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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9:14
그 사람을 만난 뒤로 내 인생은 바뀌었다.
뒷골목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며 마약을 팔던 아버지, 사람 등쳐먹는게 취미이던 어머니, 뭣같은 집구석에 허니란 이름으로 태어난 난 이름보다 “실수”로 불리며 삶과 지옥 어드매쯤을 헤매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내가 10살이 되던 날, 저녁 식사에 그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그날도 책잡힐 것이 두려워 생일을 까먹은 부모에게 그 사실을 말하긴 커녕 그저 음식을 입에 쑤셔넣고 있었다. 아마 정전이 된 순간, 내가 평소에 아버지에게 맞을때 숨을 참던 버릇이 아니었다면, 내 코와 입을 덮는 손수건에 묻은 물질에 의해 기절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계획이었겠지. 정전이 된 순간에 나를 기절시키고, 나의 부모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고, 기절한 나는 놓아두고 떠나는것. 하지만 전기가 다시 들어왔을때 그가 마주한 것은 나의 두 눈이었다.
사실 그 순간엔 별 생각이란걸 하지 못했다. 나도 곧 죽으려나? 하는 감각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지도 못했고, 내가 본 영화 속 킬러들이 여지를 주고 살려주는건 보통 심장을 아리게 하는 어린 아기라서 10살이나 먹은 나는 살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총성이 들리기를, 아니 총성을 인식하지 못할만큼 빨리 죽기를 바라며 떨리는 눈꺼풀을 억지로 내려 두 눈을 감았다.
꽤 오랜 순간이 지나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두려움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정적이 내 숨통을 조여오던 그때. 내 팔을 잡아채는 손길이 느껴졌고 나는 그렇게 그 사람의 차에 태워져, 새 삶을 선물 받았다.
그의 집에 살게 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의 이름이 가렛인걸 알 수 있었다.
*
새가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듯 나도 새 삶을 시작한 뒤 가렛을 어미마냥 따랐다. 가렛이 날 데려온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과였다. 죄책감? 책임감? 가렛에게 물으면 그는 명확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 집에 온 후 몇달 뒤 알게된 그 이유는 허무하게도 가렛의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있었다. 소중히 다룬듯 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가족 사진이었다. 사진 속 가렛이 어깨 동무를 하듯 감싸고 있는 여자아이는 분명 가렛의 동생이었을터였다. 오래된 사진, 나와 닮은 얼굴. 나는 확신했다. 가렛은 내가 자신의 죽은 동생과 닮아서 데려온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상처주진 않았다. 그저 내가 가렛에게 좀더 어리게 행동하게 된 계기일 뿐이다. 난 이미 그를 내 가족이라고 여겼고, 영원히 같이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난 더 어리게, 순진하게, 밝게 행동했다. 마치 그의 동생이 했을 것처럼.
내 전략이 통한건진 모르겠지만 그는 어쨌든 날 쫓아내지 않았다. 모든게 괜찮았다. 나는 가렛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고, 그는 나를 모질게 대하지 않았으니.. 아니 괜찮은 줄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진 말이다.
*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가렛은 변했다. 성인은 아니지만 이제 마냥 돌봐야될 존재는 아니라 그런지 돌봄은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현금이 채웠다.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차려주던 아침도 학교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돈으로 변했고, 같이 옷을 골라주던 시간들도 옷을 살 돈으로 변했다. 보통의 청소년이라면 이 변화가 달가울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이 내가 가렛에게서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심장이 답답했다.
“어디가요?”
학교에서 집으로 곧장 돌아온 나는 내 얼굴만 보곤 집을 나서려는 가렛을 붙잡고 물었다.
“처리할게 좀 있어서.”
“저녁은요? 같이 안먹어요?”
“미안. 일이 바빠“
내게 그렇게 말하고 가렛은 집 밖으로 나갔다. 내게 한번도 그 일이란게 무엇인지 말해준 적이 없지만 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킬러로써 만났으니 아마 지금도 그러하겠지. 가끔 세탁물에 보이는 핏자국은 내 생각을 뒷받침 해주었다. 나는 항상 관심없는 척, 상관없는 척 하곤 했지만 그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할까봐 마음 졸였다. 그가 이 일을 그만두었으면 하고 바랄만큼. 하지만 입밖으로 꺼냈다간 주제 넘는 참견이라며 멀어질 것만 같아서 그저 속으로 꾹 삼키고 말 뿐이었다. 혼자 남겨진 집이 춥게만 느껴졌다.
침대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가슴께가 아팠다. 원래도 살가운 남자는 아니었다. 나를 데려왔던 그때에도 말이다. 그래도 그때는 어린아이였기에 받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마저도 없었다. 가렛이 나에게 무관심하단 뜻은 아니다. 잘 보이게 행동하지 않을뿐 그는 언제나 내 생활 전반에 관여하고 있으니까. 나를 성가시게 하던 엘리스가 어느날 전학간 것도 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않는다. 문제는 내가 가렛을 만난 수년전 그날부터 그에게 모든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는 거였다. 부족했다 그가 주는 모든 것들이 다. 문득 가렛이 피던 담배가 생각났다. 펴본적도 없으면서 왠지 그 행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나는 가렛의 외투 중 하나의 주머니 속에서 쉽게 담배와 라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들을 챙겨서 나는 집 뒷마당으로 나갔다. 막대끝에 불을 붙이고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가렛에게 비밀이 하나 더 생긴 순간이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가렛이 언젠가 알게되는건 시간문제겠지. 난 그 시간이 늦게 오길 바라는지 빨리 오길 바라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건 나는 그가 차라리 내게 화라도 내주기를, 농도가 짙은 감정을 퍼부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입안 가득 찬 연기가 썼다.
이런식으로 시작되는 가렛너붕붕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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