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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8 23:51
왕자 최동오랑 혼인한 장군 정성구밖에 생각 안남

왕이 앓아누운 이후로 최동오가 나랏일을 모두 도맡았음. 그동안 크고작은 전쟁도 많았겠지. 하지만 그 모든 전쟁에 항상 앞에 나서는 건 최동오와 그 남편 정성구였음. 물론 둘이 혼인할 때만 해도 전쟁이 많지는 않았음. 태평성대라 해도 좋을 시대였지만 일은 느닷없이 일어났겠지.

첫 전쟁은 적국의 습격을 받아 일어났음. 그리고 하필 날아오는 화살에 최동오가 낙마하는 바람에 아이를 잃고야 말았음. 본능적으로 배를 부여잡느라 잘못 떨어져 피를 흘리는 모습에 정성구는 혼비백산하여 제 낭군을 껴안고 달려갔지만 들려오는건 아기씨를 잃었다는 소식. 최동오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한 방울 흘린 것이 끝이었지만 그 뒤로 사람이 변해버린 것 같았음.

무인과 혼인했지만 피를 본 적은 없었는데. 처음 본 그 피가 내 아이의 피라고.

건조한 눈으로 중얼거리고 툭툭 털고일어났는데. 몸을 추스리기가 무섭게 칼과 활을 잡고 전쟁터에 뛰어들었겠지. 그 누구도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감히 제게 활을 쏜 그놈을 찾는게 분명할 정도였음. 매일밤 두 손이 피로 물들어 처소로 돌아오는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지. 정성구가 아무리 말려봐도 듣지 않아. 선잠에 드셨다가도 아가, 하며 벌떡 일어나시는데. 그 누가 말릴수있겠어. 그저 몸이 축나지 않게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식사를 챙겨드리는 것말고는 없었지만 정성구도 괜히 왕자의 부군이 된 건 아니겠지.

전하. 잡아왔습니다.

꽁꽁 묶여 끌려온 젊은 장수 하나. 자결조차 하지 못하게 입에는 굵은 밧줄을 욱여넣었음. 장검을 빼어든 최동오 앞에서 그 누구도 편히 침을 삼키지도 못했겠지. 살얼음판 같던 적막을 깬건 정성구였음.

말씀만 하신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차라리 나를 죽이지 그랬느냐.
전하.
내 심장을 꿰뚫었어야지. 그 나라에서는 심장이 어디인지도 안 가르쳐주더냐?

검을 내팽겨치고 장수에게 다가간 최동오는 장수의 목덜미를 휙 잡아올렸음.

네놈도 살아있는게 지옥이라고 느끼게 해줄테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스스로를 저주하게 할 거다. 너는 이제 평생 고향 땅도 밟지 못하고 너에게 허락된 비좁은 우리에서 살아야 할 거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코앞에 두고도 어찌나 노기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지. 난생 처음 보는 모습에 주위에는 여전히 적막만이 가득했음.

네놈을 잡았으니 이제 전쟁은 없다. 그렇게 말하고 화친을 맺을 생각이다.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의 가족은 모두 너를 저주하겠지. 네 그 저주스러운 손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해친 네 손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니까.

최동오는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이 장수를 툭 던져버렸음. 장수의 괴로운 울음과 눈물이 만연했음.

...내 아이였기도 하지만 성구의 아이이기도 했다. 그러니 부군이 내 모든 결정에 반대한다면 내 말을 물러줄 수도 있다.
...전하.
왕자가 아니라 아이의 아버지로서 묻는거야. 이 놈을 어떻게 하고싶지?

정성구는 제 손을 내려다봤음. 아직 해가 중천인데도 피로 물든 제 손을. 수많은 업보를 쌓아온 제 손을. 그리고 시선을 옮기자 최동오의 주먹이 꽉 쥐어진채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도 보았음.

단칼에 보내주시는게 옳다 생각합니다.
...어째서?
다 끝내버리고, 아이와 제대로 작별하고 싶습니다.
...
제대로 보내주지도 못했습니다. 전하, 부디 자비를...

말없이 정성구를 바라보던 최동오는 장검을 다시 주워 건네주겠지. 이 놈을 찢어발기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을텐데, 자신을 위해 멀쩡한 상태로 잡아왔을 심정은 최동오조차 헤아리기 힘들었을 거임.

하늘로 솟아오르는 피가 전쟁의 끝을 알렸음.



슬램덩크 슬덩 성구동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