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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 13:29
"암호를 대라!"
"블루 다이아몬드! 블루 다이아몬드다, 이 똥구멍아!"
크리스테슨은 익숙한 목소리에 총을 내리고는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었다. 웬 자루를 손에 든 큐팁이 수풀을 헤치고 나타나자 테슨이 물었다.
"뒤에 똥구멍은 빼야죠, 큐팁. 그건 뭡니까?"
"잠시 중세시대로 회귀했지. 다리 네 개에 털이랑 고기도 좀 붙어있다."
큐팁이 들고온 자루 입구를 칭칭 묶어 험비 뒷칸으로 던지자 깱! 불길한 비명이 퍼진 후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혹 잊어버린건가 싶을 만큼 짐짝 사이를 구르며 방치되길 며칠, 허벅지에 붕대를 감고 다시 나타난 큐팁이 불 옆에 앉아 자루를 열어제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죽은 줄 알았던 생물이 파다닥! 빠르게 밖으로 튀어나갔다.
"어떻게 잡은 건데 도망가면 안 되지."
"너무 작지 않나요? 손바닥 만한데요."
"없는 것보단 낫잖아."
며칠동안 물 한모금 못 먹은 주제에 어디서 힘이 나는 건지 그것은 사냥꾼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나무 기둥에 부딪혀 다시한 번 깩! 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건 나무도 아니었거니와, 기둥의 주인은...
"이건 뭐야."
"엘티, sir. 그게요..."
중세시대로 회귀한 큐팁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네이트 픽 중위는 제 다리에 부딪힌 충격으로 헤롱거리는 생물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요상한 생김새를 뜯어보다, 못마땅하게 말했다.
"그래서, 이런 걸 먹겠다고?"
그 말에 모두들 픽 중위의 손가락을 따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도 없는 그것은 짤록한 몸뚱아리에 긴 팔다리, 긴 손가락을 가졌고 손톱은 뾰족했다.
"저건 날개인가?"
겨드랑이 밑엔 날개로 보이는 얇은 막도 있었다. 꼬리는 팔 전체 길이보다도 길었는데, 얼룩덜룩한 무늬는 징그럽게 곰팡이가 핀 형상에 가까웠다. 털이라도 귀엽게 나든가 아님 화끈하게 밀어버리든가, 듬성듬성 난 모양이 흉측함을 더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으로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드는 외관이었다. 그게 방금 전까지 이 물체를 섭취하려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상한 거 먹고 탈나면 더 골치 아프니까, 좀 참아. 보급은 내가 그리에고 중사한테 한 번 더 얘기해볼게."
픽 중위의 말에 두 청년은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돌아서자마자 시무룩한 얼굴로 "가뜩이나 바쁘신데 저희까지 신경쓰시게 만든 거 아닙니까..." 걱정하는 테슨의 머리를 말 없이 쓰다듬어주는 큐팁이었다. 그것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그것이 픽 중위와 다시 만난 것은 하루쯤 지난 후였다. 4호차에 모여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난 후 짧은 여담을 주고받던 와중이었다.
"저건 뭐여? 사람 대가리인 줄 알았네."
간헐적으로 움찔대는 그것을 향해 파피가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군화 앞코로 그것을 살짝 터치하는 순간, 그것은 엉덩이라도 차인 듯 공중으로 튀어올라 패닉에 빠진 미치광이처럼 모래밭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또다시 퍽!
"엘티?"
이번엔 충돌은 아니고, 그것이 픽 중위의 바지춤을 꽉 쥐고 매달렸다. 그는 황당한 듯 다리를 털어 그것을 떼어내려 했지만, 살기 위한 안간힘인지 떨어질 생각은 커녕 더욱 바짝 달라붙었다. 못생긴 얼굴을 옷감에 푹 박고 바들바들 떨어대는 모습을 보자니 이 조그만한 생물을 죽이는 것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려던 차였다.
"아야, 그렇게 꽉 쥐면 아프잖아."
그 말에 어쩐지 종아리를 짓누른 손톱이 느슨해진 것 같다면, 너무 오랜 시간을 깨어 있던 탓이겠지. 네이트 픽은 자라처럼 목을 빼고 제 다리만 보는 거구의 군인들을 해산시키고는 직접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다리를 감싼 기다란 손가락을 떼어냈다. 그러자 그것은 무릎을 밟고 어깨를 타고 올라가 픽 중위의 머리 꼭대기에 안착했다. 긴 꼬리로 야무지게 캐뷸라를 돌돌 감고.
"키우실 겁니까?"
"글쎄... 거니, 일단 물 좀 갖다줄래?"
그것은 그렇게 또 한 번 살아남았다.
그것은 이상했다. 외모 뿐만 아니라 목소리조차도. 줄곧 옆구리나 다리 한 쪽에 그것을 달고 다닌 픽 중위조차도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겔겔..."
별안간 들린 비웃는 듯한 소리에,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거니, 방금 웃었어?"
윈 중사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잘못 들은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가던 길을 가려던 그때,
"겔겔겔..."
네이트 픽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윈 중사도 함께 들었는지 같은 곳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긴 손가락으로 무전기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얘가 웃은 거야?" "그런 것 같은데요." 중사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픽 중위는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것을 떼어내 반대쪽에 붙여 놓았으나, 자꾸만 무전기를 향해 손을 뻗는 바람에 결국 바닥에다 떨궈놓으며 말했다.
"무전기는 만지면 안 돼. 자꾸 그러면 큐팁한테 데려다 놓을 거야."
"끕..."
그것이 시무룩해한다.
그것은 큐팁을 싫어했다. 당연하지. 자기를 구워먹으려 한 사람을 어떤 생물이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특이한 점은 그것이 큐팁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큐팁을 싫어했다. 본능이 아닌 감정의 뜻으로.
"헤이, 이거 먹을래?"
그것의 주식은 먹고 남은 MRE 였는데, 말라 비틀어진 빵 부스러기를 손바닥에 담아주면 개구리가 파리를 잡아먹듯 기다란 혀로 콕콕 찍어 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픽 중위나 윈 중사의 이야기지 큐팁이 내밀면...
"너무하네. 미안하다니까, 작은 친구."
긴 팔과 그보다 더 긴 손가락을 최대치로 뻗어 먹을 만큼만 잽싸게 가져오는 것이다.
"쟤 그거같지 않냐? 알ㄹㅏ딘에 나오는... 바주였나?"
"아부겠지, 병신아. 바주는 시발, 바주카포냐?"
그것은 희한한 외모로 소대 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소대원들은 그것의 생김새로 미루어 박쥐 혹은 원숭이로 추정했다. 그러나 박쥐라 하기엔 팔이 너무 길었고, 원숭이라 하기엔 날개가 달려 있었다. 어쨌든 픽 중위의 다리든 허리든 어깨든 어디 한 군데에는 꼭 달라붙어 있으려는 통에 대원들은 그것을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천덕꾸러기 원숭이를 따서 아부라고 불렀다.
"코알라 같아여."
누군가는 다른 감상을 내기도 했다.
"쏘지 마라, 트럼블리."
"쟨 안 쏴여. 귀엽자나여."
주인 행세를 하는 어느 중위도 차마 그 말엔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일 수 없었다.
그것이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건 얼마 안 가서였다. 월트가 벌집을 잘못 건드린 탓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던 와중이었다. 그것이 별안간 "깍!" 하는 소리를 내더니 벌집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픽 중위가 가까스로 꼬리를 잡아 세웠지만, 그것은 양 팔과 몸통을 앞으로 쭉 내밀더니 꼬리를 자르고 기어이 벌집을 잡아챘다.
소대원들 주변을 사납게 날아다니는 벌을 혀로 빠르게 낚아 먹고 긴 손가락으로 벌집 안의 남은 벌과 애벌레까지 야무지게 해치우고, 환상적인 혀놀림으로 꿀까지 싹싹 빨아먹은 후, 부른 배를 씰룩거리며 주인에게 돌아가는 광경을 픽 중위도 다른 이들도 멍청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소대에 버거킹이 둘이나 있네. 하나는 와퍼 주니어 하나는 Bee Killer."
"백인 놈들은 도대체 어디가 잘못 됐길래 자기들을 구해준 동물한테 그따위 이름을 붙이는 거냐?"
"꿀벌로 하자."
"그건 벌들한테 너무한거 아니야?"
"저렇게 생겼는데 이름이라도 귀여운 걸로 붙여주자, 좀."
그리하여 그것은 분수에도 안 맞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졸지에 양봉업자가 된 픽 중위는 눈만 꾹 감았다.
잠깐동안 머무르게 된 마을에서 트럼블리는 별안간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살구색의 줄무늬 고양이었다. 경계심도 적고 야옹 야옹 우는 고양이는 무뚝뚝한 군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픽 중위도 그중 하나였다.
"귀엽다."
그것은 그날 밥을 굶었다. 걱정스럽게 저를 살피는 주인의 얼굴을 보면서도 "긔야..." 하고 울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것은 곧잘 주인을 떠나 소대원들 팔에 달라붙어 있었다. 잘라낸 꼬리는 아주 느리지만 다시 생겨나고 있었다. 이번엔 털이 복실복실한 줄무늬였다. 꼬리가 재생되며 모량과 무늬가 달라지는 생물이 있던가, 픽 중위는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군인들에게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몇몇 친해진 이들에게는 먼저 달라붙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저질렀다.
"저거 내 건가?"
"이 녀석이 발견했나 보네요."
"찾아 준 거야? 고마워."
픽 중위가 애용하던 펜을 잃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벅벅 긁는 손길에 내려다 보니, 그것이 있었다. 반대쪽엔 펜을 들고서. 티도 못내고 가만히 속만 상했는데, 기특한 마음에 듬성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그것은 누런 이를 드러내고
"그야오..."
하며 이상하게 웃었다.
이렇게 인간 친화적인 (큐팁 빼고) 그것에게 유일하게 물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유는 없었다. 2소대에서 애완동물을 기른다는 말을 듣고 구경을 왔을 뿐인데, 그것이 냅다 손가락을 물어버린 탓에 레이는 우리 꿀벌이가 낯을 많이 가린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엔시노맨은 조금 시무룩해 했지만, 동물들은 역시 잘 모르겠다며 납득하고 돌아갔다. 그날 그것은 바나나 한 덩어리를 포상으로 받았다.
그것은 털갈이를 했다. 덕분에 한동안 2소대 사람들은 전투복 이곳 저곳에 털을 달고 다녔다. 그것은 잠깐동안 맨들한 몸으로 다니더니 곧 풍성한 털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나 줄무늬였다. "고양이같아여." 트럼블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날개 달린 고양이가 어딨... 어? 날개 어딨지?"
겨드랑이 밑의 날개도 사라졌다.
요 근래 그것은 잘 울지 않았다. 그러니까, 전에는 겔겔 웃는다던가 꿉, 깩 등 요상하고 다양한 소리를 냈지만 최근엔 도통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며칠 동안 픽 중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 간신히 들을 수 있었던 소리는
"야옭."
어느 동물이랑 참 비슷했다.
어두컴컴한 밤, 강을 건너려던 때였다. 좁다란 다리를 일렬로 지나며 운전수들은 똥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매복이라도 있으면 그대로 개죽음이겠군요."
윈 중사가 말했다. 그러자 얌전히 발치에 앉아있던 그것이 꿈틀대더니,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갔다. 픽 중위가 다급한 손짓으로 뒷다리를 잡아챘으나 다리는 그대로 똑 잘렸다. 그것은 험비 바퀴 옆을 데굴데굴 구르며 울부짖었다.
"끼야아아아아악—"
탕—!
매복이었다. 고막을 찢는 듯한 울음 소리에 놀란 적이 오발을 한 것이다. 브라보 투는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어디로 떨어졌는지 모를 그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네이트 픽은 혼자 있을 때면 펜 끝을 만지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
"으악! 깜짝이야!"
그것이 처음 잡혔던 자루 속에서 톡 튀어나왔다.
"작은 친구, 너야? 계속 여기 있던 거야?"
"야옹."
마치 고양이같은 생김새로, 고양이같은 목소리로.
네이트 픽은 믿을 수 없었다. 저건 지나가던 고양이 아닌가?
"고양이는 아니에여. 꼬리가 너무 길어여."
"그리고 너무 작아여."
"무엇보다 얼굴이 달라여."
트럼블리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픽 중위는 저를 보자마자 다리에 매달리는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것은 동그랗고 야무진 손발로 익숙하게 그의 품에 달라붙었다. 아, 맞구나, 너. 이제서야 반가워할 수 있었다.
"못 보는 줄 알았어."
"야옹—." 그것이 웃었다. 아니, 웃는 것 같았다.
그것은 네 발로 서고 네 발로 걸었다. 이상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층 더 복슬복슬 귀여워졌다. 아주 작은 고양이같았다. 그래서 픽 중위는 더욱 그것을 몸에 붙이고 다녔다. 몸에 달라붙어 있을 때만큼은 그것이 고양이가 아닌 못생기고 이상했던 꿀벌같아서. 좋아했던.
한동안 그것은 픽 중위에게만 달라붙어 있었다.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 심지어 윈 중사마저도 그것에게 손을 뻗으면 이빨을 드러냈다. 어떤 때는 팔이었고, 어떤 때는 머리 위였고, 어떤 때는 등이었다. 잘 때는 목덜미에 파묻혔다. 낯설었던 털가죽이 조금은 보드랍게 느껴졌다.
"겔..."
잠꼬대는 예전 목소리 그대로였다. 네이트 픽은 안심했다.
"배고프지 않아?"
"야옹."
"밥 먹을래?"
"야—옹."
"큐팁..."
"엙."
어느정도의 의사 소통도 가능해졌다.
그것은 픽 중위에게 달라붙길 좋아했다. 바닥에 내려놓아도 어느 순간 어깨 위에 올라앉아서 움직이는 펜을 같이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뿐이어서 놔두기로 했다. 그러다 어느 하루, 유달리 졸음이 쏟아지던 때, 픽 중위는 행여 제가 졸기라도 하면 다칠까 책상 위에 그것을 앉혀두고 일을 보았다.
꼬리로 발을 감싸고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머리 위로 네이트 픽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갖다댔다. 그리고는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그럴 터였다.
책상 위에 웬 여자가, 그것도 알몸으로 앉아있지만 않았다면.
젠킬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큐팁(엙.)너붕붕
"블루 다이아몬드! 블루 다이아몬드다, 이 똥구멍아!"
크리스테슨은 익숙한 목소리에 총을 내리고는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었다. 웬 자루를 손에 든 큐팁이 수풀을 헤치고 나타나자 테슨이 물었다.
"뒤에 똥구멍은 빼야죠, 큐팁. 그건 뭡니까?"
"잠시 중세시대로 회귀했지. 다리 네 개에 털이랑 고기도 좀 붙어있다."
큐팁이 들고온 자루 입구를 칭칭 묶어 험비 뒷칸으로 던지자 깱! 불길한 비명이 퍼진 후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혹 잊어버린건가 싶을 만큼 짐짝 사이를 구르며 방치되길 며칠, 허벅지에 붕대를 감고 다시 나타난 큐팁이 불 옆에 앉아 자루를 열어제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죽은 줄 알았던 생물이 파다닥! 빠르게 밖으로 튀어나갔다.
"어떻게 잡은 건데 도망가면 안 되지."
"너무 작지 않나요? 손바닥 만한데요."
"없는 것보단 낫잖아."
며칠동안 물 한모금 못 먹은 주제에 어디서 힘이 나는 건지 그것은 사냥꾼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나무 기둥에 부딪혀 다시한 번 깩! 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건 나무도 아니었거니와, 기둥의 주인은...
"이건 뭐야."
"엘티, sir. 그게요..."
중세시대로 회귀한 큐팁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네이트 픽 중위는 제 다리에 부딪힌 충격으로 헤롱거리는 생물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요상한 생김새를 뜯어보다, 못마땅하게 말했다.
"그래서, 이런 걸 먹겠다고?"
그 말에 모두들 픽 중위의 손가락을 따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도 없는 그것은 짤록한 몸뚱아리에 긴 팔다리, 긴 손가락을 가졌고 손톱은 뾰족했다.
"저건 날개인가?"
겨드랑이 밑엔 날개로 보이는 얇은 막도 있었다. 꼬리는 팔 전체 길이보다도 길었는데, 얼룩덜룩한 무늬는 징그럽게 곰팡이가 핀 형상에 가까웠다. 털이라도 귀엽게 나든가 아님 화끈하게 밀어버리든가, 듬성듬성 난 모양이 흉측함을 더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으로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드는 외관이었다. 그게 방금 전까지 이 물체를 섭취하려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상한 거 먹고 탈나면 더 골치 아프니까, 좀 참아. 보급은 내가 그리에고 중사한테 한 번 더 얘기해볼게."
픽 중위의 말에 두 청년은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돌아서자마자 시무룩한 얼굴로 "가뜩이나 바쁘신데 저희까지 신경쓰시게 만든 거 아닙니까..." 걱정하는 테슨의 머리를 말 없이 쓰다듬어주는 큐팁이었다. 그것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그것이 픽 중위와 다시 만난 것은 하루쯤 지난 후였다. 4호차에 모여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난 후 짧은 여담을 주고받던 와중이었다.
"저건 뭐여? 사람 대가리인 줄 알았네."
간헐적으로 움찔대는 그것을 향해 파피가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군화 앞코로 그것을 살짝 터치하는 순간, 그것은 엉덩이라도 차인 듯 공중으로 튀어올라 패닉에 빠진 미치광이처럼 모래밭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또다시 퍽!
"엘티?"
이번엔 충돌은 아니고, 그것이 픽 중위의 바지춤을 꽉 쥐고 매달렸다. 그는 황당한 듯 다리를 털어 그것을 떼어내려 했지만, 살기 위한 안간힘인지 떨어질 생각은 커녕 더욱 바짝 달라붙었다. 못생긴 얼굴을 옷감에 푹 박고 바들바들 떨어대는 모습을 보자니 이 조그만한 생물을 죽이는 것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려던 차였다.
"아야, 그렇게 꽉 쥐면 아프잖아."
그 말에 어쩐지 종아리를 짓누른 손톱이 느슨해진 것 같다면, 너무 오랜 시간을 깨어 있던 탓이겠지. 네이트 픽은 자라처럼 목을 빼고 제 다리만 보는 거구의 군인들을 해산시키고는 직접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다리를 감싼 기다란 손가락을 떼어냈다. 그러자 그것은 무릎을 밟고 어깨를 타고 올라가 픽 중위의 머리 꼭대기에 안착했다. 긴 꼬리로 야무지게 캐뷸라를 돌돌 감고.
"키우실 겁니까?"
"글쎄... 거니, 일단 물 좀 갖다줄래?"
그것은 그렇게 또 한 번 살아남았다.
그것은 이상했다. 외모 뿐만 아니라 목소리조차도. 줄곧 옆구리나 다리 한 쪽에 그것을 달고 다닌 픽 중위조차도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겔겔..."
별안간 들린 비웃는 듯한 소리에,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거니, 방금 웃었어?"
윈 중사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잘못 들은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가던 길을 가려던 그때,
"겔겔겔..."
네이트 픽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윈 중사도 함께 들었는지 같은 곳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긴 손가락으로 무전기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얘가 웃은 거야?" "그런 것 같은데요." 중사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픽 중위는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것을 떼어내 반대쪽에 붙여 놓았으나, 자꾸만 무전기를 향해 손을 뻗는 바람에 결국 바닥에다 떨궈놓으며 말했다.
"무전기는 만지면 안 돼. 자꾸 그러면 큐팁한테 데려다 놓을 거야."
"끕..."
그것이 시무룩해한다.
그것은 큐팁을 싫어했다. 당연하지. 자기를 구워먹으려 한 사람을 어떤 생물이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특이한 점은 그것이 큐팁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큐팁을 싫어했다. 본능이 아닌 감정의 뜻으로.
"헤이, 이거 먹을래?"
그것의 주식은 먹고 남은 MRE 였는데, 말라 비틀어진 빵 부스러기를 손바닥에 담아주면 개구리가 파리를 잡아먹듯 기다란 혀로 콕콕 찍어 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픽 중위나 윈 중사의 이야기지 큐팁이 내밀면...
"너무하네. 미안하다니까, 작은 친구."
긴 팔과 그보다 더 긴 손가락을 최대치로 뻗어 먹을 만큼만 잽싸게 가져오는 것이다.
"쟤 그거같지 않냐? 알ㄹㅏ딘에 나오는... 바주였나?"
"아부겠지, 병신아. 바주는 시발, 바주카포냐?"
그것은 희한한 외모로 소대 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소대원들은 그것의 생김새로 미루어 박쥐 혹은 원숭이로 추정했다. 그러나 박쥐라 하기엔 팔이 너무 길었고, 원숭이라 하기엔 날개가 달려 있었다. 어쨌든 픽 중위의 다리든 허리든 어깨든 어디 한 군데에는 꼭 달라붙어 있으려는 통에 대원들은 그것을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천덕꾸러기 원숭이를 따서 아부라고 불렀다.
"코알라 같아여."
누군가는 다른 감상을 내기도 했다.
"쏘지 마라, 트럼블리."
"쟨 안 쏴여. 귀엽자나여."
주인 행세를 하는 어느 중위도 차마 그 말엔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일 수 없었다.
그것이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건 얼마 안 가서였다. 월트가 벌집을 잘못 건드린 탓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던 와중이었다. 그것이 별안간 "깍!" 하는 소리를 내더니 벌집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픽 중위가 가까스로 꼬리를 잡아 세웠지만, 그것은 양 팔과 몸통을 앞으로 쭉 내밀더니 꼬리를 자르고 기어이 벌집을 잡아챘다.
소대원들 주변을 사납게 날아다니는 벌을 혀로 빠르게 낚아 먹고 긴 손가락으로 벌집 안의 남은 벌과 애벌레까지 야무지게 해치우고, 환상적인 혀놀림으로 꿀까지 싹싹 빨아먹은 후, 부른 배를 씰룩거리며 주인에게 돌아가는 광경을 픽 중위도 다른 이들도 멍청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소대에 버거킹이 둘이나 있네. 하나는 와퍼 주니어 하나는 Bee Killer."
"백인 놈들은 도대체 어디가 잘못 됐길래 자기들을 구해준 동물한테 그따위 이름을 붙이는 거냐?"
"꿀벌로 하자."
"그건 벌들한테 너무한거 아니야?"
"저렇게 생겼는데 이름이라도 귀여운 걸로 붙여주자, 좀."
그리하여 그것은 분수에도 안 맞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졸지에 양봉업자가 된 픽 중위는 눈만 꾹 감았다.
잠깐동안 머무르게 된 마을에서 트럼블리는 별안간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살구색의 줄무늬 고양이었다. 경계심도 적고 야옹 야옹 우는 고양이는 무뚝뚝한 군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픽 중위도 그중 하나였다.
"귀엽다."
그것은 그날 밥을 굶었다. 걱정스럽게 저를 살피는 주인의 얼굴을 보면서도 "긔야..." 하고 울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것은 곧잘 주인을 떠나 소대원들 팔에 달라붙어 있었다. 잘라낸 꼬리는 아주 느리지만 다시 생겨나고 있었다. 이번엔 털이 복실복실한 줄무늬였다. 꼬리가 재생되며 모량과 무늬가 달라지는 생물이 있던가, 픽 중위는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군인들에게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몇몇 친해진 이들에게는 먼저 달라붙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저질렀다.
"저거 내 건가?"
"이 녀석이 발견했나 보네요."
"찾아 준 거야? 고마워."
픽 중위가 애용하던 펜을 잃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벅벅 긁는 손길에 내려다 보니, 그것이 있었다. 반대쪽엔 펜을 들고서. 티도 못내고 가만히 속만 상했는데, 기특한 마음에 듬성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그것은 누런 이를 드러내고
"그야오..."
하며 이상하게 웃었다.
이렇게 인간 친화적인 (큐팁 빼고) 그것에게 유일하게 물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유는 없었다. 2소대에서 애완동물을 기른다는 말을 듣고 구경을 왔을 뿐인데, 그것이 냅다 손가락을 물어버린 탓에 레이는 우리 꿀벌이가 낯을 많이 가린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엔시노맨은 조금 시무룩해 했지만, 동물들은 역시 잘 모르겠다며 납득하고 돌아갔다. 그날 그것은 바나나 한 덩어리를 포상으로 받았다.
그것은 털갈이를 했다. 덕분에 한동안 2소대 사람들은 전투복 이곳 저곳에 털을 달고 다녔다. 그것은 잠깐동안 맨들한 몸으로 다니더니 곧 풍성한 털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나 줄무늬였다. "고양이같아여." 트럼블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날개 달린 고양이가 어딨... 어? 날개 어딨지?"
겨드랑이 밑의 날개도 사라졌다.
요 근래 그것은 잘 울지 않았다. 그러니까, 전에는 겔겔 웃는다던가 꿉, 깩 등 요상하고 다양한 소리를 냈지만 최근엔 도통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며칠 동안 픽 중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 간신히 들을 수 있었던 소리는
"야옭."
어느 동물이랑 참 비슷했다.
어두컴컴한 밤, 강을 건너려던 때였다. 좁다란 다리를 일렬로 지나며 운전수들은 똥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매복이라도 있으면 그대로 개죽음이겠군요."
윈 중사가 말했다. 그러자 얌전히 발치에 앉아있던 그것이 꿈틀대더니,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갔다. 픽 중위가 다급한 손짓으로 뒷다리를 잡아챘으나 다리는 그대로 똑 잘렸다. 그것은 험비 바퀴 옆을 데굴데굴 구르며 울부짖었다.
"끼야아아아아악—"
탕—!
매복이었다. 고막을 찢는 듯한 울음 소리에 놀란 적이 오발을 한 것이다. 브라보 투는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어디로 떨어졌는지 모를 그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네이트 픽은 혼자 있을 때면 펜 끝을 만지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
"으악! 깜짝이야!"
그것이 처음 잡혔던 자루 속에서 톡 튀어나왔다.
"작은 친구, 너야? 계속 여기 있던 거야?"
"야옹."
마치 고양이같은 생김새로, 고양이같은 목소리로.
네이트 픽은 믿을 수 없었다. 저건 지나가던 고양이 아닌가?
"고양이는 아니에여. 꼬리가 너무 길어여."
"그리고 너무 작아여."
"무엇보다 얼굴이 달라여."
트럼블리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픽 중위는 저를 보자마자 다리에 매달리는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것은 동그랗고 야무진 손발로 익숙하게 그의 품에 달라붙었다. 아, 맞구나, 너. 이제서야 반가워할 수 있었다.
"못 보는 줄 알았어."
"야옹—." 그것이 웃었다. 아니, 웃는 것 같았다.
그것은 네 발로 서고 네 발로 걸었다. 이상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층 더 복슬복슬 귀여워졌다. 아주 작은 고양이같았다. 그래서 픽 중위는 더욱 그것을 몸에 붙이고 다녔다. 몸에 달라붙어 있을 때만큼은 그것이 고양이가 아닌 못생기고 이상했던 꿀벌같아서. 좋아했던.
한동안 그것은 픽 중위에게만 달라붙어 있었다.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 심지어 윈 중사마저도 그것에게 손을 뻗으면 이빨을 드러냈다. 어떤 때는 팔이었고, 어떤 때는 머리 위였고, 어떤 때는 등이었다. 잘 때는 목덜미에 파묻혔다. 낯설었던 털가죽이 조금은 보드랍게 느껴졌다.
"겔..."
잠꼬대는 예전 목소리 그대로였다. 네이트 픽은 안심했다.
"배고프지 않아?"
"야옹."
"밥 먹을래?"
"야—옹."
"큐팁..."
"엙."
어느정도의 의사 소통도 가능해졌다.
그것은 픽 중위에게 달라붙길 좋아했다. 바닥에 내려놓아도 어느 순간 어깨 위에 올라앉아서 움직이는 펜을 같이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뿐이어서 놔두기로 했다. 그러다 어느 하루, 유달리 졸음이 쏟아지던 때, 픽 중위는 행여 제가 졸기라도 하면 다칠까 책상 위에 그것을 앉혀두고 일을 보았다.
꼬리로 발을 감싸고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머리 위로 네이트 픽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갖다댔다. 그리고는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그럴 터였다.
책상 위에 웬 여자가, 그것도 알몸으로 앉아있지만 않았다면.
젠킬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큐팁(엙.)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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