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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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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간격이 왜저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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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을 마치고 온 루디가 제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한 직원이 귀띔했음. 점심 배달 왔어요. 그녀의 말대로 언뜻 보이는 자신의 책상 위엔 쇼핑백이 놓여있었음. 루디는 잠시 곤란한 표정으로 눈썹께를 문지르다가, 고개를 끄덕였음. 네. 맛점. 

고민하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루디가 결국 쇼핑백을 뜯었음. 그 안엔 여전히 따끈한 파스타와, 음료와, 루디가 좋아하는 디저트가 들어 있었음. 각각 다른 곳에서 사 온 것이 분명한 메뉴들을 바라보는 루디는, 정말이지 곤란한 기분이 들었음. 



[먹으면서 일해요.]
[브렛이에요.]



그래. 브렛으로부터 온 점심 도시락도 벌써 일주일째였지. 보내는 메시지 끝마다 자신임을 알리는 것 또한 일주일째였음. 그렇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지. 그에게 매일 같이, 비슷한 시간대에, 꽤나 자상한 문자를 받는 일 말이야. 쉽사리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오래도록 화면을 응시하던 루디는 결국 핸드폰을 내려놨음. 가슴께가 답답해졌지. 

도련님, 자존심 깨나 상했나봐. 



- .........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루디는 그날 본 브렛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음. 혼란스러워 보이는 표정. 길을 잃은 어린애 같은 얼굴. 



- .............



그건, 꾸며낼 수 없는 감정. 

루디는 다만 이해가 안 갔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그런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었지. 옛 감정이 남아있다기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잖아. 게다가 즐겁고 행복한 추억만 있는 것도 아닌걸. 마지막 이별 과정은 또 어땠고. 울면서 매달리는 애를 내가 그때 얼마나 모질게 떼어놨는데. 시간이 지나도 미화되기 힘든 기억이었지. 그 영리한 브렛이 그걸 잊었으리라 생각하진 않아. 

그리고 또... 브렛은 다른 사람들을 마음에 담기도 했지.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브렛이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다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들이었음. 이를 테면 브렛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비슷한 나이대의, 푸른 유리구슬 같은 눈을 가진 사람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일종의 패배감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기도 해. 루디가 평생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 상처가 되기도 했지. 루디를 거쳐 그런 브렛의 취향이 완성된 것 같아서. 하지만 루디는 동시에 안도했지. 쟤가 그래도 현실에 발 붙이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드디어 평범의 범주에 속한 것 같아서. 루디는 브렛이 잘살길, 진심으로 바랬으니까. 그리고 잘 사는 브렛을 보고 저도 나아가고 싶어졌으니까. 



- ........... 



그런데 어째서. 



-. ...........



...두 번은 안돼. 스스로에게 되뇐 루디는 조금 슬퍼졌음 .



"왜 살이 더 내린 것 같지? 내가 잘 먹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브렛을 다시 마주했을 땐 조금 더 아연해졌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로비에 장승처럼 서 있는 브렛. 네이비 색의 캐주얼 정장을 입고 있는 브렛은 저번처럼 골이 난 표정은 아니었음. 다가오는 루디를 확인한 브렛은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기도 했지.

이번엔 루디에게도 먼저 귀띔을 해주기도 했음. 나 로빈데 나올 수 있어요? 아니면 말고. 그래서 지금. 루디는 브렛의 인사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제 뺨을 천천히 문지르다가 처음으로 음성으로 고마움을 전했음. 잘 먹었어. 고마워. 루디는 잠시 망설이다 한마디 덧붙였음. 근데 앞으론 보내지 마. 



- 오늘 내 말동무 해줄 수 있어요?
- 뭐?



루디의 말을 기어코 못 들은 척한 브렛은 웬 엉뚱한 말이나 했음. 루디가 브렛을 물끄러미 쳐다보면, 브렛은 루디의 대답을 재촉하듯 눈썹만 들어 올렸음. 그럼에도 루디는 여전히 찬찬히 브렛의 얼굴을 쳐다봤음. 뭐라도 찾는 듯 집요하게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루디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음.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다행히 브렛 얼굴에서 슬픔이라던가 분노라던가 그런 감정을 찾아내진 못했지. 그런 루디를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브렛은 은근슬쩍 한 번 더 채근했음.



- 걱정 마요. 오래 안 붙잡고 있어요.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졌던 루디는, 머리칼을 한번 쓸어올리고는 말했음. 



- 잘됐네. 
- 뭐가요? 
- 길지 않은 말이면 여기서 짧게 하자. 



브렛은 루디의 분명한 거절에 콧잔등을 찡긋했다가, 이내 피식 웃었음. 



- ...왜? 
- 그냥. 예상에 안 벗어난다 싶어서요. 
- 뭘 예상했는데. 
- 날 반기지 않을 거라는 거? 



정곡이 찔린 듯 말문이 막힌 루디를 아는지 모르는지, 브렛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였음. 뭐가 웃긴지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으며 브렛은 제 턱을 매만지다가, 양 손바닥을 보이며 양보하는 말투로 말을 이었음. 



- 알겠어요. 일 얘기해요. 
- 일? 
- 프로듀서님 영화 얘기는 아니긴 한데. 


 
새로 투자하게 된 영화가 있어요. 고민되는 부분이 있는데, 의견을 좀 듣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는 브렛은 정말로 고민하는 기색이었음. 



- 저녁 안 드셨죠? 이야기 나누며 식사 하시죠. 



루디는 한순간에 깍듯한 말투를 사용하는 브렛을 빤히 쳐다봤음. 장난기 없는 목소리였지. 오늘은 당신을 사무적으로 대하겠습니다, 같은 태도.

루디는 헷갈렸음. 원하면 태도를 이렇게 마음대로 갈아 끼울 수 있는 건가. 루디는 그런 타입이 못됐음. 그러지 못하니까 브렛이 막무가내로 굴어도 결국엔 다 받아주게 되는 거였지.



- 가시죠. 



그렇다면 제가 잘못 짚은 걸까. 브렛이 제게 흔들린다는 그 짐작. 어쩌면 다 착각 아닐까. 



- 좀 걸어야 하는데, 차로 이동하실래요? 
- 아뇨. 좀 걷죠. 
- 그래요. 하긴 한참 막힐 시간대네. 



생각해 보면 브렛과 행사장에서 다시 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난주까지는, 꽤 편한 관계를 유지했잖아.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괜찮았고, 간간이 나누던 대화도 즐거웠으니까. 브렛이 원하는 건 그런 거 아니었을까. 같은 업계 종사자 지인. 혹은 더 나아가서 친구. 그런 거.



- .......
- .......



퇴근 시간대라 길거리도 바빴음. 유독 사람이 복작한 길에선 어깨가 가까워질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가, 또 널찍이 떨어졌다가. 나란히 걷다가, 또 브렛이 두어 발짝 정도 더 앞섰다가.

앞서가는 브렛의 어깨 쯤을 보며 루디는 한숨을 삼켰음. 브렛이 원하는 게 그런 거라면. 저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잘 나아가면 되는 일 아닌가.



- 프로듀서님. 
- 예? 
- 다 왔어요. 



하루에도 갈팡질팡하는 제 마음에 루디는 이골이 났음. 어쩐지 짜증이 밀려와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던 루디는 브렛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인상을 풀었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루디가 서 있는 곳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였음. 자연광이 들지 않는 지하 공간은 보지 않아도 칵테일 바라는 걸 짐작하게 했지. 브렛을 쳐다보니 브렛은 속셈 없이 깨끗한 얼굴이었음.



- 조심하세요. 계단이 가팔라요.



그러더니 브렛이 손바닥을 내밀며 덧붙였음.



- 필요하세요?



브렛의 행동을 멀뚱히 쳐다보던 루디가 이내 눈썹을 찌푸렸음.



- 아뇨. 필요 없습니다.



브렛도 민망한 기색 없이 손을 거두며 계단을 먼저 내려갔음. 루디도 그를 뒤따랐지. 두 사람의 구두 굽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울렸음. 아닌 게 아니라, 계단이 가파르긴 했지. 아니, 가파르기보다는 좁다고 해야 하나. 계단을 똑바로 밟기엔 구두코가 툭툭 튀어나와서 괜히 사선으로 내려가게 만드는 이상한 구조물이었음. 내려갈수록 어두워져 까딱하다간 발을 헛디디기 딱 좋았지.

위험하게 계단을 뭘 이렇게 만들어놨어. 미간을 좁히고 있는 루디와 다르게 브렛은 힐끔힐끔 뒤를 돌아 루디를 확인하기도 하며 여유로웠지.



- 알아서 잘 내려갑니다. 
- 알아요. 
- 그만 뒤돌아, 



그리고 그 순간 크게 뜨인 루디의 눈.



- 야, 야!



그다음 순간엔, 손으로 냅다 잡아 올린 브렛의 셔츠 목깃. 심장이 팔딱팔딱. 놀란 표정의 브렛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루디는 숨을 내뱉었음. 길고 깊은숨. 잠시간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던 루디가 고개를 들고 다시 브렛을 마주 봤음. 여전히 눈이 댕그란 브렛. 얼마나 세게 잡아챘는지 루디가 쥔 곳은 볼품없이 구겨져선.




- ....하여간 손 많이 가. 
- 네? 
- 계단 설계를 잘못했다고요. 



불퉁하게 대답하는 루디를 쳐다보던 브렛이 불현듯 웃음을 터뜨렸음. 눈이 뾰족한 루디를 의식하듯 손으로 광대를 누르며 얼굴을 반쯤 가리던 브렛이 또다시 하하.



- 뭡니까. 
- 아뇨, 그냥.
- 뭐. 
- 그냥 좀, 과격하셔서요. 



보통은 잡아줄 때 팔이나 이런 데를 잡아주지 않나? 은근히 놀리는듯한 브렛의 말투에도 루디는 어깨만 으쓱. 안 넘어지면 된 거 아닌가. 무심하게 받아친 루디가 브렛의 어깨께를 향해 턱짓했음. 옷은 좀 구겨졌어요. 미안합니다.

이번엔 루디가 브렛을 지나쳐 앞서 걸었음. 문을 열자마자 선명한 재즈 선율이 쏟아졌지. 그리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한마디로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뜻이었음. 이런 곳을 골랐다고? 대화하기 어렵지 않나? 미세하게 눈썹 사이를 구겼던 루디가 이내 그 생각을 거두었음.

차라리 다른 소음이 끼어드는 게 낫겠다. 여백이 많으면 그것대로 곤란했을 테니.



- 촬영 준비는 잘 돼가요? 
- 뭐. 최선은 다하고 있습니다. 
- 곧 재밌어지겠네요. 



그 말을 곱씹던 루디가 이내 미소를 머금었음. 재미있겠죠. 순간적으로 편안해진 루디의 얼굴을 바라보며 브렛은 고개를 끄덕였음. 와인을 돌리듯 잔을 슬쩍 돌리면서. 정작 잔 안에 든 건 물이었지만. 루디의 시선이 브렛의 손목에 닿았다가 떨어졌음.



- 술, 마시려면 마셔요.
- 같이 마셔주시려구요? 
- 혼자 즐기시죠.
- 그럼 저도 괜찮습니다. 



실없는 대화만 오가는 사이,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대로 테이블에 놓이기 시작했음. 여전히 귓가엔 재즈 선율, 사람들 대화 소리, 잔이 부딪치는 소리. 자신의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자른 브렛이 루디에게 권유했으나 물을 마시고 있던 루디는 손을 들어 거절했음. 괜찮습니다. 뒤늦게 따라붙는 목소리.

둘 사이에 오가는 말이 많지는 않았음. 그건 사실 이례적인 일이었지. 대화가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빠져들거나,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우던가. 둘 중 하나였지. 힐끔 눈을 들어보며 브렛을 쳐다보면, 지금껏 능청을 떨던 브렛도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음.

그럼 루디는 또 이해가 안 갔음.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며 선을 긋고, 대화는 뚝뚝 끊기고, 그럼에도 서로 마주 보며 식사를 하는 이 상황이.



- 이건 제가 사겠습니다.
- 제가 모셨는데요.
- 그동안 신세를 많이 져서요. 



루디는 기계적으로 팁 계산을 하며 생각했음. 그날 이후의 온도 변화에 대한.
문을 밀고 나오자 밖은 이미 어둠이 내린 후였음. 가시방석 같은 자리였는데, 용케도 시간은 잘만 흘렀나 보지. 




- 프로듀서님.
- 네. 
- 전 손이 필요한데요.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루디는 단번에 알아들었지. 미간 사이를 좁힌 루디가 브렛을 돌아봤음. 제가 잘못 들었냐는 듯이.



- 또 넘어지기 싫어서 그래요.




눈을 마주한 순간 루디는 알았음. 착각이 아니었어. 

하, 저도 모르게 숨을 터뜨린 루디는 말문이 막힌 듯 그대로 서 있다가, 브렛을 지나쳐 걸었음. 어쩐지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음. 왜? 그건 루디도 몰랐음. 그냥. 그냥.... 



- 안 되나. 
- 안 되지. 



금세 따라잡은 브렛이 루디 앞을 가로막고 섰음. 그 행동에 루디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음. 욕을 짓씹는 것 같기도 했지. 다시 마주 본 루디의 눈은 사나웠음. 뭐 하는 짓거리야. 거친 말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 가슴이 부풀도록 크게 숨을 뱉은 브렛은 그 표정에 잠시 망설이는 듯했음.

긴장한 것 같은, 앳된 얼굴.

그 모습이 순간적으로 더 어렸을 때의 브렛 얼굴과 겹쳐 보였지. 아연한 기분. 루디는 어쩐지 눈가가 홧홧해지는 것 같아서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가, 이어지는 브렛의 말에 다시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음. 



- 내 생각, 해요?
- 내가 왜. 
- 나는 해요. 당신 생각. 



루디는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싶었음. ...얼마나 달콤한가. 



- .......
- .......




또 얼마나 잔인한가. 

루디는 제 앞을 가로막고 선 브렛을 눈으로 매만지듯 바라봤음. 루디가 그토록 좋아하던 녹안. 매끈한 뺨. 단단해진 턱. 한 번만 쓰다듬어볼 수 있다면.

루디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음.



- 만나는 사람이 생겼어.



루디는 떠올렸음.

브렛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비슷한 나이대의, 푸른 유리구슬 같은 눈을 가진 누군가를. 브렛의 눈앞에 있는 장밋빛 미래를.



-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루디는 이번에야말로 브렛을 지나쳐 걸으며 계단을 밟고 올랐음. 행운이지. 내 생애 이토록 소중히 여기는 이가 있다는 것. 속으로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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