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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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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많이 지났기긴 한데 손을 좀 보고 ㅈㅇ
*ㄴㅈㅈㅇ

“스테판, 괜찮아요?”

멀리 있는 것처럼 닉 리버스의 매니저 목소리가 희미하게 귀에 들어왔다.
괜찮다고 그렇게 답을 해주고 싶은데 웅얼거리는 소리만 날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축 늘어진 모습에 괜한 걱정을 살까 몸을 벽에 기댄 채 오른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매니저는 짧은 한숨과 함께 스테판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리며 조금만 더 힘내달라는 당부를 하며 상황을 점검하러 다른 곳으로 바삐 이동했다.

“스테판! 스테판!”
“으으음…….”
“공연 끝났어. 앙코르가 좀 길어졌네.”
“스테판 좀 깨워봐. 뒷정리하기 전에 야식을 먹여야지 하지 않겠어.”
“스테판? 스테판?”

예정된 공연 시간을 훌쩍 넘어버려 무대를 해체하고 뒷정리를 할 시간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며칠 동안 공연 준비를 위한 강행군에 가진 것 이라고는 튼튼한 몸 밖에 없는 스테판조차 맥을 못 추게 만들었다. 다른 스태프가 몸을 흔들어 잠에 취한 스테판을 깨어보려고 하지만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종일 먹은 거라고는 차가운 샌드위치 두 조각일 뿐인데 배가 고프다는 감각도 없고 지금은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준비된 도시락을 꺼내는 달그락 소리, 식어버린 커피지만 개인 물통에 쪼르륵 붓는 소리, 어수선한 가운데 잡다한 소음이 들려오지만 그 소리는 스테판의 귀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스테판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어제는 아니 자정을 넘었으니 그제구나.
금요일, 공연의 열기와 환호에 젖어 평소보다 더 거칠고 제멋대로인 닉 리버스를 받아내느라 혹사당한 스테판은 토요일 공연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나 올라오는 쓰디쓴 위액을 참아냈다.

“어이!”
“이봐아아아!”
“스테판!”

이름을 부르는 큰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흐릿한 시야에 몇 번 눈을 깜박이자 겨우 눈앞에 사물이 보였다.

“스테판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서 놀랐어. 괜찮겠어? 안색이 정말 별론데…….”
“죄송해요.”

스테판은 재빨리 주변 스태프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야식을 먹을 동안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생각보다 깊이 잠이 들어 깨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디 아픈 건 아냐?”
“아니에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정말 아픈 거 아냐?”
“괜찮아요.”
“스테판, 눈치껏 힘 좀 덜 쓰고 쉬엄쉬엄해.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 없어. 안색이 파리한 게 걱정되잖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큰 공연 처음이라 그런가 봐요.”
“그렇긴 하지. 종일 대기상태니…….스테판 요령껏 해. 알겠지?”

어지간히 피곤해서 깊이 잠이 들었나보다. 아버지 나이쯤 되는 스텝 몇 명이 걱정스러워 하며 신경을 써주었는데 스테판은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몇 시간 정도는 잘 수 있을 것 같다.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어도 제시간이 도착할까 말까 싶은 아슬아슬한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
지금부터 스테판의 하루가 시작된다.
겨우 늦지 않게 도착, 즉시 옷을 갈아입고 일을 시작한다. 주말 유명 레스토랑의 근무는 오전이라도 눈코 틀 새 없이 바빴다. 거기다 오전 파트에는 현재까지 남자라고는 자신 밖에 없기에 힘을 쓰는 일은 죄다 도맡아 하고 있어서 조금 더 힘이 드는 편이었다. 그래도 그 덕에 시급이 조금 더 높은 편이니까 충분히 감수 할 수 있었다.

“스테판, 이번 주 주급.
“감사합니다.”

후덕한 인상의 총괄 매니저가 퇴근할 무렵 염려 가득한 눈빛으로 스테판을 살폈다.

“스테판, 어디 아픈 거 아냐?”
“네?”
“안색이 좋지 않아. 오늘 너 쓰러지는 줄 알고 조마조마 했어.”
“아픈 곳은 없는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어쨌든 좀 쉬도록 해.”

스테판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자상한 얼굴로 걱정시키지 말라며 덧붙인다.
그 자상함에 조금 쑥스러워져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레스토랑 사무실의 시계를 보니 다시금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 다음 주에 봐, 스테판!”

매니저의 말을 뒤로 하고 다시금 걸음을 바삐 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달려오느라 새빨개진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는 스테판이 고개를 숙여보지만 주변은 무심하기만 했다.

“지각한 몫.”

그렇게 간단히 말하며 두 손으로 안는 것도 모자라 턱까지 올라오는 높이의 상자를 넘겨주고는 내 머리를 툭툭 치며 나가버렸다. 유난히 저에게 심술궂은 동료였다. 처음부터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힘들고 궂은 일을 떠넘기고는 했지만 스테판은 묵묵히 받아들였다. 무거운 상자를 지정된 곳으로 분류하고 옮기는 단순한 이 아르바이트는 어차피 한 달짜리,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지.

“고생했어. 마지막 주급이군.”
“고맙습니다.”
“정말이지 스테판 너만큼 성실하면 애도 없는데 아쉽네.”

스테판을 담당했던 팀장은 땀에 젖은 그의 머리를 거침없이 쓰다듬으며 못내 아쉬워했다.

“일이 궁해지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아.”
“네.”
“스테판이라면 언제나 OK이야.”

그렇게 말하며 팀장은 눈을 찡긋거렸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보고... 으음…….그냥 놀러 와.”

몸은 몹시 피로했지만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몽글몽글한 기분을 안고 아직도 반짝이는 화려한 거리를 뒤로 하도 다시 급히 걸음을 옮긴다.
사나운 겨울의 칼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낡은 야구점퍼를 여미고 촌스러운 체크 셔츠의 깃을 세워보지만 매서운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눈부신 네온사인 아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주말의 이 화려한 거리를 출렁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스테판은 항상 이 순간에 깊은 괴리감을 느꼈다.
내가 과연 이곳에 존재하고 있긴 하는 걸까? 비록 아무 것도 없는 고향이지만 고즈넉한, 새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이 그리워졌다.
술과 담배, 짙은 향수의 향이 뒤섞인 밤공기가 아닌 머리를 맑게 해주는 고향의 공기를 맛보고 싶었다. 스테판은 언제나 그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요즘은 돌아가고도 싶었다. 그런 마음을 다잡고 스테판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호화로운 도시를 비집고 들어가 다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여어…….왔어?”

두툼한 손으로 안전모를 씌워주며 반갑게 맞아준다.

“자자. 다들 오늘도 안전에 유의하고. 슬슬 일 시작해보자고!”

자정이 넘은 시간, 야간작업이 시작됐다. 매서운 바람에 차가워진 몸이었는데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스테판은 이제 갓 대학 입학한 애송이 일뿐이라 딱히 가진 기술이 없기에 단순한 일밖에 할 수 없고 경험치 만큼 요령이 생겼다 해도 힘이 필요한 노동이었다.

“좀 쉬자고…….”

무거운 짐을 지고 왕복하기를 여러 차례, 약간의 휴식 시간 동안 수분을 보충한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한 물맛에 피로감이 조금 가시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먹는걸 잊어버렸네.’

배가 고프다는 감각이 없어서 점심부터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뭔가 먹기에는 한참 늦은 시각이었고 지칠 대로 지친 스테판의 머릿속은 그저 돌아가서 좀 쉬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kid.”
“네!”

항상 스테판을 Kid라고 부르는 아버지 연배의 아저씨는 무뚝뚝하긴 해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즐거워하는 걸 알고 있었다. 늘 어린 스테판을 너그럽게 봐준다는 사실도.

“이번 주급. 열심히 했어. 이걸로 당분간 야간작업 없는 거 알지?”

땀투성이에 먼지가 달라붙은 두툼한 손으로 머리를 쓱쓱 만져준다.
다들 받을 돈을 챙기고 하나둘 공사장 주변을 떠났다. 스테판 역시 집으로 돌아간다. 공사현장의 먼지를 뒤집어쓰고서 하이스쿨 때부터 쓰던 낡은 백팩을 등에 메고. 바로 뻗어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전에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2시간정도 수면 시간이 감지덕지라고 그 생각을 끝으로 잠에 빠져든다.
-삐삐삐
점점 커지는 탁상시계의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밖은 어둡고 생활감이 없는 시간이지만 스테판의 일과는 5시를 알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자신의 할당량 신문을 받아서 들고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밟는 리듬에 맞춰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나와 공기 중에 사라졌다. 시린 겨울바람에 거칠어진 손등이 터진 지 오래였다. 얼음처럼 시린 칼바람에 통증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스테판은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잠잠하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었다.

“스테판, 오늘도 수고 많이 했어.”

담당 소장은 그렇게 말하며 흰 봉투와 함께 금방 뽑은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여줬다.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뛰어 들어가다시피 돌아가 먼지투성이 백팩 안에서 일요일부터 오늘 분까지의 봉투를 꺼내고 한 장 두 장…….세어가며 하나의 봉투에 담고 다시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렇게 낡은 가방을 한참 바라봤다.

“스테판,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
“그거 알아? 최근에 살이 빠졌다고. 정말…….”
“그냥 보기가 안쓰럽잖다고.”

말을 잇지 못하는 동기 찰스 대신 마이클이 속상하다며 스테판을 구박했다.

“일도 적당히 하라고. 요즘 그렇게 힘든 거야?”

가볍게 말하는 투지만 마이클의 눈빛에서는 걱정이 어려있었다. 아무래도 미식축구부에서 주전에서 밀린 일 때문이라고 여기는 듯했지만 스테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미안. 일이 좀 있었어. 뭘 좀 사려고.”

스스로 생각해봐도 좀 무리다 싶은 스케줄을 용케도 소화했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었다. 이 정도까지 일을 해본 건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테판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수면 시간을 깎아가며 시간을 아껴가며 아르바이트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피로감에 몸이 부서질 것 같지만 그 누군가를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자신이 낯설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등록금이라던가 생활고라던지 지독한 현실적인 이유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는 자신이 말이다. 친밀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아직도 알 수는 없지만 약속한 날이 아닐 때도 종종 보고 싶고 때때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고 자꾸자꾸 부풀어가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스테판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비록 주 2회 얄팍한 종이 한 장의 계약서로 이루어진 관계지만.
물론 그건 슬프지만 스테판은 이런 친밀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어떠한 다른 관계가 되길 바라지는 않았다. 기대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따라붙는 잿빛 눈동자가 거북했지만 거절 할 수 없는 제안을 해왔을 때 어쩌면 스테판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원하는 것을 늘 가지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얻겠지. 그에 반해 자신은 가진 것조차 보잘것없지만 그것마저 이 도시에서 잃어가고 있었으니까. 따스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건 스테판이 원하는 삶을 가져다주지 못할 선택이니 한계에 봉착한 그에게 고용주의 제안은 위험한 유혹이었다. 어떤 끝을 맞이할지 결과도 알고 있었지만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스테판은 장학금이 걸린 미식축구의 주전 자리에서 밀렸고 절실히 돈이 필요했으니까. 부단히 노력은 하지만 제대로 풀리지 않는 자신과 다르게 눈부신 재능으로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오만한 고용주는 그렇게 스테판의 삶의 일부분을 소유하고 제멋대로 굴긴 하지만 그 선택은 결국 자신이 한 것이니 탓할 수는 없었다.
고용주는 비록 돈으로 얽힌 관계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친절했고 정중했으며 때때로 세심하게 살펴봐 주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스태프들 사이에서 닉 리버스의 생일 파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그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해졌다. 어떤 위치인지 알면서도 자신은 어쩌면 멍청이가 아닐까 싶긴 했지만.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은 고용주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무척이나 난감했지만. 그저 계약에 의한 관계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 도시에서 자신에게 가장 친절하고 다정한 고용주에게 스테판은 수줍은 애정과 고마움을 전하고 마음에 본인의 처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리한 스케줄을 감행했다.

과연 이게 맞는 일인지 의심을 떨치지 못한 채로 맞이한 오늘.

“손님, 선물 하실 건가요?”
“네.”
“선물용 포장이 가능한데 원하신다면 해드리겠습니다.”
“부... 탁 드릴게요.”
“손님, 축하 카드도 포함인데 메시지를 적으실는지요?”

건네 받은 작은 카드를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는 빠른 속도로 메시지를 적어 나갔다. 이 도시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백화점의 호화로운 분위기에 압도당해 허둥지둥 거리다 겨우겨우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를 받아들였다.

“화요일인가?”

앞 뒤 생각 없이 선물을 준비하긴 했는데 갑작스럽게 선물을 주려니 막막 해졌다. 어쩌면 알고 있었던 지도 몰랐다. 어차피 끝이 어떨지 알고 있으니까 그저 스테판 자신을 위한 추억이라도 남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이렇게 무리를 한 것이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스테판은 그저 다가올 미래를 애써 외면하고 일만 했던 것 같다. 몸은 힘들지만 자신도 평범하게 호감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약속한 화요일.
스테판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닉의 펜트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기고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참, 시계를 보니 곧 도착할 시간이었다. 이것저것 초조한 생각에 사로잡힐 즈음 무릎이 후들후들 떨렸다. 땀에 젖은 두 손을 꼼지락 거리며 멍하게 서 있는 스테판을 고용주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테판 본인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고 했잖아요.”

입이 바짝 말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고개를 들어 스테판을 내려다보는 고용주를 보며 용기를 쥐어짜 내 보았다.

“곧 생일이시라고.”

심드렁한 얼굴로 여전히 스테판을 내려다보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아, 생일이요? 맞아요. 뭐 늘 그렇듯 파티를 하겠죠."
“…….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 이건 선물이고….”

그렇게 등 뒤로 숨기고 있던 금박의 백화점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건넸다.

“쯧, 스테판이 이런 걸 왜 준비해요? 스테판은 나한테 이럴 필요가 없는 사람인데.”

그 한마디에 떨렸던 스테판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맞아.
스테판.
저는 고용주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냥 그의 변덕스러운 호기심에 걸린 일시적인 상대일 뿐인데 멍청한 스테판 조르제비치.
그의 입에서 현실을 깨워주는 가혹한 한마디를 들으니 어쩐지 부끄럽고 견딜 수 없이 괴로워졌다. 그의 상냥한 친절은 나에게만 보이는 게 아니지. 특별한계 아냐. 바보같아. 스테판 조르제비치
고용주 앞에서 입술만 달싹거리며 머뭇거리고 있으니 그가 예의 사근사근 부드럽게 웃으며 침실로 데려갔다. 그래. 우린 이렇게 약속된 관계였지.

이른 새벽, 평소보다 더 일찍 펜트하우스에서 나왔다.
그가 깊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한숨도 자지 않고. 때마침 하늘에서 밤비가 내렸다. 하나 둘 떨어지던 것이 후드득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리고 스테판은 집까지 차가운 비를 맞으며 뛰어갔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이렇게 괴롭고 아픈거구나. 리사와 사귈 때는 결코 몰랐는데. 우리의 시간은 달콤씁쓸했지만 사실 스테판도 리사도 각자 고향에서 벗어나는 꿈이 최우선이었으니까.
스테판에게는 이런 감정조차 이제는 사치로 여겨졌다.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그저 스테판은 평범하게 축하를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자신이 부끄러운 적이 있었을까. 스테판은 비에 젖은 몸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그렇게 컴컴한 방 안에 앉아서 울음을 참았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슬프고 지치더라도 스테판의 일상이 변할 수는 없는 법.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새운 스테판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담담하게 오늘이라는 하루를 시작했다. 시린 새벽공기로 빨갛게 되어버린 손이 아려왔다.

“스테판, 왜 이렇게 식은땀이 나는 거야?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괜찮아?”

찰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스테판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댄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움찔 거리는 스테판의 이마 위로 따스한 손이 얹어지자 편안함 보다는 이유 모를 긴장감에 몸이 뻣뻣해졌다.

“이런 열이 나잖아. 아프면 연락을 하지. 스테판 기다려봐. 내가 비상약을 가지고 다니거든.”

다급하게 가방을 뒤지는 찰스에게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약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해열제야. 얼른 가서 쉬고... 자, 자·어서…….어서.”

그렇게 찰스와 마이클의 성화에 억지로 집으로 돌아왔다. 한숨도 자지 못한 지난밤의 피로가 이제야 몰려오는 것 같았다. 온기라고는 없는 이 싸늘한 집이라도 이곳만큼은 스테판을 조용히 그리고 완전하게 보호해준다. 스테판의 마음속에 수줍게 피어난 작디작은 소중한 마음이 고통스러운 열과 함께 사라져갔다.



닉 리버스의 성대한 생일파티가 열린 목요일 저녁.
모두들 파티의 주인공을 기다렸다.
닉 리버스는 턱시도 대신 고급스러운 광택이 흐르는 블랙 실크 셔츠를 입고 반짝거리는 부드러운 금발을 넘기며 화사한 미소를 띄며 등장했다.
스테판 조르제비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계속 고열에 시달렸다.










"으윽…….”

닉의 상냥한 손길과 일부러인 게 분명한 심술궂은 손길에 스테판은 발꿈치를 들어 올리며 욕실 벽으로 몸을 기댔다. 별명은 만족스러웠다.

“아직 안돼요. 조금만 더 참아 봐요.”

오늘의 거절로 아직 좀 더 달콤한 괴로움을 맛보게 하고 싶어서 닉은 억지로 엄지손가락으로 금방이라도 흘러나오려는 것을 막았다. 쾌감과 고통이 뒤섞이는지 앓는 소리를 연신 참는 게 싫어서 송곳니를 세워 스테판의 목덜미에 깊이 박으니 사랑스럽게 울었다. 힘없이 미끄러지는 몸을 지탱하려고 오랜 노동과 겨울의 건조함으로 거칠어진 스테판의 양손이 벽을 집으며 젖은 욕실 벽에 몸을 지탱하는 것도 서운해서 닉은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밀착시켰다. 잔뜩 젖은 몸이 겹쳐 질척거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 닉은 경쾌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뜨거운 수증기에 적당히 말랑거리는 가슴의 촉감이 제법 좋아 중지와 약지 사이를 벌려 뾰족하게 솟은 스테판의 유두를 끼웠다.

“스테판 좋..아요?”

억지로 막아도 조금씩 새어 나오고 방황하던 스테판의 좆이 고개를 쳐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닉의 시선에 잡혔다. 다부지지만 닉보다 작은 덩치가 새삼스러웠다. 뒤에서 이렇게 감싸면 보이지 않을 체구인 주제에 미식축구라니.

“어떻게 해줄까요?”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에 이렇게 세차게 반응을 보였다. 새빨간 귀를 보니 발끝부터 쾌감이 번져갔다. 초원의 해바라기를 담은 눈동자,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 자신의 한손에 감기고도 남는 가는 손목, 손아귀에 다 잡히는 작은 손,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와 말랑거리는 입술, 금방 달아오르는 볼, 닉 리버스 못지않게 사랑스럽지만 둔해 빠져서 은근히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의 유혹을 아예 무슨 의미인지도 몰라줘 더 안달 나게 하는 순진한 스테판을 먼저 선점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번 생일 파티를 기회로 스테판이 누구의 것인지 아니꼽고 거슬리는 그것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거절이라니 뭐하나 뜻대로 움직여주는 법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은 돈으로 그를 옭아매 버릴 걸, 후회하는 닉이었다.

“닉..닉 리버..스씨”

“닉이라고 언제쯤 불러줄 거예요?”

고집스런 스테판.
이렇게 몸은 충실하면서 얄미워 죽겠어.
안고 있던 스테판을 젖은 벽에 밀착시키고 거칠고 빠르게 그의 좆을 훑으며 일부러 그의 가슴에 잘 다듬어진 손톱으로 생채기를 냈다.

“아앗. 못..참겠어요. 이제.흐으흑!”

스테판의 배 위로 닿을 것 같이 격렬하게 솟아오르던 좆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어느새 가늘어진 뜨거운 물줄기와 욕실 바닥에 흩어진 토해진 정액이 뒤섞였다. 그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흔적도 물줄기에 천천히 씻겨 내려갔다.

“하아하아...”

투명한 액으로 끈적하게 젖은 닉의 손도 남은 것도 씻겨져 갔다.
두 사람의 뜨거운 열기로 수증기가 피어오른 닉의 욕실은 흐느끼는 스테판의 헐떡이는 숨소리로 채워졌지만 닉의 욕망에 아직 달아오르지 않았다.
몸의 열이 식혀지질 않았다.
아직 화요일이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닉? 이번 파티에서 입기로 했던 턱시도는?”

매니저가 계약위반이라면서 위약금 이야기를 하기에 닉은 원하는 대로 아니 몇 배로 물어줘도 상관없으니 위약금을 줘버리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아쉬운 쪽은 닉 리버스가 아니니까.
스테판 조르제비치답게 짧은 생일 축하 메시지와 검정 실크 셔츠 한 벌이 닉 리버스의 손에 들려있었다. 예상이 빗나간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체가 마음에 들었다. 스테판의 사정에는 제법 비쌌을 검정 실크 셔츠는 처음부터 닉 리버스를 위한 것처럼 어울렸다. 고작 이런 걸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자신을 혹사했나 싶었는데 막상 스테판의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선물에 닉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처럼 마음이 간질거렸다. 그 고지식한 스테판이라면 생일 메시지조차 고심 했을 게 분명하니까. 이 셔츠를 고를 때 온전히 닉 리버스 자신만을 생각했을 걸 상상하자 단박에 거절했음에도 억지로라도 오늘 파티에 데려올걸 싶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싫어할게 뻔하니까 닉은 애써 참기로 했지만.
이 셔츠는 앞으로 특별한 날만 입기로 결정했다. 닉을 열렬히 사랑하고 갈구하는 이들을 앞에 두고 이 사랑스러운 셔츠를 입는다면 스테판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닉, 이제 나갈 시간이야.”

스테판이 없는 올해 생일파티는 언제나처럼 아니 유난히 더 지루할 텐데.
정말 뜻대로 해주는 법이 없어. 스테판 조르제비치







“스테판?”

“오셨…….어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닉을 맞이하는 스테판의 얼굴은 고작 이틀 사이에 형편 없어졌다. 그 버렸으면 좋을 야구점퍼만 벗어놓은 불편한 차림에다 소파에 잔뜩 웅크려 설픈 잠을 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치 빠른 닉은 그가 이 펜트하우스를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묘하게 경계심을 풀지 않고 금방이라도 미련 없이 떠나버려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을 만큼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기다리지 말고 원하는 곳에 편히 있으라고 몇 번이나 권해도 ‘그래도’라며 마치 길고양이처럼 조심스러웠던 스테판이었는데 잠이 들었다니.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런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닌데.

“세상에 스테판, 열이 나잖아요. 아픈데 온 거예요?"

“금요일, 계약 되어있잖아요.”

“아플 땐 쉬어도 좋아요. 내가 그 정도 사정도 봐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계약서에는 그런 조항이 없는걸요.”

열때문에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는 담담하게 말하는 스테판을 보고 있으려니 닉은 아주 중요한 일을 놓친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이스매브 크오
닉스테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