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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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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https://hygall.com/606719103



삶의 매 순간은 늘 선택이었다. 도망갈 것인가 남겨질 것인가.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짐승이 될 것인가 울버린이 될 것인가. 버릴 것인가 버려질 것인가. 이거 아니면 저거. 오! 이토록 간단한 반반의 확률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1아니면2인 깔끔한 선택지에서조차 로건 스스로의 의지로 택할 수 있는 순간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장렬하게 망쳐 버리는 재주를 가진 로건이 실패할 확률은 늘 100% 였기에 망할 인생이 이 지경까지 온건 온전히 그의 탓이었다. 그래서 쿨럭, 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또다시 한무더기의 피를 쏟아내는 뒷자석의 Mr.기회남을 살리기로 선택했을 때 로건은 이 선택만은 제발 망치지 않기를 빌어먹을 신에게 처음으로 빌었다.

축 늘어진 몸을 감싸 안고 로건은 절뚝 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구멍이 뚫린듯 하늘이 토해내는 물줄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꺼져가는 숨소리와 비례해 점점 짙어지는 죽음의 냄새가 로건을 허둥대게 만들었다. 뿌옇게 변해버린 시야에 욕설을 뱉으며 되는대로 소파에 남자를 눕히자 감겨있던 눈이 뜨이고, 텅 비어버린 눈동자가 로건을 응시했다.

눅눅한 비냄새와 섞여드는 비릿한 피냄새에 느껴지는 구역감. 잊을래야 잊혀지지않는 익숙한 죽음의 냄새. 예민한 후각으로 맡을 수 있는 처참한 실패의 냄새. 로건은 망설였다. 무엇을? 주춤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마지막을 고하는 텅 비어버린 눈과 시선이 마주했을때, 로건의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바들바들 떠는 손이 젖어버린 로건의 옷 소매를 힘껏 붙잡고 쉬어빠진 목소리로 "이제 끝내줘, 아버지"라고 말하며 진정 편안한 미소를 짓는 그 표정과 대면한 그 잠깐의 마주침에 로건은 그저 한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지었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억울함, 그리고 오기. 저와 똑 닮은 말라버린 눈동자에 비친 비로소 얻게 될 평화. 망할 신의 장난. 로건의 내면에 잠자고있던 이제는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반항심이 고개를 들었다. 적어도 제 눈 앞에서 그럴일은 없을 것이다.


젖은 옷을 벗기는 간단한 동작에도 남자는 고통스러워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순간조차 소리를 참으려는듯 이를 꽉 무는 모습에 쯧, 하고 혀를 찬 로건이 "그렇게 하면 이가 상해"라며 수건을 둘둘말아 입에 물려주었다. 능숙한 손길로 상처를 헤집어 총알을 빼내고 알콜을 들이부어 소독하는 일련의 과정과 어긋난 발목뼈를 맞추는 고통에도 그저 시뻘게진 눈으로 로건을 노려보던 남자는 결국 생살에 바늘을 찔러 넣어 상처를 꿰메는 냉정한 손길에 눈을 뒤집고 정신을 놓았다. 차라리 기절하는 편이 편할거라는 의미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로건은 원망을 담은 붉게 충혈된 눈을 떠올리고는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죄책감을 애써 눌렀다.


온 몸을 찢는 감각과 불타는 듯한 열기에 기시감을 느끼며 웨이드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낯익은 통증이 전신을 휘감고 저절로 떨려오는 입을 열어 웨이드는 애원했다. 끝내줘. 제발 죽여줘. 생리적으로 나오는 눈물이 얼굴을 따라 흐르고 그 물줄기에서조차 느껴지는 통각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입속으로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짜고 쓴 것을 악 물며 웨이드는 눈을 뜨려 노력했다. 그러다 억지로 벌려지는 입과 목구멍에 쑤셔지는 쓰디쓴 것을 억지로 삼키며 뭐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는 질긴 목숨이 아파 웃었다. 미안. 미안해. 내가 미안해. 멀어지는 정신 사이로 들리는 떨리는 음성. 생전 처음 받아보는 낯선 호의. 이마에 닿는 시원한 감촉과 계속해서 들려오는 물기어린 목소리. 신이여, 나를 울게 하소서. 흐려지는 의식에 몸을 맡기며 웨이드는 그래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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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고문인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웨이드의 입을 기어이 벌리게 만드는 억세고 다정한 손길에 눈을 깜박이며 웨이드는 생각했다. 생기를 잃은 눈동자에 비친 저의 얼굴은 이제 갓 죽음의 문턱을 넘은 용사의 몰골과 유사했다. 꽉 다문 입술은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피가 통하지않아 하얗게 질렸고 집중한 탓에 세로로 주름진 미간과 정돈된듯 정돈되지않은 야수같은 남자에게서는 차가운 다정함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되지않는 모순같은 사내. 마침내 찾아온 안식에서 억지로 끌어올려진 몸뚱이는 때에 맞춰 음식을, 약을 넣어달라 아우성이었다. 애초에 리무진으로 뛰어들어온 것은 웨이드 자신이었음에도 그저 눈앞의 남자에게 투정을 부리듯 지독한 삶으로 끌어들인 게 그인양 억지를 쓰는 웨이드를 참아내는 눈 앞의 남자를 보며 웨이드는 마음놓고 떼를 썼다. 당신 잘못이야. 나를 멋대로 끌어들인 당신 탓이야. 찌푸려진 미간, 미안함을 친절로 포장한 손길. 씨발, 엿같은 기분속에서 만족감이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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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견디는 얼굴은 온통 땀으로 가득했다. 시큼한 수컷의 냄새. 살아있는 생명의 냄새. 로건은 팔딱팔딱 뛰는 남자의 심장소리에 안심하는 자신을 느끼며 젖은 이마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아물어가는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면 찌릿한 통증에 남자는 흡하고 숨을 참다가 한번에 젖은 숨을 내뱉었다. 시퍼렇게 멍든 몸이 숨을 들이키면 단단해보이는 가슴이 부풀고 훅, 하고 로건의 귓가에 바람을 불며 뱉어내면 로건은 짜릿한 간지러움에 몸이 움츠려들곤 했다. 붕대를 감기위해 팔을 뻗어 그의 몸을 껴안듯 두르면 희미한 화약냄새와 함께 뜻모를 열감이 느껴져 이따금 로건의 목덜미도 벌겋게 물들곤했다. 그러면 웨이드는 그저 눈도 깜박이지않고 가까이 다가온 로건의 피부세포 하나하나까지 관찰하며 복실복실한 수염의 감촉을 피부로 느끼곤했다. 평온한 얼굴과는 다르게 긴장감이 담긴 콧김이 로건의 입술에 스치기도하고, 묘한 텐션에 땀에 젖은 손가락이 실수인듯 웨이드의 맨 어깨에 닿기라도하면 로건은 그저 입술을 깨물며 매끈한 감촉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애써 밀어내야했다. 실로 오랜만에 마주한 타인의 온기에 화상을 입지 않으려면 거리를 둬야 했음에도 너무 오랜시간 홀로 식어가던 약해빠진 몸뚱아리는 숨이 스치는 찰나의 순간을 갈망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의례적인 접촉에도 이따금씩 웨이드는 고간을 부풀리기도했다. 그럴때면 웨이드는 일부러 다리를 벌려대며 로건을 도발했고 그러면 로건은 그저 관심이 없는 척 피뭍은 거즈나 사용한 붕대 따위가 든 트레이를 든 채 서둘러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곤 했다. 긴장으로 굳어버린 어깨를 주무르며 식은땀에 젖은 얼굴을 닦고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척 하는 자신을 상대가 모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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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여기까지야'

자신의 옷을 입고 소파에 누워 한가롭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웨이드의 개구진 미소를 보며 로건은 얼굴을 구겼다. 바닥에는 구겨진 휴지들이 나뒹굴고 벗겨진 붕대나 거즈같은 것들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그 속에서 알고싶지 않은 타인의 정액냄새 같은 것들이 맡아졌다. 개새끼, 벌써 몇번째야. 저 새끼를 집에 들이는게 아니었는데 따위의 후회는 이미 늦었다. 무서운 얼굴로 기계처럼 수음의 흔적들을 치우는 로건을 보며 웨이드는 빙글빙글 웃기만했다. 무표정한 인형같은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며 일그러지는 그 짧은 순간을 볼때면 실패한 상처들을 주렁주렁 달고 제 사람 하나 - 심지어는 자신조차 - 지키지 못한 한심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에 웨이드는 그가 보여주는 경멸 혹은 혐오의 감정일지라도 짧은 그 순간을 마음껏 만끽했다. 뭐 어떤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하는 자기변명 따위를 하면서.

"어.. 로건 제임스 하울렛? 오늘 손님이 올건데.. 음.. 금방 끝낼께.. 사례는 충분히 하겠어"

짜증스런 눈빛이 순간 놀람으로 눈이 커졌다가 이내 빛을 잃고 죽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목도하면서 웨이드는 감사의 인사를 생략했다. 이 이상 깊이 얽혀들면 그도 자신도 이득될 건 없기에. 그저 약하게 미소 지으며 순순히 고개만 끄덕이는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웨이드는 그냥 눈을 감았다. 짧은 휴가도 잠깐의 일탈도 이걸로 끝이었다.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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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드 퍼킹 윈스턴 윌슨!!!! 이 멍청한 새끼!!!!!!"

울긋불긋한 흉터들을 달고 해맑게 "서프라이즈"를 외치는 웨이드를 보며 마이클은 주먹이 나가는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개새끼. 미친 새끼. 빌어먹을 새끼. 썩을 놈의 새끼.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그새 마른 몸에 엉망진창으로 망가져린 몰골로 불안한듯 미안한 웃음을 달고 있는 얼굴에 차마 나쁜 말이 나오지않아 그저 웨이드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마이클, 내가 여기 짱 박혀서 할 수 있는건 생각하는 것 뿐이라 머리를 굴려봤는데.. 아무래도 이번 타겟은.."

"맞아, 니가 아니라 나야. 뭐, 흔한 상황이잖아. 아래부터 쳐 내려가기"

"..."

"오, 그런 얼굴 할 거 없어. 너도 알잖아. 이럴거 모르고 옆에 있었던것도 아니고. 니가 망할 내 계획대로만 했어도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어. 이번 일에서 너한테 이만큼 데미지가 갈 일이 아니었..."

안녕, 좋은 아침 따위의 재미없는 인사를 전하듯 무심하게 내뱉는 말에 웨이드의 얼굴은 파래졌다 빨개졌다 다시 하얗게 질려갔다.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을 보며 로건은 알아선 안될 남자의 모습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남자는 온 몸에 가시를 세운채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그가 느끼고 있을 자기혐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닥쳐, 마이클. 한마디만 더 해"

"웨이드.. 우리 여러번 얘기했던 거야. 난 분명히 말했어. 니 기분이 엿같은 건 아는데 이런 상황에서 제 1순위는.."

기어이 물잔이 날아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모를수가 없는 잔인한 현실을 굳이 말로 뱉어내 온 몸을 베어버리는 망할 얼굴.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이제 좀 꺼져 씨발새끼야"

낮게 가라앉은 웨이드가 갈라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애타는 마이클이 무언가를 말하려 몸을 들썩이자 로건이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마이클이 떠난 집에는 적막만 맴돌았다. 부서진 유리 파편을 조용히 청소하는 로건이 움직이는 소리 속에 중간중간 숨을 참는 듯한 숨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양손에 얼굴을 파 묻은채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부서져 먼지가 되어버릴 듯 했다. 한없이 작아져버린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 집인양 당당하게 굴며 로건을 희롱하던 유쾌한 척 하던 남자의 본 모습을 봐 버렸다. 어찌해야 할까. 이제 더는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지 않았는데. 로건이 그대로 방을 나간다면 이대로 끝날 인연이 될 것이었다. 망설임 속에서 몸이 먼저 반응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복실복실한 머리에 가만히 손을 얹자 긴장한 듯 살짝 움츠리는 몸짓에 살살 손으로 쓸어주자 손에 감춰진 고개가 들렸다.

벌게진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공허한 눈동자에서는 자기혐오로 가득한 절망감을 읽을 수 있었다. 소리없이 오열하고 있는 이 어린 사내가 가여워 로건은 그의 얼굴을 품에 안았다. 지독한 삶이 그래도 언젠가는 끝날 날이 있노라. 버티고 버티다보면, 죽음이 다가와 너에게 달콤한 키스를 건넬 것이라 차마 말할 수없어 그저 동그란 뒤통수를 쓸었다. 막힌 소리와 함께 얼굴이 닿은 배가 축축해졌다. 그래, 조금 아팠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감정이 쌓여가는 건 어떻게 묘사해야할 지 감이 안잡힘... 웨이드 집에 데려와서 돌봐주는 기간이 하루가 아니라 n일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봐주라


덷풀로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