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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2 18:05
빌어먹을. 쟤는 쓸데없이 잘생겼다. 나는 쓸데없이 쟤를 의식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이 무척이나 불편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반장욕실에서 나오자마자 욕실을 쓰려고 온 당사자를 마주쳤으니까. 쟤는 무슨 생각인지 내 앞에서 비킬 생각을 안하고.
"미첼, 나 감기 나은지 얼마 안됐거든. 걷는 법을 까먹은 게 아니라면 비켜주라."
"... 너 왜 요즘 저녁 안 먹어?"
"플리트윅 교수님 일 좀 도와드리느라. 나 이제 진짜 가서 자고 싶어. 비켜주라."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줄까?"
"왜, 씻고 나온 내가 너무 고혹적이어서 누가 덮치기라도 할까봐? 고맙지만 거절할게."
내가 이렇게 까칠한 이유는, 내가 쟤한테 작년에 차여서다. 크리스마스 무도회 때 당연히 난 쟤가 내 파트너일 줄 알았고, 쟤는 보바통에서 온 교환학생-가문끼리 알고 지낸다는 그 여자애-이랑 어머니 부탁으로 무도회를 갔다. 그저 가문끼리 알고 지내는 소꿉친구라는데, 씨발, 그 여자애 눈깔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나 싶었다. 그리고 우린 개같이 싸우고 헤어졌지.
"그래도, 데려다줄게."
"... 네 맘대로 해."
한번 하겠다고 맘먹은 걸 번복하는 애가 아니니까, 그냥 한숨만 쉬고 그러라했다. 제발 독수리상이 내가 금방 맞출 만한 문제를 내서, 빨리 들어가기를 바라며 래번클로 기숙사 문 앞까지 도착했다. 갓 태어난 병아리가 자신보다 나은 점을 말하라. 귀엽고, 작고, 소중하지... 입에 넣고 와랄라 해주고 싶다, 뭐 이딴 건 안될테고.
"두려움이 없지."
다행스럽게도 문이 열렸다. 싫다 했어도 데려다 준 건 데려다 준 거니까, 뒤돌아서 고맙다고, 잘 자라고 조용히 말한 뒤에 기숙사로 냉큼 들어왔다. 머리맡에 둔 지팡이로 건조 주문을 외우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 수많은 책을 정리했더니 눈이 빠질 것 같았지만, 적어도 연회장에서 요즘들어 힐끔거리는 미첼을 안 봐도 돼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기가 막히게 나타났다.
"... 리즈, 자?"
"아니, 깃털 콜렉션 정리 방금 마쳤어. 왜?"
"... 나 방금 미첼이 기숙사 문앞까지 데려다줌."
"미친. 걔 요즘 너 겁나 힐끔거리더라니, 왜? 어쩌다가?"
"걔가 힐끔거리는 거 맞지? 이유는 모르고, 그냥 반장욕실에서 씻고 나왔더니 걔도 씻으려고 했나봐. 문앞에 서있었어. 그러더니 갑자기 데려다준다고 해서, 거절해도 데려다준다고 해가지고 그냥 네 맘대로 하라고 말했어."
"오면서 무슨 얘기했어?"
"아무 말도 안했어. 그냥 진짜 데려다만 줬는데. 암말도 안하기 뭐해서 걍 잘 자라고 하고 대답도 안듣고 들어왔지."
엥. 매너남 오졌네. 일부러 경박한 말투로 말하는 리즈를 보고 나도 그저 낄낄거렸다. 나는 걔를 너무 좋아해서, 기대했던만큼 실망해서 헤어졌던 거지 걔를 싫어했던 게 아니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걔가 나를 좋아해서 고백을 받아준 게 아니란 것도 알았고, 항상 내 마음이 더 크단 것도 알았다. 그래서 이제는 걔가 뭘 하던지 그렇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고, 나도 나 좋다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게 문제지-
"... 비, 재능만 믿고 수업 시간에 딴 생각을 했다간 큰코 다칠텐데."
"아, 넵.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래, 열심히 하고."
오빠가 내 뒤통수를 두어번 쓱쓱 쓰다듬고 지나가자, 오빠가 내 오빠인 걸 모르는 학생들만 또 난리가 났다. 반스 교수님은 맨날 비만 예뻐한다면서, 수군수군... 너네도 너네 나이 반토막만한 여동생이 있다면 그러지 않을까. 오빠는 내가 미첼이랑 헤어진 걸 알자마자 길길이 날뛰면서 그 슬리데린 놈을 찢어놓겠다는 둥 펄펄 뛰었다. 말도 안되게 소개팅을 주선하겠다고 말해서 내가 경악하기도 했지만.
"아잇, 머리 그만 쓰다듬어. 떡진다고-."
"오빠 안아주고 가야지, 애기. 어디 가."
"... 출장 잘 갔다와. 다치지 말고."
끌어안은 틈새에 볼에 몇번이고 뽀뽀를 갈기고-이 표현이 제일 적당하다-오빠는 떨어졌다. 그러고는 플루가루로 사라졌다. 오빠가 사라진 벽난로를 보고 있다 돌아서자 미첼이 서있었다.
"어디부터 봤어?"
"... 반스 교수님이 어쩐지 네 뒤통수를 지나치게 쓰다듬더라니."
"사이가 좋지. 아무래도,"
"나이많은 남자 좋아해? 아무리 그래도 우리 나이 두배는 좀,"
"....? 우리오빠 나이 많다고 지금 조롱하냐? 죽을래?"
"오빠라고 불러?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아 그럼 엄마 아들을 오빠라고 부르지, 자기라고 부르리? 돌았나, 미친 새끼가 진짜. 눈 똑바로 뜨고 다녀, 나 오빠랑 똑닮았거든?"
씩씩거리며 자기를 노려보는 나를 보고 유안이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미안하다며 사과해왔다. 나는 이김에 다 뱉어버리기로 했다.
"넌 내가 만만하지. 그러니까 맨날 내 주변 알짱거리면서 사람 열받게 하고 신경쓰이게 하고 그러는 거지."
"허니, 그게 아니라.."
"너 연애하는 내내 내가 너 더 좋아한 거 알았으니까. 헤어진 것도 내가 질투해서 싸운 거니까, 당연히 좀 옆에서 살랑거리면 너 좋아한다고 헤벌레할 거라고 생각한 거잖아, 아니야? 근데 어떡하냐. 나 너같은 거 다신 안 만나. 니가 나 좋아죽겠다고, 안 만나주면 죽어버린다 해도 안 만날 거야. 그러니까 눈에 띄지 마."
나는 말을 뱉어버리고 유안 곁을 떠났다. 말을 뱉으면서도 내게 더 상처가 되어서, 나는 복도를 돌자마자 천문탑으로 뛰어가 방음 마법을 걸고 구석에서 엉엉 울었다. 내가 걔를 더 좋아하고- 걔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내 입으로 내뱉는 건 생각보다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 손으로 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밀어낸다는 건 평소 내 모습과 현저히 달랐다.
나는 쟤만 얽히면 이렇게 유난을 떤다.
유첼너붕붕
벤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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