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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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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모를 보니 이 잿빛 도시에도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아니, 다만 내 심장이 나대는 걸지도.




허니 비는 이틀째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 도심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는 검은 옷의 남자를 나무 뒤에 숨어서 몰래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허니에게 남자가 같이 걷지 않겠냐며 다가왔을때, 허니는 예전처럼 뒷걸음질쳐 도망가는 대신에 자신의 남은 운을 모두 걸어보기로 했다.


...
이제는 사랑에도 조심스럽게 되네요.
아마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거겠죠.


어느 날 산책 중에 허니가 그 남자, 헤이든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나는 커피를 들고 낙엽 쌓인 길을 걷고 있었다.



처음 제 병에 대해서 알았을 때는요.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현실에 대한 감각을 모두 잃은 것 마냥. 만사가 다 허무하고, 무기력하고 신기루로 된 세상에 사는 것 같았죠.


눈 한번 감으면 다 사라질 세상,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지.



헤이든이 허니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단풍나무 뒤에서 용기를 내게
된 거지?


글쎄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음, 하루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얇은 눈꺼풀 한장 덮어서 끝날 세상이면, 반대로 들어올릴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 힘으로 좀 더 살아보자고.


아, 어쩌면 당신을 만나서 그런 생각이 든 건지도 몰라요.


이토록 짧은 생이라면, 고통도 잠깐이고 미움은 아주 잠시뿐, 그리고 사랑도 찰나이겠지요.

그 만큼의 용기라면 낼 수 있어요.

사실 저에겐 온 삶을 다한 것이지만요.



허니와 헤이든은 한적한 강가의 벤치에 앉았다.

허니가 헤이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삶이 이어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해봤나?


네, 조금요.


새로운 기회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하죠. 내일 아침 새로운 곳에서 눈을 뜬다던가 하는 상상...



강바람이 불어오자 헤이든이 허니에게 스카프를 둘러준다. 그와 말을 나누고 같이 걷다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다.

바쁜 현실에서 잠깐 누리는 여유와 다른, 더 깊고 평온한 안정감. 허니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당신은 심리상담가인가요? 아니면 치료사?



음, 승무원 비슷한 일을 해.



와, 전 늘 승무원이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평안함을 지켜주는 일이잖아요.


낯선 지역으로 처음 떠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떨릴까요? 매일 다니는 통근길이라도 다들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함이 있을거예요. 내가 다룰 수 없는 운송수단에 몸을 싣고 경계를 넘는 일이니까요.


헤이든씨라면 그들을 다정하게 챙겨주실 것 같아요. 안심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고요.


출발부터 도착까지 안전한 여정이 될 수 있게 항상 기도해주시는 거죠?



그래. 어쩌면 너도 이 일에 어울릴지도 모르지.



헤이든이 허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감싸안는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당신과 함께 매일 여행을 떠나고... 아무것도 걱정할 건 없겠죠?



허니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리고 그의 곱슬머리와 잘생긴 옆모습을 올려다본다.

허니는 오늘 일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벌써 흐릿해지는 것 같다. 허니는 울고 싶지만 울지 않기로 한다.


헤이든이 허니의 볼을 감싸고 눈을 맞춘다.



걱정할 건 없어요. 모든 여정이 순리대로 착착 진행될 겁니다.





.....


병원에서 의사의 나지막하고 정중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허니 비, 일어나!
지금 안 일어나면 늦을걸.


경쾌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같은 부서 선배이자 룸메가 날 깨웠다.

재빨리 출근 준비를 마치고 오전 브리핑에 참석하러 가야한다.

셔틀버스 안에서 선배가 눈을 빛내며 묻는다.


근데 넌 들어온지 얼마 안 됐잖아. 혹시 전생의 일 기억나는 거 있어?



나는 며칠 전 꾼 꿈 같기도 한, 머릿속에서 아지랑이처럼 돌아다니는 기억의 파편들을 이어 보려고 애쓴다.



흐음, 전생의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자세한 건 기억나진 않는데 그 감정이랄까...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느낌 정도?


와, 간혹 전생을 기억하는 타입이 있거든.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중에 뭔가 생각나면 알려줘.



선배는 눈을 찡긋하며 다른 게이트로 사라졌다.



나도 내 짐과 서류 파일을 들고 게이트로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 상사인 헤이든이 서 있다. 왠지 그를 보면 그리운 기분이 든다.

전생에서 알던 사람을 닮아서일까?



탑승구의 문이 닫힌다.


나는 검은 창문에 비친 그가 미소짓는 모습을 본다. 나도 따라서 미소지어 본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와 같이 여유로운 태도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선배의 기대와 달리 내 전생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선배도 나도 조금은 아쉬워했지만.


나는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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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 저승사자 헤이든씨와 신입 너붕붕이 보고싶다


헤이든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