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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936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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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1 12:12
쿠로사와 집안으로 끌려오듯 시집 온 아다치랑
그런 아다치한테 집착하는 쿠로사와.
그리고 집안 사생아 타니 보고싶어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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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hygall.com/612887862
쿠로사와의 서재 벽 한쪽엔 역사 깊은 칼이 장식되어 있었다. 아다치가 그걸 물끄러미 쳐다보니 쿠로사와가 어색하게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고리타분하지? 먼 친척분이 만드신 거야.’
쿠로사와의 집안엔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그 중 한 명이 만든 어떤 작품일 것이다. 진짜 칼이라고 했다.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누군가는 피를 볼 수 있었다. 아다치가 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쿠로사와는 아다치를 감싸 안아 침실을 보여주었다. 아다치의 동의 없이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러니 이불 안감이 어떤지. 베개가 어떤 높이인지 따위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다치의 부모님은 굉장히 복잡한 표정으로 아다치를 보냈다. 특히 엄마는 울음을 참지 못해 똑바로 서 있지 못할 정도였다. 쿠로사와는 기다렸다는 듯 집을 옮겨 아다치와 함께 쓸 수 있는 가구를 사들였다. 아다치가 도착하기 전에 말이다. 쿠로사와 집안은 믿었던 약혼자의 배신으로 꽤 충격받은 듯 했으나, 장남 유이치와 본딩에 성공한 아다치를 보고 금새 분위기를 회복했다. 아다치 가의 아이라면 쿠로사와에게 어울린다며.
“아다치.”
쿠로사와는 이불에 폭 안겨 등을 돌린 아다치에게 입을 맞췄다. 아다치는 눈을 꼭 감고 뜨지 않았다. 이미 옷을 다 입은 쿠로사와는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계속 아다치 곁을 맴돌았다. 아다치는 시위하듯 눈을 뜨지 않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
“그게 힘들면 대신 타니에게 말해도 괜찮아. 내가 잘 얘기해놨어.”
아다치가 쿠로사와나 타니에게 연락할 일은 없을 거다. 쿠로사와는 집을 나섰다. 그러자 마자 아다치는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낯선 향기로 가득한 이곳은 아늑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아다치의 옷은 겨우 옷장 한 구석을 채운 정도고. 서재엔 어려운 내용의 책뿐이었다. 부모님께 연락하고 싶어도 엉망인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진 않았다. 쿠로사와와 어른들이 잘해준다는 문자도 겨우 보낼 수 있었다. 아다치는 불안한 발걸음으로 집을 돌아다니다가 옷을 챙겨입고 밖을 나섰다. 여긴 흐린 날이 많고 바람이 차가웠다. 아다치가 살던 따뜻한 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가지고 있는 옷 중 최고로 두꺼운 옷인데도 찬바람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목적 없이 방황하던 아다치는 쿠로사와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 여보세요?”
- 아. 아다치. 다행이네. 바로 받아서.
“그게 무슨 말이야?”
- 집에 없길래 걱정되서 전화했어.
아다치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쿠로사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네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싶어 홈캠을 설치했었거든.
“무, 무슨……. 날 지켜보고 있었어?”
- 물론 아니지. 걱정될때만 볼거야.
아다치는 알고 있다. 자신이 방황하는 모든 날은 쿠로사와의 ‘걱정될 때’라는 것을. 쿠로사와에게 허락은 의미 없다. 같은 맥락으로 거절 역시 힘이 없다. 쿠로사와는 모든 것을 다정하게 이행한다. 배신한 약혼자에게 받은 상처라고 하기엔 강압적이다. 정말 상처를 받았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다치는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꼼지락대며 대답을 아꼈다.
- 아다치.
“…….”
- 아다치. 키요. 키요시.
“…….”
- 보고싶어.
쿠로사와가 애절하게 말했다. 아다치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얘기한 뒤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었다. 어색한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여니 쿠로사와에게서 문자가 왔다.
- 냉장고에 케이크 있어.
- 좋아하는 거지?
아다치는 냉장고 문을 열어 케이크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옷을 벗어 걸어놓는 순간에도 쿠로사와가 이 모습을 보고 있을지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눈이 감시하는 느낌이란……. 결국 아다치는 집안 곳곳을 뒤져 총 네 대의 홈캠을 발견했다. 현관문. 거실. 안방. 서재. 집 안에서 아주 약간의 공간만 사각지대였다. 아다치는 기어코 사각지대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쿠로사와에게서 더는 연락이 없었다. 아다치는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쿠로사와가 올때까지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시위라도 하는 걸까?”
집으로 돌아온 쿠로사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다치는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쿠로사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쿠로사와는 가방을 내려놓고 아다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다치는 겨우 쿠로사와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네가 걱정되서 일이 손에 안 잡혔어.”
“……쿠로사와.”
“응. 그래. 키요시. 무엇이든 말해.”
“집이 그리워.”
쿠로사와의 눈빛이 변했다. 아다치도 몇 번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그립다니. 이제 겨우 일주일 지났는데?”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
“키요. 이젠 여기가 네 집이야.”
쿠로사와가 아다치의 팔을 꾹 잡았다. 그날이 생각나는 것 같아서 아다치는 약하게 몸부림을 쳤다. 놔줄 법도 한데, 쿠로사와는 봐주는 법이 없었다.
“네가 어떤 마음인지 알아. 그렇다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
“쿠로사와. 제발.”
“여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매일 맛있는 요리를 해줄게. 좋은 공연도 보여줄 거야. 주말엔 둘이서만 시간 보내자. 응? 키요.”
쿠로사와는 아다치를 품에 가두고 부술듯 안았다. 아다치는 인형처럼 쿠로사와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주는 옷을 입었다. 그날 이후 억지로 몸을 취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터라 쿠로사와는 함부로 아다치를 만지지 않았다. 아다치는 몰래 눈물을 닦으며 잠에 들었다. 아다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것이 바뀌려 하고 있었다.
또 아침이 왔다. 쿠로사와의 하루는 지나치게 규칙적이라 어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반면 아다치의 일상은 쿠로사와의 출근 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집애 찾아온 것이다. 아다치가 어색한 손짓으로 문을 열자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입은 타니가 보였다. 아다치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말동무 좀 해달라길래.”
어떤 설명도 없는 짧은 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아챈 아다치는 타니에게 소파 한 켠을 내어주었다. 이러니 정말 쿠로사와 키요시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타니는 편히 앉아 아다치를 보고 있었다.
“금방 갈 거예요. 일하다 온 거라서요.”
아다치는 동그란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지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라, 타니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다치는 고개를 까딱이더니 타니와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았다. 타니는 아다치가 귀여운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네 형수 말동무 좀 해줘.
그러니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자신의 형이 부탁이라는 걸 다 하지. 타니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안달난 얼굴을 보니 좀 통쾌해서 그런가? 아니면, 아다치의 꼴이 자신과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 즐거운 건가? 겨울의 귀한 햇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테이블을 비췄다.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던 아다치가 차라도 내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은 좀 어때요?”
“네, 네?”
“잘 해줘요?”
어떤 의도도 없는 질문이었다. 아다치는 타니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쿠로사와는 항상 친절한 사람이니까요…….”
거짓말. 타니가 한 쪽 눈썹을 올렸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형수님.”
타니는 아다치를 보고 있자니 호텔에서 있었던 날이 떠올라 담배를 찾았다. 여기가 쿠로사와의 집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서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었지만 말이다.
“듣자하니. 아직 적응을 잘 못하고 계신다던데.”
“…….”
“옷부터 사세요. 집안 어른들 은근히 그런 거 신경 써요.”
그러면서 타니는 천천히 일어나 집안 곳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니. 구경이라기 보단 조사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는 경찰이다. 누군가를 쫓는 것에 재능있고. 폭력에 가까운 사람이다.
“친구 있어요?”
“여기엔 없어요.”
“하긴. 그럼 취미는요?”
타니가 고개를 돌렸다. 아다치는 그 순간 타니의 얼굴에서 쿠로사와를 보았다. 단순히 취미를 묻는 질문인데도, 그 작은 단서로 사람을 파고들 준비가 되어 있는 날카로운 발톱.
“문구…….”
“예?”
그래도 아다치는 터니와 쿠로사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순히 대답했다.
“문구류를 좋아해요. 그래서 자주 사러 가요…….”
아다치는 고향에 두고 온 물건들을 생각하며 살짝 웃었다. 타니는 아다치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취미는 뭐.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거 찾으시고.”
“왜, 왜요?”
“형이 외출을 싫어할 테니까.”
쿠로사와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 사람. 집안까지. 무엇 하나 제 뜻을 거스르는 걸 두고 본 적이 없었다. 그 중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가장 첫 번째였다. 아다치는 벽에 설치된 홈캠을 보고 주먹을 꽉 쥐었다.
‘하긴. 저런 오메가라면…….’
타니는 아주 잠깐동안 쿠로사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니는 일이 바쁘다며 차도 마시지 않고 돌아갔다. 마음이 더 불편해진 어다치는 덩그러니 앉아있다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펑범한 가정집과 다를 것 없었다. 상비약. 신선한 음식. 옷. 심지어 피임 도구까지. 이 집은 완벽했다. 아다치에게 필요한 건 다 있었다.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
- 혹시 읽을 책이라던가, 필요해?
쿠로사와에게 문자가 왔다. 아다치는 서재로 들어가 책상에 꽂힌 책을 전부 뒤졌다. 아다치 취향의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쿠로사와는 두 손 무겁게 귀가했다. 문구류를 전문으로 소개하는 잡지부터 뜨개질 키트. 만년필과 고급지. 인기 게임기까지.
“널 위해서 준비했어.”
뿌듯한 얼굴을 보고 아다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맙다는 인사만 겨우 건넸다. 그것만으로도 쿠로사와는 많이 행복했다.
쿠로아다 타니아다 마치아카
그런 아다치한테 집착하는 쿠로사와.
그리고 집안 사생아 타니 보고싶어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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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사와의 서재 벽 한쪽엔 역사 깊은 칼이 장식되어 있었다. 아다치가 그걸 물끄러미 쳐다보니 쿠로사와가 어색하게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고리타분하지? 먼 친척분이 만드신 거야.’
쿠로사와의 집안엔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그 중 한 명이 만든 어떤 작품일 것이다. 진짜 칼이라고 했다.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누군가는 피를 볼 수 있었다. 아다치가 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쿠로사와는 아다치를 감싸 안아 침실을 보여주었다. 아다치의 동의 없이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러니 이불 안감이 어떤지. 베개가 어떤 높이인지 따위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다치의 부모님은 굉장히 복잡한 표정으로 아다치를 보냈다. 특히 엄마는 울음을 참지 못해 똑바로 서 있지 못할 정도였다. 쿠로사와는 기다렸다는 듯 집을 옮겨 아다치와 함께 쓸 수 있는 가구를 사들였다. 아다치가 도착하기 전에 말이다. 쿠로사와 집안은 믿었던 약혼자의 배신으로 꽤 충격받은 듯 했으나, 장남 유이치와 본딩에 성공한 아다치를 보고 금새 분위기를 회복했다. 아다치 가의 아이라면 쿠로사와에게 어울린다며.
“아다치.”
쿠로사와는 이불에 폭 안겨 등을 돌린 아다치에게 입을 맞췄다. 아다치는 눈을 꼭 감고 뜨지 않았다. 이미 옷을 다 입은 쿠로사와는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계속 아다치 곁을 맴돌았다. 아다치는 시위하듯 눈을 뜨지 않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
“그게 힘들면 대신 타니에게 말해도 괜찮아. 내가 잘 얘기해놨어.”
아다치가 쿠로사와나 타니에게 연락할 일은 없을 거다. 쿠로사와는 집을 나섰다. 그러자 마자 아다치는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낯선 향기로 가득한 이곳은 아늑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아다치의 옷은 겨우 옷장 한 구석을 채운 정도고. 서재엔 어려운 내용의 책뿐이었다. 부모님께 연락하고 싶어도 엉망인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진 않았다. 쿠로사와와 어른들이 잘해준다는 문자도 겨우 보낼 수 있었다. 아다치는 불안한 발걸음으로 집을 돌아다니다가 옷을 챙겨입고 밖을 나섰다. 여긴 흐린 날이 많고 바람이 차가웠다. 아다치가 살던 따뜻한 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가지고 있는 옷 중 최고로 두꺼운 옷인데도 찬바람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목적 없이 방황하던 아다치는 쿠로사와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 여보세요?”
- 아. 아다치. 다행이네. 바로 받아서.
“그게 무슨 말이야?”
- 집에 없길래 걱정되서 전화했어.
아다치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쿠로사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네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싶어 홈캠을 설치했었거든.
“무, 무슨……. 날 지켜보고 있었어?”
- 물론 아니지. 걱정될때만 볼거야.
아다치는 알고 있다. 자신이 방황하는 모든 날은 쿠로사와의 ‘걱정될 때’라는 것을. 쿠로사와에게 허락은 의미 없다. 같은 맥락으로 거절 역시 힘이 없다. 쿠로사와는 모든 것을 다정하게 이행한다. 배신한 약혼자에게 받은 상처라고 하기엔 강압적이다. 정말 상처를 받았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다치는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꼼지락대며 대답을 아꼈다.
- 아다치.
“…….”
- 아다치. 키요. 키요시.
“…….”
- 보고싶어.
쿠로사와가 애절하게 말했다. 아다치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얘기한 뒤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었다. 어색한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여니 쿠로사와에게서 문자가 왔다.
- 냉장고에 케이크 있어.
- 좋아하는 거지?
아다치는 냉장고 문을 열어 케이크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옷을 벗어 걸어놓는 순간에도 쿠로사와가 이 모습을 보고 있을지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눈이 감시하는 느낌이란……. 결국 아다치는 집안 곳곳을 뒤져 총 네 대의 홈캠을 발견했다. 현관문. 거실. 안방. 서재. 집 안에서 아주 약간의 공간만 사각지대였다. 아다치는 기어코 사각지대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쿠로사와에게서 더는 연락이 없었다. 아다치는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쿠로사와가 올때까지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시위라도 하는 걸까?”
집으로 돌아온 쿠로사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다치는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쿠로사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쿠로사와는 가방을 내려놓고 아다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다치는 겨우 쿠로사와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네가 걱정되서 일이 손에 안 잡혔어.”
“……쿠로사와.”
“응. 그래. 키요시. 무엇이든 말해.”
“집이 그리워.”
쿠로사와의 눈빛이 변했다. 아다치도 몇 번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그립다니. 이제 겨우 일주일 지났는데?”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
“키요. 이젠 여기가 네 집이야.”
쿠로사와가 아다치의 팔을 꾹 잡았다. 그날이 생각나는 것 같아서 아다치는 약하게 몸부림을 쳤다. 놔줄 법도 한데, 쿠로사와는 봐주는 법이 없었다.
“네가 어떤 마음인지 알아. 그렇다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
“쿠로사와. 제발.”
“여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매일 맛있는 요리를 해줄게. 좋은 공연도 보여줄 거야. 주말엔 둘이서만 시간 보내자. 응? 키요.”
쿠로사와는 아다치를 품에 가두고 부술듯 안았다. 아다치는 인형처럼 쿠로사와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주는 옷을 입었다. 그날 이후 억지로 몸을 취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터라 쿠로사와는 함부로 아다치를 만지지 않았다. 아다치는 몰래 눈물을 닦으며 잠에 들었다. 아다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것이 바뀌려 하고 있었다.
또 아침이 왔다. 쿠로사와의 하루는 지나치게 규칙적이라 어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반면 아다치의 일상은 쿠로사와의 출근 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집애 찾아온 것이다. 아다치가 어색한 손짓으로 문을 열자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입은 타니가 보였다. 아다치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말동무 좀 해달라길래.”
어떤 설명도 없는 짧은 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아챈 아다치는 타니에게 소파 한 켠을 내어주었다. 이러니 정말 쿠로사와 키요시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타니는 편히 앉아 아다치를 보고 있었다.
“금방 갈 거예요. 일하다 온 거라서요.”
아다치는 동그란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지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라, 타니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다치는 고개를 까딱이더니 타니와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았다. 타니는 아다치가 귀여운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네 형수 말동무 좀 해줘.
그러니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자신의 형이 부탁이라는 걸 다 하지. 타니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안달난 얼굴을 보니 좀 통쾌해서 그런가? 아니면, 아다치의 꼴이 자신과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 즐거운 건가? 겨울의 귀한 햇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테이블을 비췄다.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던 아다치가 차라도 내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은 좀 어때요?”
“네, 네?”
“잘 해줘요?”
어떤 의도도 없는 질문이었다. 아다치는 타니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쿠로사와는 항상 친절한 사람이니까요…….”
거짓말. 타니가 한 쪽 눈썹을 올렸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형수님.”
타니는 아다치를 보고 있자니 호텔에서 있었던 날이 떠올라 담배를 찾았다. 여기가 쿠로사와의 집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서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었지만 말이다.
“듣자하니. 아직 적응을 잘 못하고 계신다던데.”
“…….”
“옷부터 사세요. 집안 어른들 은근히 그런 거 신경 써요.”
그러면서 타니는 천천히 일어나 집안 곳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니. 구경이라기 보단 조사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는 경찰이다. 누군가를 쫓는 것에 재능있고. 폭력에 가까운 사람이다.
“친구 있어요?”
“여기엔 없어요.”
“하긴. 그럼 취미는요?”
타니가 고개를 돌렸다. 아다치는 그 순간 타니의 얼굴에서 쿠로사와를 보았다. 단순히 취미를 묻는 질문인데도, 그 작은 단서로 사람을 파고들 준비가 되어 있는 날카로운 발톱.
“문구…….”
“예?”
그래도 아다치는 터니와 쿠로사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순히 대답했다.
“문구류를 좋아해요. 그래서 자주 사러 가요…….”
아다치는 고향에 두고 온 물건들을 생각하며 살짝 웃었다. 타니는 아다치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취미는 뭐.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거 찾으시고.”
“왜, 왜요?”
“형이 외출을 싫어할 테니까.”
쿠로사와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 사람. 집안까지. 무엇 하나 제 뜻을 거스르는 걸 두고 본 적이 없었다. 그 중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가장 첫 번째였다. 아다치는 벽에 설치된 홈캠을 보고 주먹을 꽉 쥐었다.
‘하긴. 저런 오메가라면…….’
타니는 아주 잠깐동안 쿠로사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니는 일이 바쁘다며 차도 마시지 않고 돌아갔다. 마음이 더 불편해진 어다치는 덩그러니 앉아있다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펑범한 가정집과 다를 것 없었다. 상비약. 신선한 음식. 옷. 심지어 피임 도구까지. 이 집은 완벽했다. 아다치에게 필요한 건 다 있었다.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
- 혹시 읽을 책이라던가, 필요해?
쿠로사와에게 문자가 왔다. 아다치는 서재로 들어가 책상에 꽂힌 책을 전부 뒤졌다. 아다치 취향의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쿠로사와는 두 손 무겁게 귀가했다. 문구류를 전문으로 소개하는 잡지부터 뜨개질 키트. 만년필과 고급지. 인기 게임기까지.
“널 위해서 준비했어.”
뿌듯한 얼굴을 보고 아다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맙다는 인사만 겨우 건넸다. 그것만으로도 쿠로사와는 많이 행복했다.
쿠로아다 타니아다 마치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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