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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3 22:44
* 챌린저스, 패트릭아트 썰. 타시아트 약간 포함.
* 타싸 올린 적 있음.
* 1편: https://hygall.com/604819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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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의 비약적이고 두서없는 설명에도ㅡ패트릭의 미성숙한 화법 때문이 아니라, 이 상황 자체가 의미하는 바였음ㅡ타시는 명석한 머리로 현 상황을 이해했음.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겠음? 이미 대학생 아트가 저기에 있는걸.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물론 패트릭도 원하지 않았겠지...... 흠, 아니지. 어쩌면 패트릭은 원했으려나?


하루아침에 십 년 넘게 어려진 자신의 남편을 본 타시는 혀를 찼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어쩌겠어. 머리부터 투블럭으로 깔끔하게 정리하자. 연습도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고."


타시의 냉정한 말에 아트의 어깨가 흠칫 떨렸음. 이 시대로 넘어와버린 대학생 아트에게 타시는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패트릭의 여자친구라는 인식이 강했거든. 타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음. 패트릭이 '미래의 너와 타시는 결혼했어'라고 말했지만 실감나지 않았음.


삼십대의 아트 도널드슨, 테니스의 황제라는 별명을 지닌 프로 테니스 선수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새단장(!)을 해봤지만... 아무리 봐도 어리게만 보였음. 새내기 대학생 특유의 앳되고 어리버리한 분위기. 초짜 티가 풀풀 나는 어수룩함. 


연륜과 경력으로 갈고 닦은 노련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음. 겉보기만 봐도 이런데, 실제로 테니스 코트에 들어가면? 결과는 뻔하겠지. US 오픈 결승전은 무슨, 1회전에서 순식간에 탈락하고 말걸? 


타시는 머리를 내저었음. 반드시 올해 US 오픈에서 우승해야만 해. 지금까지 US 오픈만 번번이 탈락했잖아. 호주 오픈, 롤랑가로스, 윔블던에서 2회씩 우승했으면서 US 오픈만 이런다는 건 말도 안 돼.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트가 우승해야만 해. 이제는 패트릭도 있잖아. 테니스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붙여준 패트릭도 네 옆으로 데리고 왔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긴다고? 또? 


타시는 이를 악물었음. 지독한 농담이군. 웃기지 말라고 해. 올해 US 오픈 우승컵은 아트 도널드슨의 것이니까. 


타시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대학생 아트는 어쩔 줄 모르고 눈만 이리저리 굴렸음. 그러다 타시의 무릎 흉터에 시선이 멎었음. 패트릭으로부터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해들었지만... 이렇게 대면하니 마음이 아팠음. 타시가 얼마나 테니스를 잘 치는지는 아트도 알고 있었으니까. 


패트릭은 아트에게 '타시는 경기 중에 무릎을 다쳤어'라고만 말해주었음. 그야 패트릭은 아트가 타시에게 점심 식사를 사주면서 타시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으니까. 단지 자신과 말싸움을 한 타시의 기분이 상당히 저조했고, 타시가 짜증과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테니스 경기를 하느라...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해주었음. 


'한눈만 팔아도 공을 놓치기 일쑤지. 그래서 경기 중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오로지 공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타시는 나와 싸웠거든. 하필이면 경기 전날에 나와 크게 싸웠어. 그 바람에 경기를 하다가 실수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 굳이 치지 않아도 될 공까지 쳐야겠다고 성급히 판단해서 방향 전환을 하다가 무릎이 꺾인 거지. 어떻게 보면 내 잘못인 셈이야...'


패트릭은 거기까지만 말해주었음. 라커룸에 달려갔지만 아트가 '꺼져, 패트릭!' 이라고 소리쳤다는 건 말해주지 않았음. 뭐, 아직 대학생이잖아. 이 시기의 아트가 저지른 일도 아니고. 그냥 이 정도까지만 알면 되겠지. 


아트는 타시에게 무릎을 잠시 만져봐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음. 타시는 그러라고 했음. 무릎을 꿇은 아트가 타시의 흉터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음. 오래된 흉터여서 우둘투둘한 켈로이드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흰색으로 절개된 세로선은 무릎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음. 마치 코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테니스 공처럼. 


한동안 타시의 흉터를 만지던 아트가 드디어 일어났음. '결심'을 굳혔는지 타시를 올곧게 바라보았음.


"ㅡ최선을 다할게." 
"당연히 그래야지. 너는 누가 뭐래도 이 타시 도널드슨의 남편인데."


패트릭이 뒤에서 끼어들었음. 


"아트,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타시는 아주 엄격한 코치거든."
"그럴 것 같았어. 타시 성격에 대충 하지 않겠지."
"하긴, 그런 배짱은 어릴 때부터 있었긴 해."


패트릭이 아트에게 윌슨 라켓을 건넸음. ㅡ그럼 시작해볼까, 아트? 다리가 후들거려도 우는 소리 하지 않기다? 아트는 패트릭이 준 윌슨 라켓을 기꺼이 오른손으로 움켜쥐었음. 



타시는 자신이 들고 있던 윌슨 라켓을 코트에 집어던졌음. 네트를 넘어서 아트에게 뚜벅뚜벅 걸어간 타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음. 


"아트 도널드슨! 너, 대체 뭐야?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US 주니어 오픈에서는 왜? 어째서 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았어? 왜 패트릭 앞에서 쩔쩔매는 척 했냐고!"


스탠포드 대학에 다녔을 때, 아트는 타시의 연습 파트너(히팅 파트너)였음. 원래 여성 테니스 선수는 같은 여성끼리 히팅 파트너를 구했지만 타시는 예외였음. 타시와 엇비슷하게나마 연습할 실력을 지닌 여성 선수는 없었거든. 그래서 타시는 아트를 골랐음. 아트는 흔쾌히 연습 파트너 제안을 받아들였음. 


그런데... 지금의 아트는 '테니스의 황제' 소리를 들었던 아트 도널드슨임. 삼십대의 아트 도널드슨. 그랜드슬램 6회 우승을 달성한 선수. 잔디, 클레이, 하드 코트 모두 능숙할 뿐더러 까다로운 드롭샷과 슬라이스를 감각적으로 다룰 줄 아는. (부상당한 어깨가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많이 회복된 편이었음)


사실 아트도 적당히 봐주면서 치려고 했음. 하지만 타시와 테니스를 하다보니 열중하게 되어서, 본 실력이 그대로 드러났음. 시간이 지날수록 타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음. 아트의 실력이 너무나 월등한 게 느껴졌거든. 


뭐야, 이거.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당장 프로 테니스 선수로 데뷔해도 되겠는데? 지금 프로 선수랍시고 투어를 다니는 패트릭보다 더 잘 치잖아. 이렇게 훌륭한 풋워크와 볼터치라니. 하위권 프로 선수가 아니라 그랜드 슬램을 노려도 될 정도야.


타시는 이를 부드득 갈았음. 


하루 아침에 이런 실력을 쌓을 수는 없어. 최소한 오 년... 아니, 십 년은 해야할 거야. 그런데 US 주니어 오픈에서는 왜 그딴 식으로 경기한 거지? 패트릭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로 점수를 내줬잖아. 왜 그런 연기를 한 거야? 패트릭이 나와 사귀고 싶다고 네게 졸랐어? 내 번호를 얻고 싶은 패트릭이 너한테 일부러 져달라고 했어? 그래서 그따위 치졸한 연극으로 내 눈을 속이고 패트릭이 내 번호를 가져가게 한 거야? 


"...타시. 내 말을 들어줘,"
"네 말을 들어달라고? 내가 왜 사기꾼의 말을 들어야 해? 승부를 조작하는 건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거라고 그 잘난 기숙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어? 기분이 더럽네."
"그게 아니야! 타시, 제발 진정하고ㅡ"
"너 같으면 진정하겠어? 이따위 조작을 한 대가로 내 번호를 받아간 패트릭도 꼴보기 싫고,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네 실력을 속인 너도 짜증나."
"나는 널 속이지 않았어. US 주니어 오픈에서는 나보다 패트릭이 잘했어. 그때의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으니까."
"그 초라하기 짝이 없는 놈이 이렇게까지 성장했다? 고작해야 스탠포드 대학의 테니스 부활동을 통해서? 지금 네가 얼마나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지? 이 실력이면 그랜드 슬램 우승까지 가능해. 호주 오픈도, 윔블던도, 롤랑가로스도, US 오픈도!"
"...US 오픈은 아니었어......"


까지 말한 아트는 입을 다물었음. 갑자기 튀어나간 말을 주워담을 수 없는 노릇이었음. 타시의 눈썹이 꿈틀거렸음. 


"그게 무슨 소리야?"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타시는 아트를 수상쩍은 눈초리로 한참 바라보았음. 그래도 아트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음. 타시는 아트를 추궁하듯 샅샅이 훑어보더니,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낼 거야'라는 선전포고를 남기며 코트에 내던져진 자신의 라켓을 주웠음. 


그날부터 타시의 집요한 스토킹(...)이 시작되었음. 아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불쑥 나타나 따라붙곤 했음. 도서관, 체육관, 야외 테니스 코트, 학생 식당 등... 심지어 남자 기숙사의 일층 로비까지 얼쩡대곤 했음. 


타시가 패트릭과 사귀는 걸 아는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예전에 패트릭과 타시가 전화하는 걸 들었던 사람에게는? 


타시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었음. 남의 이야기를 부풀려서 떠벌리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루머를 더없이 사랑하는 놈들. 질 나쁜 소문이 퍼지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참하면서도 자기 책임은 없다며 뻔뻔스레 구는 인간들. 


테니스를 그렇게나 잘 친다고 온 학과에 소문난 타시 덩컨이 남자친구 몰래 바람을 피운다. 상대는 아트 도널드슨이다. 아트 도널드슨이 타시 덩컨의 남자친구인 패트릭 즈바이크와 US 주니어 오픈 복식 경기에 함께 참가한 영상이 있는데, 그 영상을 보면 아주 친해보인다. 게다가 둘 다 마크 레벨라토 아카데미 출신이라더라. 


아트로서는 미칠 지경이었음. 자신이 알고 있던 과거에는 타시가 자신을 졸졸 쫓아다닌 적이 없었음. 그래서 '타시가 바람을 피운다'라는 소문이 나지 않았음. 아트 자신이 타시에게 점심을 사준 적은 있지만, 누가 봐도 아트가 매달리는 모양새였기에 '어이구... 이미 남친 있는 여자 건드리면 뭐하냐...' 라는 한심한 눈총을 받은 건 아트였음.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타시가 이렇게 나오면 안 된단 말임. 타시를 싫어하는 대학생들이 꽤 많았거든. 뻔하잖아? 타시는 유색인종인 데다가, 집안 형편도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전액 장학금이 아니었으면 입학하지 못했을 테니까. 백인에다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거들먹거리는 놈들에게 타시는 항상 눈엣가시였음. 그런 타시를 공격할 수 있는 소문이 생겼으니 얼마나 기뻤겠음? 


이런 시기에 괜히 패트릭이 스탠포드 대학에 놀러오기라도 한다면? 투어를 일찍 마친 패트릭이(조기 탈락했기 때문에 투어가 일찍 끝났음) 스탠포드 대학에 발걸음을 한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 만일 패트릭의 귀에 이런 기분 나쁜 소문이 들리기라도 한다면... 


진심으로 맹세하건대 아트는 새로 주어진 기회를 이런 식으로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음. 타시와 자신이 결혼한 후, 그 결혼 생활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행복했지만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었더라? 사랑해, 라는 말에 타시는 '나도 알아'라고 대답했지, '나도 사랑해'라고 말해주지 않았음. 건조하고 삭막한 결혼 생활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음. 이번에는 타시와 패트릭이 결혼하여 즐겁게 살 차례였음. 자신은 그걸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할 터. 


호텔 방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깼지. 그러나 침대 옆은 비어 있었음. 타시가 없었음. 넓고 호화로운 스위트룸 어디에도 타시가 없었음. 결국 릴리 방에 갔음. 릴리 옆에서 잠을 청했지. 


애틀랜타에서도 그랬음. 새벽 세 시. 호텔 로비의 테이블에서 타시와 패트릭이 친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걸 봤음. 팬에게 사인한 후에 다시 테이블을 바라보았지만 둘은 사라지고 없었음.


그런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음. 밤에 몰래 빠져나가 패트릭에게 갈 바에야 그냥 환한 대낮에, 행복하게 만나러 가. 타시, 그게 옳은 거야. 그게 너에게도 행복한 거잖아... 나는 이제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없어. 나를 위해서, 네가 행복해지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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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2분 35초부터. http://youtu.be/mrDL_A9hw3I?si=vNyrsBVoGND37DSZ)
 

타시는 그깟 허접한 소문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그날 저녁에도 남자 기숙사 로비에 앉아있었음. 기숙사 방에서 나온 아트는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이층 난간으로 갔음. 


로비에 마련된 동그란 테이블들.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방울처럼 보였음. 둥근 물방울, 그러니까, 눈물들. 타시와 결혼식을 올렸을 때 주례 앞에서 넘쳐흘렀던 눈물, 타시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의 눈물, 애틀랜타에서 패트릭과 사라진 타시가 밤새도록 호텔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때의 눈물, 그리고, 패트릭에게 지면 떠날 거라고 말한 타시 앞에서 흘린 눈물. 


많이도 울었던 것 같음. 타시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음. 차라리 패트릭 앞에서 운 적이 적었을 거임. 패트릭 앞에서 짜증내거나 투덜거렸을 때는 많았지만...


이층 난간에서 타시를 내려다보던 아트가 긴 한숨을 쉬었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여 일층 로비로 내려간 아트가 타시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음. 

 

"......사실대로 말할게. 나는 미래에서 왔어."
"같잖은 소리 집어치워. 술 마신 것도 아니면서."
"정말이야. 나는 미래를 알아."
"지독하게도 웃긴 농담이네.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왜 과거로 왔는데? 미래에서 편히 살면 되잖아?"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 그래서 이 기회에 바로잡으려고 해."
"저런, 그 미래가 워낙 끔찍했던 모양이지?"


ㅡ좋은 일도 있기야 있었지. 하지만 그게... 네게도 좋은 일이었는지 모르겠어. 아트는 바지 주머니에서 결혼 반지를 꺼냈음.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것이었음. 


그 반지를 본 순간 타시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음. 막연하게나마 내 결혼 반지는 이런 형태면 좋겠다, 라고 상상했던 것이 구체적인 물건으로 변해서 아트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었으니까.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아트는 그 반지를 타시에게 건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음. 그래, 진작 이렇게 해야 했어. 반지까지 줘야 타시가 내 '결심'이 어떤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했어야 해.


*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트 도널드슨! 손목! 손목 스냅을 잘 활용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타시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테니스 코트를 뒤흔들었음. 패트릭은 아트에게 수건을 건네주었지만, 아트가 도통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패트릭이 아트의 얼굴을 대신 닦아주었음. 아트가 쥐고 있는 테니스 라켓까지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음. 


"나이가 어려지더니 기억력도 어려졌어? 응?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저기, 타시. US 오픈이 코앞이라서 초조한 건 알겠지만..."
"패트릭, 너는 입 닫아! 내가 아는 아트는 이렇지 않았어! 힘이 없어서 비실거리는 패싱샷? 골 빈 얼간이 마냥 궤적이 빤히 읽히는 드롭샷 같은 건 안 하느니만 못해! US 오픈을 뭘로 보는 거야! 최선을 다한다며?! 그게 네 최선이었어? 아트 도널드슨! 그게 네 최선이냐고!"


씩씩거리던 타시가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음. ㅡ오늘 연습은 끝이니까, 내일 좀 더 잘하자. 알겠어? 대답해, 아트 도널드슨! 알겠냐고! 


타시의 호령에 풀이 잔뜩 죽은 아트가 머리를 주억거렸음. 타시는 아트를 못마땅하게 보다가 테니스 코트에서 먼저 나갔음. 패트릭이 한숨을 쉬며 아트의 등을 토닥여주었음. 


"타시를 원망하지 마. 미래의 네가 워낙 잘했어야 말이지. 네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아니까, 타시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거야. 아예 희망이 없는 놈에게는 다그치지도 않을걸? 어차피 시간낭비라면서."


아트는 여전히 말이 없었음. 패트릭은 분위기를 띄울 겸 일부러 경쾌하게 말했음. ㅡ저렇게 보여도 타시는 너를 사랑해.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옆에서 보기만 해도 둘이, 


"...봤어?"
"어?"
"옆에서 봤다며. 타시와 내가 잘 지냈었어? 행복한 부부였어?"


어... 패트릭은 어물거렸음. 타시와 아트는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았거든. 특히 아트가 어깨를 다치고 슬럼프에 빠진 후에는.


"어... 으음... 어... 그게... 그러니까... 어..."


곤란해하는 패트릭을 본 아트는 자신의 윌슨 라켓을 휘리릭 돌렸음.
 

"대답해주지 않아도 돼. 어땠는지 짐작이 가니까."


아트는 코트 가장자리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음. 패트릭이 땀을 닦아준 수건을 목에 건 채로 고개를 푹 숙였음. 라켓을 쥐고 있던 손가락의 물집이 터져서 진물이 흘러내렸음. 아트는 라켓을 발 아래에 있는 더플백에 집어넣었음. 


"...아트. 그래도 오늘 열심히 했어. 수고 많았어."
"너도 잘했다고는 하지 않는구나."
"...어... 으음... 그게... 빈말로도 잘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미래의 너는 진짜로 대단했거든. 너도 알잖아, 테니스 선수는 테니스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법이야. 나도 프로 테니스 선수가 되고서야 깨달았지. 오직 실력만이 전부인 비정한 세계라는 걸. 비록 네가 근사한 외모를 가졌지만..." 


그 말에 아트가 머리를 들어올렸음. 패트릭을 올려다본 아트가 장난스레 웃었음.


"근사한 외모? 나는 네가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그랬어? 언제부터?"
"처음 만났을 때부터니까... 테니스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


패트릭은 아트 옆의 의자에 앉았음. 아트의 푸른 눈을 바라보던 패트릭이 손을 들어올려 아트의 뺨을 감쌌음. 따뜻하고 촉촉한 뺨. 아트는 별다른 저항 없이 패트릭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음. 패트릭이 마른침을 삼켰음.


"키스하고 싶은데, 해도 돼?"
"미래의 나는 타시의 남편인데 괜찮아?"
"네가 처음에 어디에서 눈을 떴는지 기억나? 나와 같이 잠든 호텔 침대였어."
"......타시가 허락했어?"
"응. 미래의 너도 허락했어. 하지만 대학생 아트는 아직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물어보는 거야."


그 말에 아트가 눈꼬리를 접으며 미소지었음. ㅡ뒤처지지 않으려면 나도 해야지. 패트릭이 푸핫 하고 웃었음. FOMO도 아니고, 그게 뭐야. 날 사랑해서 허락하는 거야, 라고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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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는 그 푸른 눈동자로 패트릭을 바라보았음. 사랑해, 라고 작게 속삭이는 걸 놓치지 않은 패트릭이 입술을 겹쳤음. 아트의 입술은 미래에서나 과거에서나 항상 달콤했음. 패트릭의 혀가 파고드는 걸 느낀 아트가 응, 으응, 하며 콧소리를 흘리며 눈을 감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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