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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3 17:09

너무 오래돼서 다 까먹었을 듯.. 혐생 미친것
다들 같이 희신강징 망기무선 하자ㅠㅠㅠ

*ㅌㅆ 올린 적 있음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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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며 길을 터 놓은 덕에 산세를 헤치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 위무선에게 금단이 있었던 과거였더라면 진즉 이 산을 통째로 뒤엎을 기세로 날아다녔을 터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가뿐했던 몸이었을지라도 지금처럼 남망기를 붙들고 늘어지며 목이 마르다는 하소연 쯤은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수통이라도 들고 올 걸 그랬어!"
 

 위무선이 투덜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다못해 과실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남망기는 기민하게 물의 기척을 좇았고, 이윽고 멀지 않은 작은 계곡을 발견했다. 금릉은 손을 씻고 목을 축이며 제 사숙 부처(?)를 흘긋 살펴보았다.
 

 남망기는 더할 나위 없이 세심하게 위무선의 젖은 입가를 닦아주었다. 입가를 스치는 손끝이 슬몃 힘주어 위무선의 아랫입술을 눌렀지만 금릉은 보지 못했다. 위무선이 씩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까딱했다. 남망기의 입꼬리가 아주 작게 올라갔다. 그는 일상의 틈바구니를 메꾸는 듯한 위무선의 작은 애교를 좋아했다.
 

 마르고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햇살을 받는 금릉의 외관은 참으로 수려했다. 부유한 사정을 드러내는 의관은 그렇다쳐도 성급한 성미나 어린 소년 특유의 날티를 벗어가는 와중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외양에선 기품이 묻어났다. 위무선은 훌륭하게 성장한 제 조카를 말없이 바라보다 문득 어린 날 한 자락을 떠올렸다.
 

 -내 바람? 글쎄...... 그렇구나. 언제까지고 아선, 아징 너희와 연화오에서 이렇게 연방을 따고 연꽃을 바라보고 싶긴 해. 하지만 그건 욕심이란다. 나도 알아, 아선. 끝까지 어린아이인 채로 고집을 부려봤자 어쩌면 우리 중 가장 먼저 어른이 되어 떠나는 건 아징일지도 몰라. 그 앤, 그 애는 너무 많은 걸 짊어져야만 해. 하지만 아선. 네가 도와줄 거지? 물론 나도 내 동생들과 쭉 같이 있고 싶단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떠나는 건 싫어! 하지만 그럴 순 없겠지? 그래. 그렇게 되면 아선 너는 아징의 곁에 있어 줘. 그리고 두 사람 다 훗날 내가...... 그러니까, 내...... 낭군을...... 닮은 아이를 낳게 되면 말이지. 그러면 그 아이를 보러 와 줘. 둘이서 그 앨 지켜주고 가르쳐주고 같이 많이 놀아 줘. 그래, 그게 내 꿈이야. 아선! 
 

 그때 저가 뭐라 했더라. 아마 "사저 닮은 귀한 아이라면 보옥처럼 먹이고 씻기고 예뻐해 줄 건데!" 쯤으로 투정을 부렸었지. 그즈음 강염리는 이미 금자헌과 일찌감치 혼담이 오가고 있었고, 어린 위무선은 행여나 이 꽃같은 누이가 당장 내일이라도 짐을 꾸려 난릉으로 떠나기라도 하면 어쩌나 불안해 며칠을 속으로만 앓았었다. 그때 위무선은 무예 연습을 하다 닳은 제 소매를 안쓰러워하거나 저가 따 주는 연방을 받으며 화사하게 웃어주는 누이를 아직은 아니, 영원히 잃고 싶지 않았다.
 

 강염리가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그리던 행복한 추측은 빗나갔다. 셋 중 가장 먼저 떠나게 된 건 위무선이었다. 그리고 위무선은 강징의 곁에도, 금릉의 곁에도 있어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리고 강염리를 잃었다. 너무도 허망하게.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남긴 작은 강보 속 아기가 어느덧 약관을 앞두고 있었다. 금릉의 눈매는 기쁜 기색을 담고 휘어질 때마다 다정하게 동생들을 부르던 제 어머니를 닮아갔다. 위무선은 그것이 정말인지 아니면 사저를 향한 제 그리움이 만들어낸 미련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왜?"
 

 할 말이 있느냐는 듯 앉은 채로 고개만 슬쩍 들어 묻는 모양새는 영락없는 제 아비의 거만함을 그대로 빼다박은 것도 있지만. 위무선은 짓궂게 웃으며 금릉의 귓가며 볼을 양손으로 마구 문질러댔다. 금릉이 악 소리를 내며 저를 괴롭히는 손등을 찰싹 때렸다. 위무선이 가소롭다는 듯 흥 웃으며 마지막으로 금릉의 뒤통수를 가볍게 쓰다듬고 물러났다.
 

 "뭐야!"

 "보아하니 여인네 꽤나 울리게 생겼다 싶어서."

 "뭐, 뭐?!"
 

 금릉이 황당하다는 듯 허, 탄식했다. 남망기는 묵묵히 품속에서 주전부리를 꺼냈다. 운심부지처에서 위무선은 저렇게 남사추나 남경의를 곯린 후 꼭 당과 하나씩을 쥐어주곤 했다. 기름 먹인 종이로 싼 작은 과자를 받아든 금릉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과자를 꺼내 한 입 베어물었다.


 "영문을 모르겠네, 대체."

 "맛있지? 채의진에서 산 건데 그게 사추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입에 맞으면 난릉에도 보내줄게."


 그동안 요괴 소동에 시달리고, 산을 헤집고, 무엇보다 곁에 외숙이 없다는 사실에 줄곧 긴장해있던 근육이 입가를 시작으로 사르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금릉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달큰한 것을 마저 입에 털어놓고 꿀꺽 삼켰다. 오물대는 입가를 보며 위무선은 가슴이 메어오는 행복을 느꼈다.


 남망기는 과자 하나를 마저 꺼내 위무선의 입속에 손수 넣어주었다. 이번엔 그 애정 행각을 제대로 목도한 금릉은 기가 찬 듯 민망한 듯 그저 못 본 척을 해 주었다. 그리고 화답이라도 하듯 위무선이 남망기의 몫인 마지막 과자를 꺼내든 참이었다.


 굉음 같은 돌풍 소리와 물보라 섞인 바람으로 인해 세 사람은 일순 시야를 잃었다. 남망기가 위무선의 몸을 감쌌고, 그 틈을 타 위무선이 가느다랗게 실눈을 떴다.


 눈앞은 텅 비어있었다.


 "금릉!"


 -그 앨 지켜 줘. 둘이서.


 강염리의 목소리가 깊은 메아리처럼 귓가에 웅웅 울렸다. 하지만 소중한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

 

 

 

  "누님이 아니라면요?"


 허를 찌른 건 남희신이었다. 강징은 바삐 내달리다가도 그 말 뜻을 이해하고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


 산새 지저귀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면 주위는 평정을 잃은 강징의 숨소리로만 가득했다. 남희신은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옥 같은 얼굴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을 마음을 헤집기 위해 그것은 당신의 누님으로 둔갑했습니다. 허나 당신조차 그것이 허상임을 꿰뚫어보았습니다. 물론  머뭇거리긴 했습니다만-"


 강징은 울컥 화가 치솟은 얼굴로 일갈하려다 그만두었다.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하마터면 그 탓에 남희신까지 화를 입을 뻔 했었다. 남희신은 그런 강징이 귀엽고 처연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귀와 흉시에 도가 튼 위 공자의 성정을 그것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이미 강징 당신의 기억을 다 헤집어보았을 터. 죽은 이의 허상으로는 위 공자의 발목을 붙들 순 없을 겁니다."

 "허나 어찌 확신합니까! 누님은! 누님은...... 더할나위 없는 보물이었습니다."

 "강징."

 "당신께 함광군이 그러한 존재인 것처럼, 누님도 나와-"


 위무선에겐. 그 말이 쉽사리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강징이 입가를 꾹 다물었다. 다 잊고 운몽 강씨를 떠나 행복해진 그에게 차마 또다시 강염리에 대한 부채감을 지울 순 없었다.


 추억은 추억일 뿐으로 남았다.


 "어찌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강징 당신에게도, 그리고 위 공자에게도."

 "......"

 "제 말 뜻을 곡해하셨습니다. 소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헤집는 것이 정말 귀를 다루는 데  도통한 위 공자를 노릴 때 귀의 모습을 택하겠느냐는 뜻이었습니다."

 "허면 함광군으로 둔갑하여 위무선을 노린단 말씀이십니까?"


 그 말을 들은 남희신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온화하게 웃었다.


 "자랑 같아 부끄럽습니다만 저나 망기 모두 한낱 요물이 쉽게 흉내낼 수 있을 만한 인사가 아니지요."


 짹짹짹. 어딘가 멀리서 순진무구한 산새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강징은 정말이지, 정말이지 인생에서 다섯번째 쯤으로는 꼽을 수 있을 만한 황당한 기분을 맛보며 표정을 수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누가 가서 남희신의 공자방의 품격 요소에서 '겸허함' 부분을 진한 먹으로 지워버렸으면 했다.


 "...요지가 무엇입니까."


 강징은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성질을 누르고 없는 예의를 끌어모았다. 남희신이 빙긋 웃었다. 참으로 산뜻하고 부드러운 초여름의 산들바람 같은 미소였다.


 "생각해 봅시다. 망기를 제외하고, 위 공자의 평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산 자가 누구인지 말입니다."

 "남사추는 운심부지처에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이 산에서 튀어나온다면 저라도 의심, 아니 확신할 겁니다!"

 "그럼 두 명밖에 없군요."

 "금릉은, 그렇군요. 그 아이로 둔갑할 수도 있겠군."

 "저는 두 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예, 함광군도 뭐 어찌 흉내라도 잘 내면-"

 "답답하시군요!"


 이마에 핏대가 솟는 것을 이젠 본인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강징은 성질대로 자전을 휘두르지 않기 위해 정말 초유의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뭐요, 뭐!"


 물론 예의를 챙길 여유는 이제 남아있지 않았지만.


 남희신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꽥꽥대는 이 사랑스러운 이를 품 속에 가두어 꼭 안고 말았다. 강징이 빽 소리를 질렀다.


 "당신!"

 "당신입니다, 강징.  바로 위 공자의 동생인 당신이요."


 품 속의 버둥거림이 뚝 멎었다. 남희신은 강징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강징의 숨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산 속은 적막했고 오직 둘 뿐이었다. 남희신은 꾸밈 없는 강징의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 좋았다.


 당장 문밖으로 나와 차라리 돈이라도 펑펑 쓰고 놀라며 권하던 그 목소리엔 한 치의 거짓도 없었고, 남희신은 비로소 문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오랜 폐관수련을 끝내고 정처 없이 채의진으로 내려가 난생 처음으로 무의미하게 낭비하며 서책이니 과자니 하다못해 꽃까지 사고나서야 주머니가 비었다. 제게 꽃을 판 여자아이가 기쁜 표정으로 옆 가게로 뛰어가 쌀 한 주머니를 사 들고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남희신은 이내 발길을 돌려 어검하여 돌아갔다. 아해 수사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서책만 들고 한실로 돌아오자 그제야 웃음이 나왔다.


 세상은 금광요가 만들어 낸 상처 따윈 금세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오직 저 혼자만 이 어둔 방 안에서 과거를 곱씹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고군분투하며 세상을 일어서게 한 건 언제까지나 작게만 느껴지던 자신의 동생이었다. 그렇다면 남희신은 하다못해 선독의 자리를 짊어진 동생의 지팡이 노릇 쯤은 해 주는 것이 도리였다.


 본래 고소의 기둥이나 다름없었던 남희신이 다시 일어서자마자 모든 일은 놀랄 정도로 술술 풀렸다. 남망기는 진심 반 걱정 반으로 형장의 재기를 기뻐하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지만 부족할 수밖에 없던 방안도 남희신의 조언 몇 마디로 완벽하게 고칠 수 있었다. 그만큼 위영과 한가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갔다.


 운몽에 관한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밀이 아니라면 남망기는 이를 넌지시 위무선에게 전달해주곤 했다.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강 종주가 있는 한 운몽은 걱정할 것이 없다. 위무선은 연화호의 잔잔한 물결처럼 웃으며 운몽이 있는 방향을 이따금 내다보곤 했다. 그 애정을, 남희신조차 알았다.


 "당신의 모습을 훔친 것을 위 공자가 베어낼 수 있을지 저는 그것이 걱정되는군요."

 "무슨...... 헛소리!"

 "위 공자가 벨 수 없다면 망기도 쉽사리 벨 수 없을 테지요. 아까 당신이 누님의 모습을 훔친 그것을 베려던 저를 말렸듯이 말입니다."

 "......"


 강징은 이제 울 듯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럼에도 남희신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남희신의 두 손이 부드럽게 강징의 뒤통수를 감싸며 토닥였다.


 "제가 베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징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어진다면, 당신이 좋겠지.






下-(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