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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8 21:59






13. 곱슬과 직모

 

갑자기 브랫이 머리를 기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네잇의 의견은 어떤지 물었다. 마치 분대장 회의 때처럼 올곧은 시선을 하고 네잇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브랫 머리는 브랫 거니까 마음대로 해도 돼.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촉촉한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던 브랫의 아랫입술이 0.3미리 정도 앞으로 돌출된 것 같은 건 네잇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아차차. 마이맨, 감성적, 니즈.

 

그치만! 길러도 예쁠 것 같다. 브랫은 워낙 얼굴이 예쁘니까.”

 

바로 브랫의 앞니 열두 개가 빛을 내며 환하게 거실을 밝혔다.

 

당신도 기르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나는 좀 어려움이 있어.”

 

전역 후 그래도 꽤 자란 머리칼을 쑥스럽게 쓸어넘기며 네잇이 쓰디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어려움 말씀하시는 겁니까.”

“....브랫 집에 있는 기계들만큼 내 말을 안 들어.”

 

그 말에 브랫이 솥뚜껑 같은 손을 자기 가슴 위에 얹으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잘, 다스리겠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네잇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브랫은 네잇의 영원한, 유능한 팀 리더니까.

 

 

타인의 머리카락에 대해 일평생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네잇은 그날의 요상한 대화 이후로 브랫 머리카락에 자꾸만 시선이 가고 있었다. 브랫 머리가...이라크 때도 저랬나? 밥을 먹을 때도, 티비를 볼 때도, 심지어 브랫이 제 몸 위에서 움직일 때도 네잇은 브랫의 앞머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의 홀린 느낌으로.

 

별로입니까. 이렇게 살짝 각도를 바꾸-”

..! 그만, 너무 안으로-”

깊어요?”

브랫!”

 

외치며 그의 앞머리를 한 움큼 손에 쥐었다. 브랫이 놀라서 소릴 질렀다. 네잇도 마찬가지였다. 격한 액티비티 후 둘 다 천장을 보고 나란히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네잇이 그 와중에 고갤 돌려 브랫을, 정확히는 브랫의 앞머리를 쳐다봤다. 온통 쭈뼛 선 그 직모를.

 

머리카락이 꼬부라지지 않는 거야? 절대?”

 

뜬금없는 질문에 브랫이 눈을 크게 뜨고 네잇 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이제 머리카락이 이마 위쪽을 살짝 가릴 정도로 자란 네잇은 괜히 눈을 위로 떠 보이지도 않는 제 앞머릴 올려다 봤다. 자랄수록 동그랗게 휘어지며 자라는 곱슬. 별명이 코카시안 아프로였으니 말 다 했다.

 

말을 잘 안 들어요. 보십쇼.”

 

브랫이 커다란 손으로 자기 앞머리를 꾹 눌렀다가 뗐다. 손힘에 눌렸던 앞머리가 손을 떼자마자 스프링처럼 쭉 일어나 위로 곧게 솟았다. 그걸 본 네잇이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이번엔 네잇이 손바닥을 펼쳐 브랫의 앞머리를 지그시 눌렀다가 뗐다. 머리카락이 또 쭈욱 올라왔다. 눈꼬리에 눈물까지 달아가며 네잇이 웃자 브랫도 같이 웃었다.

 

기다리십쇼. 조금만 더 기르면 그 새끼처럼 젤 발라서 뒤로 싸악-”

그 새끼...?”

. 아무것도 아닙니다, sir,”

 

 
 

14. 색칠공부

 

원래 브랫은 무채색을 좋아했다. 흰색, 검은색, 회색. 이 얼마나 심오하고 아름다운가. 거기에 변칙적인 재미를 줄 색을 추가한다면 어두운 파랑이나 짙은 녹색 정도? 옷도 그랬고, 가지고 있는 소지품들도 그랬고, 당연히, 집도 그랬다. 관사 생활이 길었고, 또 언제든 파병갈 수 있으니 애초에 집에 대단한 살림살이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취향 없이 살지는 않았다. 들어올 때 벽에 페인트칠을 직접 했는데 색도 몇 번을 고민하다 골랐었다. 그래서 푸른기가 약간 도는 벽에 회색 카페트가 깔린 바닥, 거실 소파 역시 무난하게 짙은 회색이었다. 언뜻 보면 집안 전체에 깔린 회색 카페트와 하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네잇이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 머물다 간다며 지내기 시작한지 3주만에 팝업 컬러들이 생겼다. 현관 옆 옷걸이에 걸린 그의 소중한 노란 잠바. 식탁 위의 오렌지 머그컵(동물원 갔다가 기념품샵에서 샀는데 네잇이 주황색 물개를 골랐다), 욕실의 오렌지 칫솔. 게다가 그가 잘 때는 양말을 신고 잔다는 깜찍한 고백을 한 후로 브랫이 바로 다음 날 산 알록달록한 수면양말. 수면양말의 특성상(??) 무채색은 나오지 않는다는 마트 직원의 말에 이라크 때보다 더 전투의지가 불타올랐었다. 네 줄 비아냥으로 싸울까 하다가 옆에 시무룩하게 있던 네잇 때문에 3켤레 묶음 한 팩을 사왔는데 그 색이 무려 노랑, 핑크, 빨강이었다. 제가 다 송구합니다, sir. 계산하면서도 네잇에게 경박한 캘리포니아주를 대신해 사과했는데 의외로 네잇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덕분에 브랫이 아침마다 구경하는 이 찬란한 광경은,

 

브랫, 오렌지 주스가 없어. 이따 사야 해.”

 

오렌지를 몸에만 댈 뿐 아니라 입에도 대는 그가 오렌지 주스가 없다는 이유로 더 떳떳하게 빈속에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브랫은 차마 잔소리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브랫의 반팔 티셔츠가 수없이 많은 세탁으로 흐들흐들 보드랍고 풍덩하게 커 편하다는 이유로 네잇의 잠옷이 되었다. 티셔츠에 하의는 생략 그리고 달랑이는 두 다리에 신겨져 있는 연분홍색 수면양말. 자신의 남성성에 의심이 0.1퍼센트도 없는 상남자인 그가 연분홍색 양말 같은 거엔 좆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침부터 브랫을 꼴리게 만들었다. 왜냐면 그런 그가 지난 밤엔 울면서-

 

울었잖습니까, 어제.”

 

머그컵을 내려놓은 네잇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 저 눈...

 

어쩌라고.”

아닙니다. 오렌지 주스, !”





젠킬 브랫네잇 슼탘
#브랫네잇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