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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2 17:00
1.
해리가 미친게 분명했다. 물론, 유학을 가고 싶었던 것은 맞긴했지만 제가 원했던 지역은 영어가 제1언어로 쓰이는 영국이나 오스본 계열사가 모여있는 캐나다나 홍콩정도였다. 그런데 그것도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아시아에 그것도 한국이라니. 미쳤나?
- 한국에서 제일 좋은 학교고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너가 들어가는 과에 강사로 있어
- ...너한테 친구가 있어?
- 그러게 말이야. 너한테도 말도안되는 카빌가 쌍둥이 꼬맹이들이 네 친구이듯 나도 내 친구가 있단다
2.
뉴욕에 있을때도 제겐 수행원이 없었다. 이제 스물둘, 그리고 오스본에거 가장 일반인처럼 살았기에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생판 모르는 나라에 들어오는 거면 그래도 같이 딸려보내줘야 하는건 맞잖아? 툴툴대며 공항에 내리자마자 비행기 탑승전 인터넷으로 미리 봐둔 출국장 맞은편 유심센터로 향했다. 일단 일주일정도 되는 유심을 구입하고는 택시를 잡았다. 모르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싶진 않았다. 택시에 타자마자 수첩에 쓰여진 주소를 찢어 기사에게 건냈고 오케이-라며 손짓을 하는 기사에 얼른 어디든 가서 눕고 싶었다.
3.
제가 약간 헛똑똑이라고 레오에게 불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이 나라에 화폐단위에 대해서는 공부는 했다 이거였다. 택시 기사는 제가 건낸 주소로 도착하자마자 말도 안되는 금액을 불렀다. 오는 내내 지도앱을 켜서 맞게 온 건지 확인을 했을때에 맞게는 온거 같았는데 터무니없이 불러제끼는 금액에 여간 빡치는게 아니였다. 아.... 뉴욕이였으면 파산 시켜버릴 수 있는데.... 제게 삿대질을 하며 벌개지는 기사를 보고 돈을 못 주겠다는 제스춰를 하니 이내 제 멱살을 잡아왔다. 뭐야 이거.... 기사를 밀치고는 택시에서 내렸더니 따라내린 기사가 제 멱살을 다시 잡아왔고 저도 지지않고 기사의 멱살을 쥐었다. 저보다 머리통 하나가 작은 기사가 까치발을 들고 어어? 거렸고 짜증나는 마음에 흔들었더니 큰 고함까지 질러서는 아직 이 나라를 경험하기도 전에 질리기 일보직전이였다.
- 뭐 하시는거예요!
- 이, 이 사람이랑 알아요? 어? 내가 요금 내랬더니 요금도 안내고
- 얼마가 나왔는데 그러시는데요, 어? 사십만원? 미쳤어요? 인천에서 서울까지 사십? 이거 안놔요?
제 주소지는 작은 주택의 앞이였다. 주택에서 뛰쳐나온 남자가 저와 기사를 떨어트려 놓고는 뭐라뭐라고 하자 이내 기사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마 가격을 부풀린게 걸린 모양이였다. 지갑에서 지폐 몇장을 꺼낸 남자가 기사에게 건냈고 기사에게 뭐라하자 제 캐리어를 던지듯 바닥에 팽개쳐두곤 떠나는 택시를 보곤 그제서야 제 앞에 선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 겨울에 반팔로 뛰쳐나온 모양새가 좀 웃겼다만 몸이 제법 제 맘에 들어서 그러려니 했다.
4.
- 너가 뉴트지?
- ....해리 친구 맞아요?
- 해리가 진짜 친구가 없구나
- ....우리 형한테 이런 멀쩡한 친구가 있을리가
- 네 형은 그래도 아이비리그 출신인데 멀쩡한 애들이 있겠지
- ....그게 아니고...
- 응?
- 몸까지 건강한 멀쩡한 친구가....
- ...어딜봐 새꺄
5.
해리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친구라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대학때 이렇게 생긴 남자랑 어울리는 거 같긴했다. 하긴, 해리가 대학교 졸업반일때 저는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였다. 눈이 작아보이는 두꺼운 뿔테를 쓴 남자가 제 캐리어를 빈 방에 밀어넣었다.
- 여기가 네 방이야. 급하게 다 준비하긴 했는데 필요한거 있으면 말해줘. 사줄게
- 뭘 사줘요. 해리카드 들고왔어요
- 그거 정지안됐어? 전에 레오는 카드 정지시키던데
- 그건 레오가 미친짓을 하고 다니니깐요
- 그레? 정지가 안됐다면 다행이다
6.
이름은 박민호. 해리보다 한살이 많았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가는 과에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재택으로 다른 일도 한다고 했다. 오버 조금 보태서 이제 입학하는 대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남자는 동안이였다.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다음날 남자는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학교 가는 길부터 전공건물과 도서관, 편의점, 마트 등 자잘한걸 알려주었다.
- 아주 다행스럽게도 네 수업 대부분은 영어로 진행해서 어려운건 없을거야
- 그럼 민호 수업은?
- 내 수업도 영어야. 다행이지?
- 그나마
- 이것 봐, 네 형한테 전화온다. 동생이 꽤나 걱정되나봐
- 걱정은 개뿔....
어, 해리-
제 형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며 부엌으로 향하는 남자를 보고 저도 방으로 들어왔다.
7.
겨울방학이 아직 2주나 더 남았기에 그 동안엔 걸어다니면서 동네를 탐방했다. 그리고 나름 이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곳을 돌아다녔고 학교내에서 하는 한국어 수업에도 들어갔다. 뭐하냐는 해리의 메세지에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하니 웃겨죽는다는 뜻을 담은 메세지를 받곤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8.
민호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였다. 음식 대부분이 한식이였음에도 제 입에 아주 잘 맞았다. 그건 다행이였다. 다만 네 형이랑 입맛이 비슷한가봐- 라고 말할때마다 체할 것 같았다. 제가 해리랑 닮았다고 소리를 듣긴 했지만 집안 사람이 아닌 외부사람에게 들으니 영 떨떠름했다. 그래도 남자의 음식은 맛이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저는 요리에 젬병이였고 아직 한국어는 걸음마 수준이라 뭘 사서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였기에 얌전히 남자의 음식만 기다리는게 약간 파블로프의 개와도 같았다.
- 너 뭐 좋아해?
- 섹,
- 닥치고 음식
- 가리는거 없어. 그냥 주면 다 잘먹는 편이야. 아, 장어젤리 빼고
- 한식은 입에 맞아?
- 그냥... 네가 해주는게 한식이라면 다 잘맞는거 같아
- 그래도 까탈스러운건 없구나. 다행이네
- ....해리랑 진짜 친한게 맞구나?
- 왜?
- 걘 음식에 정말 까탈스러우니깐
- 그래서 다행이라고
9.
개강 일주일 전, 남자가 영화를 보러가자고 했다. 맨날 방에 틀어박혀서 컴퓨터만 하지 말라며 저를 끌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심야시간인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남자가 고른 영화는 재개봉을 하는 SF영화였다. 보지 않았던 영화라 상관없겠거니 했다.
- 왜? 저거 먹고싶어?
- ...뭐가 이렇게 많아?
- 한국은 음식에 진심이거든. 뭐, 뉴욕도 음식엔 진심이잖아
- ...저 팝콘은 뭐야?
- 치즈맛인데 먹을래?
- 어
남자가 제게 큰 팝콘통을 안겨주었다. 달콤짭짤한 치즈향이 코를 찔렀다. 팝콘통을 들고 남자의 뒤를 따라가 상영관으로 입장을 했다. 제게 음료를 건냈고 스크린에 집중하다가도 이내 팝콘통에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옆에 남자를 슬쩍보니 집중을 해서 제가 뭘 하는지도 몰라보였다. 입을 하도 벌려 침이 흘러내릴 것 같이 집중한 모습이 제법 웃겨 킥킥댔다. 남자는 스크린에 집중했고 저는 팝콘을 먹으며 옆에 앉은 남자에게 집중했다. 계속 표정이 변하는게 영화보다 재밌었다.
10.
- 보통 개강하면 첫날에 과애들이랑 놀잖아
- ...난 안 놀아
- .........
- 왜?
- 넌 그런건 또 해리랑 다르네. 너 친구 없어?
- 있어. 토마스 카빌이랑, 트리샤 카빌
- ....너 카빌 쌍둥이랑 친구야?
- 민호, 카빌을 알아?
- 알지... 걔네 형이랑도 같은 학교였으니깐
- 헨리?
- 그래, 아무튼. 그러면 끝나면 연락해. 집에 같이 가자. 나는 11시에 수업끝나거든? 넌?
- 시간표를 보니... 오늘 오전에 모두 끝나는데?
- 그럼 집에 먼저 갈래?
- 아니, 기다릴게
- 어디서?
- 어디서든.
뉴트민호
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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