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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06:40
지역단위모름 의술모름 아무것도모름





축제 하루 전날이 되었다.
방다병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기억을 잃었다는 이연화의 말에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였다. 자신은 이연화를 놓을 수 없었다. 그에게 어떤 과거가 있더라도, 심지어 가정을 꾸렸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가 강도, 살인을 한 흉악범이어도 상관없었다.
지금의 이연화 그 자체면 다 감당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섭섭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방다병이 몸을 일으켰다.
“ 일어났어? ”
문 밖에서 들리는 이연화의 목소리에 빠르게 매무새를 정돈했다.
“ 들어와. ”
이연화가 손에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 어제 너도 술 많이 마셨지? 이거 마셔. 꿀물이야. ”
이연화가 건내는 그릇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이연화가 의자에 앉았다. 약간의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 기억을... 잃었다는거 말 안해줘서 섭섭한거지? ”
방다병이 꿀물을 마시다 둥근 눈을 들어올렸다. 놀람이 가득했다.
이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얘는 이렇게 표정이 다 드러나서 형탐을 어떻게 하는건가 싶었다.

“ 처음엔 스쳐지나갈 인연이니 굳이 말할 필요 없다 생각했고 함께 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니가 속상해할까 마음이 쓰였어. 그래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네. “
이연화가 침상에 걸터 앉은 방다병 옆에 앉았다.
“ 일부러 그런건 아니야. 그러니까 마음 풀어. ”
“ 나..날 뭘로 보고. 내가 그런 작은 일로 마음 쓸 것 같아? ”
풋- 허세 부리는게 귀여워 웃음이 터졌다.
이연화가 방다병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주고 그릇을 받아 방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 얼른 준비해. 원래 축제 전날이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아! 그리고 방다병! 아침 먹고 연화루로 가서 2층 탁자에 있는 주머니 좀 가지고 와. 어르신 약재를 깜빡했네. ”
“ 으이그 이연화, 넌 나 없으면 어쩔뻔 했어. ”
방다병은 이연화의 심부름마저 기꺼운 듯 웃는 얼굴을 했다.
좀 전까지만해도 섭섭하고 속상했던 마음이 바람에 날라간 듯 사라졌다.
자신을 걱정해서 아침부터 꿀물을 들고 온 이연화의 마음에 기뻤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을 앞에 세워둔 연화루를 향했다.
방다병과 적비성이 1층을 쓰게 되면서 이연화는 2층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원래는 약재를 손질하고 보관하던 곳이라 약재 냄새가 공간에 배어있었고 곳곳에 약재를 손질하는 도구들과 약탕기가 널려있었다. 탁자 주변의 널려있는 약재들을 하나씩 들어 냄새도 맡아보며 돌아보았다.

탁자 위에 주머니가 바로 보였다. 주머니를 낚아채듯 쥐고는 발을 옮기다 탁자 아래 살짝 나와있는 상자가 발에 채였다.
상자는 오래된 듯 모서리와 표면이 맨질맨질 했다.
발에 걸리지 않게 탁자 깊숙히 밀어넣는데 달그락 소리가 났다.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쪼그리고 앉아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나무, 옥으로 만들어진 칼손잡이들이 가득했다.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멈췄다.

방다병의 눈이 혼란스러움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단검을 하나 꺼냈다.
상자 가득한 칼손잡이와, 방다병이 든 목검의 손잡이는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 널 제자로 받아 줄게. 그리고 그 목검 다시 손봐줄게. 어때?

방다병의 목검이 툭- 상자 안으로 떨어졌다.
나무 칼날만 아니였다면, 그의 목검은 상자 안의 칼손잡이들과 전혀 구분 할 수 없었다.

“ 이게 왜.... 이 것들은 다 뭐야..? ”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 이상이... 이상이가 만들어준건데... 왜..... 똑같은..... 것들이.... ”
방다병이 상자 속 손잡이들을 꺼내 만지기 시작했다.
손잡이의 곡선, 조각된 무늬, 약간의 완성도 차이만 있을 뿐 그 옛날 이상이가 제게 주었던 목검과 똑같았다.
“ 이연화가..... 이상이야? 이게 말이 돼? ”

어린 시절 기억 속 이상이와 이연화의 외모는 달랐다.
그가 정말 이상이라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외모도 변하고 기억도 잃은걸까.
혼란스러움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던 눈에 갑자기 광채가 일기 시작했다. 까만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빛났다.
10년 전 끊어졌던 인연이 이어졌다.
방다병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엄청난 우연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였다.
방다병의 눈이 까맣게 가라앉았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가라앉은 눈과 삐뚜름하게 올리간 입매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는, 다시는, 그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연화는 아침부터 심유연에게 이끌려 저자 구경에 나섰다.
아침인데도 저자엔 북적북적 사람들이 가득했다.
“ 아침부터 사람이 꽤 많네요. 저녁 때되면 발 디딜 틈도 없는거 아니예요? ”
“ 아.. 날이 어두워 지면 사람들이 좀 줄어들거예요. ”
“ 왜요? 보통 이런 축제는 밤에 더 볼거리가 많지 않나요? ”
“ 이 중요한 걸 이야기 안했나보네요. 풍신은 자유로운 인연을 상징해요. 그래서 풍신 축제 기간에는 자유로운 관계를 가져도 괜찮다는게 이 축제의 불문율이에요. 그래서 축제가 끝나는 날까지 강 하류의 모량밭에서는 남녀가, 양인과 음인이 여러 일들을 벌인답니다. ”
심유연은 그닥 부끄러운 기색없이 말했다.
“ 저 어때요? ”
“ 네? 네? ”
이연화가 헛기침을 하며 심유연을 바라봤다. 그녀가 풋 웃음을 터트렸다.
“ 큰오라버니와 아버지의 일이 있고나서, 아버지는 몇날 며칠을 이 선생에 대해 말했었요. 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물은 또 어찌나 출중한지 속세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둥. ”
이연화가 한 번 더 헛기침을 했다.
“ 아버지께서 제게 잘 해보라 하셨어요. 이 선생을 사위로 맞이하고 싶으시다고요. ”
이연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저 어때요? ”
이연화가 멈춰서서 곤란한 얼굴을 했다.
“ 죄송합니다. 저는.. ”
“ 괜찮아요. 뭐 대충 봐도 제 순서는 오지 않을 것 같네요. ”
심유연이 호쾌한 웃음을 지었다.
멀리서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던 적비성의 귀에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이상이 주변에는 끊임없이 그를 마음에 두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연화가 되었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적비성의 험악한 얼굴에 그의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멀찍히 떨어져 걸었다.

세 사람이 저자 구경을 하는 동안 방다병은 연화루 2층에 있었다.
이연화의 방을 곳곳이 뒤졌다. 혹시라도 다른 단서들이나, 이연화가 숨긴 것들이 있나 찾아봤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이연화의 침상 위 베게를 만졌다. 보통 이런 곳에 특수 기관이 있기도 했지만 이연화의 배게는 보통의 베게였다. 손에 든 베게를 내려놓다 베게 냄새를 맡았다. 약초 냄새 섞인 이연화 냄새가 느껴지자 순식간에 음욕이 올랐다.

침상에 걸터앉아 하의를 살짝 내려 반쯤 발기한 양물을 잡았다.
베게에 얼굴을 쳐박고 냄새를 맡았다.
수십번도 넘게 복기했던 이연화와의 색사를 떠올렸다.
“ 이연화! 연화.. 이연화!! ”
양물을 거칠게 흔들었다. 이연화의 음문에 육봉을 쳐박고 흔들고 싶었다.
뜨겁고 미끌거리는 애액과 습하고 야한 냄새, 양물을 쥐어짜는 육벽과 이연화의 표정.
생각만으로도 양물을 힘줄이 두드러졌다.
윽-윽
짐승같은 목울림과 이연화의 이름을 비명처럼 질렀다.
파정 직전 베게를 반으로 접어 그 사이 양물을 끼우고 파정했다. 한참동안 거친숨을 몰아쉬었다. 베게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비릿한 씨물 냄새와 이연화의 냄새가 섞였다. 마치 함께 색사를 한 듯.

방다병은 매무새를 정리하고 베게를 침상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농도 진한 씨물이 아직 흡수되지 못한 채 베게에 고여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연화가 눈치채도 상관없었다.
약재 주머니를 들고 연화루를 나왔다.
평소와 같은 동그란 눈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약재를 들고 심부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연화루에 오래 머물러있었던 듯 했다.
약재 주머니를 이연화의 방에 두고 저자를 향했다. 이연화를 만날 생각에 들떠 걸음이 빨라졌다.
넓은 저자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방다병은 확신했다. 자신은 금방, 이연화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그리고 정말 바로 찾았다. 사탕을 파는 노점에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사탕을 고르고 있는 이연화를 발견했다.

바퀴의자에 앉아 의기소침 한 어린 방다병에게 이상이가 사탕을 입에 넣어줬었다.
- 달콤하지?
개화촌에서 이연화가 개화사탕을 방다병에게 입으로 밀어넣고 웃었었다.
-달죠?

방다병이 빠르게 뛰어갔다.
“ 이연화! ”
이연화가 돌아봤다. 싱긋 웃는 그 얼굴에 방다병은 벅차올랐다.
드디어 만났다.
내 사부, 내 첫사랑, 이연화.
방다병이 달려오자 이연화가 사탕을 하나 입에 넣어줬다.
“ 달지 ? ”
방다병이 눈이 안보이도록 웃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 달아! 아주 달아! 너무 좋아! 이연화! ”

이연화가 조금 멀찍히 떨어진 적비성에게도 다가갔다.
“ 박하 사탕인데 먹어볼래? ”
- 도화 사탕인데 드셔보실래요?
10여년 전, 지붕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웃던 이상이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적비성이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어 이연화가 건내는 사탕을 받아 입에 넣었다. 단맛이 온 입안에 퍼졋다.
“ 어때? 맛있지? ”
- 어때요? 맛있죠?
코끝이 따가웠다. 심장이 조이는 것 같았다.

사탕 주머니를 허리에 주렁주렁 단 이연화는 기분이 좋아졌다. 함주에는 그동안 먹어보지 못했던 여러가지 사탕들이 즐비했다.
사탕수수를 졸여러 만들었다는 흑탕과 과즙으로 만든 사탕, 박하로 만든 사탕까지 처음 맛보는 달콤함에 넋을 잃었다.

사탕 주머니를 흡족하게 바라보는 이연화에 심유연이 말을 꺼냈다.
“ 태평루에서 이 선생께 대접하고 싶다고 청해왔어요. 청룡의 숨결 만두 비법을 알려주신 분의 제자이니 제대로 대접하고 싶다고요. 어떠세요? ”
“ 그러실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가는게 도리겠죠? ”
네 사람은 태평루를 향했다.
이연화가 옆에 선 방다병에게 물었다.
“ 근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탁자에 올려뒀는데 못 찾았던거야? ”
“ 아- 잘못해서 약재가 다 쏟아졌어. 그래서 다시 하나하나 줍느라. ”
방다병이 대강 얼버무렸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적비성은 가게에 들어오지 않고 훌쩍 날아 지붕 위로 갔다.
주인은 어제보다 더 격렬하게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 조금은 얼떨떨했다.

청룡의 숨결 만두가 태평루에서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그 외에도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다며 권해 왔다.
주인은 입담이 좋았다. 풍신 축제 단골 소재 인 것 같은 신파 섞인 이야기부터, 풍신에 관련된 전설 등 쉴 틈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방다병도 이연화도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심유연 마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던 방다병은 이연화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이연화의 의자 쪽으로 종이를 떨어트리는 사람을 보았다.
방다병은 이연화에게 다가가 그가 쪽지를 보지 못하게 밟아서 옆으로 치우고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쪽지를 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쪽지를 읽었다.
이연화의 사부에 관해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였다.
술시(19시~21시)에 마을 북쪽의 큰 느티나무를 끼고 왼쪽으로 돌면 폐가가 있는데 그곳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였다.

이상이의 사부 칠목산이 실종된 것은 온 강호가 다 아는 사실이였다. 아마도 칠목산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일 터였다.
방다병은 고민에 빠졌다.
이 쪽지를 이연화에게 건내야할지 말아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만약 거짓 정보나 안 좋은 소식으로 속상해하는 이연화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아렸다.
그래서 방다병은 일단 혼자 만나보기로 했다.
좋은 소식이면 알려주고 나쁜 소식이라면 그냥 묻어버릴 생각이였다.
이연화가 조금이라도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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