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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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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의 삶은 당연히 망가졌음
뉴욕에 머무는 처음 며칠은 매일 습관대로 버디? 하고 베놈부터 부르며 눈 떴고 대답은 한 번도 돌아오질 않음
베놈이 잠시 에디를 떠난 적도 있었으니 영원히 잃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머쓱하게 아, 이제 없지... 하고 혼잣말 중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함
슬프기보다는 기분이 이상한 쪽에 가까움 헛헛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혼자가 된 에디는 현실로 돌아오려는 노력들을 몇 가지 함
에디의 누명은 빠르게 벗겨졌고 방송과 인터넷도 정정보도 후 잠잠해져서 다시 취재활동을 할 수 있게 됐음
일을 시작하고 규칙적인 생활 루틴을 만들었고 초콜릿 같은 군것질은 하지 않고 운동하고 적당한 식단도 지키면서 되찾은 일상에 몰두했음
베가스에서 안 좋게 헤어져버린 첸 아주머니나 에디의 뉴스를 본 앤과 댄과도 연락이 닿아서 지금 뉴욕에 있다, 걱정마라 무사하다 그런 소식을 전하다가 자연스럽게 베놈도 잘 있냐는 질문을 받지
평범하게 대화 잘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목 안에서 무언가 턱 하고 걸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
한참 침묵하던 에디는 가까스로 베놈은 이제 없어 한 마디만 내뱉고 너머에서 다른 질문이 들려오기 전에 통화를 끊어버렸음
일방적으로 끊긴 통화에 전화통이 몇 번 더 울렸지만 에디는 받지 않았음
그렇게 에디의 평화로운 일상은 몇 주 지나지 않아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함
말문을 닫아버린 에디에게 설명을 요구하다 지친 지인들은 베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겠거니 추측하면서 위로하는 메세지를 몇 통 보내왔는데, 에디는 그걸 읽지도 않고 삭제해버렸음
근래 며칠은 베놈을 찾지 않으면서 눈을 뜰 수 있었는데 습관은 안 좋은 의미로 되살아나버림
잠에 들면 에디는 전신을 누르는 갑갑함과 독한 산의 냄새, 뜨거운 화염의 열기, 이따금 무언가 폭발하고 깨지는 소음 속에서 정신을 차렸음
산성액이 튄 더러운 창으로 괴물과 함께 엉겨 죽어가는 베놈이 괴로워하면서 에디의 이름을 부르고 도와달라거나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게 보였음
에디는 당장에 몸을 누르는 철문을 밀어던지고 베놈에게 달려가려고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꿈틀거리기만 할 뿐 거기서 꼼짝도 할 수 없음
그래서 베놈은 항상 오지 않는 에디를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숨을 거뒀음
에디가 아무리 아니라고 널 버리지 않는다고 소리질러도 죽은 베놈이 들어줄 리 없음
슬픔과 상실감에 몸부림치다 보면 에디는 버디! 하고 고함치며 눈물에 푹 젖은 얼굴로 잠에서 깨어나곤 함
일어나면 현실이 기다리고 있지
무서운 게 많은 겁쟁이나 악몽을 꾸는 거라고 에디를 비웃고 그러면서도 망친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아침을 만드는 베놈은 에디의 현실에 없었음
악몽을 꾸는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잠깐 눈 붙이는 것조차 힘들어졌을 무렵 에디는 처음 잘 나가던 인생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던 때처럼 술에 손을 댔음
그때도 지금도 베놈 때문임 갑작스럽게 나타나 에디의 인생을 훔쳐간 외계인이 사라졌는데도, 사라졌기 때문에 또 술독에 빠지게 됐다는 게 우습지
에디는 거의 자지 못한 채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취재를 다녔고 그런 상태에서 일이 제대로 풀릴 리 만무함
가뜩이나 사회 비리를 캐내는 르포 기자가 맑은 정신이어도 모자랄 판에 수면부족에 취한 상태로 현장에 다니니 위험한 상황도 자주 생김
베놈이 있을 땐 그래도 괜찮았지 베놈이 대신 싸우고 지켜주니까
이제 일신의 안녕을 제정신이 아닌 스스로에게 맡겨야만 하는 에디는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계속 기자 일을 했음
그러지 않으면 베놈 생각에 잠겨버리게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취하지 않았더라면 뒤를 밟혔다는 눈치를 챘을텐데 그날따라 숙취해소제를 사러 간 가게에서 베놈이 좋아하던 초콜릿 브랜드 가판대를 봐버렸고, 숙취해소제 대신 술병과 초콜릿 박스만 사들고 나온 에디에겐 그럴 여력이 없었음
취재를 마친 늦은 밤 술병을 물고 털레털레 돌아가던 에디는 아마도 뒤가 구린 어떤 기업가의 사주를 받았을 괴한에게 칼침을 맞고 깊은 골목 구석으로 끌려들어가 쓰레기봉투처럼 버려짐
피로 젖어가는 아스팔트에 널브러진 채 끝을 예감한 에디는 의식적으로 미뤄오던 베놈에 대한 생각을 했음
심비오트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인간이 죽어서 가는 곳과 같은 곳으로 갈까?
그러면 그딴 무거운 문은 필요 없으니까 차라리 내 손을 잡아주지 그랬냐고 따질 수 있겠지
사실 악몽 속 베놈은 에디의 죄책감이 만든 가짜 베놈이고 진짜 베놈은 에디가 구하러 오지 않는다고 해서 저주하지 않을 거라는 걸 에디도 알고 있었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베놈은 에디와 함께 죽거나 에디의 손을 잡기보다 에디를 살리고 에디를 보호할 문을 찾을 거라는 것도
에디는 그제서야 펑펑 울었음
베놈이 없는 인생은 별로 살고 싶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이런 개죽음이 억울하지도 않음
더럽고 축축한 골목 바닥에 나뒹구느라 피와 눈물과 뉴욕의 오물로 젖은 볼썽사나운 자신이지만 베놈은 반겨줄 테니까 에디는 다 괜찮았음
한바탕 울음을 쏟아낸 후 베놈과 다시 재회할 것이라는 기대에 묘한 기쁨마저 느끼고 있을 때,
가물거리는 시야 끝으로 시커먼 벌레가 나타나더니 꾸물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와서는...

뭐 이런 베놈에디 보고싶다...(˘̩̩̩ε˘̩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