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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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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 마음 먹었을 때 해야되는건데 다들 어딜간거야."
 
그 시각, 허니는 숙소에서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하고 터덜터덜 공용공간이 있는 1층으로 내려오던 참이었다.


"지금 하기 딱 좋은데."

빈 숙소, 어스름하게 해가 저물어가는 노을빛, 이 온도와 습도까지. 분위기 잡기 딱 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여차하면 한큐에 가이딩 수치 풀로 채우는 건 일도 아닐 정도로. 쩝 입맛을 다셨다. 그냥 깔아주는 판인데 이건... 아쉽다. 그냥 혼자서 넷플릭스라도 때려야하나. 들떴던 마음도 금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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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는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음성이 들려왔다.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악! 하고 튕겨오르자 거실에 놓인 소파 헤드 사이로 머리 하나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벤이었다.


"계, 계셨어요?"
"응."


그의 가슴팍에서 펼쳐져 있던 책이 후둑 떨어졌다. 평소와 달 리 부스스한 것이 아무래도 책을 읽다가 깜박 잠든 행색이다. 아까 들어올 때 없었던 것 같은데 소파 등받이에 가려져 자고 있는걸 못 보고 지나친 모양이었다.

아, 진짜 간 떨어질 뻔?



"뭘 하기에 딱 좋다는 거지?"


와중에 벤은 신경질적인 투로 재차 물었다. 잠시 벤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팀에서 유일하게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렇게만 말하면 좋은 사람인 것 같지만... 정말이지, 그냥 투명인간 취급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할 정도로 그는 지독한 인간이었다.


지옥의 주둥아리!
악마도 한 수 접고 도망칠 남자!
예쁜 쓰레기!


수려한 외모와 극을 달리는 그의 개같은 성정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나한테만 그러나 싶었으나 그것은 오만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저 정도의 차이일뿐 그는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다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아, 물론 S팀 팀원들을 제외하고. 그래도 팀원들한테는 유한 편...


아무튼.


그간의 나의 스트레스 8할은 그가 차지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런 그가 지금 내 눈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가이딩 뽕이 풀로 찬 허니비 앞에?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까지만 해도 가렛과 벤이 가이딩 하기에 가장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팀장을 가이딩하고 돌아온 참이었으니.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오히려 하늘이 내린 기회일지도? 그래, 가이딩을 받고서 날 덜 괴롭히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가이딩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본전이니까. 완전 기회가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드니 지옥의 주둥아리를 가이딩 하지 않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 이건 기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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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녜요."


벤은 평소에 내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연인 인간이었다. 내가 조금의 틈이라도 보일라 치면 쥐잡듯 몰아붙이는게 그의 특기였고 나에 대한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어물쩡 넘어가려는 내 모습을 그냥 넘길 그가 아니었다.



"뭐가 아닌데."
"그냥... 아니라구요."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해."
"꿍꿍이가 있긴 무슨..."
"지금 말하는게 좋을거다. 안그러면 내가 직접 불게 만들테니까."
"불긴 뭘 불어요, 진짜."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건 나한텐 일도 아니야. 너 같은 애송이는 1분도 걸리지 않을거다."
"....허."


아니나 다를까 약간의 여지만으로도 그의 눈이 반짝이며 맹수처럼 좁혀졌다. 저 새끼 저거 표독스러운 것 봐!(파들) 진짜 와꾸만 아니었으면 진작 한 대 치고 남았을텐데.

하지만 그의 와꾸는 여전히 훌륭했으므로 떨리는 주먹을 간신히 달래야만 했다.

네가 참아, 허니 비. (허세)




"그렇게 궁금해요? 내가 뭘 숨기고 있는지."


대신 의미심장한 말투로 그를 흔들었다. 연기는 영 취미가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악당같은 표정도 지어보이려 노력했다. 다행히도 벤은 의심없이 미끼를 덥썩 물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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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대로 말해."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 날카롭게 나를 쏘아봤다. 나는 그가 앉아있는 소파 근처로 다가갔다. 경계심 어린 그의 시선이 내가 움직이는대로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곧이어 자연스레 그의 옆자리에 착석하자 벤은 내가 제 옆에 앉을걸 예상 못 한듯 살짝 당황하는듯 했다. 그러나 피하면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는지 아닌척 꿋꿋히 버티고 있었다.



"사실..."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뜸을 들이자 그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제가 말이죠..."


나는 마치 귓속말을 하는 것 처럼 손바닥을 세워 입주변을 가렸다. 목소리를 낮추자 그가 홀린듯이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무게감이 실리자 소파가 삐그덕 소리를 냈다.

조금씩 조금씩 그와 나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자 집중하는 그의 얼굴도 서서히 가까워져 갔다. 어느덧 어깨끝이 맞닿을 때 쯤, 그러니까 넘어지면 입술이 닿을 만한 거리가 됐을 때 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양 볼을 잡아챘다.


순식간에.


입술을 포개고 혀로 그 사이를 갈라 그의 영역으로 침범했다. 코끝에는 은은한 바닐라향이 스쳤다. 부드러운 점막을 타고 가이딩 기운이 급히 넘어갔다. 그 많은 기운이 뭉텅이로 한꺼번에 그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가렛보다 더 빠른 속도로.

대체 왜 이 지경이 될 때 까지 가이딩 안받는걸까. 서운한 걸 넘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또 몇 초가 더 흘렀을까.

문득 벤이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미동조차 없는게 더 맞는 표현이려나. 뭐하는 짓이냐며 길길히 날뛰거나 입술을 벅벅 닦는 둥 불쾌해하는 반응을 예상했건만 앉은 채로 기절이라도 한 건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기절한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는 움직임이 없었다. 설마 진짜 눈뜨고 기절? 걱정되는 마음에 번쩍 눈이 뜨였다. 초점을 찾느라 흐릿해진 시야가 뚜렷해지자 그의 콧잔등이 보였고 그 너머 긴 속눈썹이 보였다.

그리고 짙고 검은 눈동자.

몇 센치를 사이에 두고 검고 투명한 그의 눈동자가 내 모습을 뚜렷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찰나,
눈 앞에 섬광이 반짝였다.



"악!"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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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발 뭐하는 짓이야?!"


아, 저거다! 내가 예상했던 반응.
예상적중이다.






10.
평화로운 조식시간.

평소와 달리 오늘은 다들 나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흘끔거린다던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처럼 내가 지나는 동선을 따라 시선이 따라왔다.

보통의 날이라면 내 등장에 아주 잠깐 무심한 시선들이 닿았다 떨어졌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놀란 쌍쌍의 눈동자들이 떨어질 줄 모르고 따라붙고 있었다. 하긴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좀 전 나도 거울 앞에서 똑같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었으니.

아무리 허니 비 먹금 만렙인 S팀이라 할지라도 그냥 넘어가기엔 이 얼굴에 이만한 멍자국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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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어제 자기 전 까지만 해도 광대뼈 쪽에 있는건 쓸린 생채기 뿐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자고 일어나서 보니 생채기 주변으로 주먹만한 멍이 시퍼렇게 올라와서는 꼭 어디서 얻어맞은듯한 행색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흠, 얻어맞았다라... 완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따지면 사고였다. 정신이 돌아온 벤이 팔로 제 얼굴을 가린다는 것이 그대로 내 얼굴을 가격했고 그 충격에 내가 나동그라진 것 뿐.


'오 씨발 세상에... 야, 괘, 괜찮아?'
'...아야야..."
'무슨, 너 미쳤어? 그러게 왜 갑자기...!'
'존나...아파...'
'아, 아파...? 다쳤어?'
'몰라... 나 피나나? 나 피 나요?'
'씨발, 피??'
'아, 피는 안나는 것 같은데. 안 나죠?'
'어...어, 근데 주변이 빨간데...'
'골이 울려...'
'그, 그러게 왜 갑자기,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아이고, 나 죽네!'
'...미안, 미안하다.'


서투르지만 바로 사과도 받았고. 당시에는 좀 얼얼하긴 했어도 지금은 그다지 아프지 않은데 아무래도 얼굴에 멍은 좀 더 극적인 효과가 있는듯 했다.


굳-이 말하자면 가렛이 낸 팔의 멍들이 더 아팠다. 팔을 얼마나 세게 움켜쥔건지 움직일 때 마다 불편할 정도로 욱신거려서 병동이라도 들려봐야하나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눈탱이 밤탱이가 되어버렸으니 이 상태로 병동에 갔다간 엄한 소문만 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팔은 어떻게 가릴 수라도 있지, 얼굴에 난 건 어쩔건데 이거... 가린다고 가려질만한 크기도 아닐 뿐더러 화장품으로 덮어봐도 피부 위에서 겉돌기만 할 뿐 얼룩덜룩해져 오히려 더 티가 났다.




"커피 드실 분?"
"......"
"없을 것 같았어요."


특히 이 사태의 장본인 벤은 남들보다 배로 충격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큰 눈이 더더욱 커다래져서 쳐다보는데 그게 좀 부담스러워 슬쩍 눈을 피해버렸다.


하필 오늘은 스크럼이 있는 날이여서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있다는 것이었다. 스크럼은 주간보고 미팅같은 건데, 거창한 건 아니고 주에 한번씩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간단하게 보고할 것들이나 이슈사항을 브리핑하는, 소위 요즘 뭐하고 사는지 말하는 자리랄까.

물론 나보고 참석하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내가 없다고 해서 신경 쓸 사람 1도 없겠지만 기어코 나가서 꾸역꾸역 자리를 채운지 언 3개월이 지났다.

드디어 팀장이 가이딩에 대해 공지한다고 해서 오늘만큼은 빠지기 싫은 날인데. 이제서야 팀가이드로서 입지를 다질 기회가 왔는데 고작 얼굴에 멍 좀 들었다고 빼고 싶지가 않은 것이었다.

그래, 고작 멍 좀 들었다고. 어쩌면 다들 신경쓰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늘상 그랬던 것 처럼 본 체 만 체 넘어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변에서 멤돌아도 신경도 쓰지않은 사람들이었으까.



"......"


하지만 커피잔을 들고 자리에 앉는 나를 집요하게 쳐다보는 팀원들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한게 아닌가 싶다. 내 상태가 그렇게 심한가?괜스레 민망해 애꿎은 머그잔만 만지작거리다 호록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오늘 커피가 누룽지 같고 좋네요- 라고 헛소리도 흘려 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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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꼴이 왜그래?"

파월이 콕 집어 내 얼굴의 상처를 언급하자 어물쩡 넘어갈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그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잠시 벤에게 닿았다. 나를 보는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난처해지겠지? 나도 사실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는건 예상 못 해서 핑계거리는 생각 안해봤는데. 별수 있나? 그냥 평소대로 할 수 밖에.


"뭐가요?"
"네 얼굴, 그거 뭐냐고."
"제 얼굴이 왜요?"
"다친거. 멍 들었잖아."
"아...이거."


솔직히는 아주 잠깐, 확 사실대로 말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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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조금 괘씸하긴 해도 그의 눈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별거 아녜요."
"...별거 아니라고?"
"네, 그냥 좀 다쳤어요. 넘어져서."
"넘어졌다?"
"네."
"넘어져서 생긴 멍 처럼은 안보이는데?"
"그래요?그럼 어디 단단한 곳에 부딪혔나 보죠. 엄청 단단한."
"흐응."


파월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포함해 다른 팀원들까지 쭉 살펴보기 시작했다. 부딪혔다네? 그가 팀장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가렛은 경직된 표정으로 말을 아꼈고 나머지도 굳이 말을 더 보태지 않았다. 파월은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띄우며 등받이에 몸을 쭉 기대어 앉았다. 빙긋빙긋 웃는 낯이 개구져 보였다.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웃음이 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래도 너라도 즐거우면 됐다.

나는 대충 넘겼다고 생각하며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에 머금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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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은 스크럼을 하는 내내 집중하지 못 하고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뭔가 있다, 뭔가 있어.
근데 그게 뭘까?

평소에도 눈치가 빠르고 촉이 좋던 파월인지라 식탁 내에 감도는 아주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공기 안에서 얇은 끈과도 같은 텐션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균열이라고 하기엔 가볍고 착각이라고 하기엔 분명했다. 파월은 제 팀원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평소랑 다를 것 없는 무표정한 얼굴들, 칙칙한 복장, 무미건조한 말투까지. 보기엔 크게 다를 것이 없어보였지만, 뭔가 있단 말이지.

파월은 어제 저녁부터 감지했던 이상한 일들을 떠올렸다. 예를 들면 어제 저녁,


'넋 놓고 뭐해?혼자서.'
'어?아냐...아무것도.'
'?'


텅 빈 거실에 혼자 어정쩡하게 서있던 벤이라던가,




'리더, 같이 한 잔 할... 뭐해?'
'......오래 살고 싶으면 넌 노크하는 법부터 배우는게 좋을거야.'



혼자 방에서 멍하니 제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가렛이 그랬다. 그땐 그저 피곤한 거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같이 모여있으니 뭔가... 달랐다. 그게 뭔지 몰라서 답답한거지.



'그럼 어디 단단한 곳에 부딪혔나 보죠. 엄청 단단한.'


하지만 파월은 단 하나, 이 모든 일이 허니 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특히 얼굴에 커다란 멍을 달고 나타난 허니 비.

찢기고 구르는게 직업인 파월은 그 모양만 보고도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짐작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허니가 넘어졌다는 것은 개소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장담컨데 여기 있는 팀원들 모두가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으리라. 파월은 허니 비를 유심히 관찰했다. 얼굴의 부상을 제외하곤 그녀는 달리 변한 것이 없어보였다.

항상 입는 트레이닝복, 부스스한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살짝 보이는 주근깨. 그리고 작은 체구와 대조되는 야무지고 당찬 표정까지. 파월은 그녀의 첫만남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거실 한 가운데에 서서 느닷없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새로운 가이드. 당시 파월은 그녀가 웬만한 멘탈은 아닐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이 기가 막히게 적중했는지 허니비가 온 지도 벌써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떤 의미론 참 대단하다고 파월은 생각했다.


가이드 입장에선 환영받지 못하는 팀에서 나홀로 버티기가 쉽지는 않을텐데, 허니는 씩씩하게도 버텨냈다. 뭐, 여기도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일 뿐 사실 허니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여기 인간들이 유별나기도 유별난데다가 특히나 허니가 시기적으로도 안좋을 때에 들어왔달까? 하필 팀 전체가 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에 허니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셈이었다.

그게 본인이 의도를 한게 아니었어도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손을 모아 그저 새로운 가이드가 조용히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보기 딱할 때도 있었고 그냥 잘해줄까 싶을 때도 여러번이었지만, 그러기엔 보다 더 중대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허니가 이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거나 소외감이 들어서, 혹은 오만정이 털려서 나가길 기다린 것이 3개월.

무슨 이유에선지 허니비는 여전히 팀에 남아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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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이렇게 누군가한테 맞은듯 시퍼런 멍을 달고 나타난 것이었다.

파월은 어제부터 있었던 작고 사소한 일들이 허니의 상처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가이드를 팰 만한 인간말종은, 그가 아는 한 그런 인간은 팀 안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촉이 일련의 일들을 연관 짓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누가 그랬으며 무슨 일로, 왜,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턱이 없으니. 파월은 단서 없는 사건을 떠안은 형사처럼 이 일에 대해 골몰했다.

대체 어제 허니비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가렛이 그런걸까? 아님 벤? 왜 그랬을까?

뭔가 있다, 뭔가 있어.

파월의 머릿속엔 답은 없고 온통 물음표로만 가득했다.





12.
스크럼 미팅이 끝나고 허니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씨바 커피가 쓰다...아니, 인생이 쓴걸까?

호롭- 머그잔을 양손으로 감싸쥔 채 한 모금 더 커피를 들이킨 허니가 스르륵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모두가 모여있던 식탁은 단 두 사람 뿐이었다. 허니 비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앉아있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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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리 허냄이었다. 그와 둘 사이를 감싼 분위기가 싸늘했기에 허니는 남몰래 꼴깍 침을 삼켰다.




하하, 이제 어쩐담?






직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면 이러했다.

팀원들이 돌아가며 보고를 끝내고 난 후, 가렛은 어제 허니와 얘기 했던 가이딩에 관련된 사항들을 꺼내었다. 팀 전체적으로 바이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이야기, 전원 폭주위험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런 이유로 모두 가이딩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공지까지.





'이건 권고사항이 아니라 명령이다.'


가렛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어제 입맞춤 하나로 허니의 팔을 동앗줄처럼 잡고 떨던 사람이라곤 힘든 모습이었다. 허니는 가렛의 위압적인 모습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암, 팀장의 명령이니까 따라야지. 저 정도의 위엄이라면 당연히 팀원들도 군말없이 가이딩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허니의 그런 생각은 1초도 지나지 않아 와장창 깨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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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찰리가 가렛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격한 분노를 표출했기 때문이었다. 쾅! 하고 찰리가 내리친 주먹에 테이블이 들썩이자 허니는 흔들리는 머그잔을 서둘러 붙들었다.


"명령? 명령이라고 하면 내가 똘마니처럼 따를 줄 알았나?"
"....."


그치만 여긴 군대인걸... 따라야 하지 않을까... 허니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속으로 삼켰다.


"폭주위험이고 나발이고 그딴게 무서웠으면 애초에 이 팀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그게 지금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
"병동에 있는 '그'는 어떡할거야? 허? 걔한텐 뭐라고 설명할건데?"
"....."
"이대로 그냥 포기하겠다는거 아냐, 유약한 새끼."


찰리의 격분에 허니는 몸둘 바를 몰랐다. 왠지 들어서는 안될 이들만의 사정이 있는 것 같아 자리를 피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렬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기... 허니는 제가 자리를 피해줄테니 여러분께서 원만한 합의를 보시라고 말할 참으로 손을 들어 보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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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누가 누굴 포기해. 말 조심해."


그 타이밍에 가렛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기 때문에 아무도 허니의 곧게 편 손바닥을 눈치채지 못했다. 허니는 조용히 들었던 손을 내려야만 했다. 그 사이 가렛의 호전적인 태도에 찰리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둘은 당장이라도 서로에게 달려들듯 거리를 좁혔고 욕지거리와 함께 언성을 높혔다. 이런 돌발 상황에 익숙하지 못한 허니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말려야 하지 않을까? 간절한 눈으로 반대편에 앉아있는 파월과 벤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파월은 허니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기 바빠보였고 벤은 한숨만 내쉬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 그 둘을 멀거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맞아..? 허니만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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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이딩을 쳐 받아야겠으면 팀장인 네가 먼저 받아보던가."
"......"
"팀장이 모범을 보이면 팀원인 나도 따라줘야지 별 수 있나? 안그래?"


찰리가 호기롭게 코웃음을 쳤다. 가렛이 못 할 것이라는 걸 확신하는 그의 태도가 자신만만해 보였다. 가렛은 담담한 표정으로 찰리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이 없자 찰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 비웃었다. 하지만 곧 가렛은 평이한 어조로 대답했다.



"난 어제 이미 받았어. 가이딩."



뭐...? 그의 한 마디에 찰리는 충격 받은듯 보였다. 나머지 팀원들도 번쩍 고개를 올려 놀란 얼굴로 가렛을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진 테이블은 영문을 모르는 허니 눈이 도로록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는듯 했다. 가렛이 놀라서 말을 잃은 찰리에게로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섰다. 두 사람의 거리가 아슬아슬했다. 곧이어 잇새를 짓이기는듯한 가렛의 목소리가 방금 전 찰리가 했던 말을 똑같이 읊어냈다.


"팀장이 모범을 보였으니 팀원은 따라야지. 그치?"
"......"


찰리의 목울대가 크게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찰리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믿을 수 없다는듯 가렛을 바라 볼 뿐이었다.


"대원 찰리 허냄은 스크럼이 끝나는대로 팀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는다. 알겠나?"
"......"
"이상."


그렇게 상황은 종결됐다. 가렛은 그대로 2층 방으로 올라가 버렸고 다른 팀원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사라졌다. 찰리는 날카로운 몸짓으로 의자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 그의 깊은 한숨소리가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개연성 뒤짐^ㅇ^!


가렛너붕붕
벤반스너붕붕
훈남너붕붕
파월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