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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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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온의 의식은 고통스럽게 돌아왔다. 이미 죽어버린 신체에 갇힌 오라이온의 정신은 고통 속에 소리쳤다. 거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끝내주세요. 오라이온은 죽어버린 신체에 갇혀 고통 속에 빌고 있었다. 그러자 빛이 있었다. 푸른 빛. 오라이온은 그 일렁이는 빛이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입하고 있음을 느꼈다. 오라이온이 낮게 신음했다. 저리가. 날 살리지마. 그냥 죽게 내버려 둬...
"안 돼!"
익숙한 목소리였다. 누군가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오라이온은 그것이 누구인지 알았다. 모를 수가 없지. 푸른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오라이온이 옵틱을 떴다.
"정신이 들어 오라이온?"
디 식스틴이 오라이온의 동체를 어느새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울먹이다 오라이온의 상처를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냥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윽고 다시 고개를 바로해 오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많이 아팠지..."
오라이온은 그런 그의 태도에 넌덜머리가 났다. 당장이라도 그를 밀쳐내고 그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오라이온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라이온은 깨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쐈잖아."
디 식스틴은 입을 다물었다. 오라이온은 시선을 던졌다. 그래 어디 한 번 부정해봐, 네 세계에서 이런 일이 없었다고. 네가 나를 쏜 일이 없었다고 네가 나를 배신하고 죽인 적이 없었노라 부정해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랬을 줄 알았어."
오라이온은 지쳤고 질렸다. 오라이온은 실패했고 죽었을터였다. 그러나 다시 살아났다. 뭘 위해서? 디 식스틴과의 대화를 위해서? 그것 참 대단한 이유로군. 오라이온은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기를 희망했다.
"나한테 뭘 원해 디 식스틴. 뭐가 되었든 난 네게 줄 게 없어."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을 안은 제 팔에 힘을 주었다.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디 식스틴은 눈치채지 못한 오라이온을 위해 입을 떼었다.
"널 원해."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제 정신이야?"
"그래. 네가 날 선택하고 나와 함께 떠나길 원해."
오라이온은 옵틱을 질끈 감았다.
"그러면 내 세계는. 그냥 버려두고 떠나라고?"
"그의 영혼 때문이라면... 그 영혼은 네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구할 정도로 가치있는 영혼이 아니야."
"그렇다면 네 영혼도? 네 오라이온 팩스도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널 포기하고 죽었어?"
디 식스틴은 잠시 침묵했다.
"그래. 아니. 사실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는 시도했다는 거야. 무수히 많이."
디 식스틴은 생각했다. 행성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옵티머스를.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 날 조금이라도 생각했어?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그랬을 리 없어."
오라이온은 천천히 옵틱을 떠 디 식스틴을 바라보았다. 오라이온은 지쳤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내가 널 포기했을 리 없어."
그러나 오라이온은 올곧게 진실만을 말했다. 디 식스틴은 문득 울며 그에게 간청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포기해, 오라이온.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라이온은 슬픔에 빠진 디 식스틴을 바라보며 느리게 말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갈 수 없어."
"어째서?"
"네게 걸맞는 방법으로 당연한 자유를 얻어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 함께 살아가고 싶었어. 하지만 그 끝이 어땠지? 넌 날 배신했어!"
마지막 말은 처절한 외침이었다.
"난 바보가 아니야! 네가 걸어왔을, 그리고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보여. 그 모든 죽음들도. 그 길 끝에 내가 내 세상을 버리고 널 안아주며 맞이할 순 없어."
"하지만 난 그랬을거야."
오라이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랬겠지. 넌 세상따위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단 한순간만이라도 스스로의 안위를 우선시할 수 없어? 넌 언제나 그랬지!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자신따윈 없다는 냥 굴었어."
"그러는 너는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했지. 스스로의 안위만을. 언제나 네 권위를 생각했고 그를 세우기 위해 죽어 널부러져 가는 다른 생명들은 중요치 않았겠지!"
"중요했어 너는!"
"그런 것치곤 날 꽤나 망설임 없이 죽이던데. 헛소리 집어치우고 사실을 말해!"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노성에 흠칫 몸을 떨었다. 오라이온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말해봐, 디 식스틴. 네가 파괴한 모든 것들 중 단 하나만이 아쉬워서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뭐야. 네가 끝까지 가지지 못하고 꺾지 못한 상대에 대한 집착이야?"
"오라이온!"
"돌아가, 네 세계로. 난 네가 죽여버린 모든 것들 위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아."
디 식스틴은 참담한 심정으로 오라이온을 바라보았다. 오라이온이 이러면 안됐다. 디 식스틴은 방법을 모색했다. 답은 나왔으나 지긋지긋했고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의 모든 것을 지키고 싶었다.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오라이온의 희생의지를 꺾어야 했고 죽음으로 뛰어드는 자유를 좌절시켜야 했다. 그렇게해야 오라이온이 살 수 있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의 긴 기다림도 고뇌도 희망도 의미없는 것이 될 터였다. 디 식스틴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이기적인 놈.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넌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남는다고 했지만 그건 어리석은 선택이야, 오라이온. 세상은 널 착취하고 널 인정하지 않아. 네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 그 숭고한 뜻과 희생을 이용해 제 잇속을 채우기 바빴다고! 내가 얼마나 많은 세계를 돌아다녔는 지 알아? 그 무수한 세계마다 너는 죽어. 수도 없이 죽고 살아나 결국엔 지쳐 현실에 조금씩 갉아먹히며 사라지지.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브레인 모듈에 강제로 자신의 케이블을 연결했다. 오라이온은 밀어닥치는 디 식스틴의 메모리를 밀어내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오라이온은 미래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자신들을. 수많은 죽음들, 수많은 전쟁... 그가 가졌던 모든 희망도, 그가 가졌던 숭고한 뜻도 닳아 없어져 죽음을 넘어선 소멸을 갈구하는 자신들과 그것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이버트로니안들을....
"그만해."
오라이온은 고통 속에서 속삭였다. 디 식스틴은 멈추지 않았다. 오라이온은 모든 것을 보고 선택을 내려야 했다. 디 식스틴은 자신의 메모리를 공개했다. M-5000이란 지옥의 입구에서 더이상의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그들, 행성을 되살릴 방법을 모색하던 그들, 메마른 지 오래된 행성에 갇혀 죽어가는 사이버트로니안들, 행성에 옵티머스 그 자신을 바친다면 사이버트론이 회복할 것이란 결과에 달려들던 사이버트로니안들, 또다른 전쟁을 감수하고서라도 옵티머스를 구하겠다고 말하는 메가트론을 관찰하는 옵티머스, 프라이머스의 우물에 뛰어드는 옵티머스, 그를 붙잡은 디 식스틴, 간청하는 디 식스틴과 그런 디 식스틴의 얼굴을 바라보다 자신의 왼팔을 끊어버리고 추락하는 옵티머스, 되살아나는 그들의 모성...
"그만해!"
케이블 연결이 해제되었다. 오라이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디 식스틴을 올려다 보았다. 디 식스틴은 헐떡이며 울고 있었다.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액체가 오라이온의 뺨에 떨어졌다.
"난 널 구하고 싶을 뿐이야. 내 세계에 와서 내 곁을 떠나도 돼. 내 곁에 없어도 된다고. 난 그저 네가, 오라이온이 살아 숨쉬는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야..."
오라이온은 충격 속에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을 다 잡아. 상황에 넘어가지마. 방금 보여준 게 진실이라고 해도... 내가 그의 세계로 넘어갈 수는 없어. 다른 모두를 구해야 해! 그가 어떻게 세계를 넘어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만한 힘을 얻기 위해 무슨 일까지 벌였겠어. 학살? 신이 되기 위해 그것만이 필요했을까? 그런 그의 세계로 넘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그러나 오라이온은 두려웠다. 자신이 걸어가야할 운명이. 모든 이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는 몇백만 사이클동안 억압당하고 끝내 강제된 희생을 통해 해방감을 느낄 자신이. 그 모든 죽음들과 소멸을 갈구하는 자신의 옵틱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되는 걸까? 죽어도 끝나지 않는 순환에 갇혀? 오라이온의 옵틱에서 세척액이 흘러넘쳤다.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뺨을 어루어만지며 속삭였다.
"프라이머스의 안배에 짓눌려가는 널 구하려는 거야. 제발 부탁이야, 오라이온."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을 노려보았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궤변이야. 네가 날 그런 이유로 구하려고 할 리가 없어.
"그래... 그런 숭고한 뜻은 나와 멀지. 언제나 그랬어..."
디 식스틴은 말을 이어갔다.
"모든 시간 끝에 나는 네게 돌아왔는데 너는 죽어버렸어. 네 고통이 어떠한 보답도 받지 못했다는 것에 죽고싶었어. 널 사랑해서 네가 고통받는 걸 견딜 수가 없었어. 네가 행복한 세계를 단 하나라도 보고 싶었어. 그게 나의 세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걸 깨달았더니 더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어. 너 없인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어."
디 식스틴은 무너져갔다.
"널 내가 지킬 수 있게 해줘. 너와 함께할 수 있게 해줘."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날 구해주면 안돼? 그러기엔 너무 늦은거야?"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의 고통을 보았고 느낄 수 있었다. 오라이온이 공감할 수 있는 모든 것들... 그의 디 식스틴이 느끼는 모든 고통이었다. 오라이온은 부정했다. 그는 나의 디 식스틴이 아니야, 그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를 구해줄 의무따윈 없어. 외면해. 포기하라고. 모른척 해!
"날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어떻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를 절망에서 구해낼 방법을 오라이온만이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디 식스틴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오라이온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라이온은 절망하며... 공포에 질린 채로 디 식스틴을 끌어안았다.
-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오라이온의 옵틱은 감겨있었고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있었다. 영구한 변화... 그것은 고통스럽기 마련이었다.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체스트 플레이트에 위치한 매트릭스 위에 손을 얹었다. 붉은 빛을 발하던 매트릭스는 제 주인의 명령에 복종했고 오라이온의 얼굴에서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디 식스틴은 미소를 짓다 오라이온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를 안은 제 팔에 힘을 주었다. 디 식스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오라이온과 함께 이 지긋지긋한 프라이머스의 안배, M-5000에서 벗어날 시간이었다. 디 식스틴은 땅을 박차고 올랐고 속력을 높였다. 프라이머스는 그들을 붙잡고자 친히 대지를 움직여 그들의 속력을 늦추려 했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무리하는 군, 늙은이!"
디 식스틴은 옵틱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소용없는 일이야! 부질없는 짓이라고!"
디 식스틴은 속도를 높였다. 그들을 가로막는 대지- 프라이머스의 육신을 찢으며 붉은 혜성처럼 상공으로 솟은 그는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너무나도 즐거웠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디 식스틴은 잠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오라이온이 겪었을 모든 고통들이 거기에 있었다. 실컷들 하라고, 우리 둘은 빼고. 디 식스틴은 다시금 속도를 높였다. 그의 세계- 아니 그들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오라이온은 눈을 떴다. 하늘이 보였다. 언제가 보았던 지상에서의 하늘, 빛나는 별들과 사이버트론 옆에서 함께 궤도를 달리는 두 위성이 보였다.
"정신이 들어?"
오라이온은 고개를 돌려 디를 보았다. 어딘가 기이한 행복감과 불안감에 휩쌓인 것 같은 그는 오라이온을 품에 안은 채 내려다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오라이온은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고통은 사라져있었으며 그의 동체는 변화를 끝마친 채 새로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의 새로운 코그- 매트릭스와 함께.
"내려줘."
오라이온의 말에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오라이온이 비틀대며 일어나자 디 식스틴은 그를 부축하고자 오라이온의 어깨에 손을 대었으나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의 손을 부드러운 동작으로 떼어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 섰다. 그의 기억 속에 있던 불안정한 지상과는 달랐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오라이온은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디는 어렵지 않게 그의 심정을 유추했다. 또한 그가 어쩌면 그를 찾는 이들의 절규를 듣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두고온 모두를 위해 희생해야했을 미래를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지마. 더이상 그런 선택할 필요없어. 그런 생각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돼. 겨우 여기까지왔잖아. 나의 곁에 네가 있고 우린 함께할 수 있잖아. 마침내.
디는 오라이온의 손을 잡았다. 오라이온은 겁에 질려 또는 단기간에 일어난 모든일에 마비되어 다소 멍하니 디를 올려다 보았다. 디는 미소지었다. 오라이온의 매트릭스가 붉은 빛으로 잠시 깜빡였다. 오라이온은 디의 손을 느리게 마주 잡았고 잠시 옵틱을 깜빡였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매일이 특별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디는 오라이온의 적응을 도왔고 오라이온은 삐걱대면서도 디를 따라왔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함께 있음이 자연스러워지자 오라이온은 디와의 거리를 조심스레 좁혀왔고 디는 그런 오라이온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맞이하고자 했다. 오라이온이 피식거리며 웃는 걸 보아하니 그런 그의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한 게 분명해 보였지만 말이다. 시간은 또다시 흘러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주고 받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한 하루의 끝에 오라이온은 디에게 조심스레 입을 맞춰왔다. 디는 믿을 수 없어 하며 오라이온을 바라보았고 오라이온은 그런 디를 관찰했다.
"싫어?"
"그럴리가, 그냥..."
디는 몇 번 입을 달싹이다 물었다.
"괜찮겠어?"
오라이온은 푸른 옵틱을 감고는 디의 손을 제 벨브로 이끌었다.
"채워줘."
디는 오라이온의 눈꺼풀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그의 콧날로 오라이온의 턱선을 쓸며 내려왔다.
"아플거야."
오라이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들었어, 처음에는 말이야..."
긴장이 역력해보였으나 딱딱한 어투로 던지는 형편없는 농담에 디는 클클대며 웃었다. 디는 제 얼굴을 오라이온의 체스트 플레이트에 대며 속삭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는데, 오라이온."
디는 오라이온의 허리에 제 손을 감았고 다른 손으로는 오라이온의 밸브 입구를 지분거리고 있었다. 말과는 다른 본격적인 행동에 오라이온은 피식대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디."
디는 낮게 웃었다.
-
디는 오라이온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하는 오라이온과 디의 여행이었다. 여행이라고 해봤자 사이버트론에 있는 바다를 보는 것이었지만 오라이온에게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오라이온의 옵틱이 크게 떠지며 에너존의 바다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오라이온이 그토록 눈에 띄게 기뻐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디는 오라이온을 눈 부시다는 듯 바라보다 그가 바다에 정신이 팔린 사이 해변가에 그들의 짐을 풀어놓기로 했다. 얼추 작업이 끝나자 디는 오라이온을 찾았다. 오라이온은 바다에서 사는 생명체가 신기한지 고개를 박고 관찰하고 있었다. 오라이온에게 들킨다면 휴가를 와서 까지 일한다며 타박을 들을 일이긴 했지만 밀린 일 몇가지는 처리할 타이밍이었다. 디는 의자에 앉아 옵틱을 감았다. 평행 우주에 흩뿌려진 자신의 단말을 정리해야 했다. 연결을 확인한 순간 디는 놀람과 동시에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메가트론이었다.
-
"내 얼굴을 보는 것보다 후회될 일은 없을거라 하지 않았나?"
디가 작동하자 메가트론은 그에게 캐논을 겨눴다. 변하질 않는군. 디는 제 단말의 상태를 확인했다. 팔도 다리도 없군. 여러 케이블에 연결된 채 매달려있는 꼴을 보아하니 메가트론은 여전히 폭력을 수단으로 삼고 날뛰는 중임이 틀림없었다.
"뭘 원하지."
"내 오라이온 팩스."
놀랍진 않았다. 오라이온을 찾아 평행 우주를 절박하게 내달리는 메가트론이라, 익숙한 이야기였다. 디는 느리게 대꾸했다.
"네 오라이온 팩스? 이상한 소리군 그래. 네 놈은 스스로 버린 것도 자신의 것이라 치부하는가 본데 그럴리가 없잖아. 그는 이제 내 오라이온이다."
그 즉시 디에게 메가트론의 주먹이 날아왔다. 고통 센서를 극대화한 모양인지 꽤나 아팠지만 디는 어째선지 웃음이 나왔다.
"그건 내 거야. 내 오라이온! 나의 오라이온 팩스라고!"
디는 얇은 미소를 내보이며 메가트론을 바라보았다.
"그가 죽었다고 네 입으로 내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대로 살지 그랬어? 이제와서 이럴 이유가 없을텐데?"
정말 이유가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자식을 좀 골려주고 싶을 뿐. 디는 붉은 옵틱을 형형하게 밝히며 그에게 달려드는 메가트론을 보았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날들 끝에 만족감이나 행복을 찾아볼 수 없었나? 아니면 사실 원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가지고 있었는데,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스스로 걷어차버린게 후회됐나?"
메가트론은 디를 케이블에서 뜯어내 바닥에 내던졌다.
"지킬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거두지도 않았을 거다. 그는 이제 내 품 안에서 안전해. 내 안배 아래에서, 내 곁에서 이미 행복하다고. 그런 그를 네게 내어주고 네 놈의 헛된 분노나 감당하며 400만 사이클을 살아가게 할 순 없어."
메가트론은 디의 체스트 플레이트를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닥쳐! 그는 나를 사랑해!"
"그래. 그리고 나도. 세상의 모든 것들, 형태없는 가치마저도. 넌 그게 견딜 수 없었겠지, 안 그래? 하지만... 그 모든 걸 나와 함께 느끼고 살아가고 싶었음을 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군."
"훈계질은 다 끝났나?"
"그를 사랑한다면 놔줘."
"내게서 그를 앗아간 주제에 말은 잘하는 군."
"난 네게 그를 지킬 기회를 줬어. 그걸 차버린 건 너야."
메가트론은 디의 넥 케이블을 졸랐다. 디는 단말의 보이스 박스가 뭉개짐을 감지했다.
"그는 내 거야! 그의 희망도, 구원도, 행복도, 그의 용서도, 그의 애정도 전부 내가 누렸어야할 내 것이라고!"
"그의 고통과 죽음마저도?"
디의 일그러진 목소리에 메가트론은 침묵 후 말했다.
"당연한 말을 하는 군."
디는 메가트론을 올려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이딴 놈을 포기하지 못했다니. 이딴 놈을...
"오라이온이 날 포기했을 리 없어. 우리의 세계를 포기했을 리가 없다고."
디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디의 목을 졸라오는 메가트론을 보았다.
"네가 무슨 짓을 그에게 한거야!"
디는 지금 당장 그를 죽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메가트론을 죽이면 저딴 헛소리를 더 들을 필요도, 후환도 없을 터였다. 디가 행동을 개시하려고 할 때였다.
-
"디!"
에너존의 바다에서 사는 거대생명체를 처음 보았노라 말하며 오라이온은 디의 손을 잡고 의자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사철이 그들의 걸음에 단조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오라이온은 흥분하여 헐떡이며 디에게 생명체를 묘사했다. 그리곤 디에게 그것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디는 다소 멍하게 부정했다.
"정신차려! 또 일하고 있었지! 여기선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디는 자신을 나무라는 오라이온을 향해 더뜸거리며 사과했다. 그러자 오라이온은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디의 손을 놓고 앞서 달려갔다. 오라이온이 디를 부르며 그를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 디는 멍하니 오라이온을 바라보다 씩 웃었다. 그래, 그러지 않기로 했었지. 디는 단말과의 연결을 끊고 회로를 차단했다. 메가트론이 그의 또다른 단말을 찾아 파괴하든 말든 그가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디 뭐해! 이리로 와!"
디는 저 멀리 별처럼 반짝이는 오라이온을 바라보며 어쩐지 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우는 대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웃음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백만사이클을 찾아봐라 넌 그를 찾을 수 없어! 디는 오라이언에게로 달려갔다. 오라이온은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벅차오름에 디는 오라이온에게 달려들어 그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모래를 찼고 환호성을 지르다 함께 웃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행복했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이나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될 오라이온 팩스도 메가트론이 될 디 식스틴도 없었다. 더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였다.
오라이온 팩스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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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온의 의식은 고통스럽게 돌아왔다. 이미 죽어버린 신체에 갇힌 오라이온의 정신은 고통 속에 소리쳤다. 거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끝내주세요. 오라이온은 죽어버린 신체에 갇혀 고통 속에 빌고 있었다. 그러자 빛이 있었다. 푸른 빛. 오라이온은 그 일렁이는 빛이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입하고 있음을 느꼈다. 오라이온이 낮게 신음했다. 저리가. 날 살리지마. 그냥 죽게 내버려 둬...
"안 돼!"
익숙한 목소리였다. 누군가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오라이온은 그것이 누구인지 알았다. 모를 수가 없지. 푸른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오라이온이 옵틱을 떴다.
"정신이 들어 오라이온?"
디 식스틴이 오라이온의 동체를 어느새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울먹이다 오라이온의 상처를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냥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윽고 다시 고개를 바로해 오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많이 아팠지..."
오라이온은 그런 그의 태도에 넌덜머리가 났다. 당장이라도 그를 밀쳐내고 그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오라이온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라이온은 깨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쐈잖아."
디 식스틴은 입을 다물었다. 오라이온은 시선을 던졌다. 그래 어디 한 번 부정해봐, 네 세계에서 이런 일이 없었다고. 네가 나를 쏜 일이 없었다고 네가 나를 배신하고 죽인 적이 없었노라 부정해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랬을 줄 알았어."
오라이온은 지쳤고 질렸다. 오라이온은 실패했고 죽었을터였다. 그러나 다시 살아났다. 뭘 위해서? 디 식스틴과의 대화를 위해서? 그것 참 대단한 이유로군. 오라이온은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기를 희망했다.
"나한테 뭘 원해 디 식스틴. 뭐가 되었든 난 네게 줄 게 없어."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을 안은 제 팔에 힘을 주었다.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디 식스틴은 눈치채지 못한 오라이온을 위해 입을 떼었다.
"널 원해."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제 정신이야?"
"그래. 네가 날 선택하고 나와 함께 떠나길 원해."
오라이온은 옵틱을 질끈 감았다.
"그러면 내 세계는. 그냥 버려두고 떠나라고?"
"그의 영혼 때문이라면... 그 영혼은 네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구할 정도로 가치있는 영혼이 아니야."
"그렇다면 네 영혼도? 네 오라이온 팩스도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널 포기하고 죽었어?"
디 식스틴은 잠시 침묵했다.
"그래. 아니. 사실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는 시도했다는 거야. 무수히 많이."
디 식스틴은 생각했다. 행성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옵티머스를.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 날 조금이라도 생각했어?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그랬을 리 없어."
오라이온은 천천히 옵틱을 떠 디 식스틴을 바라보았다. 오라이온은 지쳤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내가 널 포기했을 리 없어."
그러나 오라이온은 올곧게 진실만을 말했다. 디 식스틴은 문득 울며 그에게 간청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포기해, 오라이온.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라이온은 슬픔에 빠진 디 식스틴을 바라보며 느리게 말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갈 수 없어."
"어째서?"
"네게 걸맞는 방법으로 당연한 자유를 얻어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 함께 살아가고 싶었어. 하지만 그 끝이 어땠지? 넌 날 배신했어!"
마지막 말은 처절한 외침이었다.
"난 바보가 아니야! 네가 걸어왔을, 그리고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보여. 그 모든 죽음들도. 그 길 끝에 내가 내 세상을 버리고 널 안아주며 맞이할 순 없어."
"하지만 난 그랬을거야."
오라이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랬겠지. 넌 세상따위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단 한순간만이라도 스스로의 안위를 우선시할 수 없어? 넌 언제나 그랬지!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자신따윈 없다는 냥 굴었어."
"그러는 너는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했지. 스스로의 안위만을. 언제나 네 권위를 생각했고 그를 세우기 위해 죽어 널부러져 가는 다른 생명들은 중요치 않았겠지!"
"중요했어 너는!"
"그런 것치곤 날 꽤나 망설임 없이 죽이던데. 헛소리 집어치우고 사실을 말해!"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노성에 흠칫 몸을 떨었다. 오라이온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말해봐, 디 식스틴. 네가 파괴한 모든 것들 중 단 하나만이 아쉬워서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뭐야. 네가 끝까지 가지지 못하고 꺾지 못한 상대에 대한 집착이야?"
"오라이온!"
"돌아가, 네 세계로. 난 네가 죽여버린 모든 것들 위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아."
디 식스틴은 참담한 심정으로 오라이온을 바라보았다. 오라이온이 이러면 안됐다. 디 식스틴은 방법을 모색했다. 답은 나왔으나 지긋지긋했고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의 모든 것을 지키고 싶었다.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오라이온의 희생의지를 꺾어야 했고 죽음으로 뛰어드는 자유를 좌절시켜야 했다. 그렇게해야 오라이온이 살 수 있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의 긴 기다림도 고뇌도 희망도 의미없는 것이 될 터였다. 디 식스틴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이기적인 놈.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넌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남는다고 했지만 그건 어리석은 선택이야, 오라이온. 세상은 널 착취하고 널 인정하지 않아. 네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 그 숭고한 뜻과 희생을 이용해 제 잇속을 채우기 바빴다고! 내가 얼마나 많은 세계를 돌아다녔는 지 알아? 그 무수한 세계마다 너는 죽어. 수도 없이 죽고 살아나 결국엔 지쳐 현실에 조금씩 갉아먹히며 사라지지.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브레인 모듈에 강제로 자신의 케이블을 연결했다. 오라이온은 밀어닥치는 디 식스틴의 메모리를 밀어내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오라이온은 미래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자신들을. 수많은 죽음들, 수많은 전쟁... 그가 가졌던 모든 희망도, 그가 가졌던 숭고한 뜻도 닳아 없어져 죽음을 넘어선 소멸을 갈구하는 자신들과 그것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이버트로니안들을....
"그만해."
오라이온은 고통 속에서 속삭였다. 디 식스틴은 멈추지 않았다. 오라이온은 모든 것을 보고 선택을 내려야 했다. 디 식스틴은 자신의 메모리를 공개했다. M-5000이란 지옥의 입구에서 더이상의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그들, 행성을 되살릴 방법을 모색하던 그들, 메마른 지 오래된 행성에 갇혀 죽어가는 사이버트로니안들, 행성에 옵티머스 그 자신을 바친다면 사이버트론이 회복할 것이란 결과에 달려들던 사이버트로니안들, 또다른 전쟁을 감수하고서라도 옵티머스를 구하겠다고 말하는 메가트론을 관찰하는 옵티머스, 프라이머스의 우물에 뛰어드는 옵티머스, 그를 붙잡은 디 식스틴, 간청하는 디 식스틴과 그런 디 식스틴의 얼굴을 바라보다 자신의 왼팔을 끊어버리고 추락하는 옵티머스, 되살아나는 그들의 모성...
"그만해!"
케이블 연결이 해제되었다. 오라이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디 식스틴을 올려다 보았다. 디 식스틴은 헐떡이며 울고 있었다.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액체가 오라이온의 뺨에 떨어졌다.
"난 널 구하고 싶을 뿐이야. 내 세계에 와서 내 곁을 떠나도 돼. 내 곁에 없어도 된다고. 난 그저 네가, 오라이온이 살아 숨쉬는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야..."
오라이온은 충격 속에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을 다 잡아. 상황에 넘어가지마. 방금 보여준 게 진실이라고 해도... 내가 그의 세계로 넘어갈 수는 없어. 다른 모두를 구해야 해! 그가 어떻게 세계를 넘어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만한 힘을 얻기 위해 무슨 일까지 벌였겠어. 학살? 신이 되기 위해 그것만이 필요했을까? 그런 그의 세계로 넘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그러나 오라이온은 두려웠다. 자신이 걸어가야할 운명이. 모든 이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는 몇백만 사이클동안 억압당하고 끝내 강제된 희생을 통해 해방감을 느낄 자신이. 그 모든 죽음들과 소멸을 갈구하는 자신의 옵틱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되는 걸까? 죽어도 끝나지 않는 순환에 갇혀? 오라이온의 옵틱에서 세척액이 흘러넘쳤다.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뺨을 어루어만지며 속삭였다.
"프라이머스의 안배에 짓눌려가는 널 구하려는 거야. 제발 부탁이야, 오라이온."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을 노려보았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궤변이야. 네가 날 그런 이유로 구하려고 할 리가 없어.
"그래... 그런 숭고한 뜻은 나와 멀지. 언제나 그랬어..."
디 식스틴은 말을 이어갔다.
"모든 시간 끝에 나는 네게 돌아왔는데 너는 죽어버렸어. 네 고통이 어떠한 보답도 받지 못했다는 것에 죽고싶었어. 널 사랑해서 네가 고통받는 걸 견딜 수가 없었어. 네가 행복한 세계를 단 하나라도 보고 싶었어. 그게 나의 세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걸 깨달았더니 더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어. 너 없인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어."
디 식스틴은 무너져갔다.
"널 내가 지킬 수 있게 해줘. 너와 함께할 수 있게 해줘."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날 구해주면 안돼? 그러기엔 너무 늦은거야?"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의 고통을 보았고 느낄 수 있었다. 오라이온이 공감할 수 있는 모든 것들... 그의 디 식스틴이 느끼는 모든 고통이었다. 오라이온은 부정했다. 그는 나의 디 식스틴이 아니야, 그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를 구해줄 의무따윈 없어. 외면해. 포기하라고. 모른척 해!
"날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어떻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를 절망에서 구해낼 방법을 오라이온만이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디 식스틴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오라이온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라이온은 절망하며... 공포에 질린 채로 디 식스틴을 끌어안았다.
-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오라이온의 옵틱은 감겨있었고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있었다. 영구한 변화... 그것은 고통스럽기 마련이었다.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의 체스트 플레이트에 위치한 매트릭스 위에 손을 얹었다. 붉은 빛을 발하던 매트릭스는 제 주인의 명령에 복종했고 오라이온의 얼굴에서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디 식스틴은 미소를 짓다 오라이온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를 안은 제 팔에 힘을 주었다. 디 식스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오라이온과 함께 이 지긋지긋한 프라이머스의 안배, M-5000에서 벗어날 시간이었다. 디 식스틴은 땅을 박차고 올랐고 속력을 높였다. 프라이머스는 그들을 붙잡고자 친히 대지를 움직여 그들의 속력을 늦추려 했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무리하는 군, 늙은이!"
디 식스틴은 옵틱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소용없는 일이야! 부질없는 짓이라고!"
디 식스틴은 속도를 높였다. 그들을 가로막는 대지- 프라이머스의 육신을 찢으며 붉은 혜성처럼 상공으로 솟은 그는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너무나도 즐거웠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디 식스틴은 잠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오라이온이 겪었을 모든 고통들이 거기에 있었다. 실컷들 하라고, 우리 둘은 빼고. 디 식스틴은 다시금 속도를 높였다. 그의 세계- 아니 그들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오라이온은 눈을 떴다. 하늘이 보였다. 언제가 보았던 지상에서의 하늘, 빛나는 별들과 사이버트론 옆에서 함께 궤도를 달리는 두 위성이 보였다.
"정신이 들어?"
오라이온은 고개를 돌려 디를 보았다. 어딘가 기이한 행복감과 불안감에 휩쌓인 것 같은 그는 오라이온을 품에 안은 채 내려다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오라이온은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고통은 사라져있었으며 그의 동체는 변화를 끝마친 채 새로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의 새로운 코그- 매트릭스와 함께.
"내려줘."
오라이온의 말에 디 식스틴은 오라이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오라이온이 비틀대며 일어나자 디 식스틴은 그를 부축하고자 오라이온의 어깨에 손을 대었으나 오라이온은 디 식스틴의 손을 부드러운 동작으로 떼어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 섰다. 그의 기억 속에 있던 불안정한 지상과는 달랐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오라이온은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디는 어렵지 않게 그의 심정을 유추했다. 또한 그가 어쩌면 그를 찾는 이들의 절규를 듣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두고온 모두를 위해 희생해야했을 미래를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지마. 더이상 그런 선택할 필요없어. 그런 생각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돼. 겨우 여기까지왔잖아. 나의 곁에 네가 있고 우린 함께할 수 있잖아. 마침내.
디는 오라이온의 손을 잡았다. 오라이온은 겁에 질려 또는 단기간에 일어난 모든일에 마비되어 다소 멍하니 디를 올려다 보았다. 디는 미소지었다. 오라이온의 매트릭스가 붉은 빛으로 잠시 깜빡였다. 오라이온은 디의 손을 느리게 마주 잡았고 잠시 옵틱을 깜빡였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매일이 특별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디는 오라이온의 적응을 도왔고 오라이온은 삐걱대면서도 디를 따라왔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함께 있음이 자연스러워지자 오라이온은 디와의 거리를 조심스레 좁혀왔고 디는 그런 오라이온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맞이하고자 했다. 오라이온이 피식거리며 웃는 걸 보아하니 그런 그의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한 게 분명해 보였지만 말이다. 시간은 또다시 흘러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주고 받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한 하루의 끝에 오라이온은 디에게 조심스레 입을 맞춰왔다. 디는 믿을 수 없어 하며 오라이온을 바라보았고 오라이온은 그런 디를 관찰했다.
"싫어?"
"그럴리가, 그냥..."
디는 몇 번 입을 달싹이다 물었다.
"괜찮겠어?"
오라이온은 푸른 옵틱을 감고는 디의 손을 제 벨브로 이끌었다.
"채워줘."
디는 오라이온의 눈꺼풀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그의 콧날로 오라이온의 턱선을 쓸며 내려왔다.
"아플거야."
오라이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들었어, 처음에는 말이야..."
긴장이 역력해보였으나 딱딱한 어투로 던지는 형편없는 농담에 디는 클클대며 웃었다. 디는 제 얼굴을 오라이온의 체스트 플레이트에 대며 속삭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는데, 오라이온."
디는 오라이온의 허리에 제 손을 감았고 다른 손으로는 오라이온의 밸브 입구를 지분거리고 있었다. 말과는 다른 본격적인 행동에 오라이온은 피식대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디."
디는 낮게 웃었다.
-
디는 오라이온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하는 오라이온과 디의 여행이었다. 여행이라고 해봤자 사이버트론에 있는 바다를 보는 것이었지만 오라이온에게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오라이온의 옵틱이 크게 떠지며 에너존의 바다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오라이온이 그토록 눈에 띄게 기뻐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디는 오라이온을 눈 부시다는 듯 바라보다 그가 바다에 정신이 팔린 사이 해변가에 그들의 짐을 풀어놓기로 했다. 얼추 작업이 끝나자 디는 오라이온을 찾았다. 오라이온은 바다에서 사는 생명체가 신기한지 고개를 박고 관찰하고 있었다. 오라이온에게 들킨다면 휴가를 와서 까지 일한다며 타박을 들을 일이긴 했지만 밀린 일 몇가지는 처리할 타이밍이었다. 디는 의자에 앉아 옵틱을 감았다. 평행 우주에 흩뿌려진 자신의 단말을 정리해야 했다. 연결을 확인한 순간 디는 놀람과 동시에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메가트론이었다.
-
"내 얼굴을 보는 것보다 후회될 일은 없을거라 하지 않았나?"
디가 작동하자 메가트론은 그에게 캐논을 겨눴다. 변하질 않는군. 디는 제 단말의 상태를 확인했다. 팔도 다리도 없군. 여러 케이블에 연결된 채 매달려있는 꼴을 보아하니 메가트론은 여전히 폭력을 수단으로 삼고 날뛰는 중임이 틀림없었다.
"뭘 원하지."
"내 오라이온 팩스."
놀랍진 않았다. 오라이온을 찾아 평행 우주를 절박하게 내달리는 메가트론이라, 익숙한 이야기였다. 디는 느리게 대꾸했다.
"네 오라이온 팩스? 이상한 소리군 그래. 네 놈은 스스로 버린 것도 자신의 것이라 치부하는가 본데 그럴리가 없잖아. 그는 이제 내 오라이온이다."
그 즉시 디에게 메가트론의 주먹이 날아왔다. 고통 센서를 극대화한 모양인지 꽤나 아팠지만 디는 어째선지 웃음이 나왔다.
"그건 내 거야. 내 오라이온! 나의 오라이온 팩스라고!"
디는 얇은 미소를 내보이며 메가트론을 바라보았다.
"그가 죽었다고 네 입으로 내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대로 살지 그랬어? 이제와서 이럴 이유가 없을텐데?"
정말 이유가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자식을 좀 골려주고 싶을 뿐. 디는 붉은 옵틱을 형형하게 밝히며 그에게 달려드는 메가트론을 보았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날들 끝에 만족감이나 행복을 찾아볼 수 없었나? 아니면 사실 원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가지고 있었는데,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스스로 걷어차버린게 후회됐나?"
메가트론은 디를 케이블에서 뜯어내 바닥에 내던졌다.
"지킬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거두지도 않았을 거다. 그는 이제 내 품 안에서 안전해. 내 안배 아래에서, 내 곁에서 이미 행복하다고. 그런 그를 네게 내어주고 네 놈의 헛된 분노나 감당하며 400만 사이클을 살아가게 할 순 없어."
메가트론은 디의 체스트 플레이트를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닥쳐! 그는 나를 사랑해!"
"그래. 그리고 나도. 세상의 모든 것들, 형태없는 가치마저도. 넌 그게 견딜 수 없었겠지, 안 그래? 하지만... 그 모든 걸 나와 함께 느끼고 살아가고 싶었음을 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군."
"훈계질은 다 끝났나?"
"그를 사랑한다면 놔줘."
"내게서 그를 앗아간 주제에 말은 잘하는 군."
"난 네게 그를 지킬 기회를 줬어. 그걸 차버린 건 너야."
메가트론은 디의 넥 케이블을 졸랐다. 디는 단말의 보이스 박스가 뭉개짐을 감지했다.
"그는 내 거야! 그의 희망도, 구원도, 행복도, 그의 용서도, 그의 애정도 전부 내가 누렸어야할 내 것이라고!"
"그의 고통과 죽음마저도?"
디의 일그러진 목소리에 메가트론은 침묵 후 말했다.
"당연한 말을 하는 군."
디는 메가트론을 올려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이딴 놈을 포기하지 못했다니. 이딴 놈을...
"오라이온이 날 포기했을 리 없어. 우리의 세계를 포기했을 리가 없다고."
디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디의 목을 졸라오는 메가트론을 보았다.
"네가 무슨 짓을 그에게 한거야!"
디는 지금 당장 그를 죽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메가트론을 죽이면 저딴 헛소리를 더 들을 필요도, 후환도 없을 터였다. 디가 행동을 개시하려고 할 때였다.
-
"디!"
에너존의 바다에서 사는 거대생명체를 처음 보았노라 말하며 오라이온은 디의 손을 잡고 의자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사철이 그들의 걸음에 단조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오라이온은 흥분하여 헐떡이며 디에게 생명체를 묘사했다. 그리곤 디에게 그것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디는 다소 멍하게 부정했다.
"정신차려! 또 일하고 있었지! 여기선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디는 자신을 나무라는 오라이온을 향해 더뜸거리며 사과했다. 그러자 오라이온은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디의 손을 놓고 앞서 달려갔다. 오라이온이 디를 부르며 그를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 디는 멍하니 오라이온을 바라보다 씩 웃었다. 그래, 그러지 않기로 했었지. 디는 단말과의 연결을 끊고 회로를 차단했다. 메가트론이 그의 또다른 단말을 찾아 파괴하든 말든 그가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디 뭐해! 이리로 와!"
디는 저 멀리 별처럼 반짝이는 오라이온을 바라보며 어쩐지 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우는 대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웃음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백만사이클을 찾아봐라 넌 그를 찾을 수 없어! 디는 오라이언에게로 달려갔다. 오라이온은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벅차오름에 디는 오라이온에게 달려들어 그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모래를 찼고 환호성을 지르다 함께 웃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행복했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이나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될 오라이온 팩스도 메가트론이 될 디 식스틴도 없었다. 더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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