃음을 터뜨렸다. 내 언행에 기가 막힌다는 듯 실소한 네가 적당히 화난 그의 표정을 고민하며 나와 옵틱을 맞춰왔고, 그 짧은 틈에 줄곧 엉켜있던 스파크 속 무언가가 툭 끊어져 풀렸다. 너무 긴 세월 서로 들러붙어 녹고 우그러졌던 감정의 뭉치 안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래. 그와 함께 영영 잃었다고 여겼던 사랑 같은 것을.
"거짓말해서 미안해, 메가트론. 그리고..."
고마워.
과거 저였을지도 모를 이의 흉내도 그만둔 채 덧붙이자 네가 굳었다. 그대로 한참을, 묵묵하게 저를 응시하던 옵틱에 서서히 물기가 어리는 것을 나는 책임지듯 버티고 서서 지켜보았다. 깊고 짙은 호박빛.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의 밝고 찬란한 노란 빛과는 분명히 다른.
그 차이가 네 옵틱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는 것을 넌 언제쯤 믿어줄런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더 이상의 변명도 사과도 끼어들게 할 수는 없었다. 대화를 잇는 대신 그리운 크기의 동체에 팔을 둘러 지그시 힘을 넣고, 마음껏 무게를 실어 그 품에 기댔다. 네 스파크가 거세게 통통거리며 금속을 울리는 소리가 초침을 대신해주었다. 그대로 이마를 맞대고, 서로의 도색이 조금 묻어날 만큼 문지르다, 젖은 뺨을 감싸 당겨 입을 맞추었다. 정말ー너무나도 긴 세월을 갈망했던ー평범한 행복이 잠처럼 쏟아졌다. 모든 것이 느릿느릿 고요해지는 와중 단 하나. 네가 오라이온 팩스와 평화로이 작별할 마지막 기회를 내가 앗은 것이 순간 마음에 걸렸으나, 곧 손을 움켜쥐어온 무시무시한 악력에 안심하며 미소지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오라이온 팩스가 아닌
그의 가장 사적인 적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
길고 긴 내전이 끝나고... 옵대장 메가카 프라임 호국경으로서 또 고생고생하며 행성 안정화시킴 신설된 의회도 민주적으로 순항중이니 더이상 특별한 수장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
그러나 은퇴준비 막바지에 터진 외침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매트릭스 개방 희생토끼한 옵
다행히 동체가 좀 줄어들었을 뿐 죽지는 않았는데
얼마 안 있어 이상을 느끼기 시작함
몇 주 단위로 기억이 자꾸 끊기고 사라진다는 걸
검사 결과 모든 기능이 서서히 멈추고 있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음
그렇게 몇 사이클 지나자 기억이 코그리스 시절까지 돌아갔고
다음부터는 몸과 기억의 괴리가 너무 커서 혼란이 더 심해질 것을 염려한 본인+주치의 판단으로 코그도 제거함
기억이 사라지고 리셋되는 주기도 점점 더 빨라지는 와중
오라이온이 된 옵이 불안한 순간마다 중얼거리는 이름을 메가카가 모를 리 없었음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진단결과 담담히 듣던 메가카
다음 옵 기억 리셋 소식에 맞춰 제 손으로 자기 코그 뽑고 옴
일동경악하는 가운데 메가카만 태연함 은퇴했으니 괜찮지 않냐며
오랜 숙적이자 친구이자 사실상 콘적스관계나 다름없었던
그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마지막을 위해
제가 가장 혐오하는 모습이지만
지금의 그가 가장 바랄 모습으로 지내기로 한 메가카였음
그렇게 메가카는 오라이온의 디식스틴을 연기하며
리차징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가는 그의 곁을 지켰고
열흘만에 눈을 뜬 건 옵티머스였음
메가옵티 메가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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