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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8 22:51
사랑을 먹고 자라야 하는 아이가 푸석한 빵만으로 갈비뼈를 유지할 때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이는 제프가 기억하는 첫 로잔의 강렬함보다 더욱 지독하며 아름다웠다. 자신의 이름을 내뱉는 입술만을 바라보며 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의 가난이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 키가 작아 로잔에서 떨어지면 어쩌죠? 그 바보 같은 질문에 여자가 답한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은 좋지 않아. 성장기를 되찾은 아이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컸다. 로잔에서의 우승도, 처음 주역으로 서는 무대도 무척 성공적이었다. 예술 잡지와 신문사에서 제프를 찍어갈 정도였으니. 키가 훌쩍 큰 제프는 분장실로 찾아온 여자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무시하고 그 작은 품에 아이처럼 안겼다. 여자는 웃으며 커다란 덩치를 끌어안았다. 언제 이렇게 컸니. 웃으며 자신을 올려보는 여자에 제프는 속삭였다. 미셸. 당신 덕분이죠. 그는 자신의 재능을 꺼내준 여자에게 들어가고 싶었다. 여자에게 파묻히고 싶었다.
제프는 러시아며 프랑스며 인터뷰 보는 학교마다 합격했다. 여유롭게 학교를 골라갈 수 있는 팔자까지 누렸다. 미셸을 옆에 두고 어딜 갈지 고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셸과 가까운 곳에 가야죠. 그 어린 생각에 미셸은 마치 소녀처럼 웃었다. 파리 오페라 학교. 제프가 선택한 곳이었다. 정말 괜찮겠냐는 말에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러시아에 가 미셸과 떨어지는 것보다, 어디든 미셸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자신에게 웃는 모습만 보여주는 이 여자가 무척이나 좋았다. 발등을 꺾어가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미셸 여가 밀회하는 남자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면 괜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미셸이 그에 대한 대응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자신도 따른 것이다. 왠지 그 사실을 미셸이 인정하는 것만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일종의 이기적인 만족감이었다.
파리는 추잡스러운 면보다 아름다운 장면이 많은 도시였다. 미셸의 회사와 가까웠으며, 미셸이 기숙사 대신 자취를 하는 게 어떻냐며 구해준 파리 1구의 집은 아늑했다. 제프는 생각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이렇게 안정적이고 평화로워도 되는 건지. 발레 선생이 더이상 컸다간 큰일이겠어요. 이미 180을 훌쩍 넘은 제프의 발목을 지휘봉으로 건드리며 말한다. 그러자 제프는 어깨를 과장되게 으쓱인다.
“내 사랑. 하지만 이번 로미오는 전데요.“
큰 입으로 씩 웃으며 답했다. 로잔에 나갈 때마다 상을 휩쓸고 다니던 소년에게서는 부정할 수 없는 승리의 기운이 났다. 복도에서 그가 걸어갈 때면 누군가는 ‘그’ 유명한 미셸 여를 논하며 비아냥댔지만, 누군가는 완성형인 발레리노의 모습에 홀려 멍하니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겉멋이 들었다 해도 상관 없었다. 파티라면 어디든 얼굴을 비췄다. 논알콜이라 속이는 술잔을 들고 있던 제프의 앞으로 건방지도록 환한 낯이 들어온다. 아. 이 자식은 걔잖아.
“넌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고 다녀?”
오스틴 로버트 버틀러. 악으로 깡으로 장학금을 다 몰고 학교에 입학한 아이라고 했나. 가족이 없다는 것만 빼곤 불확실한 소문이 무성한 놈이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 부잣집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다가도, 매일 연습실 문을 첫번째로 열고 닫기를 반복해 다들 기함하였다. 정말 지독한 노력파였다. 날 때부터 천재인 제프 골드블럼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생각했다. 넌 나와 완전히 다르다고. 그래서 이해할 수 없고 친해질 일도 없으며 너를 못 이길 일도 없다고.
제프는 얇은 입꼬리를 올리며 클럽 노래에 잘 안 들리는 척 고개를 저었다. 뭐라는 거야. 기분 더럽게....
그리고 그 다음주, 로미오와 줄리엣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남자 주인공 이름 옆에는 오스틴 로버트 버틀러가 아주 크게 써 있었다. 제프는 입술을 깨물고 학교 로비에서 한참이나 서성였다. 미셸에게 뭐라 말하지. 정작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럴 수 있다고. 조연이든 주연이든 발레리노로서 중요한 건 무대에 오르는 것 아니냐며 그를 따뜻히 위로했다. 제프는 그 위로에 완전히 젖어들어 아주 충동적이게 입을 맞췄고, 기적적이게 미셸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숨이 적어 입술을 벌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무릎 위에 미셸을 앉혀놓고 한참을 탐했다. 벅찬 숨을 몰아쉬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러면 안 돼. 정해진 것처럼 진부한 부정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미셸은 분명 살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미셸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다발을 들고 가겠다 제프와 약속했다. 덩치만 큰 아이를 달래주는 데 있어 미셸은 아주 긴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제프는 신기했다. 땀에 절어가며 연습하는 오스틴이. 대체 무엇을 목표로 두고 저러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미치도록 생생하게 살아있는 눈빛또한 무엇이 그렇게 절절한지 궁금했다. 연습이 끝나 짐을 정리하던 제프는 남아서 마저 몸을 풀고 있는 오스틴을 응시했다. 그러자 거울 속으로 둘의 눈이 서로를 응시한다.
“넌 뭐가 그렇게 간절한데?”
제프는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싸구려 토슈즈에, 가장 싼 원단으로 만든 연습복. 다 빠그라진 플라스틱 병에 담고 오는 음료수. 술에 취해서나 먹을 법한 초코바. 그의 인생이 전부 담긴 가방을 눈짓하며 제프는 오스틴을 놀렸다.
“날 이렇게 만든 사람.”
그 사람이 간절해. 너도 그런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오스틴의 말에 제프는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말을 하지만 단박에 머리를 스치는 얼굴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제프는 불쾌한 듯 바로 자리를 피했고, 오스틴은 그 빈자리를 멍하니 노려보았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슬픈 얼굴이 아름다운 로미오와 화려한 기술을 곧잘 내보이는 능청스러운 그의 친구 머큐쇼. 제프는 커튼콜에서 단박에 미셸을 찾아냈다. 미셸의 눈을 보면 모두의 박수가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간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흩날린다. 그래. 한 번 정도는 조연을 할 수 있지.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제프는 열심히 합리화한다. 열심히. 연습할 때보다 더욱. 토슈즈를 벗고 분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본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미셸?”
열리는 문에 고개를 빠르게 돌렸지만 이는 공연장 매니저였다. 제프는 분장실 복도로 나온다. 주인공들의 개인 대기실 앞에는 미셸이 있었다. 미셸의 양손에는 각각의 꽃다발 바구니가 있다. 불안해. 뭐가 이렇게 불안하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다.
“오스틴.”
“....왜 오셨어요.”
“내가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겠어.”
문이 열리고, 오늘 가장 근사했던 남자 주인공이 얼굴을 보인다. 미셸은 팔을 뻗어 오스틴을 와락 끌어안는다. 미셸의 손에서 꽃다발 바구니가 떨어진다. 저기서 가장 빛나는 꽃다발은 누구의 것일까. 나, 아니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셸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저 자식?
이렇게 시작되는 제프옹양자경+오틴버가 보고싶다.......
이짤이 넘좋음.. 양자경이 오틴버를 가장 먼저 후원했는데 오틴버는 후원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선을 지켜야 된다 생각해 꾹 참고 조용히 노력하며 보냄 하지만 양자경은 그런 오틴버를 더욱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게 됐고ㅋㅋ 제프는 그와 반대로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마음 표현하고.. 오틴버는 그런 제프를 멀리서 보며 이 까득 갈았으면 좋겠다 알수없는 불쾌감과 질투에 휩싸여서
양자경이 오로지 자기만 후원하는 줄 알았던 제프.... 나중에 오틴버가 자신보다 처음이었다는 것 알고 배신감에 어쩔줄 몰라하는 제프임... 근데 양자경은 계속 다정하고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라 더 미치겟는 거 보고픔 둘 다 후원자를 이성으로 보는데 정작 그 후원자의 마음은 영영 모르겠는 클리셰
나중에 제프 노력으로 연인사이까지는 가는데 양자경 눈이 계속 오틴버에게 가있어서 (이성적인 감정인지 뭔지 제프는 끝까지 모름) 미치겠는거.... 둘 중 하나 선택하라는 거대연하남에 한숨만 내쉬는 작은 연상녀가 ㅂㄱㅅㄷ 위키드는 날 책임져라..
제프옹양자경 오틴버양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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