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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3 11:41
노부가 사라진지도 벌써 닷새가 흘렀어. 그동안 케이타는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슬퍼하고 무서워했어. 노부가 대체 어디 갔는지 몰라 차를 끌고 나가서 근처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소득이 없었어. 멀리 가지 못했을 텐데. 날씨가 아무리 풀렸다고 해도 이렇게 추운 날 맨몸으로 나가면 안 될 텐데. 유기 수인으로 보호소에 잡혀들어갔을까봐 케이타는 보호소에도 연락을 취했지만 보호소엔 새로 들어온 수인 중 늑대는 없다고 했어. 케이타는 애간장이 다 녹아갔어. 그러나 노부를 찾기 위해 모든 걸 내던질 수는 없었어. 밀려있던 연차는 지난번 노부를 입양자에게 보내고 돌려받으려고 애쓸 때 전부 써서, 케이타는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면서 회사에 나갈 수밖에 없었어. 오메가들은 감정적이라고 쯧쯧 혀를 차려던 사수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케이타의 상태에 입을 다물었어. 오늘도 케이타는 채 두 시간도 자지 못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어. 퇴근 시간까지 어떻게 버텼는지 몰라도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케이타는 터덜터덜 회사를 나왔어. 오늘은 공원 근처를 찾아보려고 해.

차를 몰고 공원까지 간 케이타는 가는 길에 익숙한 검은 귀가 달린 남자가 있지는 않을까 천천히 살폈어. 하지만 오늘도 찾지 못했지. 아무래도 거대한 늑대는 너무 눈에 띄는데다 위협적이니까 인간 모습으로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리 해도 노부를 찾을 수가 없었어. 케이타는 공원에다 붙일 전단지를 한아름 가지고 갔지. 이런 늑대를 데리고 계시다면 돈을 낼 테니 전화를 주세요, 하는 전단지였어. 그 아랫부분에는 노부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있었지. 이걸 보고 있다면 제발 돌아와 줘요, 내가 잘못했어, 하는. 집 근처에도 전단지를 잔뜩 붙였지만 소득이 없어서 공원에도 붙이려고 했어. 전단지를 가지고 내린 케이타는 천천히 공원을 걸어서 노부를 처음 만난 공터까지 갔지. 가는 길에 주변을 살피면서. 하지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케이타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어. 자꾸만 눈 앞이 흐려져서 길을 잘 살필 수가 없었어. 지나가는 남자들이 죄다 노부로 보여 깜짝깜짝 놀란 일도 몇 번이나 있었지. 케이타는 한숨을 쉬며 공터에 전단지를 덕지덕지 붙였어.

오늘도 얻은 것 없이 집에 돌아가려는데, 아무래도 망설여졌어. 여기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아니, 사실 이곳에마저 없다면 정말 어디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에 케이타는 겁이 났어. 그래서 케이타는 평소라면 혼자 가지 않을 어두운 골목까지 전단지를 들고 들어섰어. 전단지를 붙여 가며 걷는데 아무래도 너무 어두워. 아무리 둘러봐도 방범 카메라도 없고 외진데다 좁아서 케이타는 나가야겠다고 결정했어. 노부가 여기 있을 것 같진 않았으니까. 뒤돌아서 나가려던 케이타는 멈칫했어. 인기척이 느껴졌어. 케이타는 긴장해서 그대로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어. 제발 잘못 들은 것이길 바라면서. 하지만 이번엔 발소리가 확실하게 들려왔지. 누군가가 케이타의 뒤를 따르고 있었어.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지만 케이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걸었어. 그러자 뒤를 따르는 발소리가 점점 빨라졌어. 놀란 케이타는 더 빠르게 걷기 시작했지. 그에 맞춰 뒤를 따르는 사람이 뛰기 시작했어. 잔뜩 겁을 먹은 케이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을 포기하고 달리기 시작했어. 귓가에 쿵쾅거리고 울리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뒤를 따르는 발소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더는 들리지 않았어. 케이타는 그저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었어. 길도 모르고 앞만 보고 뛰는데 곧 골목길이 끝나고 큰길로 연결되는 길목이 보였어. 저기까지만 가면, 저기까지만 가면, 하면서 케이타는 힘껏 뛰었어. 드디어 큰길로 뛰어나왔을 때였어.

빠앙-

“어?”

케이타는 고개를 돌렸어. 커다란 트럭이 케이타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어.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인도를 넘어 차도까지 뛰쳐들어가 버린 것을 케이타는 그제야 알았어.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 얼어붙은 것처럼 케이타는 제자리에 서서 트럭이 저를 덮치기를 기다렸어. 트럭과 충돌하기 직전, 누군가가 케이타를 낚아챘어. 케이타는 다리를 가누지 못하고 넘어졌지만 그 사람은 케이타를 끌고 안전한 인도까지 갔지. 온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케이타는 고개를 들어 저를 구해준 사람을 쳐다보고는 숨을 들이켰어.

“노부!”

“잠깐만 눈을 떼도 사고를 쳐? 케이 네 몸은 생각 안 해?”

노부가 벌컥 화를 냈어. 그러면서도 손을 뻗어 케이타가 다친 곳이 있는지 이리저리 살폈지. 케이타는 삽시간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것을 느꼈어. 케이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노부의 옷자락을 붙들었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케이…”

“그래도 떠나지 마. 이런 나라도 떠나지 마.”

못 버티겠어, 나 노부가 없으면 안 돼…울면서 케이타가 토해냈어. 노부는 그 말에 주저앉은 케이타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손을 내밀어 케이타의 얼굴을 감쌌어.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속상하게.”

“노부가, 노부가 없으니까…”

케이타는 울먹였어. 노부는 무겁게 한숨을 쉬더니 입술을 말아 물고 케이타를 쳐다보았어. 케이타는 히끅거리며 그런 노부를 마주보았지. 노부는 이윽고 입을 열었어.

“케이, 내가 그렇게 좋아?”

“응, 응, 좋아…”

“저번 같은 일을 계속 겪어도 좋아?”

“백 번 천 번 겪어도 좋아, 응?”

그러니까 가지 마. 가지 마. 케이타는 울면서 말했어. 그러자 눈을 꾹 감은 노부가 한참이나 숨을 고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어.

“알았어. 안 갈게.”

“정말?”

“응, 정말.”

노부는 약속하며 여전히 옷자락을 붙든 케이타의 손을 떼어 꼭 잡아주었어. 케이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런 노부의 손을 그러쥐었어. 노부는 한숨을 쉬었어.

“사실 나도 못하겠어.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도록 아예 곁을 떠나려고 했는데, 멀리멀리 가려고 했는데, 케이 곁을 자꾸 맴돌게 돼. 그동안 늘 근처에 있었어. 출퇴근하는 모습도 몰래 지켜봤어.”

“진짜?”

케이타의 울음 가득한 질문에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어.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 노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일단 케이타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자, 싶어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긴 했는데, 갈 곳이 없으니 일단 어딘가에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카페에 가 앉았지. 제일 싸다는 이유로 잘 마시지 않는 쓴 커피를 시켜 놓고 노부는 앉아서 고민했어. 사람들의 시선이 귀에 가 꽂히는 것이 느껴지니까 일단 모자를 사야겠고, 케이가 준 카드를 쓰지 않으려면 몸을 팔든 투견 생활을 하든 돈을 벌 방법을 찾아야겠고. 노부에게는 익숙한 뒷세계를 들어가면 아직 젊은 축에 드는 알파 수인이 할 만한 일은 널리고 널렸지. 그중에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는 일이 하나도 없다 뿐. 그렇게 계획을 짜고 있는데, 갑자기 제 맞은편에 누군가 와 앉았어. 노부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말했어.

“여기 자리 있는데요.”

“알아. 당신, 마치다네 늑대 수인이지?”

화들짝 놀란 노부는 고개를 들었어. 그리고 그제서야 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귀를 발견했지. 저 사람도 수인이구나. 저 귀를 보니 여우인가? 노부는 더욱 경계하며 눈 앞의 남자를 쳐다보았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마치다는 늑대 수인과 살고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 근방에 늑대 수인이 둘이나 있을 리 없잖아?”

남자의 말에 노부는 마지못해 수긍했어. 케이가 저와 함께 산다는 걸 아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군가, 싶어 경계가 풀리진 않았지만. 노부의 노골적으로 경계가 담긴 시선을 받은 남자는 양 손을 들어 보였어.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나는 마치다의 지인이야. 그러니까, 음, 정확히는 내 배우자가 마치다의 친한 대학 선배야. 시시오, 이리 와 봐.”

대화하는 둘 뒤에서 얼쩡거리던 키가 큰 남자가 걸어왔어. 남자는 귀도, 꼬리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인간이었지. 노부는 눈을 깜빡였어. 인간과 수인이 서로를 배우자로 부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니까.

“아무래도 믿기 힘들지? 시시오, 사진 좀 보여줘요. 그 왜, 걔 대학 때.”

그 말에 키 큰 남자는 말없이 지갑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내밀었어. 노부가 호기심에 들여다보자 정말로 케이의 사진이었지. 아마 대학 신입생 쯤에 찍은 사진인 듯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었어. 노부는 일렁이는 그리움에 입술을 꼭 깨물었어.

“집 나왔지?”

“이러지 말고 들어가라는 말은 안 통해요.”

“들어가란 말은 안 해. 나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으니까. 그냥, 이 근처에서 마치다를 지켜봐. 당신이 없는 그 사람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생각을 해 보고.”

“하지만…”

노부는 망설였어.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어. 하지만 지낼 곳이 없는걸.

“밤에 잠은 우리 집에 와서 자면 되지.”

“네?”

노부는 다시 경계하며 여우 수인을 쳐다봤어. 노부의 기억에 이유 없는 호의가 좋게 끝난 적은 드물었으니까. 여우 수인은 한숨을 쉬었어.

“나도 이게 갑작스러운 건 알아. 믿기 힘들겠지. 그렇지만 있잖아, 당신 다시 데려온다고 마치다가 쓴 금액이 얼마인지 알아?”

노부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어. 케이타는 노부가 갚을 수 있도록 알려달라고 부탁해도 한 번도 금액을 알려주지 않았어. 여우 수인은 눈을 길게 깜빡이더니 금액을 말해줬지.

“...예?”

“맞게 들었어.”

노부는 혼란스러움에 고개를 숙였어. 그런 금액은…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제가 평생을 가도 갚을 수가 없는 금액이야. 생각한 것에서 0이 두세 개쯤 많은 금액이라고. 누가, 누가 수인한테 그만큼을 써. 하물며 노부한테 그만큼을 써.

“당신, 마치다한테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야.”

여우 수인은 낮게 말했어. 키 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한 마디 얹었어.

“저희가 걱정하는 건 당신보다는 당신을 잃은 케이타입니다.”

그 말에 노부는 목이 메어왔어. 힘들겠지. 케이타가 저를 아껴주는 건 알아. 하지만, 하지만 고작 수인 하나잖아. 케이타는 곧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래야만 해.

“케이타, 당신을 좋아한대. 그건 알아?”

부드럽게 물어오는 여우 수인의 말에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렇지만 케이타에게는 더 어울리는 짝이 있어요...”

노부는 말했어. 그 인턴. 젊고, 장래가 창창하고, 건강한 알파에, 저처럼 망가지고 흉진 곳도 없어. 무엇보다 인간이지. 거기다 케이타를 잘 챙겨주기까지 하고. 노부의 감이 말했어. 저만 없으면 그 둘이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그 말에 둘은 연이어 한숨을 쉬었어.

“우리가 했던 거랑 똑같은 삽질을 하네. 있지, 케이타는 당신이 좋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하지만 얼마 전에는…”

“부당한 일을 겪었겠지. 케이타가 힘들어졌을 거고. 그걸 보고 떠나야겠다고 결심했겠지. 아니야?”

노부는 할 말이 없었어. 여우 수인은 고개를 끄덕였어.

“그 마음 아니까 당장 돌아가라고 하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멀리서 지켜봐. 케이타가 어떻게 하는지 잘 봐.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정해.”

여우 수인의 그 말에 노부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어. 남자는 환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지.

“내 이름은 쿠로사와야. 여기는 시시오.”





“그러니까, 내가 찾아다니는 내내 노부는 시시오 집에 있었다고?”

케이타는 믿을 수 없어 물었어. 노부 찾는 걸 도와달라고 했을 때 어쩐지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더라니! 너무 바빠서 그런 거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린 케이타는 조금 섭섭하기까지 했었지.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어.

“계속 지켜봤어. 전단지 붙이는 것도, 나를 찾아 헤매는 것도. 그리고…느꼈어. 내가 케이의 애정을 과소평가했단 걸. 정말 미안해, 케이.”

그렇게 말하며 노부는 케이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어. 케이타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어.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 노부는 그런 케이타의 눈물을 닦아 주며 계속해서 말했어.

“그리고 무엇보다, 그 둘을 보면서…느꼈어. 우리도…행복할 수 있다는 걸.”

쿠로사와가 부당한 일을 겪으면 시시오가 묵묵히 뒤에서 지지가 되어주고, 필요하면 함께 싸워 주고, 그러면서 마음 상한 것을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 노부는 말했어. 케이타는 울면서 노부를 때렸어.

“내가 말했잖아. 그런 일, 백 번 천 번 겪어도 네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잖아. 내가 말했을 때는 왜 안 들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젠 어디 안 갈게. 내 곁에 있는 게 너를 힘들게 하면 그만큼 내가 널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노부는 케이타에게 약속했어. 케이타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어. 어느새 노부도 눈물을 뚝뚝 쏟고 있었어. 우는 노부를 보고 서러움이 밀려나와 엉엉 울음을 터뜨린 케이타를 노부가 꽉 안았어.

“사랑해. 사랑해, 케이. 사랑해.”

“나도 사랑해, 흐으, 노부, 노부…!”

한참을 부둥켜 안고 둘은 엉엉 울었어. 먼저 울음을 그친 건 노부가 아니라 케이타였지. 히끅히끅 딸꾹질은 하면서도 노부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그저 좋아서 배시시 웃는 케이타를 바라보며 노부는 또 눈물을 주륵 흘렸어.

“그만 울어.”

“응, 그럴게.”

“노부, 이제 집에 가자.”

케이타의 말에 끄덕이며 노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타에게 손을 내밀었어. 그 손을 잡고 일어나려던 케이타는 어? 하며 도로 주저앉았어.

“나 왼발에 힘이 안 들어가.”

“뭐?”

“아까 접질렸나봐. 어쩌지…?”

“많이 아파?”

그건 아닌데…케이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그러자 노부는 쭈그리고 앉아 등을 내밀었어.

“업혀. 차까지 업어다 줄게.”

그 말에 활짝 웃으며 케이타는 노부에게 답삭 업혔어. 아무 무게도 나가지 않는다는 듯 노부는 케이타를 업고 평소처럼 걸었어.

“무겁지 않아?”

“무겁지 않아.”

“너무 좋다…”

케이타는 노부의 어깨에 가만가만 얼굴을 기댔어. 노부는 그런 케이타를 토닥이며 차까지 일부러 느릿느릿 걸었지. 그걸 알면서도 케이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좋아서. 노부가 돌아온 게 좋아서. 살을 맞대고 있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노부의 목덜미에서 나는 살내음을 한껏 들이마신 케이타는 미소를 지었어. 노부는 규칙적으로 케이타의 허벅지를 토닥였어. 길게 숨을 내쉬며 케이타는 눈을 감았어. 어둡지만 무섭지 않았어. 달빛이 찬란하게 그 둘을 비춰 주고 있었으니까.








에필로그



“이 정도 길이면 될까요, 손님?”

“음…조금만 더 짧으면 좋겠는데.”

“아, 그러세요? 대머리 빡빡이로 밀어드릴 수도 있는데, 어떠세요?”

“뭔 말을 못해. 여기요! 여기 미용사 분이 너무 불친절해요!”

일부러 투덜거리는 쿠로사와의 목소리에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지켜보던 케이타는 하하 웃었어. 노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 쿠로사와 머리에 가위를 가져다 댔어.

“그것 참 안타깝게 됐네요. 제가 원장인데 어쩌죠?”

“아잇 진짜!”

쿠로사와는 목을 움츠렸어. 웃으면서 노부는 쿠로사와가 원하는 대로 앞머리를 부드럽게 결을 내어 자르기 시작했어. 노부의 단단한 손이 날렵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서 케이타는 감탄했어. 그 시선을 보고 쿠로사와가 웃었어.

“남편분이랑 금슬이 아주 좋으시네요.”

그 말에 노부는 얼굴을 붉혔지만 케이타는 끄떡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였어.

“그럼요, 좋죠. 아!”

깜짝 놀란 케이타는 배에 손을 올렸어.

“아기가 움직였어요!”

“정말, 정말? 나도 볼래!”

쿠로사와는 의자에 앉은 채 손을 쭉 뻗었어. 케이타는 배를 받치고 걸어가 쿠로사와의 손에 배를 댔어. 미약한 움직임이 또 느껴졌어. 쿠로사와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

“와! 진짜네!”

“아기도 아빠가 좋은가보다. 그렇죠, 아기 아빠?”

케이타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한 말에 노부는 귀끝까지 붉어졌어. 모른 척 큼큼, 목을 고르며 노부가 말했어.

“손님, 움직이지 말고 앉아 주세요. 거의 끝났습니다.”

“네에, 네에!”

쿠로사와는 얌전히 제자리에 앉았고, 노부는 사각사각 손을 놀려 앞머리를 잘랐어. 다 됐습니다, 노부가 말하고 머리칼을 털어주고 나자 쿠로사와는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었어.

“미용사님 실력이 대단하신데요?”

“과찬이십니다.”

노부가 고개를 숙였을 때, 딸랑- 하고 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노부와 쿠로사와, 케이타의 고개가 모두 문을 향해 돌아갔지. 커다란 키를 조금 숙이고 시시오가 들어왔어.

“다들 나를 쳐다보니까 민망한데. 머리는 마음에 들게 잘랐어?”

쿠로사와를 쳐다보면서 한 말에 쿠로사와는 응! 대답하며 한껏 미소를 지었어.

“이제 약속한 대로 더블 데이트 가자! 수인 둘, 인간 둘! 원장님, 얼른 샵 닫으세요!”

쿠로사와의 말에 노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샵을 정리하고 닫는 동안 쿠로사와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지. 마침내 나가는 길, 쿠로사와는 시시오 품 안에 뛰어들었어. 꼬리가 살랑였지. 거의 한 몸이 되어 나가는 둘을 보며 웃은 노부는 케이타에게 손을 뻗었어. 케이타는 그런 노부의 손을 꼭 붙들었지.

“갈까요, 아기 엄마?”

“가요, 아기 아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케이타도 노부도 알게 됐어. 수인이고 인간이고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환히 웃을 수 있는 삶이면 됐지. 그리고 그런 삶을 찾은 지금, 노부도 케이타도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



끝이다! 같이 달려준 부케비들 ㅋㅁㅋ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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