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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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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마법사를 찾으러 가자는 웨이드의 결정은 가히 그다운 생각이었다. 로건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어떤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즉흥적으로 내세운 계획이 현 상황을 타개할 조언을 얻기에 가장 유력한 방안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비록 그가 어:벤저스를 싫어했을 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다른 뮤턴트들과 접촉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알던 이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려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제 3자를 찾아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면 로건이 머뭇거릴 이유도 없었다. 

    두 사람이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에 젖었던 옷가지는 모두 말랐고 두 번을 추가로 주유한 탓에 지갑은 얄팍해졌다. 낮밤 없이 전조등에만 의지해 달린 다이너스티처럼 로건에게도 지표는 명쾌했지만 목적지는 불명료하다. 그런 로건 옆에서 옷이 말라 노곤노곤해진 웨이드가 머리통을 등ㅂ다이와 차 틀 사이에 끼우고 잘만 잔다. 

 

    그리고 이것은 이것은 당신들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이다. 모든 일은 바깥에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과 그 일을 맞닥뜨린 당사자들의 입장이 다르듯이 두 사람이 아직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웨이드의 말대로 노스 다코타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이미 일어났고 동시에 발생하지 않은 것이 되어 시간의 순차가 꼬여버렸다. 무한대로 수렴할 지언정 미래를 지향햇어야 할 시간의 흐름은 강제로 비가역성을 잃어 기계 속 컨베이어 벨트처럼 시간이 돌아갈 공간만 남긴 채 뫼비우스의 띠 모양으로 이들 앞에 길을 깔아준다. 하지만 굉장히 멀리서 지켜본다면 대칭되는 숫자와 같은 생김새를 한 폐곡선 역시 옆으로 뉘인 8자나 다를 바 없이 어느 한 시점에서 맞물린다. 그들은 그러한 변화를 겪는 변곡점에 또 한 번 서있다. 그렇게 이야기의 미래는, 소포클레스가 알고 있듯이, 늘 현재에 있다.*

 

    마주 다가오는 일출을 맞이하는 차 안으로 햇빛이 들이찬다. 물때가 되어 밀려들어오는 파도처럼 차오르는 햇빛 위로 먼지가 포말처럼 일렁인다. 버적한 먼지 냄새처럼 오로지 허공에 진하게 새겨진 글자로만 진의 목소리가 남는다. 돌아오지 말라는 건 무슨 의미였을까. 로건이 충혈되고 마른 눈을 깜빡였다. 거기에는 어떤 유지가 남았을 게 분명했다. 비록 꿈과 환영이었다고는 하나 진은 본디 강력한 텔레파시와 예지능력을 지닌 뮤턴트였다. 자신이 불멸성으로 인해 고통 받는 동안 진은 수차례 그가 봐야 했던 미래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 그런 진이 남겨준 문장에 아무 의미 없을리 만무했다. 고작 꿈에서 들은 한 줄기 목소리에 매달린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이 세상에서 거절 당한다 한대도 아직까지 로건에게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야 할 빚이 남았다. 사라진 목소리가 지나치게 생생했다. 

    고요한 도로를 달리는 내내 잠겼던 생각 옆으로 점차 다른 차들이 따라붙고 하이웨이를 모두 통과하고 나자 그가 알면서 알지 못하는 도시로 차가 진입한다. 서서히 속도를 낮춘 차량이 아침부터 바쁜 뉴욕 도시의 도로를 주행하자 기가 막힌 타이밍에 깨어난 웨이드가 늘어지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들과 천편일률적인 정장 차림 사이로 빛나는 가죽 트렌치 코트 차림과 베이글 가게에 아침을 사기 위해 선 줄들을 지나쳐 느려진 속도로 차가 달린다. 두 번째 목적지가 가까워진다. 

 

 

 

 

 

 

    “여기야, 여기.”

    로건이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어느새 그 옆에서 흉물스러운 빨간색 수트로 갈아입은 웨이드가 전날의 침울했던 모습은 어디로 던져버린 채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켰다.

 

    로건은 웨이드가 점찍어 준 건물 앞에 차를 세운다. 

 

    과연 비밀 속 베일에 꽁꽁 싸인 마법사라더니 뉴욕 한복판에 떡하니 세워진 수상한 건물 – 생텀 생토럼, 은 기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로건은 저도 모르게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놀라울 정도로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도심에 스며든 신묘한 건물에 무관심해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제 갈 길을 찾아가느라 걷기 바빴다. 그 새 옅은 침울함을 떨쳐낸 것처럼 보이는 웨이드가 로건의 팔뚝을 때렸다. 

 

    “생텀 생토럼…! 홀리몰리 과콰몰리 내가 진짜로 여기에 오다니. 이것 좀 봐. 굉장하지 않아? 세계관 통합의 결과물이 진짜 근사하지 않아? 이빨 요정을 내가 드디어 만난 거야.”

 

    심지어는 양손을 깍지 껴 경건하게 모은 웨이드의 눈이 반짝이는 듯 했다. 장시간 운전과 상념에 지친 로건은 그저 지끈거리는 뒷목을 매만졌다. 그런데 웨이드가 손을 내민다. 

 

    “뭐?”

    “지갑 줘 봐.”

    “왜?”

    아무리 힐링팩터가 있는 뮤턴트라 해도 장시간 운전은 마냥 쉬운 일은 아니라 로건의 퀭한 눈이 웨이드를 향한다.

 

    “잔말 말고 빨리 내놔봐.”

 

    그러더니 로건이 여전히 움직일 기미가 없자 웨이드가 불쑥 손을 로건의 엉덩이 쪽으로 디밀었다. 그는 엉덩이 아래에 깔린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채갔다. 어떻게든 그걸 끄집어내 연 웨이드가 실망스럽게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기왕 털 거면 좀 더 털어오지.” 툴툴거린 웨이드가 로건의 지갑을 닫더니 먼저 튀어내린다. 

    제지할 틈도 없이 뭘 하나 지켜보니 지갑을 팔랑거리며 달려간 웨이드가 블록 코너에 차려놓은 핫도그 가판대에 멈춘다. 비록 기가 찬 한숨을 뱉었으나 웨이드의 본능에 충실한 행동 덕분에 로건도 그제야 그 역시 허기졌음을 깨닫는다. 그러고 나니 그의 예민한 코가 다시 기능하며 멀리에서 풍기는 핫도그의 고소한 냄새를 맡는다. 

 

    로건이 차에서 기어나오자 피클 랠리쉬와 다진 양파 위로 머스타드와 케첩을 듬뿍 뿌린 핫도그를 들고 돌아온 웨이드가 그에게 한 개를 내밀었다. 로건이 받아들자 웨이드가 그의 뒷주머니에 지갑을 다시 쑤셔넣는다.

 

    “뭐 해? 안 먹고.”

 

    웨이드가 차에 몸을 기대어 핫도그를 크게 베어물었다.

 

    “있잖아, 여기서 네 존재가 지워지고 있다는 걸, 마법사가 순순히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그래도 다른 지구에서였긴 하지만 14000605 개의 가능성을 본 똑똑한 사람이니까 우리 둘이서 머리를 굴리는 것보단 낫겠지? 그런데 말야 참 이상하지 않아? 힐링팩터가 있어도 배가 고픈 건 해결이 안 돼. 잠이 오면 자야 하고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적당히 딸도 쳐 줘야 뇌가 돌아가고. 내가 저 쪽 골목에서 대충 해결하고 오는 동안 네가 망 봐줄래?”

    “너는 꼭 먹으면서도 그런 얘기를 하고 싶냐?”

 

    로건의 핀잔을 개의치 않아 하며 웨이드가 잇는다.

 

    “나는 이 유전자적 베놈 백혈구랑 같이 살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질렸어. 이게 아녔다면 너도 여기에 올 필요 없었을 텐데.”

    보기와 다르게 얄팍한 핫도그는 몇 입에 금세 사라진다. 

 

    방금 웨이드 입에서 나온 말에 로건은 조금 화가 났지만 어느 지점에서 그가 화를 내야 하는 지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웨이드는 계속 입을 놀렸다.

 

    “그니까 이게 요즘 애들한테 문제라는 그 도파민 중독같은 걸까? 숏폼 중독자처럼 자극이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거야.”

 

    웨이드는 눈 모양같은 비샨티 문양 창문이 달린, 여러 세기의 건축 양식이 합쳐졌지만 결국엔 빅토리안 양식으로 귀결되는 건물을 멀거니 올려봤다. 그는 여러모로 너무 솔직했고 역시나 그건 로건을 불편하게 했다.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 이 힘은 별로 만능이 아닌 것 같아. 차라리 마법사가 되게 해달라고 산타 할아버지한테 빌 걸.”

 

    웨이드가 머스터드 묻은 입가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자 로건이 고개를 저었다. 그 때 기가 막히게 그들이 저녁이자 아침 식사를 마쳤다는 걸 안다는 듯 자동문처럼 생텀 생토럼의 대문이 열린다. 

 

    “아무래도 들어오라는 것 같지?”

 

    전봇대 옆 쓰레기통에 핫도그를 감싼 종이를 구겨넣은 웨이드가 문을 가리켰다.

 

    “그런 것 같군.”

    “자, 그럼 지금부터 이 데드풀이 멋진 말솜씨로 마법사를 꼬시는 걸 잘 봐두도록 해.”

   

     웨이드가 빨간 마스크를 뒤집어 썼다. 

 

    그는 카페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태연자약하게 마법사의 소굴로 앞선다. 우득거리며 목을 양옆으로 꺾은 로건이 그의 뒤를 따랐다.

 

 

 

 

 

 

    건물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로 들어갔을 때 훨씬 더 큰 것 같았다. 눈이 쉴 틈 없이 바닥을 빼곡하게 메운 어지러운 주황색과 갈색 문양의 대리석과 로비 한가운데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유선형 계단과 여기저기 한가득 쌓인 모래에 정신이 빠져있는 사이에 둘의 뒤로 정문이 중후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반사적으로 클로를 내보인 로건이 뒤를 돌았다. 

    

    “진정하지?”

 

    오리엔탈 느낌의 짙은 남색 도복같은 옷 위로 빨간 망토를 두른 사내가 나타났다. 

 

    “그래 이 사람이야! 이 사람이 내가 말한 마법사야!”

 

    비록 촐랑거리긴 했지만 아까의 결의의 찬 모습을 또 개나 줘버린 웨이드가 비명을 질렀다. 

 

    “땅콩아 생각나? 지난 번에 카산드라가 마블 반짝이를 만들어서 우리를 원래 시간선으로 보내줬잖아. 그게 이 사람의 반지였다고! 휴, 당신도 다른 유니버스의 카산드라에게 당하지 않게 조심하도록 해. 이미 그가 당신 중 하나는 스틱스 강을 건너게 했어.”

    “무슨 소리인지 당최 모르겠군.”

 

    하지만 우습게도 여태껏 그랬듯이 웨이드의 헛소리는 이상하게 긴장감을 풀어주는 기능을 한다. 로건은 클로를 다시 집어넣었다. 

 

    “고맙네. 난 내 집에 흠집이 나는 걸 정말 싫어하거든. 지금까지 왔던 손님들이 모두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아직도 수습 중이야.”

 

    로건이 계단 난간 키만큼 쌓인 모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런 거 말인가?”

    “그래. 툭하면 말썽꾸러기 손님들이 의뢰를 하러 오거든. 여기가 법률 상담소도 아닌데 말이지. 집안 꼴이 이래서 미안하군. 손님을 받기엔 영 형편 없어.”

 

    마법사가 손가락을 휘두르자 어디에서 날아온 빗자루가 눈에 띄는 모래를 삭삭 쓸어간다. “판타지아!” 경쾌한 비명을 지른 웨이드가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머저리처럼 구는 웨이드를 노려 본 로건이 모래 바람에 기침을 했다. 

 

    “대박이다. 디즈니랜드같아. 여기 오길 진짜 잘 한 것 같지?”

    “우리가 마술쇼나 보러 온 건 아니잖아 웨이드. 이봐, 이런 쇼는 필요 없어.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올 걸 예상했나 본데,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두 사람이 전혀 상반된 태도로 굴자 스티븐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역시 위대한 쇼맨은 다 죽었군.”웨이드가 로건을 째려봤다.

    마법사가 다시 손을 휘두르자 빗자루가 제자리에 털썩 쓰러진다. 

 

    “그래. 나도 두 사람을 지켜봤어. 뉴욕 한복판에서 어쩐지 우리 지구에서 열린 것 같지 않은 이상한 포털의 기운이 느껴지길래 이 눈을 통해서 지켜봤지.”

    양손의 검지와 엄지로 마름모꼴을 만들며 스티븐이 가슴팍의 눈 목걸이를 가리켰다. 

 

    “아가모토의 눈…!” 거의 녹아내릴 지경으로 홀린 목소리가 된 웨이드가 말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대화가 빠르겠군.”

 

    웨이드를 무시하며 로건이 스티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마법사는 망토를 펄럭이며 뒤돌아 로비 구석에 있던 가죽 소파에 가서 앉는다. 그가 몇 번 손짓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테이블 위로 찻주전자와 찻잔이 차려진다. 태연자약하게 따뜻한 차를 찻잔에 따른 마법사가 눈썹을 들썩인다. 

 

    “차라도 마실래?”

    “여기에서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날 도와줘.”

 

    이번에 로건은 그가 가장 재주가 없는 것 중 하나인 부탁이란 걸 해야만 했다. 

 

    “차는 별로인가 보네.” 하지만 마법사는 들은 체도 안 하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성질 급하게 로건의 클로가 티 테이블에 꽂히고 나서야 스티븐이 그를 본다.

 

    “내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하지?”

 

    스티븐은 차를 홀짝이더니 은색 클로 옆으로 찻잔을 내려놨다.

 

    “로건, 당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당신은 이 우주의 위험 요소야. 이미 당신의 도플갱어가 이 우주의 미래에서 죽어버린 사건 때문에 이 우주는 흔적도 없이 소멸될 뻔 했지. 내 입장에선 당신도 진 그레이나 아포칼립스나 다름 없는 우주적 적대 대상이야. 이 지구를 지켜야 하는 내 입장에선, 그래, 냉정하게 말하자면 당신에게 다른 우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라져주는 게 차라리 원만한 해결책이었어. 그런데 내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지?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우주적 문제가 사라질 텐데?”

 

    불시에 튀어나온 진의 이름에 로건이 이빨을 갈았다. 

    “그 이름은 그런 식으로 불려도 될 이름이 아니야.”

 

    마법사와 뮤턴트의 적대적인 시선이 오간다. 그러자 언제 다가온 건지 뻔뻔스레 둘 사이를 갈라놓으며 웨이드가 스티븐 앞 소파에 앉는다. 

 

    “이미 그 문제는 해결하고 왔어, 셜록.”

 

    그가 두 사람의 대화를 채간다.

 

    “그리고 이 우주는 우리가 지켜냈으니 그런 걱정은 집어쳐. 자 이제 눈 앞의 메시아에게 감사하도록 해.”

    웨이드는 다른 몫의 찻잔을 가져가 꼬아둔 무릎 위에 올린다.

 

    “그리고 로건은 여기 있어도 된다는 TVA의 허락을 받았어. 그러지 않고서야 보이드에 있던 다른 놈들을 제 우주로 돌려보낼 때 강제로라도 로건도 같이 보냈겠지.”

    그가 마스크를 올려 차를 마셨다.

 

    “글쎄? 그렇게 단순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거였다면 눈 앞에 있는 이 뮤턴트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었을까?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TVA는 시간이 망가질 때만 개입하지. 그리고 이 시간선은 너로 인해 너무 많이 꼬여버렸어. 네 친구의 존재가 지워진 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야. 이미 결정된 일은 결정된 거고 규칙을 어기면 우리 모두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어.”

    “규칙? 와, 대법관 스트레인지, 대단하네. 이미 다른 지구, 그러니까 지구 – 199999의 당신은 이미 크게 시간을 망가뜨렸어. 멕시코산 꼬마랑 함께 아직 여기까진 안 와서 몰랐나 본데?”

 

    웨이드가 화를 내며 찻잔을 휙 던졌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졌다. 

 

    “아끼던 건데.” 

 

    “이제 내 집에서 나가줘야겠어.” 노여운 표정을 지은 스티븐이 손을 들어 그들을 내쫓기 위한 주문을 영창하려 하자 이번에는 로건이 재빨리 클로를 뽑고 물었다. 

 

    “잠깐만. 결정된 일이라고?”

 

    설명을 더 요구하는 그의 질문을 측은하게 여긴 스티븐이 귀찮다는 얼굴로 설명해준다.

 

    “그래 로건. 당신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당신을 돕는 건 시간과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야. 결정론이라는 걸 아나? 인과관계라는 건 우리의 의지대로 되지 않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는 얘기지. 그리고 그걸 만드는 게 TVA야. 당신이 사라지고 있다면 그것 역시 결정된 일이라는 게 돼. 그들이 당신을 지운 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해결책은 쉽게 나오지 않아. 당신은 돌아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돌아가는 게 나았어.”

 

    “하지만 진은 돌아오지 말라고 했어.”

    시선이 갈피를 잃은 로건이 중얼거렸다. 

 

    “그렇기에 어떤 일들은 정해져 있어. 앞으로의 일들이 벌어지기 위한 마땅한 개연성을 제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행되지. 당신이 여기에 남게 된 건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내정되어 있거나 다른 의미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애석하게도 현 상황으로선 후자에 가까워 보이는 것 같지만.”

 

 

    “하지만 다른 세계의 당신은 140000605 개의 미래를 봤잖아!”

    웨이드가 이 장황설에 반박한다. 스티븐은 미간이 깊게 패이도록 눈살을 찌푸렸다.

 

    “결정된 미래가 있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미래를 봤을 수가 있어?”

    “그것 역시 결정된 거야. 나라는 존재에게 결정된 최다 선지 안에서 하나를 볼 수 있었던 것 뿐이지.”

    “그것 참 궤변이네. 그 정도로 많은 선택지를 준다면 그걸 결정된 미래라 할 수 있어?”

    “이봐 헛똑똑이, 네 말대로 정해진 미래들이 없었다면 다른 지구의 내가 미래를 읽는 게 가당키나 했을까? 그걸 볼 수 있도록 결정해주는 것 또한 TVA의 몫이야. 때문에 이 지구에서 네 친구가 사라지는 것 역시 이 시간선의 개연성을 재정립하기 위해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일이었던 거고.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하군.”

 

    그렇게 말한 마법사가 등을 돌렸다. 하지만 제가 한 말을 곱씹어 본 스티븐은 곧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은 채 웨이드를 돌아본다. 

 

    “… 그런데 예지능력도 없는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신경질적으로 눈썹을 움찔거린 스티븐이 웨이드를 가리킨다. 

 

    “뭘 말이야?”

     대화의 맥락과 전혀 어긋난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뜬 웨이드가 되물었다. 

 

    “가진 거라곤 재생 가능한 능력밖에 없는 네가 ‘어떻게 다른 우주의 나’를 알았냐고.”

 
    마법사는 서슬 퍼런 눈빛을 의아해 한 웨이드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마법사의 질문에 로건 역시 웨이드를 쳐다 본다. 그러고 보니 웨이드가 어떻게 다른 우주에서 일어난 일을 알았는 지 이상했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스티븐의 말대로 별다른 초능력이 없는 웨이드가 다른 지구에서 일어난 일을 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정작 웨이드는 이게 사소한 일이라는 것처럼 가볍게 손벽을 짝짝 친다. 

 

    “그게 중요한 일이야? 지금 우리 앞에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자 주변이 환기된 것처럼 금세 마법사의 질문이 흐릿해진다.

 

    “그래! 개연성!”

 

    요란을 떨며 웨이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티 테이블에 박은 무릎을 잠깐 움켜쥐고 끙끙거렸다. 

 

    “그러니까 그 거지같은 개연성이라는 거 만들어주면 되잖아. (파이기가 만든 완벽한 스토리에 의구심을 품는 바람에 왜 이런 식으로 완벽한 영화를 망쳐야만 하는 지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뭔진 몰라도 TVA로 가서 문제를 확인하고! 그러고 개연성을 세우면 되지.”

 

    마법사가 허탈한 한숨을 탁 뱉었다.

 

    “참 단순하네.”스티븐이 냉소적으로 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당신이 말했지? 필연적인 만남이 있다고. 만일 정말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 오게 된 게 TVA로 가기 위한 필연이라면?”

 

    스티븐이 피곤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니까.”

 

    그러자 웨이드가 스트레인지 앞으로 합장한 손을 내밀었다. 

    “제발. 당신과 내가 있는 이 세계도 여기 이 옆의 유기 오소리가 도와준 덕분에 지켜낼 수 있었던 거야. 그런데 나는 이 로건의 세상은 결국 돌려줄 수 없었다고. 그런데 유기 동물이 다시 보호소로 가는 꼴을 봐야겠어? 당신은 도와줄 수 있잖아.”

 

    그 우스꽝스러운 부탁이 이상할 정도로 간곡하다. 적어도 로건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마치 오딧세이에서 폴라로이드 한 장을 들이밀고 부탁하던 진심의 일부처럼 다급했다. 그 때는 듣기 싫었던 목소리가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 그를 위해 간절하게 로건을 대변한다. 로건은 어쩐지 누가 심장을 움켜쥐는 것 같은 기분을 받으며 웨이드를 본다. 

 

    그리고 그건 로건에게만 통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마법사는 피곤하게 눈을 감았다 뜬다. 두 사람 모두 마법사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만 기다렸다. 

 

     스티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말하지만 그곳의 기록을 건드리는 건 좋지 않아.” 

 

    웨이드가 기쁘게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가 로건의 어깨에 매달렸다. 웨이드의 이런 접촉에 별 개의치 않게 된 로건은 그게 매달리게 내버려 두다가 도통 떨어지질 않자 어깨를 털어 떨쳐냈다. 

 

    “고마워.”

    로건이 재빨리 감사를 표했다. 

 

    “어지간하면 그들과 접촉하지 말고 알아내려던 정보만 확인하고 돌아와. 돌아오는 길은 내가 도와줄 수 없으니 알아서 하고.
    “걱정 마.”

 

    웨이드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가 허공에 두 손가락을 내밀고 다른 손으로는 원을 그렸다. 점점 원이 커지고 금방 포털이 열리려 하자 웨이드가 마침 떠올랐단 듯 소리 쳤다. 

 

    “잠깐! 잠깐만!”

    “또 왜?”

    영창을 방해 받은 마법사가 목소리를 높여 짜증스럽게 물었다.

 

    “이것도 고쳐줘.”

 

    그건 또 언제 가져와 어디에 숨기고 있었는 지 웨이드가 기다란 노란색 천을 꺼내 들었다. 그건 바지만 남은 로건의 엑스맨 수트였다. “정말이지 뻔뻔스럽기 그지 없군.” 마법사가 짜증을 냈다. 그래도 한결같이 히죽거리는 웨이드를 노려보다가 친절하게도 고쳐주었다. 이번에는 마법사를 꼬시겠다는 웨이드의 호언장담을 로건이 인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자, 됐지?” 스티븐은 순식간에 노란 수트를 원복해주었다. 자신보다 더 신나한 웨이드가 수트를 소중하게 꼭 끌어안는다. 

 

    “이젠 정말로 생텀 생토럼에서 사라지도록 해.”

    마법사가 포털의 문을 다시 연다.

 

    축제의 불꽃놀이처럼 원의 가장자리가 파직거렸고 하얗던 가운데가 점점 캐비넷이 잔뜩 보이는 어떤 공간을 비춘다. 그들이 다른 세계로 건너가려 하는 등 뒤로 스티븐이 부른다.

 

    “로건!” 

 

    두 사람이 건너가기에 적절한 크기가 되기를 기다리던 문 앞에서 로건이 그를 부른 마법사를 돌아본다. 

 

    “시간은 거꾸로 갈 수 있는 게 아니야. 자네에게 주어진 일들을 모두 완수하기를 바라지.”

 

    로건은 별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묵묵히 끄덕인 시야 사이로 자신보다 먼저 팔랑거리며 웨이드가 들고 넘어간 수트가 흔들린다. 시공의 문 앞에서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인 로건이 경계를 넘어간다. 











* <결혼식 가는 길 - 존 버거>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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