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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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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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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벤은 어제부터 산란해진 마음을 도저히 가라앉히질 못하고 있었다. 잔잔했던 호수에 거대한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그의 평정심이 거세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어제 아침에 받았던 충격과 중책감은 실로 무거웠는데, 그로 인해 벤은 하루종일 얇은 철사가 심장께를 감아 옥죄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냥 좀 다쳤어요. 넘어져서.'


저를 감싸던 허니의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것을 벤은 멈출 수가 없었다. 뽀얀 얼굴에 커다랗게 올라와 있던 검붉은 멍자국. 그 멍을 만든 것이 제 자신이라는게 믿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이제껏 별 감상없이 보던 허니 비가 왜 그리도 작아보이던지. 저 피죽도 못 얻어먹은 꼴에(아님) 1미터도 안되게 작고(아님) 간신히 서있는 애를(아님) 센티넬의 힘으로 때렸다는 것이 죄스러울 뿐이었다.

그게 찰나의 실수로 인한 사고일 지언정, 또 그것이 허니 비가 충동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놀라게 한 탓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값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기엔 한참 모자르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벤은 허니비의 상태를 본 순간, 어느정도 자신의 처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했다.

엄밀히 따지면 법적으로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센터 법령에 따라 팀가이드에 대한 모든 일의 권한은 팀장에게 있었기에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센터의 안보와 직결된 일이 아니라면, 윗선에서도 크게 관여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즉, 팀이라는 것은 오로지 팀장의 기준에 따라 처우가 결정된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팀 가이드들의 처우는 팀장의 도덕적 견해와 성격에 따라 달라졌다.

불합리해도 이 바닥이 그랬다.

허울 좋은 S급을 세워두고 전부 정치놀음에 말장난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팀 내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조용히 묻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S팀은?

S팀의 팀장인 가렛은 가이드를 향한 폭력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사람이었다. 가이드를 보호하는거야 대부분의 센티넬들이 그러하겠지만 그의 정도는 그런 것들을 그저 경멸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살면서 두 차례, 부대 안에 있던 같은 센티넬을 심정지 상태로 만든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이성적인 가렛이 이성을 잃어 공격을 멈추지 못 해서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모두 가이드에 대한 그의 신경증의 결과였다.

그런 그의 특성은 전부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발동기재가 마치 버튼처럼 작동했다. 그 버튼이 눌리는 순간,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마치 폭주처럼.

본인 조차도 어쩌지 못 하는 폭주와도 같았다.

그러니 그의 앞에선 그 점을 특히나 조심해야 했고 이를 잘 알고 있던 벤은 어제 허니를 본 순간, 단단히 각오를 해야할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넘어진 것 처럼 안보이는데?'
'그럼 어디 단단한 곳에 부딪혔나 보죠.'



그러나 허니 비는 태연하다 못해 뻔뻔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는 더는 묻지 말라는듯, 특유의 회의적인 허니 비의 태도에 그 파월 조차도 더 이상의 질문을 그만두게 만들었고, 가렛 또한 당사자가 별 일 아니라는듯 휘휘 손을 휘젓으니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그 모습은 벤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별나긴 해도 특별할 건 없어보이던 쬐만한 꼬맹이가 어디서 저런 배짱이 나오는 걸까. 괴짜와 용자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허니 비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체 얜 왜 안나와?"


따라서 벤은 지금 가이드 훈련장 출입구에 서있었다.

가이드인 허니가 훈련을 끝내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 차례 가이드 무리가 우르르 나오고 나서도 허니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고, 기다리다 지쳐가는 벤은 신경질적으로 굴러다니는 돌멩이만 걷어차고 있을 뿐이었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곳 중에 여기라니.

벤은 평소에 제 가이드를 모셔가려고 훈련장 앞에서 서성이던 센티넬들을 보며 혀를 차며 욕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끽 해봐야 같은 센터 부지 내에 있는 훈련장인데 그걸 또 숙소까지 데려가겠다고 저러고 있다며 눈쌀을 찌뿌리며 혀를 내둘렀더랬지.

그런데 제가 지금 그 앞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뒷목까지 화끈거릴 수 밖에.

사실 그가 허니를 모셔가기 위해 서있는 것은 아니었다. 숙소는 듣는 귀와 보는 눈이 있고 최대한 긴하게 대화를 해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제 모습이 남이 보기엔 여타 다른 과보호 센티넬 처럼 보일 것이 분명해서.

벤은 누군가가 지나갈 때 마다 은근슬쩍 기둥 뒤로 몸을 물러내기 바빴다.

그때 마침, 또 한 무리의 가이드들이 나오는 것이 보이자 벤은 번번히 기둥 뒤에 몸을 숨겨낼 수 밖에 없었다. 재빠른 그의 몸짓은 천적을 피해 굴을 찾아 들어가는 아기토끼와도 같았다.




"어후씨, 저 또라이년. 눈치껏 고분고분 하면 좀 좋아? 힘 존나 뺐네."
"내 말이. 난 쟤가 뭘 믿고 저리 당당한지 모르겠어. A급이 팀가이드 됐다고 뭐 된줄 아나."
"그래봤자 쟤 팀에서 열외된거 다 아는데 무슨."
"맞아, 오늘도 봐봐. 얼굴에 멍은 또 뭐냐?"
"그니까. 설마 센티넬이 때렸나?"
"쟤 저렇게 건방 떠는거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대박. 그래도 되나 근데?"
"맞을 짓을 했나보지."
"뭐, 오늘밤 락커 안에서 푹 쉬었다가 나오면 그 성격 고쳐질지도 모르잖아. 우리가 인생공부 시켜준거지."
"근데 내일 훈련 없어서 샤워장 안열리지 않나?그럼 내일 모레까지 쟤 저러고 있는거야?"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렇지 않을까?"
"괜찮을까?"
"그러게 적당히 나댔어야지."
"괜찮을거야. 청소하러 왔다갔다 할테니 신경쓰지마."
"야, 고고하신 분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 나오지 않겠어?"



깔깔깔. 한 무리의 가이드는 유유히 멀어져갔다. 벤은 그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천천히 기둥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저만치 가고 있는 가이드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끌벅적한 잡담소리가 점점 작아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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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은 그대로 서서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온 몇 가지 단어들을 곱씹었다. A급, 팀가이드, 열외, 얼굴에 멍, 락커, 그리고 샤워장. 단어들의 조합에서 오는 기시감에 벤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

설마?
아니겠지...

그는 덥쳐오는 불안감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럴 때 일 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제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벤의 발걸음은 이미 건물 안으로 곧장 향하고 있었고 그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출입구를 지날 때 쯤에서는 급기야 달리기 시작했다. 더이상 누군가 자신을 보고 가이드를 싸고 도는 센티넬로 볼까 하는 걱정은 지워진듯 했다. 그저 샤워장, 락커 그리고 허니 비라는 세 단어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 차 있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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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이틴 영화의 주인공이라니..."

허니는 이마를 문에 기대며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차가운 철제의 냉기가 이마로 스며들자 끌어오르는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 같기도 했다.

허니는 모두가 빠져나간 텅 빈 탈의실에 홀로였다. 샤워를 하고 이제 막 나온터라 젖은 머리에는 물이 뚝뚝 흘렀고 커다란 흰 색 타올은 허니의 몸통에 둘둘 휘감겨 있었다. 드러난 어깨는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인해 계속해서 젖어갔고 때문에 금방 올라오는 한기가 등줄기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이러다간 감기 한번 지독하게 걸릴 것 같아 얼른 머리도 말리고 옷도 입고 싶은데, 서 있는 것도 간신히 할 수 있는 락커 안에서 허니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잠긴 락커문은 힘을 주어 흔들어 봐도 열릴 기미가 없었다. 갖은 방법을 써봐도 힘은 점점 빠져나갔고 사방으로 가로막힌 관짝 같은 락커 안은 더욱 허니를 옥죄는 것만 같았다. 후, 계속해서 씨름을 하던 허니는 차오른 숨을 씨근덕거렸다.



"망할 것들. 가다가 다 뒤져버려락!"


그러다 울컥 솟는 울화통에 왁 하고 저주까지 퍼붓어 보는 허니였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이마를 쿵쿵 철제문에 찧어 박았다. 고개를 푹 숙인 허니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를 멈추려 입술을 앙 물었지만 야속하게도 설움은 더욱 커져갔다.

우씨, 짜증나. 저딴 것들 때문에 울다니.

소위 집단으로 가해지는 괴롭힘을 혼자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허니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한 힘 없는 제 자신이 한심했고 실제로 그들이 한 짓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팀가이드가 되고 난 후, 팀가이드 전용 훈련반에 들어가고 부터 시작된 괴롭힘이었다. 처음에는 허니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시작되었다. 수근거린다던가 흘겨보거나 어깨나 치고가는 식이었다. 그러다 점점 그 수위가 높아져갔고 종국엔 이 지경까지 온 것 이었다.

이제껏 허니는 그들의 유치한 놀이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괜히 대응하면 먹이를 던져주는거라고. 허니는 그럴수록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은듯 굴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먹혀들었고 친구가 없을 지 언정 만만한 상대로 비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달이 난 것은, 허니의 얼굴에 난 멍자국으로부터 생긴 일이었다. 얼굴에 난 멍자국이 허니의 처지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맞은듯한 흔적. 그리고 그와 센티넬 사이를 둘러싼 소문들. 나아가 팀 가이드가 저지경이 되어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센티넬들까지.

그 모든 요소가 곧 그에게 무슨 짓을 해도 보호해줄 이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 진짜..."


허니는 컴컴한 락커에 갇힌다는 것은 생각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위아래, 앞뒤좌우가 빠듯하게 가로막힌 이 차가운 공간에서 언제 빠져나갈지 모른다는 그 사실이 더욱 숨통을 틀어막는듯 했다. 결국 허니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기어이 흘러 내렸다. 허니는 추위 탓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모를 오한으로 쉴 새 없이 몸을 떨었다.



끼익-

그때, 탈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니는 환청이라도 들은건가 싶어 고개를 번쩍 올려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와 동시에 또륵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자 허니는 팔등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허니?"

그리고 들리는 기적같은 목소리는 환청이 아니었다. 명확한 호명소리에 허니는 발작하듯 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여기에요! 여기 사람있어요!"


낯선이가 이렇게나 반갑다니. 허니는 그를 괴롭힌 무리들이 일말의 양심이 있어 사람을 보낸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 얘들아! 믿고 있었다구! 우린 다 같은 가이드, 친구칭긔가 아니겠냐고-! 그들의 괴롭힘이 조금 용서가 되는 것도 같았다.

곧이어 잠금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락커의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 익숙해져 있던 허니는 들이치는 빛에 눈을 가로로 좁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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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괜찮아?"


서서히 빛에 익숙해지면서 앞에선 남자의 실루엣이 또렷해졌다. 시야가 명확해짐에 따라 허니의 눈도 서서히 커져갔다.


네가 왜 여기에...?


허니는 자신을 꺼내준 사람이 벤이라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놀란 허니는 탈출의 기쁨도 잊고 눈만 꿈벅였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눈물이 허니의 눈에서 하릴 없이 톡 떨어졌다.

벤은 뛰어온건지 작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나와."
"어, 왜, 여기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
"우선 나와, 거기서."


아, 네. 머쓱하게 락커에서 빠져나온 허니는 괜시리 몸에 두른 수건을 고쳐맸다. 허니는 덮쳐오는 민망함과 부끄러움, 당혹감에 귓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핳, 아니, 요즘 락커 안에 들어가는게 유행이라네요?

괜히 묻지도 않은,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허니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것만 같아서였다. 제 아무리 무시당하고 살아도 뻔뻔하게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째서 그가 여기에 나타난건지. 허니는 이 상황을 그저 어떻게든 가볍게 넘기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허니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벤은 단단히 화가 난 사람처럼 그를 향해 따져물었다.


"누구야."
"...네?"
"누가 이랬냐고."
"뭘 누가 그래요. 내가 들어간 거라니까."

이게 다이어트에 좋대요. 되도 않는 말에 벤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졌다.


"나 지금 장난하는거 아니야. 똑바로 대답해."
"나도 장난하는거 아닌데."
"누가 그런거야."
"내가."


허, 벤은 기가 차다는듯 헛바람을 뱉었다. 어제의 미팅 때 처럼 허니는 단 한 마디도 밀리는 법이 없었다. 그것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허니는 당당했다. 하고 싶지 않은 말은 도무지 뱉어낼 수 없는 사람처럼 허니는 벤이 듣고자 하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말 한마디면 이렇게 만든 가해자들에게 배로 돌려 갚을 수도 있을텐데, 도대체 뭐 때문에 고집스럽게 구는 건지.

어제도 오늘도 벤은 그런 허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 온 허니의 팔뚝을 보고 벤은 이끌리듯 허니에게로 성큼 다가섰다. 그는 허니의 팔을 낚아채듯 붙잡고서 제가 본 것이 맞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 왜 이래욧! 허니가 팔을 비틀어 벤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팔을 단단히 붙잡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허니의 팔뚝 위에는 선명하게 멍자국이 올라와 있었다. 얼굴에 난 것에 비하면 파랗다 못해 시꺼매서 웬만큼 아픈게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모양이 한눈에 봐도 선명한 손자국이라는 것에 벤은 허니가 집단폭력까지 당한 것이라고확신했다.

벤을 둘러싼 공기가 무서울 정도로 싸늘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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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네가 그랬어?"
"아, 이건 진짜 아니에요. 진짜!"


허니는 그런 그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지만 아닌척 되려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벤은 더이상 허니의 말장난과도 같은 대답에 놀아나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니긴 뭐가 아닌데."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라구요."
"내가 뭘 생각하는데, 지금."
"아니, 그니까 이건...말 못할 사정이 좀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말 못할 사정이 뭐냐고 묻잖아."
"말 못한다구요. 암튼 그런거 아니니까 신경 끄세요, 좀."


신경 끄라고...? 허니의 말투에 벤은 안그래도 간신히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터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그의 감정은 걱정하는 마음을 알아주지 못 하는 허니에 대한 섭섭함이었지만 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때문에 분노의 방향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뭐가 그런게 아닌데, 허?"
"아, 진정 좀 하시구..."
"네가 동기들한테 쳐맞고 다니는 루저라는거?"
"...뭐요?"
"아님 네가 락커에 갇혀도 꺼내줄 친구 하나 없다는거?"
"...경고하는데 적당히 해요, 진짜."


벤의 도발에 허니의 기분도 빠르게 추락했다. 그들은 한뼘 거리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주하는 두 쌍의 눈동자가 불꽃이 피는듯 이글거렸고 누구 하나 물러날 기미가 없어보였다.

곧이어 벤이 허니에게 상체를 숙여 다가가자 둘 사이의 거리가 아슬하게 좁혀졌다.


"그게 아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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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안에서나 밖에서나 무시나 받고 다니는거?"
"...뭐?"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말하는 벤에 의해 허니는 이성의 끈이 똑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누르고 눌렀던 온갖 것으로부터의 분노가 용암이 분출하듯 깊은 안쪽에서 폭발했다.

자존심 높은 허니의 발작버튼을 지옥의 주둥아리가 기어이 누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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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발놈이, 진짜.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빡-!

허니의 라이트훅이 빠르게 날아와 벤의 아구창을 가격했다. 다 너 때문이잖아, 개새끼야악-! 허니의 사자후가 텅 빈 탈의실 안에서 메아리 치듯 공명했다.

새끼야악-! 아악-! 아악-!








17.
그날 저녁.

우연찮게 팀원 모두가 한 테이블에 모여 앉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따로 약속을 하지 않는 이상 한두사람쯤은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게 대부분인데 이렇게 모든 팀원들이 한 자리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기적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오늘 메뉴가 찰리가 가장 좋아하는, 북유럽식 비프스튜였기에 찰리는 오늘 저녁을 엊그제부터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기대하던 식사였다.

하지만 찰리는 그렇게 먹고 싶었던 비프스튜를 한 입도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두툼한 안심살이 힘 없이 툭 하고 스프 위로 떨어졌고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숟가락도 같이 스튜그릇 위로 나동그라졌다. 쨍 하고 식기에 부딪히는 숟가락의 날카로운 소리가 식탁 위에 울려퍼졌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그 소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보다 더 엄청난 일이 이 식탁 위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입 벌려."
"아-"
"더 크게 아- 하라고."
"아---!!"


그 광경은 한 지붕 아래, 한 솥밥을 먹으면서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 한 것이었다. 어디서 또 다쳐온건지 오른손에 반깁스를 하고 나타난 허니가 손 하나 까딱 안하고선 벤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벤은 갖은 인상을 쓰며 툴툴거리면서도 살뜰하게 허니를 챙기고 있었다. 마치 보모처럼.

그 지옥의 주둥아리 벤 반스가...!

그야말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잇, 입에 스튜 묻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망할 입을 쫌 크게 벌리라고. 아- 소리만 크게 내지 말고."
"됐고, 빨리 이거나 닦아줘요."
"네가 닦아."
"손이 이런데 어떻게 닦아요."
"멀쩡한 왼손으로 닦으면 되잖아."
"그럼 어깨 좀 빌려 줘봐요. 거기에 닦게."
"에이씨."


벤은 불만스럽게 인상을 그으면서도 냅킨을 집어 허니의 입술에 묻은 스튜를 섬세한 손길로 닦아냈다. 그 일련의 동작에서 허니와 벤 모두 막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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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되니 찰리는 떨어진 숟가락을 다시 집어들 의욕을 상실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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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t."


파월은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듯 웃기 시작했으며,







팀장인 가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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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끝나는 대로 둘 다 내 방으로 와."


입맛을 잃고야 말았다.

키친을 빠르게 벗어나는 가렛을 벤과 허니는 두 눈을 깜박이며 바라볼 뿐이었다.







한창 싸우면서 클 나이

가렛너붕붕
벤반스너붕붕
훈남너붕붕
파월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