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터행맨 루행

세러신가 고명딸 대신 시집간 사생아 제이크와 남모를 비밀을 가진 북부대공 브래들리 보고싶다






변방을 지키는 북부는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곳인데, 북부대공은 전통적으로 수도의 귀족과 결혼해야 함. 북부대공의 군사력이 막강하다보니 이를 왕실에서 경계하기 위해서였음. 수도 귀족들은 매번 순서를 정해 시집을 보내는데, 이번 순서의 가문이 바로 세러신가였음. 하지만 세러신 가의 딸은 오로지 고명딸 한 명뿐이라... 남자 사생아였던 제이크를 여자로 호적에 올리고 그대로 북부대공한테 시집보내버림. 제이크는 핍박받으면서 가문에서 눈물로 어린시절을 보내고, 겨우 벗어나 북부대공이고 뭐고 바깥세상에 눈 돌아간 참이었음. 시집을 간다는 게 뭔지는 알지만, 남자라는 걸 안 들킬 수가 없을테니. 마지막 세상 구경이라고 생각한 제이크는 남은 시간을 즐기려고 노력함.



그렇게 만난 브래들리는 뜻밖에도 제이크를 아주 환영해줌. 무릎을 꿇은 채 띄엄띄엄 자신은 사생아이며, 고명딸을 대신했으며, 무엇보다 후계자를 생산할 수 없는 남자이니 죽여달라며 비는 제이크에게 브래들리는 몸소 내려와 제이크를 안아주었음. 흠칫 놀랐지만 제이크는 자신의 처분을 기다렸음. 
한참을 기다려도 브래들리가 말이 없자, 브래들리 옆에 서있던 남자가 큼큼, 하고 목을 다듬더니 얘기함. 


"그런 건 개의치말고 북부에서 잘 지내보자고 하십니다."
"....네?"
"아, 혹시 모르셨나요...? 저희 대공님은 말씀을 하실 수 없습니다. 말귀는 다 알아들으시지만요. 저는 확성기 역할을 하는 Z라고 합니다."
"....예에?"


당연히 제국의 사정에 어둡던 제이크는 처음 듣는 얘기였음. 멀쩡한 고명딸을 세러신 가문이 보내기 싫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음. 벙어리 북부대공, 수도에 올라오면 무조건 '확성기'라고 불리는 사람을 데리고 다녀야 했으니. 각자의 능력이 있던 제국에서 전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뽑아 자신의 확성기로 사용한 거임. 제이크는 넋이 나간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방으로 안내됨.



북부에서의 삶은 수도에서보다도 훨씬 안정적이었음. 아니, 사실 제이크는 북부를 이미 자신의 진정한 집이라고 인식한 다음이었음. 식사도, 따뜻한 방도, 어딜가나 환영하는 사람들까지 수도보다 훨씬 좋았지.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남편 브래들리였음. 어떤 대화든 확성기를 끼고 해야하니, 대화가 다소 끊기고 비밀스러운 얘기까지는 하기 어려웠지. 자연히 부부간에 애정이라곤 없었고, 제이크는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종종 잠을 설치곤 했음. 그러나 또 그런 자신을 어떻게 알았는지, 브래들리는 그럴때면 몸을 돌려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 등을 토닥였음. 마치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듯.



북부대공의 상징은 당연히 마물 토벌 아니겠음? 대공부인의 역할로 같이 토벌에 나선 제이크가 위험에 처하자, 제이크는 마물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 처음으로 브래들리의 목소리륻 들었음. 꽤나 또렷한 발음과 중후한 저음으로 브래들리는 제이크를 향해 소리쳤겠지. 나와 눈을 맞추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이끌리듯 그의 목소리에 따르자 마물은 이미 목을 날아가있었어. 멍하니 브래들리를 쳐다보자, 브래들리는 아차, 한 표정으로 난감하다는 듯 제이크를 바라보았지.



"이 모든 건.."
"비밀로 할게요. 그러니 말해주세요. 왜 그랬는지"
"...당신, 나와 대화할 수 있겠어?"
"....네?"
"머리가 멍해지거나,.. 이상한 유혹이 들지 않는단 말이야?"
"....아무렇지도..."


제이크는 그때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브래들리를 보았어. 때묻지 않고 정말 순수한 기쁨의 표정을.



브래들리는 사실 어머니가 '세이렌'의 후손이라,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무조건 유혹에 걸리게 됨. 이걸 아는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과만 대화할 수 있도록 했고, 브래들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누구와도 편하게 얘기하지 못했지. 제이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제이크의 능력은 정신 면역이었어. 아무도 그의 능력을 찾아주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알게된 게 브래들리라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브래들리는 이제 밤마다 수다쟁이가 되어 제이크 옆에서 재잘거렸어. 이렇게 대화를 좋아하는 남자가 한평생을 벙어리 행세를 해야했다니. 



"제이크? 듣고 있어? 그만 말할까?"
"아뇨, 듣기 좋아요..."
"반말하라니까, 넌 내 부인이잖아."
"....응"
"부인, 제이크 브래드쇼. 넌 나의 운명이었던 거야. 그러니 수도의 모든 기억은 접어두고 나만 바라봐줘."
",...이미 그러고 있는 걸..."


마주안은 두 사람 사이에는 행복만이 가득 피어올랐으면.



그러면서 수도에 초대된 두 사람이 마물 때문에 능력이 들키게 되면 좋겠음. 또다시 마물에게 끌려가는 제이크를 보고 잔뜩 흥분한 브래들리가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무도회장에서 제이크의 이름을 불러버렸거든. 



"제이크!!!"
"....!!"


제이크는 무척 놀란 표정으로 브래들리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어. 그의 말도 여전했지. 


"나와 눈을 맞추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브래들리의 말에 모든 귀족들은 앞다투어 브래들리 앞으로 쏟아져나왔어. 그의 말처럼 단지 브래들리와 눈을 맞추기 위해서.
하지만 브래들리의 칼 끝은 단 한 곳, 제이크를 붙잡고 있는 마물의 머리통에만 가 있었지. 



한차례 소란이 끝나자 대공부부는 북부로 돌아갔음. 하지만 수도의 귀족들에게,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한 황제에게는 또다른 음모가 피어오르려고 했음. 떠나기 전 브래들리의 확성기가 한 엄포가 아니었다면.



"국가를 전복해서 내 앞에 무릎꿇고 싶지 않으면 그 같잖은 계획들은 모두 접으라, 고 하시네요"



확성기 Z는 이럴때마다 희열을 느꼈지. 좌절한 귀족들과 흥미로운 표정의 황제가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을 때. 


"북부로 돌아가 마물만 잡을테니, 누구도 건들지 말라고 부탁한답니다. 다만 수작질로 대공 부인이 다치면 죽여버리겠다고도, 그리고 오늘 이후로 세러신 가는 대공부인께 아는 척하지 말라네요. 당신들이 한 짓은 모두 알고 있다시면서."


그럼 이만! Z는 상쾌한 걸음으로 대공부부를 따라나섰고, 수도의 혼란은 다시 가라앉게 되었음.





암튼 대화가 필요했던 외로운 브래들리와 애정이 필요했던 외로운 제이크가 만나서 따뜻한 대공부부가 되는 거 너무 보고싶다구...
말투 뒤죽박죽 미안... 그냥 보고싶은대로 적다보니 난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