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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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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오라이온은 평소와 다름 없이 메가트론을 찾아왔음. 메가트론이 돌아왔다는 걸 안 건 어제였지만 시간도 늦은 데다 방금 막 돌아와서 피곤할테니 찾아가려거든 내일 가는 게 낫다는 상식 정도는 의외로 갖추고 있었기에... 메가트론이 혹시 다친 곳은 없을까 걱정이 됐지만 통신을 넣을 수도 없었음. 현재 아이아콘에선 일반 메크의 개인 통신이 금지되어 있었거든. 오늘 만나면 이거 좀 어떻게 안되냐고 물어봐야겠음.

오늘따라 이상하게 조용한 복도를 지나 메가트론이 있을 집무실에 거침없이 입장한 오라이온은 들어가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알 거임. 집무실이 죄다 부숴지고 엉망이었어. 한동안 조용하던 메가트론이 갑자기 또 폭주했나? 오라이온이 한발자국 안으로 들어섰지만 메가트론은 오라이온을 보지 않았음. 잔해 속에 그저 앉아있을 뿐임.

메가트론의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오라이온은 당장 도망가야 한다는 본능의 경고를 받았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성이 말했어. 도망칠 수 없다고. 메가트론과 하이가드를 뚫고 도주가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오라이온은 천천히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음.


"쿠인테슨이 여기도 왔었어요?"


일부러 가볍게 말하며 메가트론을 떠봤지만 메가트론은 반응조차 없음. 대체 무슨 일이지.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에게 다가가는 걸 멈춘 채로 메가트론이 운을 떼기를 기다렸음.


"그동안 어디서 뭘했어."


메가트론에게서 한참만에야 나온 말이 이거였음. 오라이온은 이게 무슨 질문인가 싶었을 거임. 그동안 한 일이야 많지. 오라이온은 한 곳에 가만히 있는 걸 영 좋아하지 않음. 하지만 그중에 메가트론의 상태가 또 안 좋아질 만한 일은...

오라이온은 불현듯 깨달았음. 광산에 갔었어. 오라이온은 들킨 게 그거라는 걸 이상하게 확신할 수 있었지. 일단 잡아뗄까. 오라이온은 갈등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음. 떨리는 손을 꾹 쥐고 진정시킨 오라이온은 각오와 함께 말했어.


"친구를 만났어요."
"누구."
"광부들이요."


메가트론의 손 아래에서 뭔가가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음. 집무실에 있던 집기 중 하나였겠지. 경직된 어깨와 우그러지는 소리가 메가트론이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줄 거임.


"...팍스. 이리와."


메가트론이 말했어. 오라이온은 위험 경고를 무시하는 일에 숙달이 되어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메가트론에게 다가갔지. 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오라이온은 마침내 메가트론의 앞에 섰어.


"다신 그녀석들을 찾아가지 마."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던 오라이온은 옵틱이 커졌지. 메가트론이 빠져나갈 기회를 줬어.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이 지금 정말 많이 참고 있단 걸 알 거임. 이건 메가트론이 실로 오랜만에 베푼 자비겠지. 오라이온은 평소라면 기뻐했을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음에 씁쓸히 고개를 저었음.


"그럴 수는 없어요."


그순간 메가트론이 바닥을 부술 듯이 발을 구르며 자리에서 일어섰어. 그리고 오라이온의 양 어깨를 잡았음.


"거기 처박힌 쓰레기들이 너한테 무슨 소릴 했어. 변명이라도 늘어놨나? 나한테 접근해서 자기들을 풀어달라고 부탁했어?"


메가트론은 거의 폭주 직전이었지만 적어도 첫만남 때처럼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라이온의 플레이트를 부수고 있진 않았음.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한테 부탁해서 그들을 해방하고자 한 건.. 제 생각이었어요."


이글거리던 붉은색이 오라이온의 말에 훅 가라앉았음. 혼란과 증오가 가득한 옵틱에 슬픔이 차올랐어.


"왜?"
"누군가 그런 식으로 고통받는 걸 외면하는 건 옳지 않으니까요."


오라이온은 이상하게 차분해지는 걸 느꼈음. 언제가 됐든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름. 반대로 이런 날이 올 거란 예상은 커녕 오라이온이 이 문제로 제게 부딪힐 거라고 상상도 하지 않은 메가트론은 점차 무너지고 있었어.


"네가 아직 어려서.. 그자식들이 뭘 했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자식들에겐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어!"


슬픔이 분노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지.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을 위로하듯 천천히 손을 어루만졌어.


"그래요. 그럼 기다릴게요. 당신의 분노가 끝날 때까지. 그게 언제쯤이면 될까요?"
"......"


메가트론의 손이 떨리고 있었음. 그 애처로움이라니.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이 생각보다 자신을 더 의지했단 걸 알 수 있었지. 당신은 이토록 외로웠구나.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을 그저 안아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어.


"메가트론. 이제 그만 하세요. 다들 너무 고통받고 있어요."
"그자식들은 그럴 만한..!"
"당신 말이에요 메가트론. 당신이 고통받고 있다구요."


붉은 옵틱이 더욱 흐려졌음. 메가트론은 마치 이 순간 목숨줄을 쥐고 있는 쪽이 오라이온인 것처럼 오라이온에게 매달렸어.


"왜 이해하질 못하는 거야? 난 이렇게 해야만 했어!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다른 길이 있어요 메가트론. 지금도 보여요. 당신이 분노 때문에 못보고 있는 것 뿐이에요."


메가트론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어.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느껴져.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결국 이 모든 일이 지난 후에도 메가트론의 분노는 끝나지 않았어. 라쳇의 말이 맞았구나. 오라이온은 슬프게 인정했지. 어쩌면 시간이 더 필요했을지도 몰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용 없을지도 모르고. 확실한 건, 지금 타이밍엔 아니었어.


"아니야... 아니야! 넌 겪지 않아서 모르는 거야! 너도 나와 같았다면, 그랬다면 날 이해했을 거야! 너도 나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면...!"


메가트론이 미친 듯이 중얼거렸음. 정말 그랬을까. 나도 메가트론처럼 코그를 잃고 모든 삶을 기만당한 채 평생을 광산에서 지냈다면.. 그랬다면 나도 메가트론처럼 증오에 사로잡혔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 그런 시간선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오라이온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건 딱 한가지였음.


"메가트론. 저는,"


오라이온의 말이 끊겼음. 메가트론이 오라이온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어. 메가트론은 더이상 떨고 있지 않았음. 오라이온을 다시 바라보는 그 옵틱엔 본 적 없는 광기가 서려있었어.

이윽고 메가트론의 손가락이 가슴 플레이트를 부수며 파고들었음. 놀란 오라이온이 벗어나려 했지만 메가트론의 힘에서 빠져나올 순 없었지.


"한번 알아볼까 팍스."


엉망이 된 집무실에 플레이트가 구겨지고 뜯기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오라이온이 지르는 비명 만이 가득해졌어.


"내가 네 모든 걸 앗아가도 날 증오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만, 그만해요! 메가트론 제발!"


오라이온이 고통에 견디다 못해 메가트론을 걷어차고 플레이트를 뜯어내는 손을 마구 긁어댔지만 메가트론은 꿈쩍하지 않았음. 메가트론은 고통에 울부짖는 오라이온의 얼굴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플레이트를 부수고 드러난 코그를 뽑아냈어.

















관리자도 잘 오지 않고 와봤자 기껏해야 몇명이나 오는 이 외진 광산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음. 로드 메가트론이 하이가드를 데리고 왔어. 광부들이 웅성거리며 동체를 숨기고 벌벌 떠는 동안 라쳇은 메가트론을 보고 있었음. 정확히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메가트론은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을 광부들 앞에 내던졌어. 라쳇은 그를 몰라볼 수가 없었지. 기운 없이 축 늘어진 그 파랗고 빨간 동체.


"오라이온!"


라쳇이 달려나왔음. 라쳇은 서둘러 오라이온의 상태를 살피려다가 스파크가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음. 오라이온이 마치 자신들처럼 작아져 있었어. 라쳇이 그를 안아올리자 텅빈 코그 챔버가 드러났어. 그 주변엔 외장갑과 케이블이 억지로 뜯겨나간 에너존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었음.

라쳇은 고통에 신음하는 오라이온을 안아든 채 메가트론을 바라봤음. 차갑게 가라앉은 그 붉은색 옵틱. 라쳇은 이성회로가 마비되는 걸 느꼈음.


"대체 이 어린 애가 네게 뭘했다는 거냐 메가트론!! 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오라이온을 알아보고 같이 다가왔던 광부들이 기겁하며 라쳇을 말렸어. 하지만 라쳇은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음. 자신들한테 하는 짓은 상관 없었어. 그딴 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음. 하지만 오라이온은 왜?

라쳇은 옵틱이 과열되어 깨질 지경이었지.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어. 죗값은 따로 치루더라도 메가트론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어! 그때 메가트론과 싸우다 죽었어야 했어!

메가트론은 여전히 차가운 옵틱이었음. 가만히 듣고 있다가 라쳇을 향해 캐논을 조준할 뿐임. 라쳇은 에너존이 흐르는 옵틱으로 끝까지 메가트론을 노려봤지.


"메가..트론.."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에 희미한 음성이 메가트론을 불렀음. 의식을 잃었던 오라이온이 라쳇의 품에서 겨우겨우 동체를 일으켰음. 라쳇은 누워있으라고 오라이온을 붙잡았지만 오라이온은 부상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어.


"메가트론... 제발.."


그 약하고 작은 메크를 보며 메가트론은 이 광산에 온 후 처음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 메가트론은 기다렸어. 오라이온이 제게 다가와서 용서를 구하기를. 하지만 오라이온은 메가트론에게 다가오지 않았어. 라쳇과 광부들의 앞을 막아섰지.


"이들을 해치지 마세요.."


오라이온은 빛이 껌뻑거리는 옵틱으로 메가트론을 똑바로 쳐다볼 거임. 메가트론이 조금만 무섭게 쳐다봐도 놀라서 흠칫거리던 어린 메크가 이제 부상 당하고 코그도 잃은 동체로 캐논을 막아서고 있었음.

메가트론의 옵틱이 이상한 빛을 띄었어. 그래. 아직 모자라는 구나. 네가 날 이해할 수 있으려면. 메가트론은 그 가증스러운 녀석들이 오라이온을 끌어당기며 자신들의 뒤로 숨기려는 걸 바라봤음. 여기 있는 광부들을 전부 죽여버리면 조금은 느낄 수 있을까. 메가트론의 캐논에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어.



굉음이 울린 건 그때였지. 캐논이 폭발한 소리인가 다들 움츠러 들었지만 메가트론은 캐논을 발포하지 않았음. 당황스런 눈치로 소리가 들린 곳을 봤어.


"메가트론!!"


누군가 메가트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었음. 그뒤로 수많은 인원이 달려오는 소리가 났어.


"반군이다!"


하이가드 중 누군가가 외쳤어. 그리고 곧 함성과 발포음이 동굴 안에 울려퍼졌어. 오라이온은 갑자기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음. 지금은 서있기도 벅찼어. 오라이온이 비틀매며 무너지자 라쳇이 오라이온을 받아안았음.


"오라이온!"


희미한 의식 사이로 익숙한 음성이 들렸음. 오라이온은 옵틱이 감기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제게 달려오는 메크를 바라봤지. 아...


"내가 왔어 오라이온. 괜찮아."


재즈가 오라이온의 뺨을 쓰다듬었음. 오라이온은 재즈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닥터 라쳇을 당장 대피시켜! 다른 코그리스들도!"


이번엔 낯선 음성이 들렸음. 오라이온은 점점 어두워지는 의식 속에서 강렬한 마젠타 색을 한 메크를 본 걸 끝으로 완전히 정신을 잃었음.




메가오라 메옵 메가옵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