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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23:10
회복될 때마다 그녀는 삶에 대해 서늘한 마음을 품게 되곤 했다. 원한이라고 부르기엔 연약하고, 원망이라고 부르기에는 얼마간 독한 마음이었다.

밤마다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에 입 맞춰주던 이가 다시 한번 그녀를 얼어붙은 집 밖으로 내쫓은 것 같은, 그 냉정한 속내를 한 번 더 뼈저리게 깨달은 것 같은 마음.


 그럴 때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녀 자신의 얼굴이라는 사실이 서먹서먹했다.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같은 죽음이 그 얼굴 뒤에 끈질기게 어른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은 무람없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은 그때마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버릴 테니까.

내가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돌이킬 수 없이 서늘하게 등을 돌릴 테니까. 그걸 나는 투명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새의 깃털처럼 머리가 하얗게 센 다음에 옛 애인을 만나고 싶다던 중년의 직장 상사를 그녀는 기억한다. 완전히 늙어서... 한 올도 남김없이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을 때, 그때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음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남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 있을 때.

한강 소설 <흰>, 백발, p.91

 젖을 떼고 쌀죽과 밥을 먹으며 성장하는 동안, 그리고 한 여자가 된 뒤에도, 여러 번의 위기를 겪었으나 그때마다 되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매번 그녀를 비껴갔다고, 또는 그녀가 매번 죽음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그 말이 그녀 몸속에 부적으로 새겨져 있으므로.
 그리하여 그녀가 나 대신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리만큼 친숙한, 자신의 삶과 죽음을 닮은 도시로.





셋 다 흰에 나오는데, 하나만 고를 수가 없음 ㅜㅜㅜㅜ
개인적으로 첫 번째 글은 그대의 차가운 손하고 맞닿은 글 같아 그 책 전체를 압축한 느낌이고 마지막은 노랑무늬 영원 같아서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