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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8 00:03
-난 자기만으로 충분해.

허니가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손에는 한줄만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를 들고서.


-아이들은 인질로 잡히기도 쉬우니까.

허니가 입술이 하얘지도록 꽉 물었다.
실언이었다.
난 그냥 허니가 비임신이라는 결과에 실망해서 위로하려고 했던 말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이언맨의 인질로 매일 잡힐테니 귀찮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사실 그렇지 않나.
적들은 히어로들의 약점을 노릴테고, 나에게 그 약점은 허니와 아이가 될테니.
어느정도 진심이 들어간 말이었기에 나는 그녀를 위로할 달콤한 말을 찾지 못했었던 것 같다.

무언은 곧 긍정이었다.
결국 허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곧 귀찮아지겠네요. 벌써 몇번이나 잡혀갔었고 그때마다 토니가 구하러 왔었으니까.

-그럴리가 없잖아.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다.

-이렇게 별볼일 없어서 미안하네요, 만약 언젠가 내가 또 인질로 잡힌다면 구하러 오지 않아도 이젠 이해할게요.

-그만.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요즘 왜이렇게 감정적으로 변했어?

혼자 우는 허니를 버려두고 작업실로 내려갔다.

예전에는 분명 울고 웃는 일도 피곤하다고, 매사 무덤덤했던 그녀가 우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긴 했지만 나 또한 심신이 지쳤던 상황이라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

아니지, 이것도 결국은 다 핑계다.



토니는 멍하니 무너지는 건물을 지켜보며 예전 일을 회상했다.
아기용품 회사 브랜드의 간판이 건물 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다가 지면으로 추락했다.

이것도 다 화풀이였다.
이런 행동도 다 부질없는 짓인줄 안다.


앉아있던 자리 뒤편에서 인기척이 감지되었다.
홀로 나를 찾아온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런데 우리가 단둘이 만나기에는 조금 불편한 관계가 아니었던가?

버키는 의외로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만해. 결국 더 힘들어질 뿐이야.
얼마나 더 죄책감을 떠안을 생각이야.

-겨우 도시 몇개 마비 시킨걸로 죄책감을 느낄거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어.

-시민들은 아무런 죄가 없어.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나중에 후회할 행동은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멈춰.

-허니는 죄가 있어서 죽었나?
그렇게 장례도 치루지 못할정도로 몸이 폭탄에 다 터져버려서..

갈갈이 찢겨져버려서.
토니는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시 울컥 치솟으려는 분노와 슬픔에 두 눈이 붉어졌다.


-죽고 싶지 않으면 네 동료들 다 데리고 와야할 걸.

-스티브는 이런 너에게 방패를 들 수 없어.

-이런 내가 뭔지 모르겠군. 예전엔 둘이서 그렇게 나를 죽도록 팼으면서 말이야. 이제와서 상대하지 못하겠다니, 캡도 참 위선적이야, 안그래?

그리고 윈터솔져 너도,
내 화풀이 대상으로는 안성맞춤 아닌가?


..몇십년 지났다고 그새 잊은 건 아니겠지?

위험을 감지한 버키가 뒤늦게 총을 들었지만 신형 수트가 더 빨랐다.


-네가 죽는다면 캡도 내게 방패를 날리겠지.
미국의 문양이 그려진 그 방패에 내 피를 묻히고 싶어 할거야.

목을 졸린 그가 메탈암으로 밀어내려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목과 얼굴 전체가 타오르듯 붉어졌다.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정말 죽여버렸을 수도 있었다.
아무생각 없었지만, 갑자기 허니가 떠올라서.



-어머, 저 친구 눈이 너무 예쁘다

기지 내에서 버키를 본 허니가 아무도 모르게 그의 귓가에 살짝 속삭였다.

-그만 좀 쳐다보지 그래?

-내가 아시안이라 그런가, 저렇게 예쁜 파란 눈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저 분은 이름이 뭐랬죠?

-프리티 윈터 솔져.

-농담하지 말구요.

-진짜야, 버키 엘사 반즈라고 해.

그제서야 버키에게서 눈을 뗀 허니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질투하시는 거에요?

-미안하네, 난 누구처럼 예쁜 벽안이 아니라서.
예쁘장한 남자가 취향인지 몰랐네.

-질투 맞네.

-내가 소개시켜줘?

-진짜요?

빈정거린 말인데 아주 눈이 반짝거리는구나.



그 반짝이던 두 눈이 생각나서.
토니는 죄고 있던 그 목을 풀었다.
버키가 겨우 숨을 토해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널 죽이려면 그 두 눈부터 뽑아버려야겠네.
조심해, 다음에 만나면 그 눈알부터 노릴테니까.




눈물로 밤을 지샜다.
둘이 누워도 침대가 넓어서 좋다고 웃던 그녀가 또 생각나서.
잠들 수가 없어서 토니는 늘 눕던 자리가 아닌 허니의 자리로 몸을 옮겼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까지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침대 옆에 있던 허니의 사이드테이블 서랍을 괜히 열어보았다.

그러다 발견한게 하늘색 리본 하나가 붙어있는 하얀 선물상자.
열어보니 케이스와 똑같은 새하얀 색에 하늘색 리본이 달린 아기 덧신.
손바닥 하나에 덧신을 올려봤다.
정말 작구나. 제법 귀엽네.

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뻐했을까, 아니면 나를 떠올리면서 시무룩했을까.
같이 갔으면 좋았을텐데.



재생다운로드IMG_1815.gif

그래서 오늘 그 건물을 무너뜨렸다.
다 화풀이였다.
이런 행동이 다 부질없는 짓인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